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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물치,여어(蠡魚),가모치(加母致),예어(鱧魚),흑례(黑鱧)·현례(玄鱧)·오례(烏鱧)·동어(鮦魚)·문어(文魚)·화시두어(火柴頭魚)·수염(水厭)·탈(鮵 : 작은 가물치)
 

학명은 Channa argus CANTOR.이다. 몸은 길고 가는 편이고, 길이가 80정도까지의 것도 있다. 몸의 앞부분은 등배쪽으로 납작縱扁하고 꼬리 부분은 옆으로 납작側扁하다. 입이 크고 이빨이 날카로우며 지느러미에는 가시가 없다.

몸빛은 검은빛을 띤 창갈색(蒼褐色)으로 등쪽은 짙고 배쪽은 회백색이거나 황색이다. 옆줄의 위와 아래에 각각 13개 정도의 흑갈색의 불규칙한 큰 얼룩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머리의 양쪽에는 두 줄의 검은빛 세로띠가 있다.

우리 나라 전지역의 담수계(淡水界)에 서식하며, 아시아 동남부지방에 서식한다. 일본에도 서식하는데, 그것은 우리 나라와 타이완에서 이식된 것이다. 연못과 같이 바닥이 수렁으로 이루어져 있고 탁한 물이 고여 있는 곳에 많이 산다.

수온변화에 내성이 강하고 오염된 물이나 거의 무산소상태의 물에서도 살 수 있다. 수온이 높을 때는 아가미호흡보다 공기호흡을 많이 한다. 겨울에는 깊은 곳으로 이동하여 동면을 하며, 우기에는 습지에서 뱀처럼 기는 수도 있다. 산란기는 5월 하순에서 7월 하순 사이이다.

가물치는 그 이름이 여러 가지이다. 조선 초기에 편찬된 훈몽자회 訓蒙字會에는 ()’자를 가모티례라고 하였고, ()라고 쓰기도 하고, 속칭 오어(烏魚화두어(火頭魚)라고도 부른다고 하였다.

1433(세종 15)에 완성된 향약집성방 鄕藥集成方에는 여어(蠡魚)라 하고 그 향명(鄕名)을 가모치(加母致)라고 하였다. 영조 때에 편찬된 읍지들의 토산에는 여어 또는 예어라는 것이 보이는데 이것은 모두 가물치를 가리키는 것이다.

재물보 才物譜에는 예어(鱧魚)’를 한글로 가물치라 쓰고, 모양이 길고 몸이 둥글고 비늘이 잘고 검은색인데 그 형상이 얄밉다고 하였으며, 그 별명으로서 혼(여어(蠡魚흑례(黑鱧현례(玄鱧오례(烏鱧동어(鮦魚문어(文魚화시두어(火柴頭魚수염(水厭(: 작은 가물치) 등을 들었다.

난호어목지 蘭湖漁牧志에도 가물치라 하고, 이를 설명하여 양볼 뒤에는 모두 7개의 반점을 지니고 있어 북두(北斗)의 형상을 나타내며, 밤이면 반드시 머리를 들어 북극성을 향하므로(이를 拱北이라고 하는데, 이는 衆星이 북극성에 향하는 것, 즉 사방의 백성이 천자의 德化에 귀의함을 뜻한다.) 자연의 예의가 있다고 하여, ()자를 따라 ()’라고 한다고 하였다.

예는 중국식 이름이며, 앞의 풀이도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나 물론 과학적 근거는 없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이어서 설명하기를 여러 물고기의 쓸개는 모두 쓴데 가물치의 쓸개만은 달기 때문에 ()’를 따랐고, 그 몸빛이 검기 때문에 현례·오례라고 일컫기도 하고, 몸에 꽃무늬가 있기 때문에 문어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규합총서 閨閤叢書에는 본초강목 本草綱目에서 말하기를 온갖 쓸개가 다 쓰지만 가물치 쓸개만이 달다고 하기에 시험해 보니 과연 그렇더라고 하면서, 이 물고기는 일곱 구멍이 물 위에 떠 칠성(七星)의 정기를 빨아들이므로 여자에게 보혈(補血)한다고 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에도 가물치는 부인의 산후의 백병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동의보감에는 가물치고기가 부종(浮腫수종(水腫) 및 오치(五痔)를 다스린다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이 가물치는 예로부터 영양식품, 또는 약으로 애용되었는데, 오늘날에도 주로 약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천연산 가물치는 자원감소로 어획량이 줄어드는 데 반하여 약용으로서의 수요는 늘어 가격이 비싸짐에 따라 양식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1997년의 생산량을 보면 어획은 120M/T이었고, 양식은 769M/T였다.

