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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웅 장인 김천고려방짜유기 무형문화재9호
조회 : 6,216  

김천고려방짜유기 무형문화재9호 김일웅

경북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된 고() 김일웅 김천징장의 전수자 김형준 명인  

김천은 구한말부터 현재까지 유기생산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6대째 이어지고 있는 300년 전통 무형문화재 9김천고려방짜유기로 방짜유기의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방짜유기의 방짜는 두드려 만든다는 의미인데, 100% 구리와 주석만으로 구리와 주석을 160:45의 비율 배합한 함금이다. 900~1200까지 가열한 용광로에 구리와 주석을 녹여 쇳물을 만든다. 사람 키보다 높이 솟구치는 불길 속에서도 작업은 진중하게 이뤄진다. 쇳물일을 할 때는 작업장 조명을 꺼야 한다. 쇠가 내뿜는 빛을 보지 못하면 합금의 성공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 바데기라는 틀에 쇳물을 부어 둥근 모양의 금속판을 만든다.

 

장인의 감각을 집중해 망치로 금속판을 때리면 제대로 합금이 됐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후 금속판을 겹쳐 두드리거나 가공해 각종 그릇이나 징 등의 악기를 제작한다. 방짜유기는 과거 수라상에 올라가던 그릇으로 많은 귀족들이 사용하기도 했던 고급 유기이다. 현재 장인들은 방짜유기를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 방짜쇠만을 가지고 만들어낸다.

 

이러한 과거 김천의 방짜유기 제작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 김천고려방짜유기는 경북 무형문화재 제9, 김천징장 김일웅 장인의 뒤를 이어 둘째 아들 김형준 명인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공방이다. 또한 김형준 명인은 과거의 경우 방짜유기 제작을 가문만이 가진 비기로 여겼는데, 지금은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기술 전수에 중점을 두고 있다.

 

현재 고려방짜유기는 놋그릇 세트, 예단반상기, 방짜그릇, 방짜유기수저 등의 작품들을 혼수예단, 생활유기 등의 목적으로 제작 및 판매 중이다. 한민족은 예로부터 놋쇠를 좋아했다. 전국 곳곳에서 출토되는 뛰어난 청동문화재가 이를 뒷받침한다. 조선시대가 되자 놋쇠로 만든 유기는 생활용구로 폭넓게 쓰이기 시작한다. 식기를 비롯해 향로, 소반, 대야, 악기 등 다양한 제품들이 유기로 만들어졌다 

 

사구납 유기를 아십니까

방짜유기는 뛰어난 단열성과 미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불편하고 관리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귀하고 비싼 쇠인데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 저변에는 김천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아픈 과거사가 있다.

 

6·25전쟁이 끝났을 즈음 우리나라는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렸다. 유기를 만들 주석과 구리 또한 구하기 어려웠다. 그때 등장한 것이 일명 사구납으로 불리는 불량유기였다. 사구납은 총알이나 포탄의 탄피를 녹여 만든 것으로 방짜유기와 매우 흡사한 광택이 났다. 물자가 부족한 시절의 자구책이었던 사구납 유기는 김천 유기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다.

 

사구납 유기는 단 한 번이라도 사용하면 시커멓게 변색하는 특성이 있다. 당연히 사구납 유기를 구매한 소비자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보부상들 사이에서는 김천의 사구납 유기를 팔면 밥을 해먹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왔다. 김천유기의 평판은 끝없이 추락했다. 1950년대 말까지 사구납으로 만든 불량유기의 생산이 김천 일대에서 성행했다.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김천의 몇몇 유기장인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좋은 쇠만을 쓰려는 장인의 고집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유기제작에 평생을 바쳐온 장인들의 자존심에 생채기가 난 것이 주요했다. 그 중심에는 김일웅 김천징장 등 김천의 유기장인들이 있었다.

 

유기장인들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김천의 유기전은 1960년대를 끝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새마을운동 초기,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농악을 금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 때문에 그나마 잘 팔리던 징의 수요마저 줄었고, 김천의 유기공방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 식기의 등장 역시 유기가 잊히는 데 한몫했다. 30년 동안 유기장인들은 불구(佛具)’ 등의 제기와 징을 제작하며 어려운 삶을 이어왔다. 생활수준이 대폭 개선된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유기의 수요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 자칫 사라질 뻔한 김천의 방짜유기도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  


현재 김천고려방짜유기는 김천 방짜유기의 명맥을 잇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히 방짜유기 제작기술을 가문에 국한시키지 않고 있다. 김 전수조교는 예전에는 방짜유기 제작이 가문만의 비기였지만, 이제는 기술전수에 주력하고 있다. 방짜유기 하면 김천이 떠오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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