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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의기적.jpg
 
 
옛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도심 속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옛동네 소개!

  
12월은 한 해를 다시 생각 해보는 때이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응답하라 1988” 드라마 등 80년대의 추억을 다시 한번 떠오를 수 있기 때문에 과거를 회상하며 빠져들 수 있는데요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1988년을 배경으로 만들어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응답하라1988”는 따듯한 가족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드라마입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그 시대의 젊은이들의 최고의 인기 제품이었던 마이마이 카세트, 이제는 추억 속의 가전제품이 된 화로,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전화번호부 책자와 현대의 포니차가 어렵지만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소재로 등장하기도 하죠.
  
 
포니는 1980년도 중산층에게는 꿈만 같은 자동차였는데요.
극 중 소위 흙 수저라 불리는 가난한 가정이었지만 복권에 당첨되어 은수저가 된 그들은 중산층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포니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응답하라1988”드라마를 보면 ! 양은도시락도 있었지? 하교 길에 가방 속 양은도시락 안에 넣어놓은 수저가 굴러다니는 게 엄청 시끄러웠는데”, “ 나도 아침에 저런 양은 냄비에 물 받아서 세수 했는데”, “저렇게 생긴 커튼 누구 집에 있었는데그땐 그랬지라는 추억이 누구나 떠올라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요.
 
지금이야 경제적 능력에 따라 생활수준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그 시절에는 잘살건 못살건 대부분 사용하는 제품이나, 살고 있는 동네가 별 차이 없이 살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엄마가 절대 먹지 말라고 하던 불량식품도 학교 앞에 있는 문방구에서 친구들과 나눠먹던 추억이 있는데요.
그렇게 먹는 불량식품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 최고는 달고나인 것 같은데요.
집에서 국자에 설탕을 부어 달고나를 만들겠다고 하다가 국자를 숯 검댕이로 만들어서 엄마에게 혼나기도 한 기억과 
국민학생 시절 학교 앞에서 달고나를 팔던 아주머니가 설탕을 녹여 만드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가끔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으로 달고나를 사서 바늘에 열심히 침 발라가며 새겨져 있는 모양대로 잘라 달고나 하나를 더 받기 위해 노력했던 그때가 그리워만 지네요.
  
   
 
   
지금은 오고 가는 사람 없는 텅텅 빈 골목이지만 그 시절에는 어린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골목길이였는데요.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신나게 놀면서 웃고 떠들고, 부모님들은 그 아이가 누구네 집 아이인지를 떠나서 내 자식처럼 생각하며 먹이고 키웠던 가슴 따듯한 정이 넘쳐나기도 했습니다.
 
지금 다시 돌이켜 보면 그 시대를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아름다운 추억이기도 하죠.
  
   
 
   
그 시절에는 헌책방도 참 많아서 부모님에게 책값을 받아 청계천이나 다른 곳에 있는 헌책방에서 중고 책을 사고 남는 돈은 다 내 용돈으로 챙기기도 했는데 말이죠.
  
   
 
   
하굣길에 친구들과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뻥이오!”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요.
  
귀 막으세요하는 소리와 함께 하고 피어 오르는 하얀 연기.
그 소리에 깜짝 놀라게 되고, 귀는 좀 아프지만 공짜로 주는 튀밥의 맛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인천 부평구 십정동에 있는 열우물마을골목길이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골목길의 실제 배경이 되었는데요.
어디가 실제 사람이 사는 동네이고, 어디가 드라마 촬영장일까요?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허구일까요?
 
이 곳은 아직도 6~70년대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낡고 허름한 동네만 볼 수도 있지만, 예전의 향수를 간직한 이 곳은 나쁜 녀석들”, “악의 연대기”, “가면과 배우 김수현 주연의 달동네 바보 백수로 위장한 최정예 남파 간첩이 생활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촬영지로도 선택된 마을입니다. 아마도 요즘은 이렇게 오래된 마을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에서부터 멀리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1960년대 인천 동구 만석동과 주안으로 밀려와 만들어진 마을인데요.
TV나 스크린 속에서 본 것 같이 낯익은 소박한 풍경들을 마을 골목골목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열우물마을의 어원은 한겨울에도 뜨거운 물이 솟아 오르는 우물이 있다고 해서 뜨거울 열()자를 넣어 마을 이름을 지었다라는 이도 있고, 예전에 이곳에 10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해서 열우물이라고 붙였다고도 전해지는데요.
이름이 어떻게 생겼건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 서로 따듯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던 삶의 터전의 아름다운 풍경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동네라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현대식으로 지은 높은 고층 아파트가 길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지만 그와 상반되게 이리저리 얽힌 콘크리트 계단과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 그리고 쓰러져 가는 담벼락만이 열우물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마을 꼭대기까지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도 어려운데요.
경사가 급해서 중간중간 숨을 돌리며 올라가야 됩니다.
  
