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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길엔 리듬이 있고 아픈역사의 땅이다
15-05-14 17:39

바다쪽으로, 한 뼘 더 나아간 낭만의 섬 - 강화도는 수수하다. 외양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하다거나 지형이 험하거나 높고 가파르지 않아 다가서는데 별반 망설임이 없다. 의인화하면 옷차림이나 성격, 태도 따위가 별스러운 데 없이 무던한 사람쯤 되겠다. 그렇다고 해서 강화도의 볼거리가 보잘 것 없다거나 섬이 지닌 의미가 변변치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리저리, 이모저모 뜯어볼수록 눈에 넣을 거리, 마음에 새길 거리, 몸으로 느낄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강화의 길엔 리듬이 있다
이번 여행에서 새삼 눈여겨보게 된 것은 ‘길’이었다. 강화도의 길엔 묘한 리듬이 있다. 느릿느릿 중모리 리듬인가 하면 자진모리, 휘모리장단으로 빨라지고, 그러다 다시 슬금슬금 느려진다. 그 엇박자의 리듬을 따라, 틈새를 따라 문화, 역사, 맛이 버무려져 있다. 이 길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걸어도 좋고, 해안도로를 순환하는 버스를 타고 느긋하게 섬을 누벼도 좋다.강화도로 향하며 처음 세웠던 계획은 초지대교를 건너 초지진에 차를 세우고 이 해안관광 순환버스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정과 달리 초지대교를 지나 길상면까지 들어가고 말았다. 길이란 원래 그런 법. 한참을 달리던 차를 한갓진 곳에 버리고, 잠시 강화의 숨결을 느끼며 걸었다.
 
