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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의기적.jpg
 
 
강원도 정선에서 몸소 느끼는 아리랑 여행기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죽이 임의 맛만 같다면
올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나.
모춘 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정선읍네 물레방아는 사시장철 물을 안고 뱅글뱅글 도는데
우리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을 왜 모르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정선아리랑 中-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한민족의 혼이자 소중한 유산인 아리랑이 지난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아리랑은 각 지역의 아리랑을 모두 포함하지만, 그 중 우리에게 익숙한 정선아리랑이 세대를 거쳐 어떻게 재창조되고 이어졌는지 궁금했다. 보이지 않는 소리일 뿐이지만, 우리 대학생기자 셋은 그 아름다운 소리를 몸소 느껴보고자 정선으로 아리랑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정선오일장 가는길 Ⓒ임남훈, 조은비
 
1971년 강원도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정선아리랑은 경남 밀양, 전남 진도와 함께 3대 아리랑으로 꼽힌다. ‘구구절절 산 첩첩 물 첩첩’이라는 강원도 정선의 대표적인 소문대로 그곳은 아리랑만큼이나 산세가 아름다웠다. 정선아리랑 가사 3천여 수에는 그처럼 첩첩이 빼곡한 산자락, 산과 산 사이로 꺾이고 휘어 흐르는 강물, 지형적 고립성, 산골 생활의 고단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지 않는 삶에 대한 낙천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산간 지역인 정선의 자연과 정서를 쏙 빼닮았으며, 단조롭고 유장하기도 하고, 가사는 구슬프고 애절하다.
 
 
▲정선오일장 입구 Ⓒ임남훈, 조은비
 
▲정선의 다양한 명물음식. 특히 곤드레밥과 콧등치기는 맛이 일품이다 Ⓒ임남훈, 조은비
 
그렇게 아리랑에 대해 알아가며 우리 일행은 정선에 도착했다. 그날은 마침 정선오일장이 열리는 날이었기에 장터로 이동해 정선의 명물음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정선오일장은 매월 2. 7. 12. 17. 22. 27일에 열리는데, 추운겨울에도 관광객과 사람들로 북적였다. 점심시간 무렵이어서인지 장터 안에 있는 먹자골목이 바빠졌다. 곤드레밥, 콧등치기국수, 메밀전병, 수수부꾸미 등 정선향토 음식들이 손님들을 반긴다.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아 다 먹어보지 못할 것 같았지만, 먹성 좋은 우리는 음식을 종류별로 시켜 남김없이 전부 먹었다.
 
 
정선사람들의 인심이 넘치는 정선오일장
 
장터마다 찾아다니는 ‘장돌뱅이’들의 떠들썩한 축제로서의 장날. 다 팔고 난 빈 대야와 약간의 돈뭉치. 막걸리 한잔에 얼큰히 오른 미소. 어디선가 들려오는 ‘정선 아리랑’이 어우러진 정선오일장은 5일마다 산 좋고 물 좋은 백두대간 위에서 펼쳐진다. 정선을 대표하는 먹을거리 곤드레밥은 척박하고 곤궁했던 정선아리랑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곤드레는 양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죽에 넣어 먹던 구황식물이었다. 다른 나물이 죽으로 만들었을 때 풀어져 흐물흐물해지는데 질긴 곤드레는 씹히는 맛이 있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지금은 세월이 지나 곤드레가 인기몰이 중이다. 뿐만 아니라, 정선만의 특유한 먹을거리, 메밀, 수수, 콩, 잡곡, 기름, 황기, 당귀, 약재 등으로 장터는 넘쳐난다. 정선 장터는 도시생활에 익숙했던 우리 대학생기자들에게 어머니 품속처럼 편안한 마음을 주는 곳이었다. 이외에도 정선오일장은 도시와는 다른 느낌의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다. 상인 분들 중에는 장날 번 돈으로 손자들 학용품 사주고 용돈 주는 게 유일한 재미라고 하시는 분, 돈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 구경하러 나오신 분 등 다양하다. 사람구경하기 힘든 게 요즘의 시골이니 할머니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정선장터에는 안파는 것이 없다 Ⓒ임남훈, 조은비
 
식사를 하고 장터 문화마당에 가보면 또 다른 볼거리가 기다린다. 관광객 중에는 이곳 문화마당에서 하는 정선아라리 공연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는 이들이 있을 정도인데, 겨울에는 공연을 하지 않아 아쉽게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만큼 장터에서는 아리랑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심지어 음식점 중에는 ‘아리랑’이라는 이름을 지닌 음식점도 있다. 4월부터 겨울 전까지 들리는 정선아라리 소리는 한 사람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몇 사람이 가사를 먹이고 받는다.
 
앞 남산 딱따구리는 생구녕도 뚫는데
우리 집의 저 멍텅구리는 뚫어진 구녕도 못 뚫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장터에서 100m정도 걷다보면 볼 수 있는 정선읍사무소에 있는 아리랑 동상. 그 앞에서 아리랑 동상을 따라 해보기도 했다. 우리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을 왜 모르나. Ⓒ임남훈
 
 
정선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병방치
 
 
태산준령 험한 고개 칡넝쿨 얼크러진 가시덤불 헤치고/ 시냇물 굽이치는 골짜기 휘돌아서 불원천리 허덕지덕/ 허위단심 그대를 찾어왔건만 보고도 본체만체 돈단무심(頓斷無心)
 