   
 
   
재개발이 가까워지면서 허물어져가는 빈집들 때문에 더 을씨년스러워 보이는데요.
 
하지만 이 마을의 몇몇의 마음 따듯한 사람들이 한겨울에는 연탄을 피워가며 살아가고 있는 착한 마을입니다.
열우물마을 위치는 지하철 1호선 백운역 2번 출구에서 상정초등학교 방향으로 700M 정도 걸어가면 왼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서울 중계동에 위치해있는 백사마을을 아십니까?
 
아직 서울에도 도시인들이 모르는 6~70년대 마을이 남아있는데요.
백사마을이란 곳이 있어?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초고층 아파트들이 둘러있는 서울 시내에서 6~70년대의 분위기를 오롯이 담고있는 동네가 아직도 남아있을 거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일테지요.
  
   
 
   
1976년 서울 도심 개발을 위해 남대문, 안암동, 용산, 청계천 등의 판자촌에서 살던 사람들을 이곳 백사마을로 옮겨가게 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인데요.
 
아직도 70년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서 마지막으로 남은 서울의 옛 동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너무 오래 전에 지어져 지금은 마치 폐가처럼 보이는 낮은 지붕의 허름한 쪽방과 판잣집들이 어지럽게 비닐포장으로 덮여 있는 모습들을 좁은 길 사이로 볼 수 있는데요. 출입문이나 창문의 유리가 깨진 집들도 쉽게 볼 수 있답니다.
어떻게 보면 6~70년대로 시간여행을 떠난 것처럼 마치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오래된 생활용품이나 연탄재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늘어져 있습니다.
  
지하철 4호선과 7호선 노원 역이나 1호선 창동 역에서 1142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왼쪽에 불암산 자락에 위치한 백사마을을 볼 수 있는데요. 백사마을이라는 것을 한눈에 봐도 짐작할 수 있으실 겁니다.
  
   
 
   
열우물마을과 백사마을만이 6~70년대의 마을로 40년이 지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도 대표적으로 옛6~70년대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마을인데요.
  
   
 
   
개미마을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의 마을로 허름한 집들이 인왕산 산기슭의 양지에 모여있어 정말 고요한 마을입니다.
 
20분에 한대 꼴로 움직이는 마을버스 노선 하나가 이렇게 경사가 심한 동네의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데요. 이 곳 마을 사람들은 외지의 사람들이 적지 않게 찾아오지만 무심할 정도로 개의치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서울의 옛 정서를 담고 있는 동네로 소개되면서 사진 찍기 좋은 벽화마을로 알려지게 되면서 아는 사람들에게는 카메라를 들고 이 곳을 찾아오게 합니다.
  
   
 
   
이 마을은 한국 전쟁 직후에 피난민들이 하나 둘씩 모여서 천막을 치고 살았기 때문에 인디언 마을이라고 불린 마을인데요서울 속 도심이지만 50년은 족히 돼 보이는 집들이 언덕의 큰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고,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이 우리가 어렸을 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6~70년대 마을이 개미마을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잘 보면 그리스의 산토리니 같은 이국적인 마을 풍경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죠.
영화 “7번방의 기적의 배경으로 2012년에는 유명세를 떨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그러한 이슈가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나름의 옛 느낌은 여전하다고 하니, 이곳을 방문하고 싶은 분들은 3호선 홍제 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인왕시장 방면 버스 정류장에서 07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개미마을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집 앞에 아무렇게 쌓여진 연탄들과 지금은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판잣집들이 낯익은 마을이지만 6~70년대의 오래되고 빛을 바랜 것들이 지금까지 이 곳을 지키고 있는 평화로운 마을에도 차가운 겨울이 지나면 따듯한 봄날은 있겠죠.
  
 
심성 착한 사람들이 서로의 몸의 체온을 난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순박한 마을로 희망을 담아 그린 벽화가 있는 담벼락 마다 마다 이어지면서 우리의 옛 동네 곳곳에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는데요.
 
이 마을의 봄은 다른 서울의 도시의 봄보다 달갑게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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