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
가물치
가지
간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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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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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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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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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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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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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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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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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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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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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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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장 장용훈, 살아 숨쉬며 천년을 견디는 종이, 한지
조회 : 2,749  

 
한지장 장용훈
 
1937. 11. 28. ~ 보유자 인정: 2010년 2월 11일
비단 오백 년 종이 천 년을 증명하듯
우리 한지에 쪽물을 들인 감지(柑紙)는 천 년을 견딘다는데
그 종이 위에 금니은니로 우리 사랑의 시(詩)를 남긴다면
눈 맑은 사람아
그대 천 년 뒤에도 이 사랑 기억할 것인가
감지에 남긴 내 마음이 열어주는 길을 따라
경주 남산 돌 속에 잠든 나를 깨우러 올 것인가
풍화하는 산정 억새들이 여윈 잠을 자는 가을날
통도사 서운암 성파(性坡) 스님의 감지 한 장 얻어
그리운 이름 석 자 금오산 아래 묻으면
남산 돌부처 몰래 그대를 사랑한 죄가
내 죽어 받을 사랑의 형벌이 두렵지 않네
종이가 천 년을 간다는데
사람의 사랑이 그 세월 견디지 못하랴
돌 속에 잠겨 내 그대 한 천 년 기다리지 못하랴. - 정일근 시인의 ‘감지(柑紙)의 사랑’, 시집 [감지의 사랑], (빛남, 1995) 중에서
주요 작품
서책(음양지)
서책(음양지), 45×60cm
외발뜨기 방식으로 만든 한지를 음양지라고 하는데 두 장을 겹쳐 한 장의 종이로 만드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기법이기도 하다. 음양지로 만들어진 한지를 도침처리 후 여러 장을 묶어서 책으로 만들었다. 또한 표지는 옻칠로 마무리했다.
자연빛깔(음양지), 자연빛깔(색지)
자연빛깔(음양지), 자연빛깔(색지), 각 90×64cm
자연빛깔(음양지) : 얇은 두 종이의 아래위를 엇갈리게 덧대어 만드는 종이로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이 음양지에 인쇄됐다고 한다.
자연빛깔(색지): 전통기법으로 한지에 천연재료로 염색한 작품

살아 숨쉬며 천년을 견디는 종이, 한지
  • 한지(韓紙)는 백지라고도 한다. 그 빛깔이 희고 고와 흰백(白)자를 써서 백지(白紙)라고도 하지만, 한 장의 종이를 만들려면 만드는 사람의 손이 아흔 아홉 번 가고 사용하는 사람의 손이 백 번째로 간다고 하여 일백백(百)자를 써서 백지(百紙)라고도 한다. 종이의 기원은 서기 105년 중국 후한시대의 채륜이 넝마를 찧어 만든 종이인 “채후지”가 인류 최초의 종이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중국의 전한시대 유적에서 다수의 종이가 출토되어 채륜시대보다 200여 년 전에 이미 종이가 만들어지고 있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 이들 출토 종이는 모두 넝마를 원료로 한 마지(麻紙)였다. 종이의 제조법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명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대략 2세기경에서 6세기 사이로 보고 있으며, 이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최소 7세기 초인 삼국시대에 제지기술이 한반도에 보편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신라시대는 닥섬유로 만든 종이가 우리 종이로 정착된 시기로 볼 수 있는데, 당시의 종이를 계림지(鷄林紙)라고 불렀다. 우리 종이의 발전기라고 할 수 있는 고려시대는 각종 서적의 출판이 활발해졌으며 팔만대장경, 속장경 간행 등 거대한 인쇄사업이 반복되었다. 이 시대 만들어진 고려지(高麗紙)는 질기기로 유명하여 중국에서는 고려피지(高麗皮紙)라는 별칭으로 불렀으며 원나라가 고려에 요구한 물품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우수성이 입증된다.
