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유산 지식백과(무형문화지식연구원)
태조 - 철종 1대 태조(1392년~) 2대 정종(1399년~) 3대 태종(1401년~) 4대 세종(1418년~) 5대 문종(1450년~) 6대 단종(1452년~) 7대 세조(1455년~) 8대 예종(1468년~) 9대 성종(1469년~) 10대 연산군(1494년~) 11대 중종(1506년~) 12대 인종(1545년~) 13대 명종(1545년~) 14대 선조(1567년)선조수정(1567년~) 15대 광해군중초본(1608년~)광해군정초본(1608년~) 16대 인조(1623년~) 17대 효종(1649년~) 18대 현종(1659년~)현종개수(1659년~) 19대 숙종(1674년~)숙종보궐정오(1674년~) 20대 경종(1720년~)경종수정(1720년~) 21대 영조(1724년~) 22대 정조(1776년~) 23대 순조(1800년~) 24대 헌종(1834년~) 25대 철종(1849년~) 고종 - 순종 26대 고종(1863년~) 27대 순종(1907년~) 순종부록(1910년~)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do
http://hidream.or.kr/dongeuibogam/index.html - 한글 동의 보감 -음양오행 -사상의학 -장부학 -쑥뜸과 부항 -지압과 경락 -수지침요령 -민간요법과 질병기초 -한방약초의 종류와 효능 -한방식품의 종류와 효능 -한방약차 -한방약술 -암에 도움되는 약초 -건강 상식 -건강정보자료 -한방처방전 -민간약상식 -향약집성방과 향약본초 -1000가지 일반 요리법
보통 우리 아이들이 키가 작다고 생각하면 주로 유전적인 요인이 있지 않을까 많이 생각하십니다. 엄마 혹은 아빠를 닮았기 때문에 작다고 생각하신다면 이는 큰 오산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키작은 아이는 단 한가지 문제가 아닌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인데요. 오늘은 ‘키작은 아이 무엇이 문제일까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키가 작은 이유 1. 유전적인 요인 앞서 말한 유전적인 요인은 실제 원인의 30% 정도에만 해당합니다. 즉 나머지 70%의 역량은 부모의 관심과 아이의 습관, 후천적인 요인들로 인해서 충분히 변화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때문에 우리아이가 키가 작다면 유전적인 요인을 탓할 것이 아니라 키가 크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요인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습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키가 크기 위한 진리입니다. 밤 10시에서 2시 사이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가장 왕성한 시간대이기 때문이지요. 요즘 아이들은 과도한 학업량으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학교에서 조는 시간이 많은데요. 밤시간대만큼은 푹 잘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3. 균형잡힌 영양상태 아이의 영양상태에 따라서 평균 키가 5cm 가량 차이 난다고 합니다. 그만큼 타고나는 것 이상으로 균형잡힌 식사는 중요하다는 것인데요. 영양상태가 불균형하면 아이가 자랄 수 있는 역량보다 더 작게 자라게 됩니다. 환경호르몬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은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으니 되도록 소화가 잘 되는 영양풍부한 음식으로 준비해주세요 4. 