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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선자장 합죽선 도무형문화재 제10호
조회 : 75,771  

전라북도무형문화재 김동식 선자장 합죽선
 
시원한 여름나기 전주 합죽선
전주를 대표하는 전통 문화 중 하나인 합죽선. 이름 그대로 대나무를 이어 만든 합죽선은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그 명성이 높았다. 그 안에 우리의 전통과 역사를 품고 지난 세월을 면면히 이어온 합죽선에는 음양오행의 진리와 함께 한국의 고집스런 장인 정신이 함께 묻어난다
 
명인이야기
김동식 선자장은 4대째 가업으로 부채를 만들어 온 이들의 손 끝에서 완성된 부채는 단순히 바람을 일으키는 물건이 아닌 우리 전통의 재현이자 역사다. 명인의 외가는 140년 동안 부채를 만들어 온 부채 명가다. 외증조부때부터 부채를 만들어 왔던 외가는 나주에서 완주군 용진면 산정리 석소마을로(현재 전주시 우아동)터를 옮겨 온 후 우리 전통의 합죽선을 만들어 왔다.
외조부인 2대 라학천 선생은 고종에게 합죽선을 진상할 만큼 뛰어난 합죽선 명인이었고 그 기술은 3대 라이선, 라태순, 그리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라태용 선생에게로 이어졌다. 이처럼 부채와 인연이 깊었던 터라 김 명인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4살때부터 이 곳에서 외삼촌인 라이선, 라태순, 라태용 선생에게 부채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50년 이상을 운명처럼 부채 만드는 일을 시작해 평생을 한 길만 바라보며 고집스럽게 걸어 온 김 명인에게 부채는 삶의 전부였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지금까지 그를 지탱하게 해 준 것도 바로 부채였다. 선풍기나 에어컨에 밀려 요즘 부채를 찾는 사람이 없지만 전통을 지켜 간다는 자부심 하나로 그의 손은 여전히 대나무 살을 깎아 내고 손에 풀 마를 날 없이 한지를 붙여 부채를 완성해 낸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삼남매 중 외아들인 대성씨는 필연처럼 부채 만드는 가업을 이어 받게 되었고 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부채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명인은 "나 죽어도 전통의 맥을 꾸준히 이어가 달라고, 부채는 없애지 말라고...이야기한다.
그동안 김 명인이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 낸 부채들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옛날 왕실에 진상하던 ‘50접천선윤선을 비롯해 한지의 칠에 따라 달라지는 황침선, 옻침선 등이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부채살은 대나무를 쓰지만 부채등에는 박날나무, 대추나무, 먹감나무, 우족뼈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 본격적인 작업은 가을부터 초여름까지로 정작 부채 수요가 많아지는 여름에는 작업을 하지 못한다. 한지에 바르는 풀이 뜨거운 온도에 녹아 내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전통에 바탕을 둔 작품의 전 과정은 모두 그의 손 안에서 이뤄지고 부채 하나에 온 열정을 쏟는 그의 모습에서 장인의 숨결이 느껴진다.
김 명인은 앞으로 우리 부채를 전 세계에 알리고 싶은 소망이 있다. “몇 개를 만드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가가 중요하죠. 한국의 전통을 담은 우리 부채를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겁니다.”
또 국가 차원에서 무형문화재들이 우리의 전통을 올곧게 지켜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생계 유지도 하기 힘든 상황에서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가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을 식혀 주던 부채 바람의 여유가 사라져 가는 요즘이지만 부자(父子)는 여전히 부채 만드는 일에 열중이다. 힘들고 고독한 장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자신들의 손 끝에서 탄생하는 부채의 바람을 타고 우리의 얼과 전통이 온 세상에 널리 퍼져 나가기를 아버지와 아들은 오늘도 소망한다.

전주부채
전라북도 전주시 의 토산품으로 생산되는 부채로 부채살에 종이 또는 깁을 붙여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부채로 합죽선은 수예품으로 전수되어오고 있는데 40개로 된 부챗살을 만드는 골선방, 합죽한 부채에 인두로 무늬를 새겨 넣는 낙죽방, 때를 빼내고 빛이 나게 하는 광방, 선지에 산수나 화조를 그려넣는 그림방, 부채에 선지를 바르는 도배방, 부채의 목을 묶는 사북방 등의 작업을 거쳐 만들어진다. 합죽선은 양반의 장신구로 사용되어왔으며 합죽선을 들지 않으면 양반축에 들지 못하고 합죽선 뒤에 그려진 시화(詩畫畵)의 그윽한 묵향을 음미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단오 때 진상되었던 전주의 태극선(太極扇)은 대나무와 태극무늬의 비단헝겊, 사북장식 등을 재료로 사용하며 일곱가지 공정을 거친다.
대나무를 일정한 굵기로 쪼개어 납작하게 만드는 절죽작업, 선지 위에 풀을 칠한 뒤 살을 알맞게 배열하는 살놓기, 살 위에 풀칠을 한 뒤 선지와 살을 밀착시키기, 태극선 문양을 선면에 붙이기, 선면을 부채의 형태대로 재단하는 과정 등을 거쳐 태극선이 완성되는데 합죽선과 태극선은 전주의 상징적인 대명사이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전주감영에 선자청(扇子廳)을 두어 진공용 부채를 생산, 관리하였다. 한편, 부채는 우리 민족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사용되고 발전되어 왔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에어콘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일반적으로 접부채가 단죽을 이용한 것이라면 합죽선은 겉대를 합하여 만들었기에 ‘합죽선’이라고 한다. 접부채는 접선(摺扇)이라고 하며, 그 기원을 고려에 두는 설과 일본에 두는 두 설이 있다.
고려 기원설의 증거로는 조선시대 헌종 때 성명 미상의 학자가 필사본으로 남긴 재물보 才物譜에서 접선은 시출고려(始出高麗)라 하여 고려시대의 발명품이라 한 구절이다. 청나라의 대학자인 조익(趙翼)도 접선은 고려로부터 조공이 들어와 영락연간(永樂年間)에 황제가 이를 모방하여 만들게 하였다고 한다.