  • 조선전기는 우리나라 제지 기술의 완성 단계로 활자 인쇄술의 발달이 종이의 수요 증가를 가져와 제지업이 국가의 주요 산업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이르러 계속되는 외침과 삼정의 문란 등은 제지업 기반의 붕괴를 초래했으며 국영 제지산업 기반이 붕괴되고 조선시대 말까지 국가 수요의 종이 공급이 대부분 사찰제지업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말엽 일본을 통해 서양식 기계로 제조한 종이가 수입되고 그간의 전통적인 종이를 “한지”라 하여 서양의 기계지인 “양지”와 구분하여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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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이어온 종이 가문, 한지장 장용훈 선생
“좋은 종이는 사람보다 오래 살지만, 좋은 사람의 손끝에서 나와야 오래 살 수 있다.”중요무형문화재 제117호 한지장 기능보유자 장용훈 선생은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이 발발한 17살 무렵부터 한지를 뜨기 시작했다. 한지 뜨는 일은 조부인 장경순 선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00여 년 전 겨울 농한기 때 질 좋은 닥나무를 거둬 한지를 만들기 시작한 조부와 그 조부를 따라 한지를 만드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삼으신 부친 장세권 선생에 이어 3대째 한지 제작을 계승하고 있으며 장용훈 선생의 아들인 장성우 선생까지 4대째 이어오고 있다.
장용훈 선생의 부친은 아들이 종이 만드는 일을 하지 않길 바라셨다. 평생 고생한다며 만류하셨으나 선생은 부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좋아서 시작한 종이 만드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여러 차례 만류를 하였던 부친도 아들의 솜씨를 조용히 지켜본 후 결국 자신의 길을 걷게 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공문서 복원 사업으로 한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입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1970년대 들어서 양지가 보급되어 한지의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고 한지 만드는 일도 침체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떠났지만 선생은 이 일을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이후 경제적으로 힘든 세월을 보낸 선생은 얼마 남지 않은 돈을 털어 닥나무 품질이 좋은 경기도 가평으로 이사하여 공장을 세웠다. 다른 것은 생각지도 않고 음양지 제작기술을 고집했다. 종이 한 장에 다른 사람보다 몇 배 시간이 더 걸렸고 원가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사려는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몇 년 후 홍수가 나서 공장이 물에 잠겨버렸다. 종이며 닥나무들이 모두 썩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선생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종이가 좋았던 것이다. 물난리를 수습하고 난 후 군유지를 임차해 지금의 공장으로 옮겨 또다시 죽을 힘을 다해 종이를 만들었다. 이후 아들들이 함께 하기 시작했다. 힘든 과정에서도 선생은 아들들과 함께 종이 만드는 일에 정성을 쏟았고 시간이 지나 그 노력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국내외의 서예가와 화가들이 선생의 작품을 찾기 시작했고 작품 전시도 개최하게 되었다. 1998년에는 일본의 종이예술가 사카모토 나오아키 선생이 장지방을 찾았다. 일본에서 사라진 음양지에 대해 수소문 끝에 찾아온 것이다. 2005년 사카모토 선생은 서울에서 장지방의 음양지로 작품전을 열기도 하였다.
장용훈 선생은 그 동안의 고생에 대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그냥 종이가 좋아 한평생을 바처온 일이고 이제 많은 이들이 다시 우리 한지를 다시 찾아줘서 고마워 할 뿐이다. 선생은 음양지는 물론이고 보수지의 대가다. 오래된 작품의 손상 부위를 복원하기 위해 극도로 얇게 뜬 종이인 보수지제작은 그만큼 뛰어난 기술이 필요하다. 현재 장용훈 선생은 청력을 거의 잃었고 연로하여 기억도 많이 잃은 상태라고 한다. 십여 년 전 원인 모를 두통으로 일 년을 앓고 난 후 생긴 일이다. 그러나 선생이 기억을 잊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종이를 뜨는 방법이다.
