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와우정사
용인의 와우정사는 '와우'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색다른 분위기의 사찰입니다. 현대적, 국제적 감각이 덧붙여진 사찰. 와우정사를 찾아가봅니다. 와우정사에서 ‘와’는 눕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는 소를 의미합니다. 불교에서 소는 '깨우침'이라는 말을 담고 있고요. 정사라는 것은 '부처가 제자를 거느리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와우정사를 들어서면 저절로 '와우'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이 불상입니다. 연못이 하나 있고, 그 위로 자그마한 불상들이 도열해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 커다란 불상이 있는데, 머리만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소리를 지긋이 듣고 있는 듯한, 인자한 모습의 불상입니다.
전체 높이는 8m, 이 중 머리부분은 3m에 달합니다. 황동 5만 근이 들어갔고 합니다. 와우정사에서 나중에 108m짜리 불상을 만들 계획이라는데요, 그중에 머리 부분만을 미리 만든 것이라는군요.
와우정사가 1400년 정도 역사를 가진 열반종의 총본산이라고는 하나, 절이 만들어진 지는 최근입니다. 1970년에 김해근(법명 해곡 삼장법사)이 만들었습니다. 김해근은 실향민입니다.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와우정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신라인들이 불심으로 통일을 기원하였듯이, 와우정사라는 절을 통해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하는군요.
작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올린 석탑도 만날 수 있습니다. 주요 불교성지를 비롯한, 히말라야 산맥, 백두산, 베를린장벽, 북극 등등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돌을 이용해서 만든 것입니다. 통일의 종과 함께 통일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와우정사를 와우정사로 부르게 되는 포인트. 누워있는 부처님입니다. 인도네시아(어디서는 인도라고도 하는군요)에서 가져온 향나무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붙이거나 이은 것이 아니고, 통나무를 깍은 것입니다. 높이 3m, 길이 12m에 달한답니다. 기네스북에 세계최대의 나무불상으로 올라가 있다네요.
황금빛의 불상이 시선을 끕니다. 불상 모양도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이 불상은 태국왕실이 와우정사에 기증한 것이라 합니다.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을 위하는 의미에서 기증한 것이라는군요.
이밖에도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모습의 불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향이 우리나라인 불상도 와우정사에서 다시 제작해서 전시하고 있기도 했고요. '불상의 박물관'이라는 표현도 어울리는 와우정사입니다.
여주 신륵사
사찰, 절하면 생각나는 고정관념을 살며시 깨주는. 그래서 특별한 절이 경기도 여주에 있습니다. 그 이름 하여 '신륵사' 그 특별함은 미국 CNN도 알아주었다고 하니, 더욱 궁금해지는 그곳 신륵사로 향합니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건립되었습니다. 나옹선사가 신륵사에서 입적하고 고려 우왕 2년(1376)에 크게 중창되었습니다. 영릉이 여주로 이전되면서 왕실에서는 신륵사를 영릉의 원찰로 삼고 중창이 이루어집니다.
신륵사에 들어와서 메인이라 할 수 있는 극락보전은 숙종 4년(1678)에 다시 지어진 이후 정조 21년(1797)에 중수되었습니다. 극락보전은 절의 중심 건물이고, 그 앞에는 여느 절과 마찬가지로 탑이 있습니다. 이 탑이 독특합니다. '대리석'으로 만든 탑니다.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매끈한 표면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대리석하면 유럽 분위기가 나지요. 우리나라는 화강암으로 주로 탑을 만들지요.
탑의 높이는 3m. 보물 제22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을 뒤로 하고 부도를 만납니다. 부도에서 산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신륵사의 또 다른 독특한 것을 만나게 됩니다. 3개의 조형물이 있습니다. 석등, 석종, 석종비.
석종은 돌로 만든 종입니다. 고려 후기의 석종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신륵사의 석종은 보물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높이는 190㎝. 1379년(우왕 5)에 나옹(懶翁: 普濟尊者)의 유골을 안치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석종 비는 보물 제229호로서 신륵사에 있는 보제존자 나옹화상의 묘비(墓碑)입니다. 1379년에 만들어졌고. 보물 제229호입니다. 높이 212cm. 너비 61cm.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이색(李穡)이 짓고, 명 서예가인 한수(韓脩)가 쓴 것입니다.
석등은 보물 제231호입니다. 석등은 중생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힌다는 의미지요. 석등의 이름은 '신륵사보제존자석종앞 석등'. 저는 특히 석등에 담겨 있는 조각이 맘에 들더군요. 여성적이면서 섬세한 느낌.
