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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전장포새우젓 1.jpg
 
 
한국의 굴뚝, 소통의 의미를 담다
15-07-07 18:51

 먼 옛날 글자를 모르던 시절, 시집간 딸이 ‘가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은데 참새같이 바빠서 못 간다’ 는 편지를 친정어머니에게 보냈다. 굴뚝은 우리에게 과거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이름임에는 틀림없다. 굴뚝은 곧 바로 아궁이를 연상케 하고, 아궁이는 또 구들장과 군불과 소여물 끓이는 과거의 모습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추운 겨울날 바람이 내리 불면 연기가 아궁이로 몰려 나와 눈물이 범벅이 되면서도 소죽과 군불을 피웠다. 연기가 자욱하게 땅바닥에 짙게 깔리고 산사의 조용한 하루가 지나가고 산새들도 보금자리로 찾아가고 저녁 예불의 종소리, 그리고 정적 속의 풍경소리만이 남는 그곳에 굴뚝 역시 잔잔한 연기를 사방으로 실어 보낸다. 마치 자비의 목소리를 실어 보내는 저녁 종소리처럼…. 
 
우리네 선조들은 연기가 하늘로 날아가지 않고 땅바닥을 기어 다닌 듯한 모습에서 날씨를 예견하곤 했다. 저녁 무렵 작은 마을에 낮게 깔리는 회색빛의 밥 짓는 연기를 보고도 마음이 평화로워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부뚜막에 피워진 불꽃은 솥을 데우고 부넘기를 넘어 구들장을 덥히고 연기가 되어 굴뚝으로 나가는 이 과정, 모두가 따뜻한 어머니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살림살이에 다름 아니다. 굴뚝은 구조적으로 보면 온돌의 연장선이자 종착역이다. 난방 기관의 항문이랄까. 아궁이에서 피운 연기와 온기는 구들장을 데우고 연도(연기가 나가는 길)를 거쳐 굴뚝으로 나온다. 그러나 단순히 연기를 빼내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또 처마 밑에 있기 때문에 굴뚝에서 나온 연기는 집 안을 한 바퀴 감싸 돌아나가게 되는데, 이는 집 안팎을 소독하는 효과도 탁월해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온돌이 발달할수록 굴뚝도 발달한다. 온돌 하면 한국 아닌가. 굴뚝도 당연히 한국이 으뜸이다. 때문에 사진으로 굴뚝만 봐도 그 집이 어느 동네인지 알 수 있다. 추운 곳일수록 불길을 잘 빨아들이도록 굴뚝을 높이 세운다. 북쪽 지방일수록 굴뚝이 높고, 남쪽으로 갈수록 굴뚝이 낮아진다.
 
 
 