‘장씨 가족이 종이 만드는 공방’이라는 이름 뜻의 <장지방>을 운영하며 선생의 장남인 장성우 선생이 20년이 넘게 대를 이어 종이를 뜨고 있다. 많은 노력 끝에 명품 한지를 생산해 내어 내로라하는 국내외 화가들이 장지방 종이를 애용하고 브랜드화에도 성공하여 미국과 일본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아버지 때로부터 시작하여 백 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한지장 홍춘수 선생과의 특별한 인연은 두 한지 장인의 전시회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도 하였다.
 
제작과정
한지는 닥나무 껍질로 만든다. 닥나무는 추수가 끝나고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년생을 거둬 쓴다. 6~7시간 동안 푹 찐 닥나무 껍질(피닥)을 벗겨 물에 담가 불린다. 콩대·메밀대·목화대·고추대 등을 태운 재에 맑은 물을 부어 잿물을 만든다. 이 물에서 외피를 벗긴 피닥을 소뼈를 고듯 8~9시간 동안 푹 삶아 섬유질인 닥나무 껍질을 연하게 만든 후 피닥에서 검은 티 등을 잡아내 깨끗이 하고 곱게 빻은 다음 맑은 물에 섞는다. 한지에 윤기를 더하고 내구성을 강하게 하기 위해 닥풀 뿌리에서 채취한 점액을 첨가한다. 발틀 위에 대나무체를 얹어놓고 지통에서 찰랑찰랑 흔들면서 그 위에 종이를 뜬다. 말린 후 말린 종이를 겹겹이 쌓아놓고 곱고 질김이 강하면서 탄력있게 하기 위해 방망이질(도침)한다.
성형 재료인 바둑이 나오면 소나무 숯으로만 불을 지펴 다음 작업에 들어간다. 보통 11명이 한 조가 되어 바둑을 불에 달구고 망치로 치는 과정(네핌질)을 되풀이해 가며 얇게 늘려낸다. 얇게 편 판은 여러 장 겹쳐 우김질로 틀을 만들면 우묵한 그릇의 틀이 잡힌다. 이를 당기며 쳐 늘리는 작업인 닥침질이 끝나면 간수를 발라서 물에 담갔다가 내어 완제품에 가까운 형태로 완성시킨다. 담금질을 하고 나면 놋쇠의 경도와 인성이 낮아져 질이 연해진다. 마지막 과정인 가질에서는 벼름질이 끝난 재료에 산화 피막이 형성되고 흠이 난 것을 제거해 놋쇠 특유의 색이 나오도록 전체 또는 일부를 깎아낸다.
    • 1) 삶은 닥섬유
    • 2) 닥방말이질 하기
    • 3) 풀어진 섬유질
    • 1)삶은 닥섬유
      2)닥방말이질 하기
      3)풀어진 섬유질
    • 4) 물질하기
    • 5) 물질하기(2)
    • 6) 도침하기
    • 4)물질하기
      5)물질하기(2)
      6)도침하기
       약력
  • 1937년 전남 장성 출생
  • 1955년부친이 운영하던 ‘청웅한지’에서 전통한지 전수
  • 1994년19회 전승공예대전 입선 (21회까지 3회 입선)
  • 1997년 22회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 1996년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6호 지장 기능보유자 인정
  • 1996년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6호 지장 기능보유자 인정
  • 1997년제27회 경기도 및 전국 공예품경진대회 특선
  • 1999년일본 시고꾸, 아오미시마 등지에서 음양지 제작시연
  • 2000년일본 도야마 국제물상전 초대전
  • 2005년한 장의 종이를 통해 생겨난 우정전(인사동 쌈지길)
  • 2007년현대작가 조니델 전통한지 기술 전수(베네수엘라)
  • 2008년부천 세계 무형문화유산 엑스포 전시 및 체험행사
  • 2009년필라델피아 미술관 크라프트쇼 전시 및 시연
  • 20010년중요무형문화재 제117호 한지장 기능보유자 인정
  • 20010년한지장 장용훈·홍춘수 韓紙전 <천년한지, 백년인연>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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