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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화수부두, 만석부두, 북성포구 이야기


인천의 바다는 다른 도시의 바다와는 사뭇 다릅니다. 1883년 개항 이후의 제물포항부터, 근대를 거쳐 해방 이후 산업화의 추억 모두를 담고 있는 인천의 바다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기억의 흔적들로 점칠되어 있습니다. 한 세기 격동의 역사를 담고 있는 화수부두, 만석부두, 북성포구, 마치 둘레길처럼 연결되어 있는 이 조그마한 세 항구는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까요? 그리고 지금, 앞으로 어떤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까요?



-화수부두



 


연안부두가 생기기 이전까지 만석부두와 함께 인천의 가장 큰 수산물 시장이 위치했던 화수부두는, 기능이 쇠퇴한 지금까지도 새우젓으로 그 유명세를 남기고 있습니다. 쇠락을 거듭하다 최근엔 어항구로 지정되어 여러 기반시설의 설치가 가능해졌고, 정부의 지원으로 수산물직판매장까지 생겨 당일 잡은 싱싱한 수산물을 즉시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과거 새우젓, 조선소로 유명했던 화수부두는 새롭게 명성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방에 보이는 공장과 그것을 에둘러 흐르는 갯골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인천 바다'만의 모습입니다.

 

 

-만석부두


 

 

만석부두는 화수부두와 함께 70년대 연안부두가 생기기 이전까지 인천의 수산물시장의 젓줄과도 같은 역할을 했을 정도로 왕성한 상권이 형성되었던 곳입니다. 1900년대 매립이 시작되면서 부두가 형성되고 산부리가 고양이를 닮았다 하여 괭이부리라 불리워진 곳으로 소설 '괭이부리마을 아이들'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작약도, 영종도를 오가는 여객선의 선착장으로, 본선화물을 실어 나르는 작은 화물선들의 화역 장소로, 인천 연근해 어업의 중심지로 사람이 몰리고 생선이 활발하게 거래되던 중요한 부두 중의 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연안 개발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만석부두는 6.25이후 피난민들이 만석동에 정착해 살 수 있도록 부두노동과 뱃일을 하는 주민들에게는 삶의 젓줄 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조그만한 포구로 전락했지만 그들의 삶의 터전이며 어려웠던 시절의 역사를 간직한 잊지 못할 곳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북성포구


 


북성포구는 인천역에서 월미도로 가는 초입에 그 입구가 위치해있는데, 지금은 이국적인 풍경에 사진을 찍으러 가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있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일제는 1929년 11월부터 1931년 3월까지 수산물유통을 위해 북성동 해안 일대 1,111㎡(약 3,668평)을 매립하고, 대규모수산물 공판장과 어시장을 들어서게 합니다. 그리고 이시기에 현재의 대한제분 건너편에 어업용 제빙공장을 설립하여 어선과 시중에 얼음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1980년대까지 북성포구는 수도권 최대의 포구이며, 어시장으로 명성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고기가 한창 잡힐 때에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인 파시(波市)때면 대형 어선 100여척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던 북성포구는 1975년 연안부두 일대 545,545㎡(약 180만평)을 매립하면서 북성포구와 화수부두에 형성되었던 어시장이 연안부두로 이전하게 되고, 1980년대부터는 부두 앞 해면이 공장부지와 고철야적장으로 매립되면서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 들어 오늘에 이르러는 그 옛 영화를 가늠하기 조차 힘들게 되었습니다.(출처-네이버) 


지금은 항구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거나 제 기능에서 잠시 빗겨나간 곳들이지만, 잊지 않고 발걸음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 부두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앞으로 이 세 항구를 잇는 둘레길을 조성하는 계획이 있다고 하니, 시민 여러분 관심 갖고 많이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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