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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김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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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김극천 
 
너를 열고 싶은 곳에서, 너에게로 닿고 싶을 때
아무도 모르는 저 은밀한 해제의 지점에서
쇠 나비 한 마리가 방금 날개를 일으켰다는 일이다
그의 차가운 두 닢이 바스락거리기라도 하듯이
한번은 펼쳐 주어야만, 나는 너에게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너를 한번 열어, 너에게로 간다는 사실은
어딘지, 너 이전의 지점 같기도 한 보이지 않은 곳에서
숨긴 날개의 쇠 나비 한마리가
비로소 활짝 펼쳐 주었다는 일이다
사랑의 경계에는 한사코 쇠나비 한 마리가
접은 날개의 기다림으로 깃들어 있었다는 뜻이다
- ‘경첩’, 정윤천, 시화집 [십만 년의 사랑], 2011년 문학동네
주요작품
먹감나무 이층장
먹감나무 이층장, 김극천, 76×34×108cm
앞면은 먹감나무의 무늬를 좌우대칭으로 배열하여 자연미를 살렸고 뒷면과 옆면은 오동나무, 서랍은 가죽나무, 희선은 버드나무로 제작했다. 장석은 나비와 박쥐 등을 백동으로 만들어 장식했다.
백동장석 흑감 이층장
백동장석 흑감 이층장, 김극천, 72x38x117cm
백동장석 머릿장
백동장석 머릿장, 김극천, 70x40x66cm
통영 백동장석문양 벽걸이
통영 백동장석문양 벽걸이, 김극천, 17x23cm
흑감 팔봉장석 이층장
흑감 팔봉장석 이층장
흑감반닫이
흑감반닫이, 김극천, 93x39x81.5cm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낱말 ‘두석(豆錫)’
‘두석(豆錫)’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낱말 중의 하나이다. 조선시대까지 이어오던 수공업이 기계공업화되면서 몇몇 전통 공예가들에 의해 간신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현대 일상에서 많이 쓰고 있지 않는 낱말이다. 조선시대 기록물들에선 두석에 관한 자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일상 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없다 보니 두석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선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 두석장은 구리와 주석을 합금해 황동(놋쇠) 장식을 만드는 장인이다. 목가구의 결합 부분을 보강하거나 여닫을 수 있게 하는 경첩, 자물쇠 등의 금속제 장식을 장석이라고 한다. 문화재청에서 2000년 3월에 조사한 보고서에 의하면, 장석(裝錫)이란 목공품 같은 생활용품을 제작할 때에 기능의 필요성에 의해 목공예품 몸체에 부착하는 금속재료의 장식을 통틀어 말한다. 장석이란 말은 금·은·동·철·백동 등 여러 금속 재료 가운데 주로 동과 주석의 합금재를 사용하여 제작된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장석의 장인을 예전에는 두석장(豆錫匠)이나 장석장(裝錫匠)이라 불렀다고 하였다.
  • 사실 장석이라는 용어를 문헌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 두석장인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목가구의 금속장식을 장석이라고 말한다.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굳이 장석을 풀이하자면 두석(豆錫)으로 만든 장식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장석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장식물에 그치지 않고 가구의 이음새를 견고하게 하며 여닫이 기능을 원활하게 해 주는 역할도 한다. 때문에 두석장은 미적 감각과 함께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장석은 주로 황동으로 만들지만 보다 장식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백동을 쓰기도 한다. 주석이나 백동을 가열해 녹이고 이것을 망치로 두들겨 0.5mm 두께의 판으로 늘이고 그 면을 반듯하게 다듬는다. 여기에 본을 따라 작두와 정으로 오리고 줄로 다듬고 활비비와 정으로 문양을 새긴 뒤 사기 분말을 묻힌 천으로 문질러 광택을 내 완성한다.
4대째 이어온 통영의 토박이 두석장 김극천 선생
  • 통영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김극천 선생의 집안은 4대째 대대로 두석의 일을 하고 있다. 증조부인 김보익 선생은 대한제국 시대 때 군인이었으나 나라가 망하면서 두석장으로 전업하였으며 통영에 정착하였다. 그 후 할아버지인 김춘국 선생이 가업을 이어서 뛰어난 두석장이 되었으며, 아버지인 김덕용 대에 마침내 그 기능을 인정받아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가 되었다.
