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 설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에 수록되어 있는 신라시대의 설화. 일장춘몽(一場春夢)인 인생의 허무를 주제로 한 꿈의 문학으로는 국문학사상 그 원조(元朝)이다. 비록 설화이긴 하나 단편소설 이상의 구성과 압축된 주제를 살렸다. 내용은 신라 때 중 조신(調信)이 명주 태수(溟州太守) 김근의 딸을 보고 홀딱 반했는데, 얼마 후 딴 사람에게 출가했으므로 조신은 울면서 그녀를 못내 그리워했다. 하루는 부처를 원망하다가 피곤해서 낮잠을 자는데, 김랑이 부모의 영에 못이겨 결혼은 했지만 당신을 사랑한다며 돌아왔다. 조신은 기뻐하며 고향에 돌아가 40여년을 같이 살았는데, 자식을 다섯이나 두도록 살림은 찢어지게 가난하여 끼니를 끊일 조 한 되 없고 입을 옷도 없어 하는 수없이 자식들을 서로 나누어 막 헤어지려는 찰라 조신은 잠을 깬다. 밖은 이미 어스름한 깊은 밤이 되었고 인생의 덧없음을 깨우친 그 후로는 김랑에게 반했던 마음도 씻고 불도(佛道)에 진력하였다. (자료 출처 : 한국사전연구사간.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조신설화(調信說話)
조신이라는 승려를 주인공으로 한 환몽설화(幻夢說話)로 〈삼국유사〉 권3 낙산2대성관음정취조신조에 실려 있다. 신라 때 세규사(世逵寺 : 逵는 達이 옳다는 설이 있음)의 농장이 명주에 있어서 본사(本寺)에서 조신이라는 중을 농장 감독으로 보냈다. 조신은 태수 김흔공(金昕公)의 딸을 깊이 사모하여 낙산사 대비관음 앞에 나아가서 그 여자와 인연을 맺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벌써 배필이 정해져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갔다. 조신은 법당에 가서 대비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성취시켜주지 않음을 원망하여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노곤하여 잠깐 졸았다. 꿈에 갑자기 김씨낭자가 조용히 문으로 들어와 "내가 일찍이 당신의 낯을 보고 사랑하여 잊지 못했지만 부모의 명을 어기지 못해 딴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이제 죽어서 한데 묻힐 친구가 되고자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신이 미칠 듯이 기뻐서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40여 년을 재미있게 살면서 아이를 5명이나 두었다. 그러나 점점 가난해져서 식구들을 이끌고 빌어먹으며 돌아다니다가 명주 해현령(蟹縣嶺)에 이르렀을 때 15세 된 큰 아이가 굶어죽게 되어 길가에 묻었다. 남은 식구들이 우곡현(羽曲縣)으로 가서 길가에 볏집을 짓고 살았는데 부부가 늙고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여 10세 된 계집애가 밥을 빌러 돌아다니다가 동네 개에게 물려 아파 울부짖으니 부모로서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 비참해지자 부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니 헤어지자고 제안하고 조신도 이에 동의했다. 남녀가 각각 아이들을 2명씩 나누어 맡고 막 떠나려 할 때 홀연히 꿈을 깨니 조그마한 등불만이 어스름하게 비치고 밤은 벌써 깊었는데 수염과 머리가 하얗게 세 있었다. 이에 마치 100년의 괴로움을 겪은 듯하며 세상사에 집착하는 마음이 눈녹듯이 사라졌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성상 앞에서 한없이 참회하고 해현령에 가서 아이를 묻은 곳을 파보니 돌미륵이 있었다. 조신은 돌미륵을 깨끗이 씻어서 가까운 절에 봉안하고 그뒤 서울로 가서 농장의 책임을 사임하고 사재를 털어 정토사(淨土寺)를 짓고 백업(白業)을 부지런히 닦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현실-꿈-현실'이라는 몽유양식(夢遊樣式)을 통해 인생무상이라는 주제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환몽설화로 후대의 많은 몽유록(夢遊錄)과 몽자류소설(夢字類小說)에 서사구조를 제공한 것으로 지적되어왔다. 한편 몽중 체험이 고난의 연속이었다는 특징 때문에 이 이야기는 불교적인 인생무상을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심화 자료
'조신의 꿈'의 전설로서의 특징과 주제
전설은 이야기 내용의 진실성을 내세우는 뜻에서 구체적인 증거물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작품의 경우에는 세규사와 정토사라는 절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정토사는 조신이 나중에 깨달음을 얻고서 세웠다고 하므로 이 전설은 정토사 건립의 내력을 설명하는 사원연기설화가 되는 셈이다.
