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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도록 슬픈 꽃이 품은 사찰 선운사

동백꽃은 시린 겨울을 이겨내며 선운사를 품는다. 시인은 과거의 추억을 안고 그곳에 안긴다.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禪의 경지를 얻는 곳. 선운사 곳곳에서 과거의 향기를 맡는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앉은 눈꽃은 문 밖에서 봄을 조금 더 붙잡아 놓는다. 눈꽃 핀 선운사 오르는 길

눈꽃이 내렸다. 깊은 발자국을 내며 선운사로 향하는 길은 시인에게 설레임 그 자체였다. 시골집 앞에 밤새 내린 눈이 밖으로 가는 길을 막았지만, 시인은 그것을 거부하고 선운사를 찾았다. 불국토라 불리는 도솔산(선운산)의 선운사는 꽤나 유명하여 매일 방문객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나, 이날 선운사는 눈꽃을 피워내어 다른 이들의 발목을 잡고는 시인과의 조용한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다. 눈 덮인 선운사를 걸으며 “참 예쁘지요”를 연발하는 시인의 눈에 선운사를 아끼는 마음이 가득하다. 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에 자리를 잡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 규모도 크고 화엄경연구에 깊은 조예가 있는 곳이며, 경내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사찰이다.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했다는 선운사는 조선 후기에 크게 번창에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도솔산 곳곳에 있어 불국토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눈으로 덮힌 선운사를 보기란 쉽지 않기에, 이날 시인은 즐거운 마음으로 선운사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설경이 숨겨놓은 선운사의 보배꽃, 만세루 시인이 맨발로 건넜다는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은 하얀 눈으로 뒤덮여 기가 막힌 설경을 연출했다. 그 도랑을 거쳐 천왕문으로 들어서니 본격적으로 선운사의 모습이 드러났다. 들어서자마자 시인이 선운사에서 가장 좋아한다던 만세루가 시선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웅전을 짓고 남은 나무들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 만세루는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있으며 그 특징은 “자연스러움”이다. 높이가 맞지 않는 나무들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 다른 나무들을 이었는데, 그것들을 서로 다듬지 않고 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둥들에는 본래 나무로 살았을 때의 모습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인은 이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우리 건축물이 참 자랑스럽다고 이야기 한다. 게다가 1960년대 일본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한국이름:유종렬)가 한국 사찰 중에 가장 자연미가 살아있는 건축물로 만세루를 극찬했다고 한다. 나무들의 삶을 그대로 간직하고, 불도들의 수행을 돕기 위해 그 자신을 희생하고 있으니 그로 인해 만세루가 빛이 남은 당연지사겠다. 시인에게 만세루는 선운사의 보배로운 꽃이었다.

잔잔한 목탁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염불소리가 시인의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한다. 선운사의 본전인 대웅전(보물290호)이었다. 대웅전은 비로자나 법신불을 주축으로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는 전이다. 비로자나 법신불은 우리나라 대웅전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 중에 좌불로는 가장 큰 부처님이라고 한다. 대웅전의 부처님 뒤에 있는 그림은 탱화가 아닌 천연안료를 사용한 벽화로 미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비로자나불과 벽화는 현재 문화재 지정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는 중이고 한 차례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곧 당당한 문화재로서 만나볼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전북의 문화재들은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들이 더 많았던 곳이다. 그래서 절대연도로써 문화재의 잣대 기준을 삼기는 어려운 점들이 있다고 한다. 죽어서도 선운사를 지키겠다는 선운사의 조사 검단선사와 의운국사는 산신이 되어 산식각에 모셔져 있다. 이 외에 선운사에는 금동보살좌상(보물279호), 지장보살좌상(보물280호), 도솔암 마애불(보물1200호), 참당암 대웅전(보물803호)등 보배로운 꽃들이 선운사에 자리 잡고 있다.

아프도록 아름다운 동백꽃 대웅전을 돌아 살며시 시선을 위로 고정하는 시인, 그 곳에는 때 이른 동백꽃(선운사 동백꽃숲-천연기념물 제184호)이 몇 개 피어있었다. 십 수 년 전의 그 날이 오롯이 떠오르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동백꽃 동구’라는 시를 읽고는 선운사 동백꽃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컸던 시인. 그 동백꽃을 기필코 보겠다고 사랑하는 그녀와 처음으로 왔었던 선운사였다. 선운사의 동백꽃은 과연 숲이었고 참으로 찬란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그녀와 이별을 경험하고 다시 선운사를 찾았다. 그녀를 단단히 잊겠노라하면서 대웅전 뒤로 발걸음을 디딛는 순간, 그곳에 빨갛게 핀 동백꽃이 모가지채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얼마나 서럽던지 시인은 애써 감췄던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시인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찾았던 절에서 동백꽃으로 상처만 더 키우고 올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아픔은 오히려 노래가 되었다고 한다. 동백꽃은 시인에게도, 미당에게도 참으로 아프도록 아름다운 꽃이었던 것이다. 선운사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에 가득한 것은 이들의 ‘시’로 인한 동백꽃에 대한 궁금증이 아닐까. 아니면 그들에게도 시인과 같은 아련한 추억들이 동백꽃과 함께 선운사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일까. 시인은 동백꽃이 아름다운 것이 선운사와 함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역사와 보물들을 간직한 선운사가 있기에 동백꽃이 더욱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고. 많은 문화재가 우리의 삶의 한켠에 문지방도 두지 않고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추억들과 함께 버무려지고 있다. 그 순간이, 우리의 문화재가 나의 문화재가 되는 순간일 것이다.

시인 김용택은 1948년 전북임실에서 태어났다. 1982년 창비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은 횃불’로에 ‘섬진강 1’ 8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 제6회 김수영 문학상, 2002년 제11회 소충사선문화상, 1997년 제12회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주요작품으로는 시집 ‘그리운 꽃편지’(1989), ‘그대, 거침없는 사랑(1994), ‘강 같은 세월’(1995), ‘맑은 날’(1986), ‘꽃산 가는 길’(1988), ‘누이야 날이 저문다’(1988) 등이 있다. 시인이자 교사로서의 삶을 살았던 김용택은 자신의 모교 덕치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2008년 교단에서 물러난 후, 현재 섬진강이 보이는 고즈넉한 마을에서 또 다른 작품 활동에 열중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홈페이지 ▶ 글 ㅣ 김진희 ▶ 사진 ㅣ 최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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