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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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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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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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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
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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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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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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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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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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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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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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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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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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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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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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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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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하젓
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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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포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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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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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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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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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낙죽장 김기찬
조회 : 3,427  

무형문화재 낙죽장 김기찬
 
결국은 벌겋게 단 인두를 들고
낙죽(烙竹)을 놓는 일이지
한때는 산과 산을 뛰어넘는
사슴의 발자국을 남기는 줄 알았으나
한때는 맑은 시냇물의 애무를 견디다 못해
그만 사정해버리는 젊은 바위가 되는 줄 알았으나
결국은 한순간 숨을 멈추고
마른 대나무에 낙을 놓는 일이지
남을 사랑한다는 것
아니 나를 사랑한다는 것
남을 용서한다는 것
아니 나를 용서한다는 것 모두
낙죽한 새 한마리 하늘로 날려보내고
물이나 한잔 마시는 일이지
숯불에 벌겋게 평생을 달군
날카로운 인두로
아직도 지져야 할 가슴이 남아 있다면
아직도 지져버려야 할 상처가 남아 있다면
- [낙죽], 정호승, 계간 <창작과비평> 2004년 겨울호
주요작품
심정필정 낙붓
 
심정필정 낙붓, 大(40cm), 小(36cm) 왕대 뿌리에 심정필정을 낙죽으로 음 양감이 나도록 시문하였다. 각통과 꼭지는 대추나무로 하고 견사로 고리를 만들었다.
대나무에 새겨진 삶의 염원
  • 낙죽(烙竹)이란 인두로 대나무 겉면을 지져서 글씨를 쓰거나 그림과 무늬를 표현하는 기법이나 이와 같은 기법으로 만든 대나무 공예품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대나무에 인두로 화문(畵紋)을 그리는 것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할 때에는 종이나 대나무, 가죽, 비단 등에 인두로 그리는 모든 글[書] 혹은 그림[畵]을 검누르게 지져내는 것을 낙죽(烙竹), 또는 낙필(落筆), 낙화(烙畵)라고 부른다. 낙화의 시초는 소인(燒印)으로부터 시작된다. 옛날에는 우마(牛馬)와 죄인에게 낙인을 찍어 죄인이라는 표시를 한 일이 있었는데 우마에게 표시하는 것을 소인이라 하고 죄인에게 표시하는 것을 낙인(烙印)이라 하였다. 우리나라 낙화의 시초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명확히 구명할 만한 문헌은 없다. 조선시대에 일반 생활필수품의 수요에 따라 낙인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대전회통(大典會通)]등 기타 조선시대의 직제 중에서 낙죽장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언제 어떻게 전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상고]에 “순조 말에 박창규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낙화를 잘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아 박창규가 조각과 낙죽에 능한 인물임을 알 수 있으나, 낙화와 낙죽을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사람인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 낙죽하는 작업을 ‘낙(烙낙) 놓는다’고 하거나 ‘낙질한다’ 또는 ‘낙지진다’라고 하는데 이때 쓰이는 도구는 인두와 화로뿐이며 인두는 바느질 인두와는 형태가 다른 ㄱ자 모양이고 안으로 굽어서 인두의 몸체는 앵무새 부리처럼 두툼하게 생겼으나 끝이 뾰족하다. 인두는 두 개를 준비하여 화로에 꽂아 두고 번갈아 사용하는데, 이는 알맞은 열기(熱氣)를 계속 유지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인두가 알맞게 뜨겁도록 하는 일과 알맞게 뜨거워진 인두를 사용하는 일은 기능공의 숙련과 경험에 의하여 기술을 발휘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두가 너무 뜨거우면 무늬의 강도, 즉 색채의 표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또, 열이 약하면 무늬의 색채가 얕아져 색조변화가 생기고 작업에 진전이 없다. 인두의 적합성 여부를 시험할 때에는 인두를 볼 근처에 가까이 대고 열기를 가늠하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오랜 경험에 의하여야 이루어진다. 낙죽에서 인두를 쓰면서 농담(濃淡)을 섞어 문양, 즉 무늬나 그림의 내용을 효율성있게 나타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낙죽장은 날렵한 재질과 속력이 있어야 하고 경험과 훈련 또한 많아야 한다.
  • 낙죽은 이제까지 크게 각광을 받거나 주목받는 일이 많지 않았던 죽공예의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만의 독특한 전통공예의 하나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아 전승되고 있다.
