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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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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포, 면포(綿布), 단주(緞紬), 마포(麻布), 삼베, 도포, 수의용(壽衣用) 옷감

      안동포는 19세기 전반에 저술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예규지(倪圭志) ‘팔역장시조(八域場市條)’에는 면포(綿布), 단주(緞紬)와 더불어 마포(麻布)가 안동장에 풍부한 물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안동포’라는 명칭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문헌은 19세기 전기 헌종 대의 한양가(漢陽歌)이다. 베전에 놓인 여러 가지 삼베 가운데서 안동포라는 명칭을 찾아볼 수 있다.1892년(고종29)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화군(義和君)의 관례(冠禮) 때 장만한 의복의 종류와 가짓수를 기록한 「발기」에 ‘안동포 고의’가 기록되어 있다.   1911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발간한 조선산업지(朝鮮産業誌)에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특용작물로 대마가 있으며, 경상도 안동 부근의 생산량이 약간 많다고 기록되어 있다.1915년 일본인의 조사 보고서 조선향염직물각칭류휘의 ‘마(麻)’ 항에 안동포가 기록되어 있으며, 1924년 조선총독부 촉탁 젠쇼 에이스케[善生永助]가 조사하여 펴낸 조선의 시장[朝鮮の市場에는 안동장에 출하된 마포의 양이 4,500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910년 안동군 전역의 마포 생산량이11,230필인 것과 비교했을 때, 현격한 생산량 증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1926년에 발간된 시장지의 상권[市街地の商圈]과 1927년에 발간된 조선의 물산(朝鮮の物産)에도 안동 특산물로 마포가 기록되어 있다. 이능화(李能和) 역시 1927년 조선여속고(朝鮮女俗考)에서 여름철 옷감으로 안동포를 소개하였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안동포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대략 19세기 후반 무렵이며, 20세기 초에 이르러 비로소 좋은 품질의 삼베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상품정보 안동 지역에서 생산되는 삼베 가운데 익히지 않은 생냉이로 짠 것을 일컬어 안동포라고 한다. 삼베는 대마의 껍질을 다루는 방법에 따라 생냉이, 익냉이, 무삼으로 나뉘는데 이 중 가장 부드럽고 고운 것을 생냉이라고 한다. 그다음 등급이 익냉이이며 가장 거칠고 억센 것이 무삼이다.품질 좋은 안동포는 대개 생냉이이며 80올 1새를 기준으로 했을 때, 15새까지 직조가 가능했다고 하나 현재는 8새 정도면 비교적 상품(上品)으로 친다. 안동포는 주로 여름용 옷감인 모시와 함께 사용되었으며 올이 굵고 거친 것은 상복(喪服)으로 쓰였고, 유교적 전통이 강한 안동에서 사대부 남성들의 도포를 만드는 데도 쓰였다. 최근에는 수의용(壽衣用) 옷감으로 많이 쓰인다.   [안동마포조합] 1913년 국담(菊潭) 권태연(權台淵, 1880~1947)에 의해 설립된 안동포 중개 및 기술개량조합이다. 1931년 간행된 『안동군세일반(安東郡勢一斑)』에 따르면, 설립 당시 안동마포개량동업조합으로 개소했다가 「동업조합령」에 저촉되어 1920년에 안동마포조합으로 개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동마포조합은 안동포 개량은 물론 다른 지역의 삼베 생산에도 계도적 영향을 미쳤으며, 각 지역 안동포의 위상을 알리는 계기를 제공했던 것으로 보인다.