운동부족 잠을 잘 자는 것 외에 운동이 부족해도 성장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키 작은 아이가 고민이시라면 꾸준한 운동을 통해 신진대사 능력이 좋아질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특히 농구처럼 몸을 뻗을 수 있는 운동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은 키가 작은 아이들로 고민이신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워낙 외모가 중시되는 풍토에서 키는 빼놓을 수 없는 조건 중 하나이기 때문인데요. 각종 한의원 프로그램에는 아이의 성장을 돕도록 오장육부의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질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특히 아이가 부족한 부분의 영양상태를 균형있게 맞춰주기 때문에 키가 자라는데 도움을 주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근본적으로 튼튼해 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도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키 작은 아이 무엇이 문제일까요?’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모두 충분한 부모님의 관심과 아이의 습관으로 형성될 수 있는 조건들이니만큼 가정에서도 아이의 키에 한결 더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아이의 키도 한뼘 더 무럭무럭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보성 왕골 왕골[莞草] 은 경상도(榮川郡, 永川郡, 醴泉郡, 상주목, 선산도호부, 안동대도호부, 용궁현, 청송도호부, 풍기군) 전라도(함평현, 보성군) 충청도(홍주목) 평안도(박천군, 안주목)에서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있다. 관련문헌 북송(北宋)의 서긍(徐兢)은 고려도경 高麗圖經에서 “정교한 것은 침상과 평상에 깔고 거친 것은 땅에 까는데, 매우 부드러워 접거나 굽혀도 상하지 않는다. 검고 흰색이 서로 섞여서 무늬를 이루고 청자색 테가 둘렸다. 더구나 침상에 까는 자리는 매우 우수하여 놀랍기만 하다.”는 극찬을 늘어놓았다. 화문석의 수요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급증하였으며, 특히 외국인의 애호열은 더욱 높아졌다. 임원경제지에 인용된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에는 “영남의 안동 예안 사람들이 오채용문석을 잘 만들어 공물로 바친다. 서울의 지체 높은 가정이나 사랑에서는 해서•배천•연안의 것을 제일로 쳤으며, 경기 교동(喬桐 : 강화도 서북쪽 섬) 것은 버금간다.”고 하였다. 신라시대에 이미 화문석의 생산을 담당하였던 관청이 있었다. 통문관지 通文館志에 따르면 한 번의 동지사행(冬至使行) 때 중국에 보낸 화문석이 124장에 달하였으며, 우리나라에 오는 관리들에게도 적지 않은 양을 선사하였다. 화문석의 조달을 담당한 기관은 장흥고(長興庫)로서, 이곳에서는 각 지방으로부터 필요한 수량을 거두어들였다. 삼국사기 직관조(職官條)에 석전(席典)으로 불리던 부서가 경덕왕 때 봉좌국(奉坐局)으로 바뀌었으며 뒤에 다시 석전으로 개칭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고려에 들어와 화문석은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졌으며 인삼과 더불어 중요한 수출품 내지 선사품이 되었다. 