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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의 배후에는 인삼이 있었다
15-08-13 14:23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항일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이 관객 900만을 돌파하며 흥행돌품을 일으키고 있는데, 광복 70주년을 맞아 더욱 큰 감동과 교훈으로 다가온다. 영화에 등장하는 약산 김원봉, 의열단, 대한 애국단은 실존하는 인물과 단체이다. 이들은 일본 요인이나 친일파, 밀정 등을 암살하는 임무를 수행했기에 독립을 방해하는 세력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 독립 운동가들을 지원했던 숨겨진 배후가 있었는데 바로 상해의 한인 인삼상인들이었다. 






1920년대 상해의 모습


일제 시기 상해로 이주한 한인들은 인삼 상점을 차리거나 인삼 행상에 나섰다. 중국에서 인기가 높으면서 수입 대체재가 없었기에 인삼 무역과 판매로 한상들은 큰 재력을 쌓을 수 있었다. 또 상점은 독립 운동가들의 주요 거점 연락처로 활용되기도 했다.





안창호 1878-1938


당시 상해에서 고려 인삼을 취급했던 해송양행의 설립자 한진교는 1916년 상해임시정부가 관장한 민족교육기관인 인성학교 설립 비용과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는 김규식 선생의 여비를 댔다. 1920년 안창호 선생이 홍콩, 북경 등지로 미국 의원단을 만나러갈 때 비용을 제공했던 것도 바로 이들이었다. 












윤봉길 1908-1932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흥사단, 의열단, 민족혁명당 계열 단원들은 인삼 행상으로 생계유지와 독립자금을 조달했다. 인삼 행상은 수익이 컸으며 의심받지 않고 이동이 용이해 독립자금 조달과 정보 수집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1932년 상해 훙코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국왕 생일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총사령관등의 일본 요인들을 사망케 한 윤봉길 의사도 한때 인삼 행상을 했었다. 









또 의열단원으로 광주꼬뮨 참가 후 쫓기는 몸이 된 김산을 체포 위기에서 구해주고 말라리아 치료비를 대주었던 이도 홍콩의 인삼 장수 박씨였다고 '님 웨일즈(Nym Wales)'는 저서 <아리랑>에서 밝히고 있다.














고종황제 1852-1919

19세기 말 고종의 최측근으로 삼정 관리를 주도한 이용익의 조카 이도표는 고종의 명을 받아 상해에서 민영익, 이윤재 등과 함께 의병운동을 일으킬 의사들을 규합하려 한다. 당시 이들 앞으로 상해 로청 은행에 100만 환이 저축되어 있었는데, 이 자금은 황실의 1891-1892년 홍삼 수입에서 나온 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장원 삼정과의 문서


독립운동을 활발히 했던 몽양 여윤형도 당시 개성의 유명한 인삼 상인 홍순오로부터 개성인삼 3백근을 받아서 싱가포르에 근당 100달러씩 받고 팔아 상당히 많은 이익을 남기고, 이를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했다. 










한편, 멕시코 반도에서 활약한 인삼 상인들의 독립운동도 전해진다. 황해도 출신 인삼 상인 김익주는 쿠바 등지의 중국인들을 상대로 인삼을 팔아 번 돈과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동포들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벌여 독립운동 자금을 상해임시정부에 송금했다. 








일제 하의 인삼상인들은 홍삼 판매로 올린 막대한 이익을 조국 해방에 아낌없이 바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한 셈이다. 하지만 재력가였던 상해의 인삼 상인들은 일본 경찰의 감시와 중국 공산당의 재산 몰수로 상당수가 말년을 궁핍하게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글  
옥순종 / 서강대 커뮤니케이션전략센터 연구원 (전 한국인삼공사 홍보실장)

참고문헌  
'일제시기 상해 고려인삼 상인들의 활동' (한국독립운동사 연구 제 40집, 김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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