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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기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보유자
조회 : 1,604,302,604  

 
중요무형문화재 47호 궁시장 보유자 유영기
 
조선시대 이성계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이성계가 밥상에 붙은 파리를 쫓았으나 그 파리가 도망쳐 궁의 기둥에 붙었다. 이에 활을 들고 파리의 왼쪽 눈을 겨냥하여 쏘았는데 살펴보니 정확히 왼쪽 눈에 화살이 꽂혔다는 일화다. 이렇듯 예로부터 우리는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숨은 명궁은 따로 있다. 바로 궁수가 뛰어난 명궁이 될 수 있도록 호흡을 같이 해 그의 혼까지 살리려 애쓰는 활과 화살을 만드는 궁시의 장인이다.
숨은 명수, 궁시장 보유자 유영기 선생님을 만나보았다
.


궁시장 보유자 유영기 사진활과 화살을 가리키는 궁시는 완성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궁시의 제작 과정에 대해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대나무, 철, 소 힘줄, 싸리나무, 어교, 꿩 털, 복숭아껍질 이렇게 7가지 재료로 화살 한 개를 만들기까지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해요. 화살 한 개를 만드는 데 130번이나 손이 가고 하루 종일 작업에 매달려도 3개 정도 만드는데 그쳐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매년 11월 말부터는 한 달간 전국 각지를 돌며 화살 만들기에 적합한 대나무를 구해요. 그렇게 구한 대나무를 50여 일간 응달에 말리고 모둠별로 선별하는 작업을 거쳐요. 그러고 나서 숯불을 피운 대잡이통에 살대를 넣고 갈색으로 곱게 구운 뒤 졸대로 화살을 곧게 펴서 교정을 해요. 그렇게 교정한 화살의 양 끝단을 조금씩 깎아 부레풀칠 후 젖은 소힘줄을 감아 말리죠. 화살의 아랫부분에는 칼로 속을 파내 얇은 대나무 관을 만든 뒤 상사를 끼워요. 그 다음 화살촉을 끼우기 위해 만들어진 촉은 창오지에 내촉을 말아 끼우고, 촉을 만드는 것은 굵은 철사 양끝을 불에 달구어 망치로 내촉은 둥글고 가늘게 하고 외촉은 네모 형태로 두드려 암쇠틀과 숫쇠에 달군 철사를 집어넣어 틀에 넣고 망치로 치면 유엽전이 되요. 마지막으로 화살깃을 다듬고 부레풀을 칠한 날개를 붙이면 끝납니다. 화살 3개를 붙이는 이유는 화살이 곧바로 나가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사실, 궁시를 만드는데 있어 가장 공들이고 어려운 작업은 재료 선별작업이에요. 이 과정에 많은 시간이 걸려요. 모든 과정에는 이처럼 섬세함과 인내심이 필요해요.

공들여 만든 옷일지라도 몸에 맞지 않는다면 불편해 오래 입지 못하듯 활을 쏘는 이에 맞춘 궁시의 제작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마음에 혼이라는 것이 있다 하죠. 활을 제작할 때도 쏘는 사람의 혼에 맞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사실 어려워요. 겉으로 날개를 만들고 화살촉을 끼는 것은 누구나 다 하지만 그것은 수박 겉핥기나 다름없죠. 진정한 활은 만드는 이의 마음이 담긴 것, 더 나아가 활을 사용하는 이의 마음까지 생각하는 것이에요. 다시 말하면, 만들어진 활이 쏘는 사람의 습관과 조합이 맞는지가 중요해요. 그래서 제작할 때 사수의 성격에 맞추어서 재료를 선정하고 화살을 만들기도 해요. 결국 사람과 활 그리고 화살의 삼합이 맞아야 명궁이 되는 것이고 좋은 화살이 된다고 할 수 있죠.

