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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각한 각자장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조회 : 6,061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김각한선생
 
철재 오옥진 선생님의 각자(刻字)를 접했던 이십대의 김각한 선생님은 그 날 이후 각자를 배우게 되었다. 이름에도 ‘각’이 들어가 각자를 위해 태어난 운명이 아니냐는 기자단의 농담에 선생님은 평소에도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며 웃음으로 화답하셨다. 목판에 글씨를 새기고 동시에 혼을 불어넣어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김각한 선생님을 만나 각자 인생을 들어보았다.

각자(刻字)와의 우연한 첫 만남
선생님이 각자와 만나게 된 것은 운명이라기보다는 우연이라고 말한다.
군대를 제대하고 난 후 종로에 있는 어느 목공예학원에 다닐 때였다. 동료들이 어느 날 한 전시회를 보고 와서 “기가 막히게 좋은 것이 있다”고 선생님께 얘기했다. 그 전시회가 선생님의 스승님인 철재 오옥진의 개인전이었고, 전시회를 찾아가 각자에 감동받은 선생님은 그 다음 날 오옥진 선생님을 찾아가 각자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선생님은 각자를 배우기 전에 목공예를 배운 덕분에 상대적으로 나무나 연장을 쉽게 다룰 수 있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업은 ‘나무를 고르는 것’
각자의 모든 과정이 어렵고 중요하지만, 선생님은 작업에 쓰일 나무를 고르는 것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목판에는 단단하며 결이 곧고 눈매가 작은 나무를 사용해야 하고, 현판에는 잘 갈라지지 않고 틀어지지 않는 나무를 골라야 한다. 쓰임새에 따라 나무 재질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재료의 선택은 작품과 더불어 선생님의 책임감에도 중요한 요소다.
“그전에는 각자 작업을 그냥 해주고 끝냈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공인이 되다 보니까 잘하건 못 하건 한번 해놓으면 거의 반영구적으로 걸려 있잖아요. 그러니까 작품이 없어질 때까지 내가 했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거예요. 책임이 있는 거잖아요. 그게 어렵죠.”

그렇게 만들어 나간 작품이 잘 보존되어서 건축물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하셨다. 활동 초반에 보람을 느낀 작품으로는, 서울 아차산 기원정사의 ‘관세음보살 보문품’ 작품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리나라에서 刻字작품을 법당 후불로 설치한 최초의 것이기에 기억에 남는다고 하신다. 2~3년이 지난 뒤에 그곳에 가 보았을 때 틀어지거나, 틈이 버러진 곳이 하나도 없어서 속으로 웃으며 돌아왔다고 한다.
또 스승님을 도와서 경복궁을 복원할 때 태원전, 건청궁, 함화당 등의 현판들을 복원했을 때 ‘아, 내가 만든 작품이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재 경복궁에 걸려있구나’ 라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한다. 이후로 수원 화성행궁 복원 때 만든 현판 작업과 부여 백제재현단지의 현판 작업도 보람을 느꼈던 일로 대답해 주셨다.
초반에 각자를 배울 적에 스승님께 조언을 많이 받고 발전한 지금 선생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각자에 대한 열정을 전수에 힘쓰고 있다.

현재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한국문화의집에서 전통공예를 가르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각자반이 바로 그 배움의 장이다. 교육조교 때부터 각자장이신 철재 오옥진 선생님을 대신해서 2004년부터 강사를 맡게 되었고,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이 된 지금까지 11년을 이어왔다.

수강생들의 면면을 보면 직장인, 대학교수, 교사, 대기업임원출신, 기업CEO등 다양한 전문분야의 사람들이다.
각자를 처음 접하는 그들을 가르칠 때는 자신이 대장이 된 마음이라며 웃으셨다. 하지만 각자를 떠났을 때 그들은 김각한 선생님의 또 다른 선생이 된다고 한다. “학생 중에는 미술을 전공하거나 서예를 전공하신 분들도 계세요. 그분들에게 제가 알지 못하는 부분을 배우게 되기도 하지요.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도 있지요.
현재 김각한 선생님은 “직지심체요절”을 목판본으로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복원이 끝나면 현재 남아있지 않은 목판을 찾아서 복원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목판복원을 위한 여러 명의 전수생들이 훈련 중에 있다고 한다.
 
“각자를 처음 본 그 날의 감동을 표현하자면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 ‘필이 꽂혔다’고 하죠. 밥 먹고 밤낮으로 글씨를 새기면서 단순히 좋다는 마음으로 각자를 했습니다. 정말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각자에 몰입하다 보니 세월이 흘러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 선생님의 각자 작품.

선생님의 각자 작품.
장인에게 있어 그것은 하나의 흔적이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흔적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흔적이 아닐 수 있다. 자신이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작품이 하나쯤은 있을 수도 있고, 하나도 없을 수도 있다며, 앞으로 어떤 각자 문화재를 남길 것인지에 대한 기자단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다. “지금은 제가 어떤 작품을 남겨야겠다고 말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겠죠. 저 혼자 아무리 가치 있다고 생각해도 더불어 가치를 인정 받아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무형문화재보유자들이 생각하듯이, 각자(刻字)분야에도 지속적으로 각자(刻字)를 이어나갈 새로운 젊은 전승자들이 절실하다. 선생님은 자신이 알고 있거나 배운 것들을 젊은 후계자에게 모두 전해주고 싶다고 하시며 후진 양성에 대한 생각을 밝히셨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어도 생계에 대한 부담이 된다면 힘들다고 현실적인 의견을 말씀하셨다.

“젊은 사람들이 각자를 배우겠다고 왔을 때 제가 먹고사는 것까지 해결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이 제일 힘든 부분이죠. 아무리 좋거나 중요한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해도 먹고 살기가 힘들면 못합니다. 그래서 일단 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되 소득원이 있는 것이 활동하는 데 좋죠. 각자 작업을 하는데 전념하려면 경제적인 부분이 뒷받침돼야하는 것이 실질적인 부분이죠. 이런 부분들이 마련되고 후진들을 키워서 문화재들을 복원해 나가는 과정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에게 각자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선생님은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에 어울리는 각자 작품을 만들겠다고 말씀하셨다. 전수 조교일 때까지만 해도 조금 잘못하면 전통이 아니라고 타박을 받거나 작품을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에 우리 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색을 띠면서도 현대적인 것을 가미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있다며, 지금은 자신이 보유자로서 어느 정도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섞어도 변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내비치셨다.
“전통적인 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장단점이 있습니다. 분명히 전통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기물이나 색감을 활용하면 훨씬 좋은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앞으로 그런 작업들을 해나갈 것이고, 해야 할 겁니다. 이것이 法古倉新이죠”

  출처: 한국문화재재단  글˚고선영, 신은솔, 오수민 (한국문화재재단 대학생기자단 징검다리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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