시간은 소멸되지 않는다
차를 세운 곳은 풍채 좋은 한옥 건물이 보이는 곳이었다. 다가서니 한옥집이 아닌 1906년 한국 최초로 건립된 강화 온수리 성당이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강화도는 성공회의 땅이다. 구한말, 황해를 거쳐 내습해 온 대영제국의 행렬 사이에 선교사들이 있었고, 그들은 인천으로 들어와 기운을 살폈고 강화도에 뿌리를 내렸다.
온수리 성당은 고아한 멋을 품고 있었다. 이 성당의 주보성인(主保聖人)은 성안드레아. 그래서 성당 입구에‘성안드레성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실 한국 최초의 성당이라는 것보다 정면 3칸, 측면 9칸의 단층 한옥으로 지어진 건물의 모양새가 신기했다. 한옥 지붕의 용마루 양쪽으로 십자가 장식이 있고 지붕 양쪽 끄트머리의 합각 벽면에도 십자가 장식이 새겨져 있지만, 그러한 장식 요소를 빼놓고 보면 옛 지방 관청의 형태 그대로였다.
가만히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옥이 지닌 특유의 안온한 분위기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벽면을 따라서는 온수교회의 옛 사진들과 복음서, 성작, 촛대, 십자가들이 진열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사제복, 깃발들이 걸려 있다. 시간이 고스란히 간직한 풍경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시간은 소멸되지 않은 것이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있노라니 종소리가 울렸다. 본당 옆 날개를 펼친 학의 모습을 하고 있는 솟을대문 모양의 종루에서 퍼지는 소리다. 기대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과 역사가 새겨진 공간, 현재를 울리는 소리의 조우였다.01. 광성보 안해루의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02. 안해루를 지나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지나면 바다와 만날 수 있다.
전등사에서 전설을 맴돌다
성당을 벗어나 전등사에 멈춰 섰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신라로 불교를 전파하러 가던 아도화상이 잠시 머물렀던 곳으로, 특히 경내까지 이어지는 진입로가 고아한 멋을 지녔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라 내딛는 걸음마다 푹신함이 전해지고,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무척이나 청량했다. 숲길에서 계단을 오르니 1621년에 지어진 아담한 대웅보전이 시야에 들어왔다. 빛바랜 단청의 화려한 솜씨부터 법당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수미단, 닷집, 용, 물고기, 봉황, 연꽃, 모란꽃 조각들이 하나같이 정교하지 그지없다.
그런데 이 대웅보정의 지붕 네 귀퉁이 추려 밑에는 참으로 희한한 모습의 나녀상이 조각되어 있다. 대웅전 지붕의 무거운 하중을 벌거벗은 모습의 여인이 떠받치고 있는데, 그 표정이 처절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조선 광해군 때 불에 탄 대웅보전을 중건하던 도편수가 사하촌의 주막집 여인과 사랑에 빠져 노임으로 받은 돈을 모두 그 여인에게 맡겼다. 공사가 끝날 무렵 마음이 변한 여인이 돈을 가지고 도망가 버렸고, 이에 화가 난 도편수가 추녀 밑에 이 벌 받는 나녀상을 조각하여 평생토록 절집의 풍경 소리를 들으며 뉘우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등사 스님들은 일개 도편수가 부처님의 법당을 지으며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워 그런 조각을 했을 리 없다 말한다. 대신 호국도량인 전등사의 대웅전을 수호하는 의미로 사천왕으로 그렇게 조각하였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를 사찰의 수호신 상으로 보기에는 그 표정이나 분위기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는 전등사만이 간직하고 있는 어떤 사연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끝을 알 수 없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돈다.
03. 사적 제137호의 강화 부근리 지석묘 04. 사적제306호 갑곶돈대. 1970년 훼손된 것을 복원하였는데, 돈대 내에는 조선시대 대포가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강화도는 아픈 역사의 땅이다
온 길을 되돌아 남동 해안을 따라 달렸다. 달리는 길 위로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갑곶돈대가 연이어 나타난다. 지금은 그저 갯벌을 따라 난 눈 쌓인 길일뿐이지만 100여 년 전 서양세력의 침략의 발자국이 남아있는 길이다. 근세에 서구 열강은 조선을 집어 삼키기 위해 강화도로 들이닥쳤고, 조선은 그들을 막기 위해 수많은 진과 보와 돈대를 쌓아야만 했다. 이런 이유로 강화도에서는 어디를 가도 아픈 역사의 흔적과 마주치게 된다. 특히 포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초지진과 강화도 최대의 포대인 남장포대가 있는 덕진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종합 돈대 세트’라 불려도 좋을 만큼 돈대며 진들이 고루 갖춰진 광성보에서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초입의 안해루를 지나 눈 쌓인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천천히 바다를 향해 걸었다. 눈물의 역사와 달리 숲길 뒤로 드러난 겨울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바다 끝에 다다르니 아름답기로 유명한 용두돈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용두 돈대 앞엔 물살 험한 손돌목이 외세의 침입을 막으려는 듯 거세게 흐르고 있고 그동안의 외침을 지켜봤을 법한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풍경. 그 모습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선을 그리며 북녘으로 멀어졌다. 이양선의 침입부터 오늘날 남북의 대립까지, 인간의 역사는 영역을 나누는 선을 경계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국경 없이 자유로운 철새들의 날갯짓이 한없이 부럽게만 느껴진다.
 
해지는 풍경에 마음을 묻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장화리로 향했다. 동막리~여차리~장화리 길은 해질 무렵이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길 어디에서 봐도 낙조가 아름답지만, 특히 장화리 낙조가 빼어나다. 특히 장화리 해양탐구수련원 앞 바닷가에 서서 떠나보내는 일몰은 감동적이다. 이윽고 해넘이가 시작되고, 서해를 넘어가는 노을이 하늘과 바다 그리고 갯벌을 붉게 물들이며 강화도 여행의 대미를 장식했다.
다리가 놓였어도 섬에는 섬만의 기운이 있다. 애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운. 강화도가 꼭 그렇다. 갯벌을 품은 바다가 있고, 아픈 역사가 있고, 마음 쉬기 좋은 아담한 절집과 차 한 잔 나누기 좋은 카페가 있으며, 가깝지만 마음의 거리는 더 아득하게 느껴지는 곳. 이번 주말 잠시만이라도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강화도로 떠나보길 추천한다.
                                        출처 : 문화화재청홈페이지  글 이현주  사진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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