탄소섬유로 만든 카본화살의 양궁과 나무화살인 국궁의 차이점과 특징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먼저 차이점이라고 하면 카본화살의 양궁은 대부분 화살이 가늘고 가벼워 활을 쏠 때 쳐지고 점잖지 못한 것 같아요. 반면에 국궁은 부피가 있고 살이 푸근해서 그런지 쏘면 안 맞을 듯 느긋하면서도 맞는 그런 점잖은 걸음걸이를 보이죠. 국궁의 특징은 활을 당기는 시위가 처음에는 상당히 세지만 완전히 활시위가 구부러질 때는 힘이 약해져요. 그리고 최종적으로 화살을 쏠 때는 먼저 들어간 힘을 그대로 받아요. 그래서 유연하면서도 멀리 나가는 것 같아요. 반면에 양궁 같은 경우 국궁과 다르게 활시위를 당기면 당길수록 들어가는 힘이 많고 화살의 힘이 세지죠. 사실, 어느 것이 더 좋다 할 수는 없는 게 활은 사람이 이용하는 것이고 활을 쏘는 습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요즘에는 값이 저렴하고 이용하기 편한 양궁을 주로 사용하지만 사실 활을 쏘는 멋으로 치자면 국궁을 따라갈 수 없죠. 산을 밀듯 잠잠히 밀고 춤을 추듯이 당겨 쏘는 아름다운 모습은 국궁이 가진 매력이기도 하죠.

궁시장 보유자 유영기 선생이 만든 나무화살우리나라 최초의 활·화살 전문 박물관인 영집궁시박물관을 개관하셨는데요. 박물관을 개관하게 된 이유와 박물관 관장을 하면서 어떨 때 보람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1989년도에 파주에 궁시박물관을 설립했는데, 요즘 학생들이 TV를 통해서만 활쏘기를 봤을 뿐 실제로 활이 어떻게 생겼고 쏘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직접 접한 적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에요. 설립 이후에는 박물관에 오는 학생들이 활을 직접 만들고 손수 써보고 집에 가져갈 수 있으니까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그렇게 각 단체와 학교를 통해서 체험하러 온 학생들이 지금
까지 수천 명에 달하는데 열의가 있는 학생들의 모습에 많은 보람을 느껴요.

두 권의 책(이하 ‘한국의 죽전’과 ‘우리나라의 궁도’)을 저술하셨는데, 책을 쓰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1977년도에는 활과 화살을 빨리 만들고 팔아야 생계유지가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몇 가지 작업 단계를 제외하고 제작을 했었죠. 이러한 상황은 활과 화살의 변형을 만들어버렸어요. 결국 이것은 전통 궁시를 만드는 작업 과정을 고스란히 전수받아 지켜온 제게 장인으로서 가져야 할 사명감에 위기를 안겨줬어요. 그래서 올바른 활과 화살을 만들기 위해서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썼어요. 또한 구전되는 것보다 글로 기록해야지만 우리의 국궁에 대한 이야기를 후대까지 올바르게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을 쓰게 된 거에요.

궁시 제작 기능을 오랜 세월 이어오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궁시와 같은 수공예 활성화를 위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조선시대만 해도 궁시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만들기만 하고 필요한 재료를 가져다주는 사람은 따로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분업화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해요. 무엇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활을 제작하는 데 있어 겪는 생계의 어려움이죠. 그래서 동인이라고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궁시 기술을 후손들에게 전수하기가 힘들 것 같아 안타까워요. 우리 국궁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관심과 정부의 홍보활동이 많이 필요해요. 끝으로, 수공예 활성화를 위해서는 현대화가 필요해요. 전통도 중요하지만 전통을 현대화시켜서 미적인 감각을 살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수공예의 현대화는 장래에 대한민국이 공예국가로 이름을 날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말미에 ‘우리의 것을 지켜나가는 것은 곧 우리 몫이다’라는 말씀과 함께 선생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선생님은 일생의 절반을 궁시의 제작과 기능 전수에 헌신하고 지금까지도 궁시 기능장으로서 좋은 작품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가업을 이어받아 1996년부터 현재까지 궁시의 명장으로서 전통 궁시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선생님의 믿음과 희망이 모든 이들에게 닿아 우리의 전통적인 것이 어그러짐 없이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영기 선생이 만든 나무화살 사진2
- 취재·정리 : 한국문화재재단 대학생문화유산기자단 ‘제5기 징검다리’
                   양진아 (한국폴리텍대학교 디지털방송학과)
                   이은경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한소영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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