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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삶을 사는 자, 지식인이 아닌 지혜로운 사람으로.... 환상을 벗어 던지고 자유의 나라로... 마음의 최고 미덕은 겸손과 감사
20-06-03 15:00

■ 참된 삶을 사는 자

◈ 지식인이 아닌 지혜로운 사람으로....
사람이 안다는 것은 각자 자기의 입장에서 판단한 결과이지 결코 전체를 파악한 것은 아니다. 전체를 알지 못하고 일부분만 아는 것으로서는 결코 안 것이 아니다. 사람도 우주의 일부분이므로 우주 전체를 파악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생명도 우주적인 근원과 같은 것이므로 그 근원을 인간의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다.
지식은 너무나도 좁고 얕아서 전체를 보는 눈을 가리어 버린다. 지식은 전체를 수용할 수 있는 넓이도 없을 뿐 아니라, 인류라는 공동체를 담을 그릇도 못 되고, 더군다나 지구의 무게를 실을 수 있는 수레는 더욱 못 된다.


인간의 지식은 고통의 근원이다. 한번 아름다움을 알게 된 인간은 추한 것을 혐오하게 되어, 원하는 아름다움은 점점 더 희귀해지고 혐오하는 추한 것은 점점 더 늘어난다. 선을 추구하면 할수록 선은 점점 위축되어 가고 원치 않는 악은 자꾸 늘어 간다. 그것이 모든 불행의 화근이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만을 아름답게 여기면 그것이 곧 추한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요, 선한 것만을 선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곧 악을 만들어내는 일이다."(도덕경 제 2장)


맛을 알기 때문에 맛이 없는 것을 괴로워한다. 사실 맛이 없는 것이 진정한 맛이다. 공기에 맛이 있는가? 물에 무슨 맛이 있다면 어쩌겠는가?
"맛 없는 것이 참다운 맛이다."(도덕경 제 63장)
좋은 맛을 알게 된 인간은 점점 더 편식하게 되고 계속 각종 요리를 연구해 내는 데 혈안이 되고 있지만 그것은 곧 과식의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인간의 입맛을 상실하게 만들고 불건강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쾌적한 문화 주택을 알기 때문에 오막살이의 생활은 견딜 수 없는 불행이 되고 말았다. 맛을 내는 요리나 문화 주택이 없었던 옛날엔 이러한 고통이 인간을 괴롭힌 일이 없었다.


이제 문명의 중독자가 된 인간은 조금의 더위도 추위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약체가 되었다. 어린아기들은 맛을 구별하지 않고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무엇을 먹어도 맛있다. 분별심으로 사물을 구별하지 않고 아무 것이나 신기해하고 친근감을 가지고 만지려 한다. 그러나 자라면서 어른들이 그들을 문명화시킴으로써 그들 안에 있는 순수하고도 위대한 삶의 능력을 시들게 만들어 간다.
노자는 지식의 사용처는 진리(도, 생명, 신)를 행하는 데 있고, 비진리(이기심, 소유, 욕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 있음을 타이르고 있다.
"내게 아는 것(지식)이 있다면 오직 큰길(생명, 자연, 신)을 걷는 것뿐이다(신과의 합일). 그리고 그 지식은 큰길에서 벗어나 사잇길로 빠질까 두려워하는 데 사용할 뿐이다.."(도덕경 제 53장)


◈ 환상을 벗어 던지고 자유의 나라로...
환상을 좇는 꿈에서 깨어난 사람은 어떠한 환경이나 처지에서든 풍요로움을 누리고 살 수 있다.  바다에 사는 고기라고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우물 속에 사는 고기라도 조금도 아쉬움이 없는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소용이 닿지 않는 것이 없건만, 인간만이 자신의 지식에 의해 좋고 나쁨을 분별하고는, 수만 가지 중의 불과 몇 가지만을 좋다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가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산다. 이러한 독선이 편견을 낳고 투쟁과 대립을 불러오는 시원이 되며, 결국은 자신과 우리 모두를 황폐화 시켜나가는 독소가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또 얼마나 빈곤하고 가련한 삶인가?
이는 곧 대자연의 풍요로움을 모르기에 이미 '죽은 자'의 삶일 뿐이다.