『조선의 물산』에는 “경상북도 안동군에서는 각지의 상인이 (안동포) 생산 기간 동안 읍내에 와서 수십 일간 체류하면서, 마포조합의 중개에 의하여 매일 모여드는 생산자에 따라 소요 수량의 마포를 구입하여 대구나 기타 시장에 반출하여 판매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서 안동마포조합이 안동포 판매 중개와 외부 판로 개척까지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안동포 도포의 기능] 도포는 조선시대 사대부가(士大夫家) 남성들의 일상용 겉옷으로 1884년(고종 21) 「갑신의복개혁령」 이후 포제가 바뀌고 신분적 구별 없이 두루마기를 착용하게 되면서 의례복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유교적 전통이 더욱 강력하게 지속된 안동의 지역적 특성과 관념에 따라 각종 유교 의례를 수행하는 빈도가 줄지 않으면서 의례복으로서 도포의 역할도 지속되었다.안동 지역에서 도포를 착용할 수 있다는 것은 한 가문의 남성 구성원으로서 유교적 의례를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각종 대소사나 제례 때에는 반드시 도포를 착용하였고 삶을 마감한 뒤에는 수의로 활용하였다.   사대부가의 남성들에게 도포는 살아서는 자신의 사회적·신분적 위치를 보여 주는 것이었고,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도 예를 갖추기 위해 사용된 필수품이었다.아울러 예단으로 시아버지의 안동포 도포를 마련하는 것은 안동 지역 인근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었다. 여성이 도포를 만드는 것 또는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바느질 솜씨’를 판가름하는 일인 동시에 여성 자신이 속한 집안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 주는 것이었으며, 유교적 규범을 엄격히 수행하는 집안의 자손임을 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유교적 색채가 강한 안동 인근 지역에서 안동포 도포는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산물인 동시에 사회적 특권의 표시이자 지위의 상징이었다.   [안동포 직조 기술의 전승] 안동포 생산은 현재 임하면 금소리·고곡리, 북후면 옹천리, 서후면 저전리·대두서리, 풍산읍 서미리, 안동시 무주무(수상2동, 수하1동, 수하2동)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공통 작업이 필요한 삼베길쌈의 특성상 주로 조직적인 노동력 동원이 가능한 동성마을 등에서 더욱 활성화되어 지속적으로 전승되는 양상을 보인다.1970년대 이후 대마 재배가 허가제로 변경된 후 대마 경작에서 직조까지 삼베길쌈의 생산과 관련된 전 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마을은 금소리와 고곡리뿐이며 나머지 마을은 대마를 구입하여 직조만 하고 있다. 1975년 ‘안동포짜기’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면서, 금소리에 사는 배분령 할머니가 기능보유자로 선정되었다.   [안동포 직조 과정과 특징] 3월에 대마를 파종하고 재배하여 6월쯤 수확한 뒤 겉껍질을 벗겨내기 위해 찌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을 ‘삼굿’이라고 하는데 물가에 인공적으로 만든 구덩이에 돌을 넣고 달구면, 연결된 다른 구덩이 쪽으로 뜨거운 김이 전달되어 찌는 원리다. 이렇게 쪄낸 대마는 하루 정도 말렸다가 다시 물에 불려 껍질이 분리되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이 과정이 안동포가 다른 삼베와 구분되는 점이다. 대마를 잿물에 익혀서 베를 짜면 익냉이가 되는데, 안동포는 이 과정을 생략하고 물에 담가 불려 익히는 방식을 택한다. 껍질을 속대로부터 분리한 뒤에는 삼톱으로 겉껍질을 훑어내려 속껍질을 얻는다. 생냉이는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삼톱으로 또 한 번 껍질을 분리하는 것이므로 익냉이보다 얇고 가느다란 섬유를 얻을 수 있다.   겉껍질을 제거한 속껍질을 모아 햇볕에 말리는데, 이것은 색을 바래게 하는 과정으로 ‘제추리’ 또는 ‘계추리 바래기’라고 부른다. 이 과정이 끝나면 삼을 가닥가닥 찢는 ‘째기’가 이어지며 이때 안동포의 새수가 결정된다. 찢은 삼을 모아 잇는 과정은 ‘삼 삼기’라고 하며 올과 올을 연결하여 긴 실을 만든다. 생냉이는 날실을 비빈 뒤 꼬아 삼기 때문에 삼을 꼬아 실의 강도를 강화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실이 모두 마련되면 씨실을 북에 감아 씨실꾸리를 만들고 길이와 새수를 고려하여 날실의 길이와 올수를 결정하는 ‘베날기’를 한다. 베날기가 끝나면 마당에서 겻불을 피워 두고 날실에 풀을 발라 입히는 ‘베매기’를 하여 베를 짜는 동안 날실이 건조되어 끊어지지 않도록 준비한다. 