  • 김극천 선생의 삶과 기능을 이야기할 때면 선생의 아버지와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집안에서 받은 영향이 크다. 선생이 처음 두석일을 배우기 시작한 시기는 1970년인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당시 선생은 아버지 공방의 잔심부름을 해 주면서 틈틈이 제직 된 장석을 가구에 붙이거나 장석의 광을 내는 일을 도왔다. 그러나 당시에는 장석 만드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장석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선생이 군대를 제대한 후였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는 집안에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방이 ‘충렬장식’이었는데, 한창 운영이 잘 될 때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2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인 김덕용 선생은 전형적인 장인이었다. ‘많은 일을 하기 보다는 한 가지 일을 꾸준하게 하며 빨리 만들지 않고 한 개를 만들어도 야무지고 정확하게 만드는 것’이 김덕용 선생의 신념이었다. 이처럼 모든 작업을 꼼꼼하게 처리하여 통영의 상당수 가구제작소에서 선생의 장석을 달았다. 그러나 김극천 선생이 군 복무를 하고 있는 동안 아버지가 나전 공방을 운영하면서 보증을 서 준 것이 잘못되어 공장도 집도 전부 잃고 급격히 가세가 기울게 되었다. 김극천 선생은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일을 돕게 되었으며, 결국 두 사람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가세를 복구하였다.
  • 김극천 선생은 살면서 통영을 벗어난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선생과 친한 장인들은 주로 통영에 있는 장인들이다. 원래 선생의 공방은 이전부터 아버지가 썼던 공방 겸 살림집이다. 현재는 통영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통영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 모여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작업을 하는 장인은 나전장 송방웅, 염장 조대용, 소목장 김금철 선생 등이 있다. 김극천 선생의 공방에는 벽마다 여러 모양의 장석과 방바닥에는 망치, 줄, 정 등 두석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다양한 연장들이 널려 있다. 2~3천여 종이나 되는 나비, 태극, 박쥐 등의 장석이 있다. 특히 나비장석은 두석장 대대로 손꼽는 통영의 대표적 명물로 알려져 있다. 장인의 숨결이 배어있는 이들 장석들은 가구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지만, 전통가구의 기능과 조형미를 완성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지금은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선생의 아들(김진환)이 대를 이어 5대째 장석일을 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두석장의 장래가 밝지 않지만 아들이 가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감에 두석의 앞날이 밝아지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제작공구
용해 및 합금도구에는 쇳물을 녹이는 흑연 용기인 도가니와 불화덕, 도가니용 집게, 쇳물을 붓는 틀인 거푸집 등이 있다. 재단 도구로는 가위로 자르기 힘든 두꺼운 재료를 자를 때 쓰는 작두, 금 긋기용 공구인 그음쇠, 장석을 재단할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공구인 실톱대 등이 있다. 가공 및 성형도구에는 대표적인 것이 정인데 날정, 공근정, 굴림정, 뻗정, 반달정, 걸림정, 못정 등 사용용도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뉜다. 그 외에 망치, 닦달모루, 굴림통박, 둥근통박, 굴림통, 깎칼, 물림집게, 갈기칼 등이 사용된다.
제작과정
주석 재료는 구리 70%, 아연 30%로 합금을 하고, 백동 장석의 재료는 황동 70%, 니켈 30%로 합금한다. 합금작업이 끝나면 쇠로 만들어진 타주모루에 덩이쇠를 올려놓고 타주망치로 가격하여 단조작업을 거친다. 이후 장석의 본을 판재에 올리고 물림집게로 고정하여 그림쇠로 그린 후 재단한다. 이후 재단된 일감에 무니를 넣는 조이질 과정을 거친 다음, 광택을 내고 완성된 장석들은 반닫이에 못으로 고정한다.
  • 불우리에 도가니 넣기
    1) 불우리에 도가니 넣기
  • 깎칼을 이용한 표면정리
    2) 깎칼을 이용한 표면정리
  • 실톱으로 자르기
    3) 실톱으로 자르기
  • 정으로 박쥐문 조이질하기
    4) 정으로 박쥐문 조이질하기
  • 줄질하기
    5) 줄질하기
  • 반닫이에 장석 부착하기
    6) 반닫이에 장석 부착하기
약력
  • 1951년출생
  • 1982, 84년전승공예대전 입선
  • 1985, 88년전승공예대전 입선
  • 2000년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기능보유자 인정
  • 2009년한산대첩기념제전 작품전
  • 2010년12공방 기획전 전시
  • 2010년인사동 합동 공개행사 ‘천공을 만나다’ 35인 시연
  • 2000년~ 현재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작품전 출품
  • 2012년2012 무형문화재초대전 출품
갤러리
나비문양 장석 
                   나비문양 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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