보물 제226호로 신륵사 다층 전탑입니다. 전탑이라는 것은 벽돌로 만든 탑을 말합니다. 벽돌에 새겨진 무늬를 볼 때 고려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전탑 때문에 신륵사를 벽절이라고도 합니다.
전탑 뒤에는 곳곳이 깨진 비석 하나가 있습니다. 이것도 그냥 비석이 아닙니다. 보물 제230호 대장각기비입니다. 고려 말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님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의 문도와 함께 대장경을 인출하고 대장각을 지어 봉안한 것을 기록한 비문입니다.
전탑에서 남한강 쪽으로 내려옵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신륵사만의 독특한 매력을 찾게 됩니다. 절이 강 옆에 있어요. 보통 절하면 깊은 산 속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신륵사는 남한강 바로 옆에 있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함께하는 신륵사입니다. 남한강을 바라보면서 정자가 있습니다. 시 한 수 읊조리면서 편안히 쉬어 가고 싶은 정자입니다. 아름답지요. 이 아름다움을 외국 사람들도 느끼게 되나 봅니다.
미국의 유명 뉴스 채널 CNN이 운영하는 CNN go 에서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50 beautiful places to visit in Korea)’을 선정했습니다. 이 50곳 안에 신륵사가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신륵사의 경관을 ‘깜짝 놀랄만한 경치(breathtaking views)’라고 했답니다.
용주사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왕 '정조'. 정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孝’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관련되어 그의 효심은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효심을 보여주는 곳, 용주사를 찾아갑니다.
원래 이곳에는 '길양사'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병자호란 때문에 절이 소실된 채 숲 속에 묻혀 있다, 정조가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크게 다시 짓고 원찰로 삼았다고 합니다.
홍살문을 거쳐 용주사 경내로 들어갑니다. 홍살문은 왕릉에 주로 있습니다. 왕실의 능, 원, 묘, 궁전 관아 등의 들어가는 입구에 붉은색으로 문을 만들어 경의를 표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용주사에 홍살문이 있었던 이유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용주사에 호성전을 건립하여,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천보루와 그 앞에 석탑이 있습니다. 보통 석탑은 대웅전 앞에 있는데, 용주사는 누각 앞에 놓인 것이 새롭습니다. 하늘이 보호한다는 의미의 천보루 건물도 다른 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형태였습니다. 천보루 아래에 있는 계단을 통해서 대웅전으로 향합니다.
대웅보전의 편액은 정조가 직접 쓴 것으로 전해집니다. 규모가 너무 크지 않은 것이 정갈해 보입니다. 대웅보전 안에 들어가면 후불탱화가 있습니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김홍도의 감독하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후불탱화에 서양화의 음영기법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대웅보전 안에서 위를 보면 '닫집'이라 불리는 독특한 구조물이 있습니다. 닫집은 대웅보전이라는 불전 속에 들어있는 또 하나의 불전이라고 합니다. 대웅보전 앞에는 정조가 심었다는 회양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정조가 심었다면 그 수령이 200년은 가볍게 넘는 나무입니다. 천연기념물 제26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용주사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범종입니다. 고려 시대 초기 범종으로 우리나라 범종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특히나 범종의 삼존상의 경우 고려 종으로는 처음으로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높이 144㎝, 지름 87㎝입니다. 국보 제12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절 뒷편에는 부모은중경이 새겨진 석탑이 서 있습니다. '부모은중경'은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높은가를,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설한 불교경전입니다. 부모의 은혜를 열 가지로 제시하고, 보은의 어려움을 여덟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1796년 목판에 새겼다고 합니다. 경판은 용주사에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용주사에서 나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융건릉으로 향합니다. 융건릉은 장조(사도세자)와 경의왕후를 합장해 보신 융릉과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인 건릉을 함께 부르는 이름입니다.
와우정사, 신륵사, 용주사를 둘러보았습니다. 이 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절의 이미지에서 살짝 벗어나 있습니다. 고정관념에서 살짝 벗어난 그래서 더욱 궁금해지고, 매력적인 곳입니다. 절이라는 것이 엄숙하게만 다가오기 보다는, 친근한 이미지가 들기도 하지요. 점점 더 따뜻하다못해 더워지고 있는 계절입니다. 경기도의 독특한 절집을 찾아 떠나는 나들이 어떠신가요? 부처님의 자비의 정신을 함께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