베짜기가 모두 끝나면 물에 담가 풀기를 제거한다.   생냉이인 안동포는 잿물에 익히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으므로 삼베를 완전히 직조한 이후에 별도로 균질한 색을 내도록 하는 과정인 ‘상괴내기’가 필요하다. 상괴내기는 균일한 색을 얻기 위해 잿물에 담갔다가 뜨거운 방에 넣어 두고 3일이 지난 뒤에 꺼내는 과정이다. 안동포의 특성은 생냉이로 생산되는 방식에 있으며 이것이 여타 지역에서 생산되는 익냉이에 비해 훨씬 우수한 품질의 삼베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의 고유복식),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안동지역에서 제직된 대마포(大麻布)로서, 이 지역은 기후와 토질이 대마 재배에 적합하여 제직기술이 우수하여 조선시대에는 궁중 진상품으로 사용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재배·수확·제직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안동지역은 기후와 토질이 대마 재배에 적합하며 제직 기술이 우수하여 조선시대에 진상품으로 사용되었다. 재배·수확·제직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 재배와 수확 : 종자는 재래종인 정선종이다. 4월 초순에 줄뿌림으로 파종하여 7월에 수확한다. 대마의 줄기 밑둥의 잎이 떨어지고 줄기가 황색을 띨 때가 적기이다. ② 삼껍질 벗기기 : 수확된 삼대를 길이·굵기가 같은 것끼리 선별하여 약 30㎝ 정도의 단을 만들어 물에 담그거나 찐 다음, 햇볕에 헤쳐 널어 하루 동안 바싹 말린다. 말린 삼대는 묶어 두었다가 필요량을 12시간 동안 냇물에 담가 불려서 껍질을 벗기며 벗긴 껍질은 말려둔다. ③ 삼째기 : 말려둔 삼껍질[皮麻]을 물로 축여 왼손에 피마를 잡고, 오른손으로 삼톱을 잡고 끝에서 끝으로 훑어서 최외피를 벗겨낸다. 그리고 손톱으로 일일이 짼다. 손톱으로 째고 훑어내려 가닥을 낸다. 이 과정에서 안동포의 섬세도가 가름된다. 쪼개진 삼은 상·하품으로 등급을 매겨 같은 등급끼리 묶어서 ‘삼뚜까치’에 건다. ④ 삼삼기 : ‘삼뚜까치’에 걸린 삼올을 뽑아 삼올의 끝과 끝을 이어 제직용사를 만드는 과정이다. 제직용사는 날실(경사)·씨실(위사)용이 별도의 방법으로 삼긴다. 날실은 한 끝을 Y자형으로 쪼개고 또 한 끝의 삼올 끝은 입으로 뾰족하게 하여 이것을 Y자로 쪼갠 한 가닥과 겹쳐 오른쪽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으로 비벼 꼬고, 또 Y자의 다른 가닥을 비벼 꼬여진 부분과 무릎 위에서 비벼 잇기를 완성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듭하여 경사용 필라멘트사를 만드는데, 이와 같이 튼튼히 잇는 것은 제직 도중 경사가 절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또 다른 방법은 삼올의 끝과 끝을 오른쪽 무릎 위에 나란히 겹쳐 놓고 오른손으로 비벼 꼰다. 그 다음 삼올을 각각 반대 방향으로 제껴서 다시 꼰 부분과 삼올을 무릎 위에서 다시 비벼 꼬아 완성한다. 씨실(위사)로 사용될 것은 삼올의 끝과 끝을 겹쳐 맞대어 무릎 위에서 비벼 꼰다. ⑤ 새의 결정 : 삼올의 굵기에 따라 한 폭에 날아질 올 수가 달라진다. 굵은 실은 올 수가 적어지고, 가는 실은 올 수가 많아진다. 한 폭에 80올이 날아질 때가 1승이므로 보름새의 경우에는 1,200올의 날실이 한 폭에 날아진다. 일곱새에서 보름새가 날아졌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는9승포도 어렵다고 한다. ⑥ 베날기 : 삼삼기가 끝난 실을 물레에 올려 타래를 만들고, 타래의 끝을 찾아 날상이의 구멍을 통과시켜서 한데 모아 한 필의 길이와 새의 수에 맞추어서 베꽂이에 걸어 날실다발을 만든다. ⑦ 베매기 : 베날기가 끝난 날실을 풀먹이는 과정이다. 날실의 한 끝에서 바디를 끼우고 그 끝을 잡아당겨 도투마리에 맨다. 다른 날실의 한 끝은 끄싱개에 매어 두리두리 날실을 걸어 매고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도투마리 쪽에 잿불을 피우고 좁쌀풀을 먹여 말려 도투마리에 감는다. ⑧ 베짜기 : 베틀이라고 일컫는 직기로 제직한다. 감긴 도투마리를 베틀의 누운다리에 얹고 경사를 풀어 사침대로 갈린 날실을 우수, 기수로 번갈아 두 개의 잉아에 끼워서 바디에 끼고 홍두깨에 감아매어 날실을 긴장시키고 발로 베틀의 쇠꼬리끈을 잡아당기며 개구하여 씨실꾸리가 든 북을 좌우 손으로 넣으며 바디로 씨실을 쳐서 베를 짠다. 