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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고도 흔한 나물 봄나물의 향기로운 궁합 도다리쑥국
15-03-22 14:10

귀하고도 흔한 나물
그 향이 그윽하여 떡이나 차로도 즐길 수 있다. 그뿐인가. 이른 봄 쑥은 음식으로 해먹고 양기陽氣가 성한 삼월 삼짇날이나 오월 단오에 캔 쑥은 말려 약쑥으로 쓴다. 3년 말린 쑥은 묵은 병까지 고친다고 했다. 이처럼 쑥은 초봄의 어린 쑥부터 해를 거듭한 묵은 쑥까지 쓰임새가 다양하다. 게다가 쑥은 말려도 향기를 잃지 않고 쑥뜸을 뜨거나 태워 해충까지 쫓으니, 봄나물 중에 쑥만큼 효능과 쓰임새를 내세울 나물은 없지 싶다. 사실 한국처럼 쑥을 음식으로 약으로 다양하게 먹고 이용하는 나라는 없다.
쑥은 이 땅 어디서나 잘 자라 아주 흔한, 가장 한국적인 나물이기도 하다. 사실 쑥은 우리민족에게 특별한 나물이다. 봄이 오행五行에서 초목[木]을 상징하며 새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의미하는 것처럼, 단군신화에서 쑥은 인간의 탄생을 돕는 약초로 등장한다. 쑥을 뜻하는 한자는 ‘애艾’인데, 『삼국유사』에서 쑥은 단순한 ‘애艾’가 아니라 ‘영애靈艾’, 즉 신령스러운 쑥’이라고 표현했다. 곰을 여자로 만들어준 쑥은 여성의 생식력을 돕고 독을 없애주며 해충과 감염을 막아주니 과연 신령스러운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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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쑥국이 귀한 까닭
쑥을 가장 간편하게 먹는 방법은 국으로 먹는 것이다. 쑥국은 쇠고기로 육수를 낸 맑은 장국에다 끓일 수도 있고 된장국에 넣어 끓일 수도 있다. 맑은 장국에 끓이는 쑥국으로는 애 탕 이 있다. 애탕은 다진 쇠고기에 쑥을 섞어 완자를 만들고 달걀을 묻혀 끓는 육수에 넣어 만든다. 쇠고기를 넣지 않고 쑥 잎에 녹말가루와 달걀흰자를 씌워 끓여내기도 한다. 요즘은 이 두가지 요리법을 섞어 완자와 함께 쑥 잎까지 더해 끓이기도 하는데, 국에 쑥이 많이 들어가면 뻑뻑한 느낌이 들어 보기가 썩 좋지는 않다.
쑥은 된장국과도 잘 어울린다. 된장국은 제철 채소라면 무엇이든 넣어도 맛나지만, 쑥을 날 것 그대로 넣는 쑥된장국은 입 안에서 씹히는 질감과 향이 더욱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쑥만 넣어도 훌륭한 봄 된장국이 완성되지만, 도다리가 많이 잡히는 봄철 남해안에서는 쑥국에 도다리를 넣어 독특한 봄 된장국을 즐겨왔다.
흔히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어 가을에 전어가 맛있듯 봄에는 도다리가 맛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말은 반만 맞는 말이다. 봄에 많이 잡혀 쑥국에 넣는 도다리는 정확히 말하면 문치가자미다. 문치가자미는 전국적으로 도다리라 불리고 산지인 통영에서는 참도다리로 통용되지만, 엄밀히 말해 진짜 도다리와는 다르다. 진짜 도다리는 산지인 남해안에서 토종도다리 또는 담배도다리, 담배쟁이로 불린다. 이 토종도다리는 오늘날 보기 힘들만큼 귀한 생선인데, 이 도다리는 봄이 제철이 맞다. 여기 서 제철이라고 하는 것은 살이 오르고 지방 함유가 많아 맛이 가장 좋을 때를 가리킨다. 그런데 도다리쑥국에 넣는 도다리(문치가자미)는 봄에 맛이 가장 좋은 게 아니라 봄이 수확기일 뿐이다.
문치가자미가 봄에 많이 잡히는 까닭은 겨울 동안 바다 깊이있다가 봄철 산란기에 남해안에 모여들기 때문이다. 생선은 산란기 전후 맛이 떨어진다. 영양이 알에 집중되므로 지방함량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다리(문치가자미)는 먹이활동을 왕성히 하며 영양을 비축하는 여름과 가을까지가 제철이고, 찬바람이 불면 알을 배고 깊은 바다에 머문다. 그러므로 봄철은 도다리(문치가자미)의 수확기이지, 맛이 뛰어난 제철은 아니라는 말이다.