또한 전설의 주인공이 어떤 심각한 장애에 부딪혀서 시련과 좌절을 겪는 예가 많다는 점은 이 작품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비록 꿈속의 일이기는 하지만 사랑하던 여인과 결혼한 뒤 조신이 겪는 참혹한 가난과 고통은 보통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며, 그의 소망은 엄청난 시련 앞에서 보잘 것없이 무너져서 비극적인 결과에 도달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주제는 물론 불교적인 것이다.
한편, 이 전설의 주제를 간략히 정리하면 '인생의 즐거움'에 대한 욕망은 한 순간의 꿈이요 고통의 근원이니 그러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이 될 것이다.
남가태수전 (南柯太守傳)
중국 당(唐)나라의 전기소설로서 이공좌(李公佐)의 작품. 주인공 순우분이 술에 취하여 선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괴안국(槐安國)이라는 나라의 사신의 초청을 받고 그의 집 마당에 있는 홰나무 구멍 속으로 동행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왕녀와 결혼하고 남가군(南柯郡)의 태수가 되어 호강을 누리다 왕녀가 죽자 귀향을 해서 깨어보니 그곳이 원래의 자기 집이었다고 한다. 마당으로 내려가 홰나무를 베어 조사해 보니 꿈속 나라와 똑같은 개미의 나라가 나타났다고 한다. 현실과 꿈의 세계가 갈피를 못잡을 만큼 혼돈된 속에서 인간의 운명의 허무함을 말해 주는 '침중기(枕中記)'와 비슷한데 '남가기(南柯記)'는 이 작품을 희곡화한 것이다. 그리고 현대 영화 '매트릭스'라는 작품과 주제는 다를망정 꿈과 현실의 혼돈이라는 측면에서는 비교해 볼만하고 유사어로는 남가일몽(南柯一夢)과 괴몽(槐夢), 괴안몽, 남가몽, 남가지몽, 남가기가 있다.
한단지몽(邯鄲之夢)
인생과 영화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 서기 731년에 노생(盧生)이 한단이란 곳에서 여옹(呂翁)의 베개를 빌려 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80년 동안 부귀영화를 다 누렸으나 깨어 보니 메조로 밥을 짓는 동안이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심기제(沈旣濟)의 '침중기(枕中記)'에서 나온 말이다. 유사어로 노생지몽과 한단몽이 있다.
불경 '잡보장경'의 사라나 비구 설화
주인공 사라나는 왕자의 신분으로 승려가 되었다. 어느 날 악생왕을 모시는 시녀들이 악생왕이 잠든 사이에 그에게 설법을 청하여, 이를 들려준다. 이 일로 말미암아 그는 악생왕에게 복수할 것을 결심하고 큰스님을 찾아가 환속하기를 원한다. 그러자 큰스님이 오늘은 잠시 쉬었다가 내일 환속(還俗)하라고 한다. 사라나는 잠을 자던 중 꿈속에서 자신의 소원대로 환속하여 왕이 되고, 악생왕과 복수의 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싸움에 패하고 악생왕에게 잡혀 처형당하게 되는데, 그 순간에 꿈을 깬다. 이에 사라나는 생사(生死)와 싸움의 허망함을 깨닫고 불도에 힘써 아라한 즉 깨달은 자의 경지에 도달한다.
