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반장 이인세
개다리 소반
늘 봐도 비실비실 지레 지쳐 굳은 상판 / 대접도 변변히 받지 못한 툇마루 끝 / 지금은 땟물 나는 거실 마른 꽃의 꽃받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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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다시 달자면 그야 꽃사슴 다리 / 고봉밥, 술 한 대접, 풋나물, 자반 한 토막 / 그런 것 고작인 날에 개다린들 황송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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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끼고 윤기 돌고 흠이 간 작은 소반 / 가다간 혈이 닿아 눈물 찔끔 한도 찔끔 / 발그레 일그러진 면상 먼 얼굴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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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범, 시집 [꿈꾸는 별자리](2001) 중에서
주요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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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족반, 이인세,
53X53X34cm
구족반 (Portable Dining Table with Doggy Legs)
소반은 안방과 부엌이 멀리 떨어져 있고 평좌식 생활을 하는 우리의 생활문화를 반영한 부엌용 가구이다. 소반은 지역이나 장식,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그 중 구족반은 다리가 마치 개의 다리와 같이 굵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살짝 코 끝이 올라간 데에서 연유한다. 이러한 다리의
형태는 전통 소반의 세련된 감각을 느끼게 하며, 중부지방과 함경도, 강원지방 산속 민가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날렵한 천판과 다리의 감각적인
선처리에는 이인세 소반장의 장기가 발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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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궐반, 이인세,
44.5X44.5X30cm
대궐반 (Palace Dining Table)
대궐반은 원바의 형태에, 주칠이나 흑칠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 대궐반은 전체적으로는 흑칠이나 부분적으로 천한의 변죽이나 운각(초엽),
다리 끝에서 올라오는 당초 등에만 주칠로 변화를 주고 있다. 이인세 장인의 소반은 전체와 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직선과 곡선이 서로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어려서 이당 선생에게 배운 그림 솜씨 덕분인지, 선생이 그려낸 초엽의 당초문에는 회화적인 느낌이 강하다. 더구나 어느 한 부분
모자람 없이 군더더기 없이 처리하는 것에서 장인솜씨의 극치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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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주반, 이인세,
55X39.5X32cm
해주반 (Haejuban Table)
해주반은 황해도 해주 지방의 특징을 지닌 것인데, 회화적인 느낌과 조각적인 새김에 솜씨를 보이는 이인세 장인의 특기가 반영된 작품이다.
천판은 통판을 일정 두께로 파내고 네 귀는 부드럽게 귀접기로 마감하고, 운각의 초엽은 화려한 당초를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두 다리는 네모진
판의 아래쪽에 풍혈을 주어 족대에 끼웠으며, 판면의 중앙은 투각과 음양각을 동원하여 각종 무늬를 새겨 넣었다. 반쯤 핀 모란문이 당초문과 어울려
전면에 새겨져 있고 네 귀퉁이에는 쌍희(囍)자와 복(福)자를 배치하고 있다. 가장 안쪽에 여의두운을 크게 뚫고 원형의 수(壽)자를 배치했는데
위쪽의 박쥐문과 아래쪽의 연꽃잎이 서로 받치도록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인 문양의 조형감과 세련된 배치, 섬세한 조각기법 등에서 이인세 장인의
솜씨와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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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전일주반, 이인세,
70.5X70.5X32cm
회전일주반 (Revolving Table)
일주반은 하나의 기둥으로 반을 받치고 있는데, 이 회전일주반은 기둥을 중심축으로 이용하여 방사형 십자로 만든 구름무늬 위에 얹힌 편한이
회전하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천찬은 반듯한 12각인데 반해, 천판의 아래쪽에는 구불구불한 초엽을 달아 변화를 주고 있다. 이 소반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기둥의 중심축이 회전할 수 있게 원형으로 만든 것이고, 그 위 아래로 십자형 다리가 사방으로 뻗치되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으로
처리하여 독특한 표현미를 보여준다. 소반 전체에 투명한 생칠을 칠하여 나무결의 아름다움까지 한데 어우러져 이인세 장인의 뛰어난 눈썰미와 뛰어난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상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장인, 소반장
소반장(小盤匠)이란 밥, 반찬 그 밖의 음식들을 벌여 놓고 먹는 상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장인(匠人)을 말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로 지정된 소반은 식반(食盤), 반상(飯床)으로도 불리어진다. 소반은 고대로부터 평좌식(平坐式) 생활을 하여 왔던
우리나라의 습속에 맞게 발전되어 왔다. 소반의 형태는 고구려 고분벽화 중 안악 제3호분과 각저총, 무용총 등 인물풍속 장면에서 음식을 담은
식기를 받친 사각반(四角盤)을 볼 수 있는데, 소반다리의 족통의 코가 수족(獸足)을 이루고 있는 형태가 현재의 소반에서 호족(虎足),
구족(狗足), 마족(馬足) 등 짐승의 발굽을 하고 있는 것과 연관해 볼 때 그 형태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전하여 오는 양식인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소반은 일찍부터 국가의 공방에서 제작되었다. [경국대전]에 소목장(小木匠)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소반은 주로 목장(木匠)이 담당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소반은 각 지방에 따라 의장이 매우 견고하고 단순하며 소박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재료에 따른 분류
소반 제작에 사용된 목재의 종류에 따라 행자반(杏子盤, 은행나무로 만든 소반), 괴목반(槐木盤, 회화나무로 만든 소반), 귀목반(櫷木盤,
느티나무로 만든 소반)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또한, 어떤 칠을 했느냐에 따라 자개반(자개를 박고 칠을 한 소반)과 주칠반(주홍색 칠을 입힌
소반), 그리고 흑칠반(검은색 칠을 입힌 소반)으로 불려진다. 이외에 재료에 따라 놋쇠반, 지승반, 은소반 등이 있다.