우리나라에는 경복궁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을 비롯해, 속이 빈 통나무를 이용해 만든 통나무 굴뚝, 밑동이 없는 질항아리를 여러 개 포개어 만든 옹기 굴뚝, 황토를 재료로 만든 와편 굴뚝 등 그 종류와 형태만 해도 다양하다. 와편 굴뚝은 주로 기와편을 벽돌처럼 쌓으면서 황토를 바른 지붕 마감재로 기와가 많이 사용되는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또 사고석담과 어울리는 굴뚝은 절제미가 돋보이는 회색 벽돌 굴뚝이다. 예로부터 벽돌로 만들어진 굴뚝은 식복(食福)이 좋다고 하여 단단한 살림살이를 뜻하기도 한다. 궁궐의 경우 화려한 색보다는 회색 벽돌을 사용하여 세련되게 만들었다. 상류층 이상의 조선시대 주택에는 반드시 남향을 향한 밝은 후원이 있기 마련이다. 후원에는 으레집 본채에서 조금 멀리 물러난 곳에 훤칠한 모양의 굴뚝을 세웠다. 이 벽돌은 서양식의 붉은 벽돌이 아니라 회색 벽돌로, 맵시 있게 쌓기 위해 벽돌의 면과 네 측면을 모두 매끈하게 갈아 사용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굴뚝은 세련되고 화사한 궁궐의 굴뚝도, 암팡진 선비의 굴뚝이 아닌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에서 살랑살랑 솟아나는 감자 굽는 내’가 나는 굴뚝, 음식과 밥내가 묻어 있는 그런 연기가 아닌가 싶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한국의 굴뚝은 단 2종에 불과하다. 보물 제810호 경복궁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과 보물 제811호 경복궁 아미산의 굴뚝이다. 십장생 굴뚝은 아미산의 그것과 비슷한 종류의 무늬를 틀고 있다. 하지만 아미산 굴뚝이 평면이 6각형인 독립 굴뚝인 반면 십장생 굴뚝은 담장에 딸린 장방형 굴뚝으로 서로 그 맛이 사뭇 다르다. 십장생 굴뚝은 지붕면 위에는 10개의 연가(煙家)를 얹어 자경전 건물의 10개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여기로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시설했다. 아미산 굴뚝의 경우, 기능은 연기를 배출하는 것이지만, 그 형태나 위치가 정원과 어우러지면서 뛰어난 조형미를 이루고 있다. 특히 아미산의 굴뚝은 왕비가 사는 곳인 교태전에 둥지를 틀고 소나무, 매화, 불로초, 학, 박쥐 같은 것을 무늬로 넣었다. 쌍계사 국사암 인법당 뒤뜰의 굴뚝은 5층 높이로 쌓아 올린 기왓장과 진흙의 황금분할은 뭇사람을  홀리는 꽃뱀 같고, 날씬한 제비 같지 않은가. 마곡사 굴뚝은 수키와들이 아랫부분을 수십 겹으로 꽁꽁 받쳐주고 있다. 암키와들도 흙과 서로 섞인채 호리호리한 맵시를 뽐낸다. 강원도 고성군 왕곡마을(중요민속자료 제235호)은 다양한 굴뚝을 만날 수 있어 굴뚝마을로 불리고 있다.
 
  
여러 개의 옹기(항아리)를 이어 연통 노릇을 하게 만든 옹기 굴뚝이 더욱 멋스럽다. 평범한 사대부집이나 민가의 질박한 굴뚝들이 더욱더 정감이 가는 까닭이다. 키 작은 흙기둥에 기와 몇장 턱턱 얹은 품새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언뜻 꼬마 병정처럼 귀여우면서도 저렇게 연기를 내는 중요한 기능을 해내는 모습은 마치 장군처럼 의젓하지 않은가. 그런데 하필이면 왜 굴뚝 위에 항아리를 올렸을까? 왕곡마을의 굴뚝은 담장에 붙여서 조성하기 때문에 굴뚝 위가 상당히 넓은 편이다. 겨울에 부는 바람이 워낙 강해 지탱할 것이 없는 굴뚝은 넘어가기 일쑤다. 때문에 기와와 돌을 이용해 조성한 담장에 굴뚝을 놓고, 그 위에 빗물받이 항아리를 올려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주술적 사고일 수도 있으리라. 낙안읍성 동헌 뒤뜰의 굴뚝과 연도(煙道)는 후원의 휘어진 소나무와 담장이 조화로운 풍경에 수채화빛 물감을 바른다. 회덕 동춘당고택 사랑채 뒤꼍에 있는 태극 문양과 괘를 넣은 굴뚝은 꽤나 인상적이다. 넓적돌과 백회로 굴뚝을 쌓아 올리다 살짝 문양을 만들었으리라. 이 굴뚝은 서로 편 가르기가 아닌, 상생과 조화를 추구하려는 선비정신 같아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값진 교훈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굴뚝은 고향을 그리는 마음과 함께 천년만년을 이어 나갈 한국 문화의 상징 문패로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출처: 한국문화재재단홈페이지  글˚이종근 (새전북신문 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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