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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딛고 다시 태어난 사찰, 양양 낙산사

어느 덧 여름의 시작, 6월이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더 일찍 찾아온 것만 같은 초여름에 거리 곳곳의 사람들이 겉옷을 하나 둘 씩 벗고, 빙수를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께 시원하게 다녀오시기 좋은 사찰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풍광, 양양 낙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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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십경의 낙산사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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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십경의 낙산사 ⓒ문화재청                                    
 
 관음성지라 불리어지는 낙산사는 1340여 년 전, 관음보살의 진실을 친견하러 온 의상대가 창건한 이래 전국의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국내 최고의 기도발원처입니다. 금강산, 설악산과 함께 관동 3대 명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오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낙산사는 671년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하였습니다. 관음보살이 설법을 펼치며 항상 머무는 곳을 이루는 보타낙가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역대로 지위와 신분을 떠나 관음진신을 친견하려는 참배객들의 간절한 발원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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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 1723호 낙산사 사리장엄구 ⓒ문화재청


 낙산사 창건과 관련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기 위하여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바다에 투신하려 했습니다. 이 때 바닷가 굴 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와 수정염주를 건네주면서, "나의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그곳이 바로 원통보전의 자리라고 합니다.

 이런 낙산사에게도 시련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2005년 고성과 양양 지역을 휩쓴 대화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산불은 2005년 4월 4일 오후 11시 50분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사교리 일대 야산에서 발생했습니다. 5일에는 낙산사가 소실되었고, 6일 새벽 진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산불이 설악산 입구까지 확산되자 경찰 2천 여 명을 동원하고 물대포를 투입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쉽게 진화되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동해안 지역의 건조주의보와 양강지풍의 강풍이였습니다. 헬기 65대와 인력 21181명이 투입되었지만, 피해액은 394억 원에 달했고, 복구 비용에도 260억 원이 사용되었습니다. 낙산사에 있는 많은 성보문화재들과 원통보전, 무설전 등 같이 참배객들의 기원을 담고 있는 장소들이 불길 속에 타오르는 것에 많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낙산사의 가장 높은 곳에서 동해 바다를 바라보는 해수관음상은 불길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켜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달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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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이 난 낙산사의 모습  ⓒ연합뉴스
 


 너무도 큰 화재를 겪었기에 낙산사를 방문하기 전 아직 화재의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제 생각과는 너무도 다르게, 검게 그을린 소나무 대신, 푸른 생명들이 새록새록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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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 흥예문 ⓒ곽소희


 낙산사의 입구는 흥예문으로 시작됩니다. 낙산사 흥예문은 1467년에 세조가 낙산사에 행차하여 절 입구에 세운 무지개 모양의 돌문입니다. 이 문은 2층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12개의 장대석을 2열로 쌓았는데, 당시 강원도는 26개의 고을이 있었을 때 세조의 뜻에 따라 각 고을의 수령이 석재를 하나씩 내어 26개의 화강석으로 흥예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흥예문은 낙산사 산불로 소실되었다가 2007년에 복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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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동종(복제) ⓒ곽소희


 흥예문을 지나 꽃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 보면 낙산사의 동종이 있습니다. 낙산사 동종은 낙산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세조를 위하여 그의 아들인 예조의 명으로 주성한 종입니다. 1469년에 만들어졌으며, 높이 158cm, 입지름 98cm로 보물 제479호였으나 현재는 낙산사 산불로 동종이 소실되어 해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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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칠층석탑 ⓒ곽소희

 낙산사의 원통보전 앞에는 칠층석탑이 있습니다. 이 석탑은 보물 제 499호로, 높이 6.2m입니다. 부분적인 손상은 있으나 상륜부까지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어 조선시대 불탑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습니다. 이 탑은 노반 위의 청동제 상륜부가 원나라 라마탑을 연상시키고 있어서 매우 주목됩니다. 또한 하대석 위쪽에 복련을 장식한 점이나 각층 탑신 아래에 괴임돌을 받친 점 등은 인근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신복사지 삼층석탑이나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의 탑신부와 비교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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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해수관음상 ⓒ곽소희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보면 탁트인 정상에 거대한 해수관음상이 보입니다. 
낙산사 성보 가운데 일반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일 텐데요, 낙산사 가장 정상에서 동해안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은 많은 참배객들의 염원을 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굳이 신자가 아니더라도 동해에 왔다가 낙산사를 찾는 여행객들이면 빠짐없이 들러 참배하는 것이 하나의 정해진 코스가 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해수관음상은 1972년 처음 착공되어 5년 만인 1977116일 점안했습니다. 크기는 높이 16m, 둘레 3,3m, 최대 너비 6m이며, 대좌의 앞부분은 쌍륭상 양 옆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했습니다. 관음상은 대좌 위의 활짝 핀 연꽃 위에 서있는데, 왼손으로 감로수병을 받쳐 들고 오른손은 가슴께에서 들어 수인을 짓고 있습니다. 이 해수관음상은 당시 주지 원철스님이 우리나라에서 양질의 화강암 산지로 손꼽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약 700여 톤을 운반해와 300여 톤을 깎아 내고 조성한 것입니다. 해수관음상 앞에는 기도처인 관음전이 있습니다. 해수관음상 둘레에 조성된 108 법률석은 2005년 대형 산불 이후 불법이 더욱 번창하여 중생의 번뇌를 깨달음으로 성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조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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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의상대 ⓒ문화재청


 낙산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어느 곳에서나 멋있었지만, 저는 특히 의상대에서 바라본 동해바다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의상대는 의상스님이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 때 이곳에 이르러 산세를 살핀 곳이며, 의상스님의 좌선 수행처라고 전해집니다.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해안 억던에 있는 정자로, 예로부터 주위경관이 아름다워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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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홍련암 ⓒ문화재청


 의상대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내려오다보면 중턱에 홍련암이 있습니다. 
홍련암에서 파도 치는 동해안 풍경도 정말 아름다운데요, 홍련암은 676년 한국 화엄종의개조인 의상이 창건하였다고 하는 법당으로 관음굴이라고도 합니다. 
그 유래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의상이 입산을 하는 도중에 돌다리 위에서 색깔이 파란 이상한 새를 보고 이를 쫕아가자 새는 석굴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의상은 더욱 이상하게 여기고 석굴 앞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 위에 나체로 정좌하여 지성으로 기도를 드리자, 바다 속에서 홍련(붉은 연꽃)이 솟아오르고 그 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났다고합니다. 

 아픔을 딛고 다시 태어난 낙산사는, 산불의 흔적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고 아름다운 풍경과 성보문화재를 안고 있었습니다. 산불로 인해 낙산사 동종과 같은 문화재들이 소실된 점은 아쉬웠지만, 많은 참배객들의 염원덕에 그 피해를 잘 견디고 극복해내어 지금의 아름다운 낙산사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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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 안내도 ⓒ낙산사 홈페이지 


 여러분들도 이번 여름, 시원하고 아름다운 동해안의 풍경을 한 껏 담은 낙산사로 사찰 나들이 어떠신가요? 
현재 낙산사에서는 템플스테이도 운영 중 이라고 하니 템플스테이 예약 (http://naksansa.templestay.com) 하고 다녀오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제7기 문화재청 대학생기자단 곽소희 기자 (sohee4897@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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