문학사적 의의 및 줄거리
'조신의 꿈'은 일장춘몽인 인생의 허무를 주제로 한 '꿈'의 문학으로는 국문학사상 그 원조이다. 비록 설화이긴 하나 단편 소설 이상의 긴밀한 구성과 압축된 주제를 살렸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신라 때의 스님 조신이 명주 태수 김흔의 딸을 보고 홀딱 반했는데, 얼마 후 그녀가 딴 사람에게 출가했으므로 조신은 울면서 그녀를 못내 그리워했다. 하루는 부처님을 원망하다가 피곤해서 낮잠을 자는데, 김량이 부모의 영에 어쩔 수 없어 결혼은 했지만 당신을 사랑한다며 돌아왔다. 조신은 기뻐하며 고향에 돌아가 40여 년을 같이 살았는데, 자식을 다섯이나 두도록 살림은 찢어지게 가난하여 끼니를 끓일 조 한 되 없고 입을 옷도 없어 하는 수 없이 자식들을 서로 나누어 막 헤어지려는 찰나 잠을 깼다. 밖은 이미 어스름한 밤이 되었고 인생의 덧없음을 깨우친 그 후로는 김랑에게 반했던 마음도 씻고 불도(佛道)에 전력하였다
환몽설화(幻夢說話)
꿈속에서 어떤 사건을 체험하고 꿈에서 깨어나 참다운 이치를 깨닫게 된가는 구조를 가진 설화를 가리킨다. 평소의 욕망이 빌미가 되어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 허망함을 말하며 세속적 욕망의 무가치함을 말하는 형식이다. 중국의 경우 '남가 태수전(南柯太守傳)', '침중기(枕中記)' 등이 대표적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김만중의 '구운몽(九雲夢)', 이광수의 '꿈' 등에서 이러한 구조가 나타난다.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는 고사 성어의 근원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조신(調信)
생몰년 미상. 신라의 승려. 꿈을 통하여 애욕(愛欲)의 무상함을 깨친 일화를 남기고 있다. 조신은 경주의 세달사(世達寺:뒤의 興敎寺)에 속했던 명주(溟州:강릉) 장원(莊園)의 지장(知莊:장원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임명되었다.
그곳에서 군수인 김흔(金昕)의 딸을 본 뒤 매혹되어 낙산사(洛山寺) 대비관음상(大悲觀音像) 앞에서 그 사랑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수년 동안 정성을 다하였으나 그녀가 이미 출가하여 자기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을 알고, 관음상 앞에 가서 원망하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뜻밖에 그 여자가 나타나서 사실은 마음으로 그를 사랑해 왔으나 부모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 억지로 남의 아내가 되었지만, 이제 함께 살기 위해서 왔다고 하였다. 그는 기뻐하여 그녀를 데리고 고향으로 가서 살림을 시작하였다.
40년 동안 깊은 정을 나누고 살면서 자식 5남매를 거느리게 되었으나 가난하여 사방을 떠돌아다니며 10년 동안 걸식하였다. 명주의 해현령(蟹縣嶺)에서 15세 된 큰 아들이 굶어 죽자 길가에 묻었고, 우곡현(羽曲縣)에 이르러서 길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두 부부가 늙고 병들어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10세 된 딸이 걸식하였는데, 그만 동네 개에게 물려 드러눕게 되었다. 부부가 함께 통곡하다가, 50년 동안 고락을 같이했으나 이제는 늙고 병들어 빌어먹기도 어렵고 자식들도 헐벗고 굶주려 어찌할 수 없으니 헤어져서 살아갈 길을 찾자고 하였다.
부부는 아이를 둘씩 나누어 데리고 남북으로 정처없이 헤어지려던 차에 꿈에서 깨어났다. 그의 머리는 백발이 되어 있었고, 속세에 살려던 뜻이 사라졌으며, 인생의 허무와 회한을 느꼈다. 그 길로 해현령에 가서 시체를 묻은 곳을 파보았더니 돌미륵이 나오므로 이를 이웃 절에 봉안하였다.
그 뒤 정토사(淨土寺)를 창건하여 부지런히 정진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이광수(李光洙)는 〈꿈〉이라는 작품을 썼고, 그것은 다시 영화로 제작되었다.≪참고문헌≫ 三國遺事.(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료출처: http://www.seelot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