꼼꼼하고 빈틈없었던 이인세 선생
이인세 선생은 1928년 4월 3일 충남 천안군 목천면 소사리에서 아버지 이원노 선생과 윤영철 여사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아버지 이원노 선생이 매형에게 소반 제작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이 집안에서 최초로 소반을 만들게 된 동기였다. 아버지는 소사리에서 소반제작을 하면서 가사를 꾸려나가기 시작하였고, 이인세 선생은 어려서부터 자연적으로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소반제작 기술을 배우고 익히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안성고등과라는 중학교 과정의 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16세 되던 해에 인천에 있는 차륜(車輪)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된다. 17세 되던 해에는 다시 서울에 있는 철도국 기관부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19세 되던 해에 서울의 대화가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선생이 안성의 숭인동에 와서 한 일년 동안 계셨는데 이때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이당 선생의 제자가 되어 그림공부를 시작하였다. 이후 다시 소반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기본적인 소반일을 배우게 된다.
1946년 안성에서 진영무 여사와 결혼하여 이때부터 아버지의 소반공장에서 본격적으로 소반을 제작하였다. 당시 소반 제작을 하는 장인들은
나주반, 통영반, 해주반 할 것 없이 서울이나 경기지방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소반을 제작하였다.
그러나 이인세 선생이 소반공장에서 배운 선생들은 주로 해주반 기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인세 선생의 기능은 해주반 제작에 특별한 기술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공장을 처분하고 42세에 서울의 면목동으로 이사를 하여 소반과 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자신이 경영하는
공장을 설립하여 소반을 활발하게 제작하였다. 이후 상계동으로 이사를 하여 한평생 소반제작을 하였다.
선생은 장인정신이 투철하고 성격이 옹고집이기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 데에도 꼼꼼하고 빈틈이 없으며 조각에도 남다른 솜씨를 가지고 있어
1992년 국가에서는 그의 기능을 인정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기능보유자로 인정하게 되었다. 회화적 안목과 조각적 섬세함이 동시에
요구되는 해주반을 전문적으로 만들어온 이인세 선생의 사후 그의 기술은 둘째 아들인 이종덕 선생이 전수교육조교로 활동하고 있으며, 첫째 아들인
이종석 선생도 소반 제작을 하며 전승활동을 하고 있다.
이인세 선생이 사용하던 작업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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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
본기는 소반의 천판이나 초엽, 운각 등에 새길 문양을 종이에 그리고 본을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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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끌
‘끌’은 상판의 뒷면에 다리를 세우거나 중대를 연결하기 위하여 다리에 홈을 팔 때 쓰이는 공구이다. 대패 바닥이 둥근 ‘등미리’는 소반의
중대를 다듬거나 상판을 약간 둥글게 깎을 때 사용한다. ‘초엽변탕’은 긴 나무판으로 만들고 중간에 칼처럼 생긴 대패가 끼워진 대패의 일종으로,
소반의 운각이나 상판을 다듬을 때 주로 많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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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도, 변죽 제작도구
소반의 천판은 ‘자귀’로 나무판을 깎고 그 바닥은 ‘밀도’(그림 좌)를 사용하여 판판하게 민다. 천판 외곽의 네모진 곳을 둥글게 표현할
때에는 윤곽선을 깎는 ‘홅태’를 이용하고, 변죽이나 귀퉁이를 다듬을 때에는 양쪽 손잡이가 달린 조그마한 ‘호비칼’을 사용한다. ‘뒷치기’는
상판의 옆이나 뒤쪽을 깎을 때 사용하는데, 그 형태는 등미리처럼 넓고 둥근 것이 특징이다. ‘골미리’는 천판 뒷면에 풍혈(운각)을 끼우고자
둥글게 골을 파는 도구이다.
약력
- 1928. 4월출생
- 1980~1990전승공예대전 출품
- 1990제15회 전승공예전 국무총리상
- 1992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기능보유자 인정
- 2002일본 교토 전통공예전시 “한국 전통문화의 향기전” 출품
- 2009무형문화재초대전
- 1992~2008봉암사 대법고 설치
- 1991~2001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작품전 출품
- 2009 10월별세
선생의 작업하는 모습(1)
선생의 작업하는 모습(2)
선생의 작업하는 모습(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