◈ 마음의 최고 미덕은 겸손과 감사
우리의 운명과 건강을 좌우하는 근본은 마음에 있다. 마음은 육안으로 볼 수 없으나 부단한 자기 반성과 노력으로 맑게 승화시켜 나갈 수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불경의 경구에서 타이르고 있듯이 모든 원인은 마음이 짓고 결과는 육체에 나타나니 우연은 없다. 모든 것은 필연이다.
한 순간에 상념을 일으키면 삼천대천 세계 어디라도 갈 수 있다. 이 생각들이 마음밭에 뿌리는 씨가 된다. 잡초 씨를 뿌리면 잡초가 돋아나고 연꽃 씨를 뿌리면 연꽃이 핀다. 뿌린 씨는 싹트게 마련이다. 뿌린 씨의 열매는 뿌린 자가 거두어야 한다. 인과의 법칙이 그것이다.


그래서 원인이 없는 질병은 없다. 중풍, 당뇨, 암, 류머티스 등의 병마도 그 원인을 찾아보면 마음에 있다. 중풍에 걸리기 쉬운 타입의 사람은 자기를 늘 우위에 놓는 특권의식이 강하다. 이 특권의식이 통하지 않을 때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다. 즉 화를 낸다. 그 화는 밖으로 표출될 때도 있고 마음속에 머물러 그대로 입력될 경우도 많은데, 이는 둘 다 독이 된다.
우리 주변에는 평소에 호인으로 소문난 사람들이 중풍이나 암에 희생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나 호인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큼 대인관계가 좋다고 해서 그 사람의 내면생활, 즉 상념의 세계가 원만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자식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하지만, 부모가 그것을 강요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것이 마음의 본질이요, 마음은 어디까지나 자유며, 그 누구의 간섭도 허락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자율에 맡겨진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부모에게 순종하고 안 하고는 어디까지나 그 자식이 선택할 자율적 자유의 문제다. 부모로서는 자식을 보호, 선도하는 좋은 이해자가 되어야 하는 도리가 있다. 부모가 자식의 불효를 상대로 버럭 화를 내고 마음에 파도를 일으키는 것과, 자식의 불효를 꾸짖어 깨우치게 하고, 효도로 인도하려는 사랑의 말과 행동과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화를 내는 것은 이기적인 자기 중심의 감정이요, 꾸짖는 것은 이타적인 사랑의 행동이다.
이렇듯 마음은 그 주인이 핸들을 꺾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싹 틔우고 키워온 특권의식, 우월감, 자기과시의 마음들이 질병을 유발하는 위험인자로 작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이러한 이기적인 마음들이 충족되지 못하였을 때 마음의 행로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달렸다. 우월감은 자기가 위에 있고 상대가 밑에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형평의 원리, 조화의 진리에서 크게 벗어난다. 그래서 특권의식, 우월감, 자기 과시욕 등은 인류의 스승들이 친절하게 일러주고 간 '중도'라는 안정과 평형의 상태로부터 이탈된 위험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인간은 원래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자연환경, 가정, 대인관계, 교통, 통신, 상호 의존과 조화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명이 가능하다. 남보다 내가 우위에 있다는 생각에서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고 미련한 존재라는 것으로, 늘 신세지고 은혜를 입고 있다는 겸손과 감사의 의식구조로의 전환이 자신을 더욱 크고 넉넉한 존재로 성장시키는 자양이 될 것이다.
예수도 부처도 마음의 최고 미덕은 겸손과 감사라고 말했다. 마음이 겸손과 감사로 충만할 때 그의 영혼는 신의 빛으로 채워질 수 있고, 그 광채는 모든 질병의 그림자를 추방하는 기적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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