  • 낙죽장 김기찬 선생
  • 김기찬 선생은 1955년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복정리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중농 수준 정도여서 어렸을 때 그다지 배를 곯지는 않았다고 한다. 당시 대부분의 농촌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그도 농사부터 집안의 잔일까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였다. 아버지는 짚으로 만드는 물건인 멍석, 둥구미, 걸망태 등과 싸리나무로 엮어 만드는 채반, 소쿠리, 삼태기 등 무엇이든지 모양이 좋고 튼튼하게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한학을 하였으며 의술에도 조예가 있었다. 할아버지에게는 마음과 외모, 체질을 닮고 아버지에게는 손재주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 선생은 젊었을 때부터 자수성가를 하겠다는 바람이 있었다고 한다. 20대이던 1970년대 중반에 우연한 기회에 만난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그의 사랑방을 내주고 관광기념품 용도의 그림 그리는 것을 뒷바라지해 주었다. 이때 선생도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78년 한려수도 단체 여행단에 끼어 남도 여행을 하였는데 그때 송광사에서 받았던 인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결국 그 해 가을에 다시 송광사에 왔다. 송광사 청량각 아래에 있는 여관 겸 식당을 하는 집에 하숙을 정하고 한 달이 넘게 머물렀다. 지금의 장인인 여관 주인이 큰 딸과의 혼사를 제의하여 1980년 초 결혼을 하고 송광사에 정착하게 된다.
  • 결혼 후 공부에만 전념하여 송담 이백순 선생에게 매일 1시간씩 한문을 배우고 순천의 상운 김영도 선생에게 붓글씨를 배웠다. 이어 광주 무등산 관음암 스님의 권유로 광주에 있는 장진회라는 화실에서 국제 이종득 선생에게 사군자와 산수그림을 배웠다. 그때 화실에 자주 놀러 오던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박용기 선생을 만났다. 당시 박용기 선생은 광양에서 자신이 만든 죽패도를 담양에 가서 낙을 놓으려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김기찬 선생에게 권유하였다고 한다. 이런 권유로 1983년 초에 담양에 가서 이동연 선생에게 낙죽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당시 낙죽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6개월 후에 국비 전수장학생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드나들었는데 1985년에 이동연 선생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막막하였다. 그럼에도 낙죽을 계속하였고 그 결과물인 작품을 전승공예대전에 한 해도 빠짐없이 출품하였다. 이러한 선생의 활동을 인정받아 이동연 선생이 작고한 지 3년 후에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으로부터 이수증을 받을 수 있었다.
  • 1987년 국양문 선생이 낙죽장 보유자로 인정받은 이후 김기찬 선생은 국양문 선생의 전수교육 조교가 되어 낙죽의 대를 잇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1988년부터 전라남도에서 추진하였던 공예인 지원 프로그램 덕분으로 광주대학교의 김종식 교수에게 3년 정도 디자인을 지도받았다. 또한, 1986년부터 3년간 전 동신대학교의 김병록 교수에게도 목공예를 지도받게 된다. 중요무형문화재 낙죽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은 2000년에 송광사 내에 공방을 짓고 이름을 ‘금죽헌공예미술관’이라 하였다. 선생은 작품을 만들 때 판매를 염두에 둔 적은 없다고 한다. 제작하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서 받을 수 있는 가격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러한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생은 언젠가는 훌륭한 전시관을 건립하여 그곳에 평생 만들고 수집한 낙화와 낙죽을 전시하고 싶은 꿈이 있다.
  • 낙죽 작품의 쓰임새
    낙죽의 종류에는 낙죽, 낙화, 점반죽법이 있는데 주로 대나무에 많이 사용하며 합죽선, 도병, 진소, 죽장, 장죽, 화살대, 대나무필통, 대나무합, 선초, 침통 등의 기물에 표현된다. 나무제품에서도 낙 놓은 예를 볼 수 있는데, 윷의 X자형 지장도 그런 유형의 한 가지이다. 낙죽으로 만든 작품을 쓰임에 따라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 - 생활용품: 참빗, 얼레빗, 비녀, 담뱃대, 실패, 차판, 버선자, 지팡이
  • - 문구류: 필통, 붓
  • - 부채류: 합죽선, 단선(둥글부채)
  • - 가구류: 책장, 고비
  • - 무기류: 죽패도, 장도, 화살통
  • - 의약계 용품: 선추침통
  • - 불교 용품: 불자(拂子)
  • 낙죽의 무늬
    대나무 제품에 들어가는 낙죽의 무늬는 매우 다양하다.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시문된 것은 소라문, 산수문, 매화와 국화 등 사군자문, 백수백복문과 만자문 등 문자문, 십장생문, 박쥐문, 점문, 귀갑문, 연화문, 운문(雲文) 등이다.
  • - 소라문: 평면보다 곡면에 잘 어울린다. 합죽선, 선추침통 등에 주로 쓰인다.
  • - 산수문: 필통이나 차판 등의 넓은 면에 활용하기가 좋다.
  • - 사군자문: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문양으로 동양화의 주요 소재이다.
  • - 백부백복문(百壽百福文): 대표적인 문자무늬로 무병장수와 복을 염원하는 의미이다.
