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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모과
모란
모래무지
모시
모자
목기
목화
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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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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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
민속주
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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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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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랍
백련잎차
백렴
백미
백반
백부자
백조어
백하수오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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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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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골지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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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복어
부들
부자
부채
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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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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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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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살구
삼릉
삼배
삼치
상합
상황버섯
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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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결명
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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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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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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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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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숙주
순채
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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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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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
오곡
오골계
오정주
오죽
오징어
옥돔
옥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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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골
용문석
우무
우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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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어
유기
유자
유자차
유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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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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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주
잉어
자단향
자두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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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설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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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모
전복
전어
전어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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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순 매듭장, 남편 정연수 선생을 통해 배운 매듭
조회 : 3,513  

 
매듭장 최은순
 
"인간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맺고 풀고 잇고 끊는 끈의 관계로 나타낸 것이 한국인의 인간관이다. 이러한 끈의 사상을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호로 나타낸 것이 바로 매듭이라는 수예품이다. 매듭의 형태는 코, 몸, 손의 세 가지 요소로 분절된다. '코'는 옷고름의 코처럼 부드러움과 여유를 나타낸다. 그러나 '몸'은 가닥을 결합시키고 묶음으로써 매듭의 강함을 나타낸다. '손'은 아무리 복잡하게 맺어진 것이라 해도 다시 풀 수 있는 열쇠를 간직하고 있다. 이 세 개의 구조 속에서 매듭은 아름다운 구조를 갖게 되고 인간이 만나 서로 인연을 맺기도 하고 원을 풀기도 하는 운동을 한다. 매듭은 끈의 문화로 상징되는 한국인의 마음을 시각화한 것이다." - 이어령 [한국인의 손, 한국인의 마음]
 
남편 정연수 선생을 통해 배운 매듭
생활 문화 양식이 서구화되면서 매듭 또한 점차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에 국가에서는 1968년 1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을 지정하였고, 광희동에 거주하는 정연수 선생을 기능보유자로 인정하였다. 1974년 정연수 선생이 타계한 2년 후 아내였던 최은순 선생이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최은순 선생은 1917년 서울 아현동에서 출생하여 어려서 부모를 따라 인천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다. 21세 때 서울 신당동에 사는 서른네 살의 매듭장 정연수 선생과 결혼하였다. 시댁은 원래 매듭장들이 많이 사는 광희동에서 4대째 살아왔으나 세습적인 매듭 장인의 집안은 아니었다고 한다. 최은순 선생이 시집올 당시 정연수 선생은 광희동의 옆 동네인 신당동에 살았는데, 신당동에서 매듭 일을 하는 집은 정연수 선생 댁뿐이었다고 한다. 남편으로부터 생업을 위해 매듭을 배우게 된 최은순 선생은 1960년대 말까지는 주로 유소와 술을 많이 제작하였고, 1974년 정연수 선행이 타계한 이후부터는 노리개 종류의 매듭을 주로 하였다.
197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기능 보유자로 인정되어 정연수 선생의 뒤를 이었다. 2009년 2월 노환으로 별세하기까지 전승공예대전, 한중일 삼국 국제매듭전,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작품전 등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여 전시출품하였다. 선생의 전통 매듭 기술은 그의 딸인 정봉섭 선생이 전수받아 2006년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외손녀인 박선경 선생이 대를 이어 계속 전수하고 있다.
밀화삼천주노리개, 최은순, 42cm
밀화삼천주노리개, 최은순, 42cm
밀화삼천주노리개(Three Thousand Amber Pendant)
노리개는 궁중 여인이나 서민층 부녀자들이 각종 의식이나 경사스런 때에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찼던 패식구의 일종이다. 노리개는 신분이나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하여 격식을 차렸다. 노리개의 구조는 띠돈, 매듭, 주체, 유소[술]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주체는 각종 재료에 다양한 문양을 조각하였으며, 장식물이 무엇이냐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라졌다. 이 밀화삼천주노리개는 밀화를 세 개 잇달아 매달아 불교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나 장수를 상징하고 있다. 삼천주노리개는 조선시대에는 왕비만 찰 수 있던 노리개로서, 매듭장 최은순의 솜씨가 잘 발휘되었다.
방장걸이 유소, 최은순, 발 100X180cm, 유소 98cm 
방장걸이 유소, 최은순, 발 100X180cm, 유소 98cm
방장걸이 유소(Tassle for Blind)
방장은 전통 한옥의 방문 위에 쳐 한 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막을 때 사용하던 것이다. 방장걸이는 문으로 출입을 하고자 방장을 걷어 올릴 수 있도록 만드는 고리인데, 그 고리를 늘어뜨린 것이 유소이다. 이 유소는 굵게 짠 끈목을 길게 늘이고, 그 사이에 칠보로 만든 나비와 호응하여 나비매듭을 조형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간결하고 좌우대칭적이며 전체와 부분이 조화를 이루어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매듭, 인간 손의 섬세함을 보여주는 예술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방식의 매듭은 매 가닥을 엮고 맺는 섬세함을 보여주는 예술로서, 기계화로 인한 규격화, 대량화와는 극히 상반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매듭은 실을 염색하고 풀고 짜고, 엮으며 장인의 솜씨로 결실을 맺는 예술이며 끈목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매고 죄는 수법, 또는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형태를 말한다.
매듭이나 끈목의 기원은 여러 유물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구려 고분벽화 중 황해도 안악 3호분의 초상에서 나타난 방장을 묶은 끈과 술, 고려시대 [고려도경]의 자료를 통해 각종 의식에서 사용하였던 물품에 대한 기록들이 그것이다. 특히 고려불화에 나타나는 관, 영락, 목걸이, 허리띠에 있는 술 장식을 통해 그 맥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양식은 조선시대 탱화로 이어졌으며, 그 밖에도 각종 번(幡), 가마장식에 쓰인 유소, 복식에 쓰였던 것이 전해진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매듭을 전문으로 하는 장인을 두었는데 [대전회통] 공정편을 보면 매듭을 맺는 장인을 매집장(每緝匠)이라 기록하고 있으며, 공조(工曹) 경공장(京工匠)에 매듭장 2명, 상의원에 4명, 총 6명을 두어 제작하였다. 또한, 술도 매듭과 마찬가지로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제관(諸官)과 각사(各司)에 장(匠)을 두어 제작하게 하였다고 한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명주실을 꼬고 합사하고, 각색으로 염색해서 끈목을 만드는 다회장과 굵고 가느다란 끈목을 두 가닥으로 늘어 뜨려가며 각종 모양으로 매듭을 맺는 매듭장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매듭장으로 통칭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1950년 경)만 해도 서울 광희동하면 누구나 끈목과 매듭을 연상할 정도로 매듭장, 다회장들이 모여 살았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맥이 끊기다시피 했고 현재는 그조차도 당시의 기억으로만 가늠할 뿐이다.
 
