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이 되면 전 세계가 가난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희망한다는 무하마드 야누스. 그의 강한 신념은 세상의 편견, 기존의 관행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일갈합니다. "인간이 달에까지 가는 세상에 어째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무하마드 유누스의 자문으로 시작한 '그라민은행 프로젝트'는 기아에 허덕이던 1970년대 방글라데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은 자본에 대해, 은행의 역할에 대해 강한 신념을 지녔던 한 은행가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는 27달러고 세상을 바꾸고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총재가 '그라민은행'을 설립해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무하마드 유누스는 1940년 방글라데시에서 보석 세공업을 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다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밴더빌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들테네시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조교수로 재직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1972년부터 명문 치타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한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탄탄대로였습니다. 포장상자를 만드는 회사를 설립했을 때는 경영자로서 큰 성공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1974년 그의 운명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방글라데시에 엄청난 기아가 닥쳤는데 당시 경제학과 교수였던 유누스는 아이와 어른들이 굶어 죽는 비극적인 현실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이후로 내 눈에 경제학 교실은 영화가 끝날 무렵엔 주인공이 승리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영화관처럼 한가롭기 그지 없는 장소로 비쳤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24쪽
그는 이때부터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강의실을 벗어나 조브라 마을에 들어가서는 '진짜' 인생을 배우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나는 '땅 속' 벌레의 눈으로 세상을 보리라 작정했다. 현실을 보다 가까이서 보면 더욱 더 잘 보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치 땅벌레처럼, 길을 가다 장애를 만나면 장애를 둘러감으로써 결국 목표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25쪽
그는 직접 마을을 방문해 현실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방글라데시에서는 고리대금업이 성행하고 있었는데, 그 뿌리 깊고 심각한 시스템을 보며 야누스는 정부의 경제 계획과 현실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특히 42명의 여성이 고리대금업자에게 빌린 27달러(약 3만원)를 갚지 못해 노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곤 자신의 지갑에 있던 돈 27달러를 빌려주어 42명의 여성에게 고리대금을 갚도록 했습니다.
단돈 2센트가 없어서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학에서 경제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들이나 제도권 은행들이 왜 도움을 주지 않을까? 그는 적선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보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적선은 적선을 받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거지는 바로 사람들의 적선 때문에 구걸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거지 상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나 의욕도 저버리기 일쑤다. 만일 아픈 사람이 적선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병이 나으면 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을 테니 병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어떠한 경우든 간에 구걸하는 습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이다. 또한 구걸에 응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구걸을 방조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49~50쪽
유누스는 제도권 은행이 부자들을 위한 은행이 아니라 서민들을 위한 은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도권 은행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융자를 해줘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제도권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갖고 있었고, 결론적으로 모두 나중에 돈을 갚지 않을 것이므로 돈을 빌려줄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결국 그는 그 스스로 담보를 서는 조건으로 융자를 받아 그 돈을 바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담보 없는 '소액 융자'를 시작했습니다.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나 자신이 융자를 해주는 사람이 되고자 꾀한 바 없다. 내가 원한 것은 그저 문제를 바로 해결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나를 포함한 그라민은행 사람들 모두가 하나의 목표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깊은 상처를 주는 가난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35쪽