  • - 만자문(卍字文): 불교에서 불, 보상살이나 절, 탑 등에 상징으로 쓰이는 것으로 이는 태양, 물, 신령한 빛 등을 상징하며 길상과 행운을 나타낸다. 낙죽에서는 각진 모양으로도 표현하지만, 구름문을 응용하여 둥글게 변형하여 복합적으로도 활용한다.
  • - 십장생문: 십장생(十長生)은 10가지 자연 숭배 대상으로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거북, 불로초, 사슴, 학 등 오래도록 살고 죽지 않는다는 자연과 동식물을 가리킨다. 이들은 세속을 초월한 세계에서 불로장생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서민들의 소박한 염원을 담고 있으며, 낙죽과도 조화가 잘 되는 소재이다.
  • - 박쥐문: 길상문(吉祥文)으로 목공예에서는 조각이나 금속장식에 많이 쓰인다. 낙죽으로 제일 많이 활용되는 것은 합죽선의 속살낙이고, 그 외 실패와 버선자 등이 있다.
  • - 점문(點文): 인두를 세워 뾰족한 끝으로 점을 만드는 무늬이다.
  • - 귀갑문(龜甲文): 6각이나 8각으로 밑그림을 그린 후에 낙을 놓는다. [반야심경] 등 글자 가 많이 들어갈 경우에 사용한다.
  • - 연화문(蓮花文): 민화적인 그림에서 단청의 문양에까지 다양하게 쓰이며, 낙죽에서도 응용범위가 넓다.
  • 작업도구와 제작과정
    낙죽 작업에 쓰이는 도구들은 인두류가 중심이다. 낙죽 작업의 핵심 도구인 인두는 낙화용(烙畵用)과 낙죽용(烙竹用)이 있는데, 그 모양이 조금 다르다. 또한 개인에 따라 무게를 달리 하기도 한다. 그 외에 화로와 대나무 교정틀, 조각칼 및 기타 도구들이 사용된다.낙죽작업의 제작은 대나무를 고르고 베어 재료를 준비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하여 무늬를 구상하고 밑그림을 그린 이후 본격적인 낙죽 작업을 하게 된다. 낙죽 작업을 할 때에는 정좌(正坐)하여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두발은 앞쪽에서 모으는데 왼발 바닥에 낙죽할 재료를 얹고 왼손으로 잡는다. 오른손으로는 인두를 잡고 지지는데 이때 재료를 잡은 왼손은 인두의 움직임에 맞추어 적절히 이동시켜 주어야 한다.
  • 붓대롱 만들기. 붓대롱에 소라문, 매화문 낙을 놓는 장면
    붓대롱 만들기.
    붓대롱에 소라문, 매화문 낙을 놓는 장면
  • 실패 만들기. 실패용 죽편에 송학문 낙을 놓는 장면
    실패 만들기.
    실패용 죽편에 송학문 낙을 놓는 장면
  • 필통 만들기. 낙죽한 죽편을 홈에 끼워넣는 장면
    필통 만들기.
    낙죽한 죽편을 홈에 끼워넣는 장면
  • 낙죽 작업을 할 때에는 인두가 얼마나 달구어졌는가에 따라 선의 강약이 다르다. 열이 높을수록 빠른 손놀림이 요구되고, 열이 낮아지면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높은 열에서는 선을 그리고, 낮은 열에서는 질감을 넣어야 한다. 이런 작업은 오랜 숙련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낙을 놓은 후 마무리 작업을 하게 된다. 낙죽은 대나무의 표면을 장식하는 기법이지만, 마무리는 목공예 기법에 사용하는 여러 칼(편도, 환도)과 톱, 끌 등을 활용하여 마무리 작업을 한다. 아무리 낙죽이 잘 되었어도 마무리를 잘 하지 않으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므로, 낙죽을 작품화하려면 목공예 솜씨도 있어야 한다.
    약력
  • 1955년경기도 광주 중부면 출생
  • 1982년전라남도 공예품 경진대회 특선 2회
  • 1983년이동연 선생께 사사
  • 1984년제9회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수상
  • 1987년전라남도 공예품 경진대회 최우수상
  • 1993년전승공예대전 문화재위원장상
  • 2000년중요무형문화재 제31호 낙죽장 기능보유자 인정
  • 2001년뉴욕 롱아일랜드 대학 힐우드 미술관 특별전 <동방의 빛> 참가
  • 2001년~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작품전 출품 및 전수교육 활동
  • 2008년계심헌 공예미술관 개관
  • 2009년프랑스 보르도시 전시 및 시연
  • 2009년신작발표전 ‘텅빈충만에서 빛의세계로’
  • 2010년한국미용박물관 개관2주년 특별기획초대전
  • 갤러리 
    낙죽 작품(1) 
                                             낙죽 작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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