 
▲병방치 스카이워크의 전망. 바닥은 유리로 돼있어 허공을 걷는 기분이고, 눈앞에는 정선의 절경과 한반도 지형이 펼쳐진다. Ⓒ임남훈, 조은비
 
정선아리랑의 한 구절이다. 높은 산이 하도 많아 하늘이 고작 세 뼘이라는 정선의 험난한 지형이 애달픈 노랫말에도 잘 녹아 있다. 해발 1000m 이상의 산만 20개가 넘는다는 정선은 내륙의 섬, 그곳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정선의 산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정선읍 병방치 전망대를 방문했다. 전망대에 오르면 한반도 모양의 밤섬 둘레를 동강 물줄기가 180도로 안고 흐르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절경을 만날 수 있다. U자형으로 절벽위에 돌출된 구조물 바닥에 강화유리를 깔아놓은 병방치 스카이워크에 서면 마치 하늘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다. 누군가에게는 답답했던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누군가에게는 멀쩡한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오금이 저리는 기분을 줄 수도 있는 곳이다. 그곳의 진짜 아름다움은 낭떠러지를 유리 바닥 아래에 두고 쳐다보는 병방치의 절벽이다. 그곳에서 느끼는 정선과 동강의 절경은 정선에서 왜 아리랑이 생길 수 있었는지 알게 해준다.
 
 
아라리촌에서 느끼는 아리랑의 향수
 
▲아라리촌의 볼거리, 즐길거리, 놀거리. 양반을 직접 풍자해보는 것도 재밌다.
Ⓒ임남훈, 조은비
 
정선의 옛 주거문화를 재현한 정선읍의 아라리촌은 아리랑의 향토적 배경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아라리촌에는 옛 양반이 살았던 전통 기와집과 참나무 굴피로 지붕을 덮은 굴피집, 널판으로 지붕을 덮은 너와집, 얇은 판석으로 지은 돌집, 귀틀집 등 전통가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주막, 서낭당이 있고 물레방아 연자방아 통방아 등도 설치돼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가 당시의 삶을 보는 듯하다.
 
▲아라리촌의 전통가옥을 보며 선조들의 지혜와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임남훈, 조은비
 
그곳에서는 정선의 향기와 정서를 느끼며 아리랑이 있던 시대의 향수를 느껴볼 수 있다. 또한 구석구석 춥고 눈이 많은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가 감탄스럽다. 뿐만 아니라 근처에는 양반을 풍자하는 동상이 여기저기 세워져있어 재미삼아 그 동상들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사진을 찍는 것도 재밌다.
 
 
봄에서 가을까지는 나룻배로, 겨울에는 섶다리로 아우라지를 건너다
 
다음으로 정선아리랑 발상지를 찾아보았다. 구비 전승되는 민요의 특성상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고려 멸망 후 조선의 신하 되기를 거부하고 정선군 남면 낙동리 거칠현동에 들어와 살다 죽은 고려 유신 7명에게서 기원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이 망국의 한을 읊은 노래가 바로 정선아리랑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그 유래가 이어지는 마지막 목적지는 아우라지다. 두 개의 물줄기가 한데 어우러진다고 해서 아우라지(합수목)라고 이름 붙여졌고,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가 확정되면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아우라지 강기슭에는 숨겨진 정선아리랑전수관도 있다. 아우라지를 출발해 뗏목에 목재를 싣고 가던 조양강과 동강은 황홀한 풍경의 연속이다. 그곳은 정선아리랑에 숨겨진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의 무대이기도 하다.
 
▲아우라지의 아름다운 모습. 곳곳에 아리랑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임남훈, 조은비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 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아우라지를 사이에 두고 살던 처녀 총각이 싸리골로 동백을 따러 가기로 약속했지만 간밤의 폭우로 강물이 불어 건널 수 없게 되자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한 것이 아리랑이 됐다고 한다. 이처럼 아우라지에 얽힌 처녀 총각의 애절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강변에 정자(여송정)가 만들어졌고 임을 애절하게 기다리는 처녀상도 세워졌다.
 
아리랑에는 어린 신랑에게 시집온 처녀의 신세 한탄부터 시집살이의 고단함, 늙은 남편에 대한 원망 등 다양한 가사가 있는데, 그 중 애정편의 무대가 바로 여량의 아우라지다. 봄에서 가을까지는 아우라지에는 나룻배가 운영된다. 정선군이 관광객을 위해 무료로 운영하는 나룻배를 타면 뱃사공이 들려주는 옛 떼꾼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대신에 겨울에는 섶다리가 놓인다. 섶다리는 나무와 솔가지로 만든 임시 다리로 섶은 잔가지를 말한다. 아우라지 섶다리를 건널 수 있는 기회는 올겨울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근에 조성 중인 출렁다리가 완공되면 앞으로는 섶다리를 설치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유장하고 애절한 정선아리랑
 
아리랑을 찾아가는 정선여행은 정선오일장, 정선역, 거칠현동, 아우라지 처녀상, 정선아리랑전수관, 아리랑극 공연장, 아라리촌, 병방치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그 향을 느낄 수 있다. 강원도 정선의 저녁이 더디게 다가왔다. 봄을 맞이하는 요즘엔 더욱 그렇다. 솟구치고 험하기로 유명한 산세로 조양산과 비봉산에 빨래 줄을 걸어도 된다는 정선의 하늘이 어두워졌다.
 
산과 산을 이어 빨래 줄을 걸 만하고 해가 하늘 중천에 있을 때만 밝은 동네
 
▲정선에서 아리랑을 몸으로 느끼고 돌아온 임남훈, 임현채, 조은비 기자.
 
 
위와 같은 정선아리랑 가사처럼 애잔한 저녁을 맞는 정선은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갔다. 하루 동안의 여행이었지만 그곳에서 만나지 못했던 향수를 느낄 수 있었고, 장터를 볼 수도 있었고, 시골 사람들의 구수한 세상살이가 담긴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막걸리 한 사발에 묵은 감정을 털어내기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고, 할머니의 웃는 얼굴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느낀 정선의 지금 모습들 역시 아리랑이다.
 
 
사진 /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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