안동포는 생활 양식의 변천에 따라 그 수요가 줄고, 또 그 기능보유자도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어서 안동포짜기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하고, 배분영(裵粉令)을 기능보유자로 지정하여 그 맥을 잇도록 하고 있다. 안동포의 특징은 올이 곱고 색깔이 아름다우며 통풍이 잘되고 땀이 나도 몸에 감기지 않는다. 또한 내구성(耐久性)이 강해 수명도 길어 하절기의 최고급 옷감으로 손꼽힌다. 최근 값싼 중국 삼베기 다량 유통되고 있기는 하지만 품질면에서는 아직 현격한 차이가 있어 이러한 장점이 점차 수요자들의 구매 방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한다.국산 삼베 어디서 살까?삼베 역시 중국산이 국내 시장을 잠식해, 유통물량의 90% 이상이 중국산이다. 삼베는 국산과 중국산의 구별이 어렵기 때문에 진품을 구입하려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것보다는 가급적 현지로 연락해 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삼베는 경북 안동, 전남 보성, 경남 남해, 강원 삼척 등 여러 곳에서 난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안동시 임하면 안동포마을에서 생산하는 안동포와 보성지역에서 생산하는 보성삼베로 둘 다 지리적표시제를 획득했다. ☎안동포마을 054-822-1112, 보성삼베랑 061-853-6805, 보성전삼베영농법인 061-852-9898.   관련근거 및 출처 춘관통고, 공선정례, <동국여지승람><영일현>, 도문대작(屠門大嚼) ,성호사설(星湖僿說) ,명물기략(明物紀略) 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衍文長箋散稿) <음식디미방>, 규합총서(閨閤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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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산모시와 안동포 수많은 여인 입술 부르트며 만든 천년 명품

    “오늘 기온이 영하...고 땀을 뻘뻘 흘리는 수고를 해야 했다.  13가지 공정을 거쳐 완성된 안동포 베틀은 농사일에 지친 몸으로 아이까지 둘러업고 베를 짜야 하는 여성들의 고단한 삶 자체였다. 모시는 여름 옷감이지만 노동은 농번기는 물론이고 농한기인 겨울까지도 이어졌다. 그 고단함을 풀어주는 노래가 노동요인 베짜기 노래다. 노래에는 ‘잠아 잠아 오지 마라’라는 현실의 고통을 표현한 가사와 ‘베틀 위에 앉은 애기는 천상선녀’라는 고통을 벗어나고 싶은 희망이 동시에 담겨 있다. “모시를 짤 때 사용한 베틀과 삼베를 짤 때 쓰는 베틀이 같은가요?” “어려운 질문을 하네. 할머니한테 전화로 물어볼 수밖에 없다. 아들이 전화해라.” “모시나 삼베, 비단이나 무명을 다 같은 베틀에서 짰다는데요.” “옛날에는 집집마다 베틀 없는 집이 없었겠구나. 그러니까 나라에서 세금을 거둘 때 군포나 호포라는 이름을 붙여 확실히 거둘 수 있었겠어.” “안동은 왜 삼베로 유명하죠?” “낙동강 유역이 모래가 많은 토양이라 배수가 잘 되고 주변을 산이 둘러싸 강풍을 막아주기 때문에 질 좋은 마가 생산된대.” 삼베는 일찍부터 의복의 소재로 널리 이용돼 함경도의 북포(北布), 영남의 영포(嶺布), 강원도의 강포(江布), 전라도 곡성의 돌실나이 등이 유명했다. 안동포는 영포 중에서 으뜸으로 여겨져 왔다. 신라 선덕여왕 때 베짜기 대회에서 이름을 날려 진상품이 됐다고 한다. 안동포는 수확에서 색내기까지 13가지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제일 가늘고 윤기 있는 15새는 조선시대 진상품이었다고 한다. 안동에 있는 베전골목은 조선 말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던 안동포의 최고 시장이었다. 안동포전시관(경북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가면 안동포의 역사와 유래, 길쌈 과정 등을 볼 수 있다.                                                                                 <양영채 (사)우리글 진흥원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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