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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선비’처럼 맑아지는 가을 비경, 전남 화순 여행기

섬진강 지류 가운데 하나인 화순 동복천 상류의 창랑천 변에는 우뚝 몸을 일으켜 세운 옹성산의 노루목적벽이 있어요. 이곳은 당당히 ‘조선 10경’의 하나로 꼽혔을 만큼 나라를 통틀어 손꼽혀 온 명소였지만 1985년 동복천에 댐이 들어서면서 상수원보호구역으로 꼭꼭 닫혀 지난해까지만 해도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꼭 1년 전에 비로소 빗장을 풀고 발길을 허락했어요. 오늘은 그 현장을 둘러보려고 해요.








전남 화순이라면 천불천탑의 운주사나 삼층 목탑 형식의 대웅전을 가진 쌍봉사부터 떠올리지만, 오래 전에는 ‘화순적벽’이 맨 앞에 섰어요. 화순적벽이란 화순의 창랑천 물길이 굽이쳐 흐르며 거대한 항아리 형상의 옹성산 몸체를 깎아 만든 4개의 절벽 군(群)을 한꺼번에 이르는 이름. 기묘사화 때 이곳으로 유배됐던 선비 최산두가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赤壁)에 버금간다 해서 이름을 붙인 이래 고경명·임억령·김인후·정약용 등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화순적벽을 찾아들었다. 전국을 떠돌던 김삿갓도 말년에 화순에 내려와 적벽을 드나들다가 생을 마쳤어요화순적벽으로 불리는 적벽 네 곳은 노루목적벽·보산적벽·창랑적벽·물염적벽이랍니다. 이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곳이 바로 노루목적벽이에요. 


그런데 하필 가장 웅장하고 수려한 경관을 품고 있던 노루목적벽이 보산적벽과 함께 한순간에 30년 동안 철조망 뒤편으로 숨어버렸어요. 1985년 광주시민들의 식수원 공급을 위해 창랑천 물길을 닫아 동복호가 만들어지면서 노루목적벽이 물에 갇히고 만 것이죠. 동복호 일대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됐고,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으로 가는 길은 닫히고 말았답니다. 동복호에 물이 차오르면서 노루목적벽을 끼고 있던 16개 마을이 수몰됐고, 적벽과 기암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던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어요.



<높이 40m의 절벽이 100여m넘게 이어진 화순의 창랑적벽>



길가 쪽의 창랑적벽과 물염적벽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노루목적벽의 위용에다 대면 어림도 없었으니 화순적벽의 명성은 곧 잊어졌고, 3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적벽은 과거형 시제 속의 추억담으로만 남았다. 노루목적벽으로 가는 문은 늘 단단하게 잠겨 있었어요. 간혹 찾아드는 성묘객들에게만 인색하게 문을 열어주다가, 음력 시월 초하루 무렵 딱 하루만 문을 열었어요. 그날이면 뿔뿔이 흩어졌던 수몰민들이 적벽 앞에 모여 서로를 위로하며 고향마을 잔치를 열었죠. 여기까지가 노루목적벽의 지난해까지의 얘기랍니다.






<노루목적벽 건너편의 물가에 세워진 송석정>



동복호의 물에 갇혀 문을 닫아건 노루목적벽은 지난해 10월 23일 문을 열었어요. 동복호는 광주시민 가운데 60%가 마시는 물이랍니다. 광주시민들에게 매일 물을 대느라 이곳 동복호의 수위는 하루 4㎝씩 내려가요. 대체 상수원 개발이 요원한 상황에서 노루목적벽은 상수원 보호를 이유로 영원히 개방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답니다. 그러나 거듭된 화순군의 요청에 광주시가 화답하고 환경부가 승인하면서 개방이 결정된 것이었어요.

