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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감영
15-05-10 15:30

조선시대 각도의 최고 행정수부인 감영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감영은 각도에 파견된 관찰사의 관아입니다.
조선시대 문화 교류의 중심지, 역사도시에 있던 감영은 오늘날 도청이라 할 수 있는데 도내의 행정과 군사,조세등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곳으로 각도의 중심지이고 지방의 핵심 관청이라고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조선시대 감영은 무엇인가? 감영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건물은 대부분 헐려 없어졌고 남아있는것도 제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감영은 당연히 보존되어 역사적 문화유산으로 진가를 인정받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민 스스로도 감영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지방문화의 정립, 지역의 정체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지역의 역사 전통이 각광을 받고 그 분위기에 맞추어 일부 지역에서 감영 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감영이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일깨우는 중요하고 유일한 교육 자료라는 점도 생각할 때입니다.
 
  
조선시대 감영의 소재지는 어디일까요? 
조선왕조 성립이후 도제(道制)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감영 소재지는 물적, 인적 집중이 두드러지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경제력 집중과 인구증가의 변화는 감영의 행정업무도 복잡해지고 영향력도 커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감영의 소재지는 경상도의 대구, 전라도의 전주, 충청도는 충주 또는 공주, 강원도의 원주, 황해도의 해주, 함경도의 함흥, 평안도의 평양, 경기도는 서울 또는 수원에 있었습니다.
  
감영의 보존실태을 알아볼까요? 
경상감영은 조선 초에는 경주에 있다가 세종초 상주 그 후 대구에 정착하였습니다. 현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 자리입니다. 공원 안에는 경상도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유형문화재 제1호)과 처소로 사용한 징청각 (유형문화재 제2호) 그리고 관찰사의 치적이 담긴 선정비등 대구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전라감영(전라감영지,시도기념물 제107호)은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에 소재했던 전북도청 자리입니다. 조선말에 작성된 『전주지도』, 『전주부지도』를 통해 전체적인 감영의 배치를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 감영에는 중심 건물로 업무를 보던 선화당과 관풍각, 포정루 등 많은 시설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라감영지를 원형대로 복원하기 위한 계획이 진행중입니다.
 
  
충청감영은 현재 공주에 있습니다. 원 위치에는 공주사대부고가 들어서있고 선화당(유형문화재 제92호)과 포정사 및 삼문, 부속건물 1채는 공주시 웅진동 332-9번지 현 위치에 옮겨지었습니다. 충청감영은 장소마저 엉뚱한 곳에 복원함으로서 정통성을 상실하였고 현재 복원에 고민을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여지도서』에는 선화당을 비롯하여 50여 채의 건물과 칸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강원감영(강원감영지 사적  제439호)은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선화당(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포정루등이 원위치에 남아있고 발굴조사 결과 관련 유구가 잘 남아있어 중삼문,내삼문,행각등이 복원되어있습니다.
 
 
경기감영은 서울 서대문 적십자 병원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표지석만 남아 있습니다.
감영의 모습은 12폭의 화폭에 그린 관아도(경기감영도병)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감영의 배치구성을 알아볼까요?
감영은 세부적으로 시설 상호간의 업무별 상관성에 따라 영역을 형성하였다고 합니다. 보통 읍내의 중심도로에서 감영의 정청(政廳)인 선화당으로 연결되는 진입공간, 그리고 후원의 모든 시설을 포함한 감사의 영역이 배치구성에서 중심축을 형성하여 상호 기능적으로 연결이되었다고합니다
감영의 진입공간은 포정문,중삼문,내삼문으로 구성되는 삼문 구성을 합니다. 삼문구성은 궁궐의 구성인 삼문삼조(三門三朝)와 관련이 있고 유교적 위계라는 예제에 따른 공간 구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선화당은 감영의 중요 행사와 업무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진입공간과 직접 연결되어 내삼문을 통해 이르게 됩니다.
선화당은 내삼문 좌우에서 시작하여 선화당의 3면을 둘러싸는 행랑으로 공간이 구성되어 궁궐의 공간구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화당의 의미는 임금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건물이라는 뜻입니다 .

 
감영 복원 및 보존은 감영문화라는 맥락에서 추진 
조선시대 각도의 최고 행정수부인 감영의 복원을 위해서는 역사 자료의 수집과 정리가 중요합니다. 감영문화의 탐색과 계승의 부분까지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 자료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풍부한 기초 사례를 제공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감영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던 그 시대의 정치 문화를 읽을 수 있어야 되겠지요.
감영이 있는곳은 역사도시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과거의 제반 규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이 부가되고 그것들이 층을 이루며 형성된 도시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과거의 고유 형태와 양상이 유지되어 있어야하고 실체적인 건축물과 대상물이 현존하고 있어야합니다
                                                  제2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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