고려초에 요나라에 보낸 특산품 가운데 용무늬를 넣은 화문석(龍鬚草地席)이 들어 있으며, 송나라 사람들도 고려의 화문석을 매우 탐내었다고 한다. 진상품 관련이야기 화문석은 예로부터 용수초지석•오채용문석(五彩龍紋席)•용문염석(龍紋簾席)• 오조용문석(五爪龍紋席)•만화석(滿花席)•각색세화석(各色細花席)•채화석(彩花席)•잡채화석(雜彩花席)•황화석(黃花席)•화석(花席)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용수초지석이라는 이름은 왕골이 용의 수염처럼 생긴 데에서 왔다. 오채용문석•용문염석•오조용석은 용모양의 무늬를 넣어 짠 데서 왔다. 오채용문석은 다섯 가지 색으로 짠 용무늬 꽃자리이고, 오조용문석은 다섯 개의 발톱이 달린 용무늬 꽃자리라는 뜻이다. 이러한 것들은 극상품이어서 앞에서 말한 대로 왕실에서 중국에 보내는 선물용으로 생산되었다. 용문염석은 용무늬 발로서 역시 궁중에서 썼으리라고 짐작된다. 상품정보 왕굴•완초(莞草)라고도 하며, 학명은 Cyperusexaltatus var. iwasakii T. KOYAMA이다. 왕골은 열대지방에서는 숙근성(宿根性)이나, 온대지방에서는 1년생 내지 2년생 초본식물이다. 원래부터 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언제나 논에서 재배한다. 왕골은 줄기를 피부(皮部)와 수부(髓部)로 분리하여 건조시킨다. 실 모양으로 가늘게 쪼개어 말린 것으로는 돗자리 •방석 •여름베개 •모자 •발 •핸드백 •담뱃갑 등의 수공예품을 만들며, 굵게 수부를 붙여 쪼갠 조피(粗皮)는 신 •슬리퍼 •바구니 등을 만든다. 왕골속은 비교적 질겨서 끈을 꼬아 마사(麻絲) 대신 쓰며 잎은 새끼를 꼬거나 누엣자리 •깔개 등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왕골은 한국 특유의 공예작물로서 그 생산도 한국에 한정되어 있는 실정인데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각지에서 재배한다. 특히 인천 강화, 경상북도 선산, 전라북도 남원 등에서 왕골 생산과 수공예품 가공을 많이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강화의 화문석과 남원의 용문석은 돗자리로서 유명하다. 잎 : 줄기 밑 부분에 나며 길이는 줄기의 길이 정도이고 기부는 잎집으로 줄기를 싸며 가장자리가 깔깔하고 뒷면의 중앙맥이 뚜렷하다. 열매 : 수과는 타원형이며 길이 1mm정도로서 연한 볏짚색이고 3개의 능선이 있다. 꽃 : 화경은 높이 60-200cm이며 화경의 1/4-2/5가 엽초로 싸인다. 꽃은 9~10월에 피며 포는 4-5개로서 잎같고 화서보다 훨씬 길다. 가지는 5-10개로서 긴 것은 길이가 20cm에 달하며 다시 갈라져서 산형으로 퍼져 1-5개의 화수로 갈라진다. 화수는 원주형이고 길이 2-4cm, 지름 1-1.3cm로서 소수가 다소 성글게 달리며 황록색이다. 소수는 비스듬히 퍼지고 길이 5-7mm로서 10-20개의 꽃이 달리며 인편은 난형이고 길이 1.7-2mm로서 뒷면의 능선은 녹색이며 끝이 뾰족하고 젖혀진다. 암술대는 수과보다 2배 정도 길고 끝이 3개로 갈라진다. 줄기 : 높이 80~150cm이고, 굵고 둔하게 세모지다. 분포 : 전국 각처에서 재배하며, 야생하기도 한다. 형태 : 1년초 내지 2년초 크기 : 화경(花莖)의 높이 60-200cm. 생육환경 : 논이나 습지에서 재배한다. 결실기 : 10월 이용방안 : 화경을 돗자리나 기타 세공품 원료로 쓰인다. 용도 왕골은 쪼갠 줄기를 건조하여 자리•방석•모자 등을 만들고, 속은 건조하여 신•바구니•노끈 등을 만든다. 그리고 줄기뿐만 아니라 잎도 제지원료로 사용한다. 특히, 강화도의 화문석은 민속공예품으로 유명하다. 관련근거 및 출처 두산백과, 한국화재식물도감,『공예작물학』(손응룡, 상지문화사, 1969),『작물학개요』(조재영 외, 향문사, 1983)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조선시대 대하소설),『인간문화재』(이용해, 어문각, 1963), 『한국민속대관』 5(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82)