    작업도구 및 제작과정
    매듭을 만드는 과정은 1) 명주실 꼬아 합사하기, 2) 끈목 만들기, 3) 각종 모양으로 맺기, 4) 술 만들기로 나뉘며, 각 단계마다 각기 다른 도구가 필요하다.
    먼저, 명주실을 합사하기 위해 자새(자애), 자구리[얼레], 상사걸이, 비톳이 사용된다.
     
    자새 : 자애라고도 하며, 타래로 된 명주실을 자구리에 옮겨감을 때 명주실 타래를 걸쳐 놓고 쓰는 도구이다.
    자구리 : 나무로 깎아 만든 것으로 명주실을 감아 놓는 도구이다. 얼레라고도 하며, 실을감아 보관할 때 통풍이 잘 된다.
    상사걸이 : 끈목이나 술을 만들기 위해 실을 합사하거나 꼬는데 쓰는 도구이다. 실을 합사 하거나 꼬을 때 비톳을 걸어 놓고 쓴다.
    비톳 : 비톳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실을 합사하거나 꼬을 때 상사거리에 걸쳐 놓고 쓰는 도구이다. 술실을 꼬을 때는 큰 비톳을 쓰며, 합사할 때에는 굵기에 따라서 비톳의 크기를 맞추어 쓴다. 다른 하나는 술을 비빌 때 쓰는 금속 비톳이 있다. 상사걸이 위에서 잘 꼬아진 바탕실을 술길에 맞추어 술틀에 감아 놓은 뒤에 비톳으 로 하나하나 비벼서 다시 꼬게 된다.
    다음, 끈목을 짜기 위해서는 토작과 다회틀이 필요하다.
    토작 : 끈목을 짤 때 실을 감아서 쓰는 실패와 같은 것으로, 끈틀 위에서 아래로 힘있게 늘어져야 손놀림을 할 수 있기에, 나무를 장구 모양으로 깎은 뒤 속에 일정한 무게의 납을 심으로 넣어 만들었다. 굵고 긴 끈을 짤 때에는 토작의 무게도 무겁고 커야 한다. 반대로 가는 끈을 짤 때는 작고 가벼워야 한다.
    자구리 : 나무로 깎아 만든 것으로 명주실을 감아 놓는 도구이다. 얼레라고도 하며, 실을감아 보관할 때 통풍이 잘 된다.
    다회틀 : 다회틀에는 남원틀이나 궁중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남원틀은 두꺼운 나무 판 한가운데에 둥근 원추형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둥근 접시를 얹고 접시 한가운 데에는 바늘대를 꽂은 형태이다. 궁중에서 쓰던 다회틀은 밑받침으로 둥근 항아리를 놓고 그 위에 다회틀 대접을 놓고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술틀, 술판, 금속제 돗바늘, 실을 감는 실패, 술틀 기둥 구멍에 끼우는 사장못 등이 있어야 한다.
    술틀 : 잘 다듬어진 직경 25㎝ 정도의 원형 나무판 가운데에 높이 60㎝ 정도의 나무기둥을 세웠고, 기둥에는 3㎝ 간격으로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에 사장못 2개를 원하는 술 길이에 맞춰 끼워서 쓴다
    술판 : 양 끝에 못을 가지런히 박은 나무판으로 줄의 길이에 따라서 술판의 크기도 대, 중, 소로 나뉜다.
    돗바늘 : 길이 9cm 정도의 금속바늘이다.
    실패 : 심있는 끈틀에서 속심인 면사를 감는 실패와 술을 비비기 위해서 꼬은 바탕실을 감아 쓰는 실패가 있다.
    사장못 : 술틀의 기둥 구멍에 끼우는 못이다.
    작업도구 사진 - 1.실타래, 2.술비비는 틀, 3.얼레
     
          약력
    • 1917년 11월 23일출생
    • 1976년 6월 30일제1회-제13회 전승공예대전 참가
    • 1983~1991년제1회-제9회 전통공예전수 교육회전 참가
    • 1985.1987.1988년한,중,일 삼국 국제매듭전 참가
    • 1989~1990년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전 참가
    • 1976~2008년보유자 작품전 출품
    • 2009년 2월 21일별세
    갤러리 
    박유소 
                             박유소 최은순, 박 35x10 cm, 유소 7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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