가물치와 관련된 민담으로는, 가물치를 잡아먹은 후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가물치가 환생한 것으로서 할아버지를 죽여 복수하려고 하였으나 방갓을 쓴 이인이 그 정체를 밝혀 화를 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가물치가 해산 후 몸을 보신하는 고기로 구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가물치이야기1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옥종면 종화(宗化)마을에 정산(鼎山) 정윤환(鄭允煥)이 살았는데 그의 부인은 진양 하씨였다. 어느 날 동네에 가물치 장사가 왔다. 하씨 부인은 시어머니 합천 이씨에게 드리기 위하여 가물치를 사서 곰국을 끓였다. 하씨 부인이 요리가 다 되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바가지로 저어보았더니 쇳덩이 구르는 소리가 났다.

이상하게 여긴 하씨 부인은 그 쇳덩이를 건져내었다. 그것은 베를 짤 때 짠 베를 펴지게 하기 위해 매다는 용도로 쓰는 최활의 최였다. 하씨 부인은 범상치 않는 일이라 여겨 이를 시어머니에게 가져갔다. 시어머니는 수십 년 전 자신의 젊은 시절 겪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합천이씨 부인이 베틀에 앉아 한창 베를 짜고 있는데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베틀로 기어 올라왔다. 놀란 이씨 부인은 구렁이를 쫓으려고 했으나 방법이 없어 최활을 빼어 구렁이를 때렸다. 그랬더니 그 구렁이는 몸에 최가 박힌 채로 도망을 갔는데 그 최는 영영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 하씨 부인은 최의 내력이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곰국을 끓인 가물치가 구렁이의 화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물치 곰국을 조금 떠서 개에게 먹여보았다. 그랬더니 곰을 먹었던 개가 갑자기 죽고 말았다. 그래서 하씨 부인은 가물치 곰국을 모두 퍼서 죽은 개와 함께 파묻었다.


가물치이야기2

옛날에 남매지 근방에 씨가 모여 살았다. 그 중에 어떤 한 사람이 장에 갔다 돌아오는데 못 한가운데 불이 빨갛게 있었다. 그 때는 가뭄이 매우 심하던 때라 못이 바싹 말라 있었다. 이상히 여긴 그 사람은 빨간빛 나는 곳으로 가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나와서 보니 또 빨갛게 보여서 그 위치를 확인하는 말뚝을 박아 두었다. 그 이튿날 말뚝 박은 곳에 가보니 아무 이상한 점이 없어서 그 곳을 파 보기로 했다. 그 곳을 파보니 중앙에 큰 가물치 한 마리가 있어서, 그 가물치를 집에 가지고 와서 국을 끓여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이 국을 먹은 동네 사람이 모두 죽어서 마을도 망하고 말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큰 못이 가뭄에 바닥을 드러내면 그 못을 지키는 지킴이(수호신격)가 바닥 속에 숨어야 되나 그러지 못하여 그 형상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이 지킴이가 가물치거나 잉어 또는 자라 등으로 지칭되는데 대부분 보통의 몇 배 크기의 큰 모습으로 그려진다. 큰 함지박에 넣으니 꽉 차거나 등을 휘어 함지박 속에 두 번 휙 돌려 넣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지킴이를 살려주지 않고 국을 끓여 먹거나 회를 쳐서 먹으면 탈이 나서 큰 욕을 보거나 죽게 된다는 것이다. 남매지 지킴이인 가물치는 그러한 이야기라고 여겨지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ICHPEDIA,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재물보(才物譜)』『동의보감』『한국어도보(韓國魚圖譜)』(정문기, 일지사, 1977)『여지도서』(국사편찬위원회, 1979)『경남의 자연』담수어편 (최기철, 경상남도교육위원회, 1983)『한국의 전통적자연관』(이숭녕,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5)『해양수산통계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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