안동 왕골 조선에서는 왕골 생산지로 안동의 예안을 손꼽았다. 북송(北宋)의 서긍(徐兢)은 고려도경 高麗圖經에서 “정교한 것은 침상과 평상에 깔고 거친 것은 땅에 까는데, 매우 부드러워 접거나 굽혀도 상하지 않는다. 검고 흰색이 서로 섞여서 무늬를 이루고 청자색 테가 둘렸다. 더구나 침상에 까는 자리는 매우 우수하여 놀랍기만 하다.”는 극찬을 늘어놓았다. 화문석의 수요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급증하였으며, 특히 외국인의 애호열은 더욱 높아졌다. 임원경제지에 인용된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에는 “영남의 안동 예안 사람들이 오채용문석을 잘 만들어 공물로 바친다. 서울의 지체 높은 가정이나 사랑에서는 해서·배천·연안의 것을 제일로 쳤으며, 경기 교동(喬桐 : 강화도 서북쪽 섬) 것은 버금간다.”고 하였다. 신라시대에 이미 화문석의 생산을 담당하였던 관청이 있었다. 통문관지 通文館志에 따르면 한 번의 동지사행(冬至使行) 때 중국에 보낸 화문석이 124장에 달하였으며, 우리나라에 오는 관리들에게도 적지 않은 양을 선사하였다. 화문석의 조달을 담당한 기관은 장흥고(長興庫)로서, 이곳에서는 각 지방으로부터 필요한 수량을 거두어들였다. 삼국사기 직관조(職官條)에 석전(席典)으로 불리던 부서가 경덕왕 때 봉좌국(奉坐局)으로 바뀌었으며 뒤에 다시 석전으로 개칭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고려에 들어와 화문석은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졌으며 인삼과 더불어 중요한 수출품 내지 선사품이 되었다. 고려초에 요나라에 보낸 특산품 가운데 용무늬를 넣은 화문석(龍鬚草地席)이 들어 있으며, 송나라 사람들도 고려의 화문석을 매우 탐내었다고 한다. 왕골[莞草] 은 경상도(榮川郡, 永川郡, 醴泉郡, 상주목, 선산도호부, 안동대도호부, 용궁현, 청송도호부, 풍기군) 전라도(함평현, 보성군) 충청도(홍주목) 평안도(박천군, 안주목)에서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있다. 진상품 관련이야기 화문석은 예로부터 용수초지석·오채용문석(五彩龍紋席)·용문염석(龍紋簾席)· 오조용문석(五爪龍紋席)·만화석(滿花席)·각색세화석(各色細花席)·채화석(彩花席)·잡채화석(雜彩花席)·황화석(黃花席)·화석(花席)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용수초지석이라는 이름은 왕골이 용의 수염처럼 생긴 데에서 왔다. 오채용문석·용문염석·오조용석은 용모양의 무늬를 넣어 짠 데서 왔다. 오채용문석은 다섯 가지 색으로 짠 용무늬 꽃자리이고, 오조용문석은 다섯 개의 발톱이 달린 용무늬 꽃자리라는 뜻이다. 이러한 것들은 극상품이어서 앞에서 말한 대로 왕실에서 중국에 보내는 선물용으로 생산되었다. 용문염석은 용무늬 발로서 역시 궁중에서 썼으리라고 짐작된다. 상품정보 왕굴·완초(莞草)라고도 하며, 학명은 Cyperusexaltatus var. iwasakii T. KOYAMA이다. 왕골은 열대지방에서는 숙근성(宿根性)이나, 온대지방에서는 1년생 내지 2년생 초본식물이다. 원래부터 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언제나 논에서 재배한다. 왕골은 줄기를 피부(皮部)와 수부(髓部)로 분리하여 건조시킨다. 실 모양으로 가늘게 쪼개어 말린 것으로는 돗자리 ·방석 ·여름베개 ·모자 ·발 ·핸드백 ·담뱃갑 등의 수공예품을 만들며, 굵게 수부를 붙여 쪼갠 조피(粗皮)는 신 ·슬리퍼 ·바구니 등을 만든다. 