그렇지만 개방은 제한적이에요. 적벽은 매주 수, 토, 일요일에만 문을 연연답니다. 적벽 입구에서 노루목적벽을 마주보는 망향정까지 5㎞ 남짓의 비포장 구간에는 승용차 출입을 막고 셔틀버스로만 출입할 수 있어요. 입장료는 따로 없고 셔틀버스 요금 5,000원을 내면 돼요. 33인승 버스를 하루 12번 운행해 입장인원은 매일 384명으로 제한되고 있어요.

관람객들은 셔틀버스로 들어가서 그 차를 타고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해요. 입구에서 적벽을 관람하고 되돌아 나오기까지 딱 2시간 시간만 주어진답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이렇게 적벽은 11월 말까지 개방하고, 동절기에 문을 닫은 뒤 이듬해 3월에 다시 개방한답니다. 예약은 투어 2주 전 오전 9시부터 화순군청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받고 있어요. 불편하기야 하지만 꽁꽁 닫아 두었을 때에 비하면, 또 노루목적벽의 빼어난 경관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만이라도 어딘가 싶은 마음이에요. 한편으로는 이만한 불편함이라도 있어야 그나마 숨겨져 있던 풍경에 때가 묻는 것을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노루목적벽을 빚어낸 창랑천의 물은 동복호에 담겼다가 다시 무넘이를 넘쳐서 동복천이란 이름을 달고 흘러내린답니다. 동복천의 물길은 적벽의 하류 쪽에서도 못지않은 경관을 펼쳐 보여줘요. 적벽의 경관이 규모와 형태라면, 그 아래 동복천 경관의 핵심은 색감이에요. 이즈음 화순 땅에서는 그 물길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가을 여정으로 나무랄 데가 없답니다. 동복호를 흘러내린 물길을 따라가다 첫 번째로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이 동복면소재지를 지나 822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만나는 둔동마을이에요.


둔동마을에는 500여 년을 보존해온 마을 숲인 숲정이가 있답니다. 다리 건너 물가를 따라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호랑버들·서어나무·상수리나무·수양버들·이태리포플러들이 한데 어우러진 숲이에요. 천변의 홍수를 막기 위해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비보의 풍수로 조림한 숲이라는 얘기도 전해져요. 숲이 좋긴 하되 규모가 크지 않아 다른 계절이라면 ‘감동할 만한 풍경’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가을만큼은 다르답니다. 한데 어우러진 다른 수종의 거목들이 제각기 다른 색의 가을 단풍으로 물들면서 화려한 전통 매듭과 같은 색감을 펼쳐 보여줘요. 둔동마을에 유독 일찍 단풍이 물드니 가을 단풍 소식이 들리면 서둘 일이에요.



알아두면 좋은 팁!



화순까지 어떻게 갈까?


  


호남고속도로 창평나들목으로 나가 좌회전한 뒤 고서우체국에서 우회전, 887번 지방도로를 따라 담양군 남면소재지를 지나고 이서면사무소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동복호가 나온답니다. 적벽은 동복호에 있지만, 적벽 투어는 금호화순리조트와 이서중학교 주차장에서 출발해요.





화순에서 무엇을 맛볼까?


  

화순의 먹을거리로는 두부가 유명해요. 동면의 달맞이 흑두부(061-372-8465), 도곡면의 색동두부(061-375-5066) 등이 외지인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랍니다. 두부보쌈이나 두부전골 등이 주 메뉴예요. 전통 한정식을 차려내는 수림한정식(061-374-6560)과 보양식인 흑염소탕을 내는 약산흑염소가든(061-373-9292) 등도 유명한 곳이에요. 장어구이와 다슬기회 등이 주메뉴인 동서남북가든(061-371-6800)과 추어탕, 숙회로 유명한 미꾸리 마을(061-375-1279), 숯불갈비가 대표메뉴인 영빈관버섯숯불갈비(061-371-8292) 등도 괜찮은 선택이에요.

                                                                                                                                   http://kyobolifeblog.co.kr/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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