1976년, 제도권 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으로 무하마드 유누스는 소액대출을 해주는 '그라민은행 프로젝트(Grameen Bank Project)'를 시작합니다. '그람'은 마을을, '그라민'이란 형용하는 '마을의'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라민 은행은 '마을의 은행'이란 뜻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1979년까지 500여 가구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고, 유누스는 1983년 그라민 은행을 설립합니다. 그는 150만 달러 미만의 돈을 담보와 신원 보증 없이 하위 25% 사람들에게만 대출을 해주는 소액융자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세계은행 등 금융권은 그라민은행의 정책이 실패할 거라고 장담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던 소액 융자는 원금 상환 비율이 98%에 이르렀고, 융자를 얻은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금융시장에서 융자를 얻으려면 반드시 담보를 제시해야 하는 관행을 깨뜨린 것입니다. 제도권 은행들이 자신했던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갚지 않을 것이란 편견 역시 완전히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라민은행은 또한 융자를 줄 때 적어도 50%는 여성에게 주는 것을 고집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은행들은 전통적으로 성차별을 해왔고, 은행에서 여성들이 융자를 받은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널 쫓아내겠어!"라고 세 번만 되풀이하면 여성을 떼어낼 수 있는 사회였습니다. 남편으로부터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정한 삶으로 여성들은 더 쉽게 악성 고리대금에 노출되었습니다. 유누스는 여성이 남성보다 기근이나 가난에 더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지만, 사실 여성들이야말로 경제 발전의 견인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난한 여성에게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그 돈은 가장 먼저 자녀들을 위해서 쓰인다. 그 다음으론 집안 살림에 쓰이는데, (중략) 경제 발전의 궁극적인 목표가 삶의 질을 높이고, 가난을 줄이고 안정된 일자리를 확보하고, 불평등을 줄이는 데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여성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략) 여성들은 자녀들과 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여성이 우리 방글라데시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128쪽
당시 방글라데시의 적지 않은 정치인들, 제도권 은행들이 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때론 은행 방침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협박성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유누스는 당당히 답변했고, 오히려 이런 그들의 요구가 과연 전통적인 것인지 반문해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몇몇 사회학자들은 우리 그라민은행이 전통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려 한다고 비난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는가? 나는 마땅히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 것이 새로운 것에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전통을 바꿀 의사는 전혀 없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197쪽
모두가 불가능한 망상이라 이야기했던 그라민은행은 전 세계 2천 여 개가 넘는 지점(2006년 자료), 1만 8천여 명의 직원이 일하는 세계적인 은행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1997년에는 워싱턴에서 137개국 지도자들을 모아 '가난을 영원히 박물관으로 보내버리자'는 소액 융자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전 세계에 가난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라민은행의 성공 뒤에는 '서두르지 않는다'는 그들의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라민은행은 적대적인 사람들과 맞서 싸우거나 일을 서둘러 실수를 저지르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실천했습니다. 또한 철저히 원칙을 고수했고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라민은행 지점을 세우기 위해 마을의 돈 많은 유지들이 나서서 접대를 하는 형식적인 절차를 피했고, 점장과 부지점장은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마을에 가서 아주 싼 숙소에 방값을 내고 마을 유지들이 식사 초대를 해도 거절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석사학위까지 받은 엘리트들이지만 수 킬로미터를 걸어 다니며 마을 사람들을 만나 애로사항을 듣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경청했습니다. 더딘 걸음이었지만 이런 과정은 점차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었고, 스스로의 삶에 힘을 갖게 했습니다.
1990년, 유누스는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논문을 통해 미국 은행들이 인간을 어떻게 소외시키고 있는지 고발했습니다. 그는 논문에서 인간이 고안해 낸 시스템이 인간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인간 대신 신용카드가 활개를 치고, 신용카드가 우리의 정체성과 경직성을 대신하게 된 것을 보면서 은행 시스템과 인간성의 갈등이 전 세계적인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유엔은 무하마드 유누스의 빈곤 퇴치 캠페인을 지지하며 2005년을 '소액 금융의 해'로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업적에 힘입어 유누스는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소액 융자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경제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다. 소액 융자란 경제적 자산이 아니라 인간적 자산을 일깨우는 수단이다. 소액 융자는 우리 인간이 가진 꿈을 일깨움으로서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 존엄성과 존엄의 마음을 갖도록 만들고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377쪽
우리는 꿈꾼 것만을 이룰 수 있다. 우리는 가난 없는 세상을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어야만 이 같은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51쪽
유누스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조차 꾸지 않는 우리들에게 용기를 갖고 일단 꿈꿔보라고 격려하며 실천하는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오늘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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