왕골속은 비교적 질겨서 끈을 꼬아 마사(麻絲) 대신 쓰며 잎은 새끼를 꼬거나 누엣자리 ·깔개 등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왕골은 한국 특유의 공예작물로서 그 생산도 한국에 한정되어 있는 실정인데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각지에서 재배한다. 특히 인천 강화, 경상북도 선산, 전라북도 남원 등에서 왕골 생산과 수공예품 가공을 많이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강화의 화문석과 남원의 용문석은 돗자리로서 유명하다. 잎 : 줄기 밑 부분에 나며 길이는 줄기의 길이 정도이고 기부는 잎집으로 줄기를 싸며 가장자리가 깔깔하고 뒷면의 중앙맥이 뚜렷하다. 열매 : 수과는 타원형이며 길이 1mm정도로서 연한 볏짚색이고 3개의 능선이 있다. 꽃 : 화경은 높이 60-200cm이며 화경의 1/4-2/5가 엽초로 싸인다. 꽃은 9~10월에 피며 포는 4-5개로서 잎같고 화서보다 훨씬 길다. 가지는 5-10개로서 긴 것은 길이가 20cm에 달하며 다시 갈라져서 산형으로 퍼져 1-5개의 화수로 갈라진다. 화수는 원주형이고 길이 2-4cm, 지름 1-1.3cm로서 소수가 다소 성글게 달리며 황록색이다. 소수는 비스듬히 퍼지고 길이 5-7mm로서 10-20개의 꽃이 달리며 인편은 난형이고 길이 1.7-2mm로서 뒷면의 능선은 녹색이며 끝이 뾰족하고 젖혀진다. 암술대는 수과보다 2배 정도 길고 끝이 3개로 갈라진다. 줄기 : 높이 80~150cm이고, 굵고 둔하게 세모지다. 분포 : 전국 각처에서 재배하며, 야생하기도 한다. 형태 : 1년초 내지 2년초 크기 : 화경(花莖)의 높이 60-200cm. 생육환경 : 논이나 습지에서 재배한다. 결실기 : 10월 이용방안 : 화경을 돗자리나 기타 세공품 원료로 쓰인다. 용도 왕골은 쪼갠 줄기를 건조하여 자리·방석·모자 등을 만들고, 속은 건조하여 신·바구니·노끈 등을 만든다. 그리고 줄기뿐만 아니라 잎도 제지원료로 사용한다. 특히, 강화도의 화문석은 민속공예품으로 유명하다. 관련근거 및 출처 두산백과,한국화재식물도감,『공예작물학』(손응룡, 상지문화사, 1969),『작물학개요』(조재영 외, 향문사, 1983)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조선시대 대하소설),『인간문화재』(이용해, 어문각, 1963),『한국민속대관』 5(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82)
보성 왕골 왕골[莞草] 은 경상도(榮川郡, 永川郡, 醴泉郡, 상주목, 선산도호부, 안동대도호부, 용궁현, 청송도호부, 풍기군) 전라도(함평현, 보성군) 충청도(홍주목) 평안도(박천군, 안주목)에서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있다. 관련…
안동 왕골 조선에서는 왕골 생산지로 안동의 예안을 손꼽았다. 북송(北宋)의 서긍(徐兢)은 고려도경 高麗圖經에서 “정교한 것은 침상과 평상에 깔고 거친 것은 땅에 까는데, 매우 부드러워 접거나 굽혀도 상하지 않는다. 검고 흰색이 서로 섞여서 무늬를 이루고…
무형문화재 제13호 명인안곤 옻칠장 왕골돗자리
보성왕골
대한민국 기능전승... 4학년때 손맵시가 좋았던 할아버지가 심심풀이로 빗자루, 왕골자리, 노끈 등을 만드는 것을 보고 옆에서 하나 둘 따라 하며 배운 솜씨가 동네 어른들한테까지 인정받아 이곳 저곳을 불려 다니며 소품을 만들어 줄 정…
채상장 ...중36×20×14, 대48×30×18cm 채상은 대, 버드나무, 갈대, 왕골 등을 염색하여 만든 상자로 채협(彩篋)아라고도 한다. 대올이나 버드나무 등을 엮어 만든 생활용품 중 가장 고급품이다. 대나무 올을 염색하지 않고 제작한 것을 소죽상자라고 하는데 이 작품…
완초장 ...쓰이게 되었다. 주요작품 폐백동구리_7×7×8, 30×30×10cm 왕골을 이용하여 세로로 날줄을 놓고 가로로 씨줄을 엮어가며 색깔 왕골로 희자(囍字)무늬를 넣어 제작했다. 동구리는 동글 납작하게 만든 작은 고리짝으로 가장 만들기 힘들면서도 가장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