또 그 위에 격언을 써서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민간에 퍼졌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일본 기원설로는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 熱河日記≫에 “우리 나라의 기물로서 일본의 것을 모방한 것이 많은데, 접는 부채도 고려는 일본에서 배웠고 중국은 고려에서 배워갔다.”는 내용이 있다.
열하일기에 의하면 접선이 일본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중국으로 전파된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더 정확한 전거를 찾아야 할 것이다. 부채의 사치는 부챗살을 모아 고정시키는 사북을 금이나 은으로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세종 때에 왕이 공조에 명하여 단오진상(端午進上)의 접부채에 금·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잘 이행되지 않은 듯하다. 성종 때에 부채의 가격이 면포 8, 9동의 값에 이른다는 기사가 있다.
이와 같은 부채는 상부관청에 대한 중요한 증여품목이 되었고, 따라서 대밭을 가진 백성들에게 공출을 강요하는 폐단을 낳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을 분기점으로 한 조선 후기부터 부채는 점점 대형화되었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었다.
영조 때에 유행한 승두선(僧頭扇)은 길이 1척 정도의 살에 옻칠을 하고 두꺼운 종이를 붙여 파란선으로 장식한 사치스럽고 견고한 부채였다. 승두선이라는 명칭은 군안, 즉 부채의 목 아래 부분이 중의 머리같이 둥글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수요의 증가와 함께 합죽선과 같은 재료가 많이 드는 새로운 형태의 부채가 생산되면서 산지에서는 대밭이 고갈되는 폐단이 생기게 되었다.

정조 때의 암행어사 서유문(徐有聞)은 전라남도 고흥의 단오진선(端午進扇)에 따른 대밭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부챗살의 수가 많고 과다하게 큰 부채, 변죽에 각을 댄 것, 부챗살을 합죽한 것, 선면에 칠한 것 등은 일체 엄금하고 선제(扇制)는 견박하게만 하자고 하였다.
이에 동조한 좌의정 김이소(金履素)는 부챗살의 수는 20, 길이는 6, 7촌을 넘지 못하게 하여 1795년부터 시중에서 매매되는 것을 적발하는 대로 엄벌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의결이 있은 직후인 1805년대 당시 전라감사였던 심상규(沈象奎)도 길이 5, 6촌 정도의 소선(小扇)을 만들어, 사람들은 이 부채를 심선(沈扇)이라는 명칭으로 불렀으며 일시 유행하였다.
그러나 부챗살의 수 50, 길이 1척 이상의 대형부채들은 오십죽별선(五十竹別扇)이라는 명칭하에 여전히 만들어져 공납에 충당되어 특수층에 전용되었다. 접부채는 재료와 형태에 따라서 명칭이 여러 가지로 불린다. 즉, 소선(素扇)·반죽선(斑竹扇)·내각선(內角扇)·외각선·화각선·화초선·승두선·용두선·유지선(油紙扇) 등이 다 접부채인데, 재료와 형태·빛깔에 따라 달리 불리고 있을 뿐이다.

합죽선의 유래와 역사
우리나라에는 경상남도 의창군 다호리 고분에서 출토되어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오래된 부채가 있는데, 이는 서기 3세기경의 가야 권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의 벽화에서도 깃털로 만든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이곤 한다.
이러한 유물과 변화의 그림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우리선조들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부채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합죽선은 송나라의 곽약허가 지은 도화견문지에는 고려에서 들어오는 접첩선을 사용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의 접첩선은 쥘부채의 일종인 합죽선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123년에 송나라 서긍이 고려에 와서 보고들은 바를 그림과 글로 기록한 고려도경에는고려인들은 한겨울에도 부채를 들고다니는데 접었다 폈다 하는 신기한 것이다고 감탄한 내용이 있다. 이로써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뿐만이 아닌 여러 용도로 쓰였음을 알수 있다.
 
부챗살에 종이를 붙여 접었다 펴서 실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우리 고유의 합죽선은 당시 중국과 일본에까지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부채를 만드는 솜씨는 더욱 발달하였는데, 고유의 쥘부채와 방구부채는 외국과의 주요 교역 품으로 활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 104월에 왕은 명나라 사신에게 쥘부채 100자루를 주었다고 기록되어있다. “통문관지에 따르면 조선시대 우리나라 사신이 일본에 갔을 때 국교품으로 부채를 상당수량 가져가 전달하였다. 조선시대의 부채는 단순히 생활용품에서 나아가 의례용품이나 예술품으로 발전하였다.
광복이후 오늘날에는 전라북도 전주에서만 합죽선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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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선자장이야기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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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지센터부채전작품전시

1943년 전북 전주 출생
라이선, 라태순, 라태용 선생 사사
국풍 81’에서 합죽선 재현
전주전통부채전에서 부채전시
현재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합죽선) 보유자

참고문헌
『한국의 부채』(임동권, 국립민속박물관, 1983),「부채의 기원과 변천」(金三代子, 『미술자료』 36, 1985),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10호 선자장 김동식,[출처 전북도민일보/2008.8.8, 전주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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