01. 도다리쑥국의 주재료인 도다리와 쑥. 봄철 산란을 끝낸 도다리와 제철을 맞은 쑥을 함께 넣고 국으로 끓이는 것은 최고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투데이 02. 애탕. 맑은 장국에 끓이는 쑥국으로는 애탕이 있다. 애탕은 다진 쇠고기에 쑥을 섞어 완자를 만들고 달걀을 묻혀 끓는 육수에 넣어 만든다. ⓒ전국향토음식용어사전
그런데 봄이 비록 맛난 제철은 아니어도 생선을 맛나게 먹는 방법은 있다. 바로 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알배기 생선이나 산란을 끝낸 생선을 국으로 먹는 것은 최선의 선택이다. 마침 제철을 맞은 쑥국에 넣은 것은 최고의 선택이라고 할 것이다. 쑥은 이른 봄의 쑥이 여리고 맛있다. 이 때는 쑥 향도 짙지 않고 은은하다(쑥은 향이 짙지 않고 부드러운 것을 윗길로 친다). 더구나 바닷바람을 맞은 쑥은 더욱 맛과 향이 좋다. 그래서 쑥만으로도 맛나지만 봄철 많이 잡히는 도다리를 더해 쑥과 도다리 둘 다 맛이 상승하니, 도다리쑥국은 봄이 맺어준 시절 인연의 훌륭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인연은 쑥이 억세어지기 전까지만 지속될 뿐이니, 안타깝게도 짧은 인연이다.
 
바닷바람맞은 쑥과 부드러운 봄도다리의 맛
봄철 전국 횟집에는 남해안에서 공수해온 도다리로 만들었다는 도다리쑥국을 한정메뉴로 올리는 가게가 꽤 되지만, 사실 도다리쑥국을 제대로 맛보기가 쉽지는 않다. 문치가자미나 도다리 모두 가자미과에 속하는 어류로, 둘 다 양식이 불가능하고 수확량이 많지 않다. 봄철이 수확기인 문치가자미조차 전국 수요를 당해내지 못해 봄이 수확기임에도 비싸게 거래된다. 그래서인지 도다리보다는 가자미 맛에 가까운 도다리쑥국을 파는 곳도 더러 있다. 실제로 가자미과에 속하는 어류는 도다리(토종도다리)와 문치가자미를 비롯하여 돌가자미, 찰가자미, 갈가자미 등 다양하다. 하지만 굽거나 조려 먹을 때 맛있는 가자미(갈가자미)와 쑥국에 넣어 먹는 도다리(문치가자미)의 맛은 엄연히 다르다.
이 좋아 일찌감치 12월이나 1, 2월에 산란을 끝내고 먹이활동을 어느 정도 시작한 도다리(문치가자미)를 구해 쑥국에 넣어 먹는다면, 도다리쑥국의 명성에 걸맞은 향긋하고 부드러운 맛을 볼 수 있다. 특히 통영의 도다리쑥국은 도다리 살이 매우 부드러워 몇번 씹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것 같다. 거기다 부드러운 쑥 향기가 더해져 생선을 넣은 국으론 보기 드물게 맛이 점잖은 편이다. 지방에 따라 도다리쑥국에 무를 썰어 넣고, 마늘, 심지어 청양고추를 넣어 꽤 자극적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통영의 도다리쑥국은 도다리와 쑥 외에 어떤 양념이나 향신료도 잘 넣지 않는다. 부드러운 쑥 향기를 죽이는 향신료 사용을 절제해서 더욱 맑은 맛을 내는 것이 이 쑥국의 비결이다.
03. 밴댕이. 도다리쑥국은 쌀뜨물에 깔끔한 맛을 내는 밴댕이나 무, 양파 등을 우려내어 끓여낸다. ⓒ두피디아 04. 도다리회. 도다리를 회 뜨는 방식으로는 흔히 세꼬시라고 하는 뼈째 썰기와 뼈를 제거하고 살을 약간 두툼하게 회를 뜨는 방식이 있다. ⓒ이미지투데이
된장국의 국물은 언제나 쌀뜨물이 제격이듯 도다리쑥국 역시 쌀뜨물에 남해안에서 잘 잡히는 멸치나 깔끔한 맛을 내는 밴댕이, 무, 양파 등을 우려내어 끓여낸다. 통영에서는 멸치보다 산뜻한 맛을 내는 밴댕이를 애용한다. 도다리 자체에서 우러나는 감칠맛도 국물 맛을 조금은 더해주겠지만, 도다리가 국물을 즐기기 위한 생선은 아니다. 도다리쑥국은 어디까지나 쑥된장국의 맛과 향을 유지한 채, 도다리 살을 건더기로 먹는 것이다. 된장국의 간을 심심하게 하여 도다리의 담백함과 쑥 향기를 죽이지 않아야 맛이 더욱 산다.
대개 해산물은 맑은 국으로 끓여 내거나 넙치아욱국처럼 고추장을 풀면 맛있다. 된장국에 해산물을 넣는 것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남쪽 해안가 사람들은 사실 오래 전부터 쑥된장국에 생굴이나 쏙(갑각류)을 넣어먹곤 했다. 해산물과 된장국 이 이렇듯 잘 어울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문치가자미를 본래부터 도다리라고 불렀던 남해안 지방, 특히 통영의 대표적 향토음식이었던 도다리쑥국은 이제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수확량이 한정돼 있는 까닭에 도다리쑥국은 꽤 비싼 요리가 되었다. 그러나 짧은 봄날이 그렇듯 도다리도 어린 쑥도 봄날 한철 우리 곁에 잠시 머물다 가니, 봄의 입맛을 일깨우는 그 맛은 귀하기만 하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글. 한경심 (한국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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