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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15-05-14 18:10

어떤 자극에 사로잡혀 제 멋대로 몽상이 전개되는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책상 위에 덩그렇게 놓인 몽당연필에서 삶은 달걀 노른자의 폭신한 질감을 떠올린다든가, 김 서린 유리창 위로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환기하는 한 조각 잊힌 기억. 그런 이야기는 아이들의 꿈 이야기처럼 대개 황당하고 유치해서 섣불리 입 밖에 내기 힘들고, 또 표현해볼 엄두조차 낼 수 없을 때도 있다. 프랑스 철학가 바르트는 ‘푼크툼(punctum)’이란 라틴어로 저 마법의 미학을 설명했다.
사진예술을 풀어놓는 자리에 이따금 등장하는 저 낱말을 나는‘찰나의 창조성과 우연성의 마법’쯤으로 이해한다. 촬영자가 피사체를 통해 내보이고자 하는 게 뭐든 관람자(관찰자)가 자신만의 특별한 시선으로 읽어내는 사진 속 의미 같은 것. 굳이 예술 작품일 필요도 없다. 사물이나 풍경, 한 줄기 바람, 낯선 이의 스쳐가는 표정에서도 나는, 아마도 우리는, 푼크툼의 순간들을 경험한다. 누구와도 온전히 공유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와도 공유하고 싶은, 또 공감 받고 싶은, 순간의 감동이 어쩌면 그런 걸지 모른다.
 
지금 나는 마당 한 귀퉁이에 피워놓은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이글거리는 불꽃 한 자락. 하지만 내 망막 너머에 오버랩 되는 영상은 부엌이다. 아궁이와 부뚜막이 있는 오래된 부엌. 그건 아마도 내가 태어나 처음 만난 불꽃의 거처가 그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풍경에서 나는 찰기 있는 온기를 이야기하고 싶다. 온기에도 찰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내게 부엌은 차진 온기의 공간이다.
유년의 어느 겨울, 그날 나는 한 데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추워지고 허기진 상태였을 것이다. 내 기억은 이른 저녁의 어스레한 부엌 풍경으로 시작된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부엌은 허기와 한기를 함께 눅여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저녁밥 뜸 들이는 아궁이의 온기에 언 손과 얼굴을 녹이자마자, 나는 유리처럼 만질만질한 부뚜막에 걸터앉거나 서서 굶주린 고양이처럼 시렁과 살강을 수색하곤 했다. 당시의 나는 꽤 노련하고 유능한 부엌의 약탈자였고, 하다못해 누룽지나 말린 고구마편이라도 찾아내곤 했다.
 
그날은 그런 수고도 필요 없었다. 물기 빠지라고 채반에 담아둔 조갯살-그건 당시로선 아주 귀했던 새조개였다-이 소쿠리에 덮여 시렁 위에 얹혀 있던 거였다. 난생 처음 경험한 그 맛에 홀려 나는 초고추장 찍어 한 점 한 점 집어먹었고, 모처럼의 온 가족 미식체험거리로 장만된 조갯살은 야속한 속도로 사라져갔다. 그날 이후 얼마간 나는 가족 거의 전원으로부터 혹독한 질타를 받았고, 어머니 역시 미필적 고의 혹은 방조의 책임으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하지만 차돌처럼 야무지게 이기적이었던 내가감당해야 했던 가장 가혹한 형벌은 부엌 접근금지령이었다. 허기의 인력과 회초리의 척력(斥力) 사이에서 나의 24시간은 부엌을 중심으로 흐느끼며 자전했고, 당시의 아린 욕망이 부엌이라는 낱말 안에 지금도 남아 있다.
 
언 몸은 물론 아랫목에서도 녹일 수 있었다. 거무레하게 눌은 아랫목에 엉덩이 깔고 앉거나 누워 까무룩 토막잠도 잤을 것이다. 하지만 그 꿈속에서도 나는 아궁이의 일렁이는 불꽃을 그리워했다. 야단을 맞으면서도 부지깽이로 집적거리며 직접 대면하는 불꽃과 뭉근히 삭은 아랫목의 온기는 유년의 내겐 댈 것이 아니었다. 아궁이는 온기의 자궁이라고들 하지만, 내게 그 불꽃은 따스한 생동감의 원형질이다. 서툰 손길에도 언제나 순하게 출렁이던 아궁이의 불꽃은 그 놀이를 통해 원초적 유희의 기억과도 탯줄처럼 이어져 있을지 모른다.
 
먹고 자고 놀고 쉬는 모든 일상의 중심, 혹은 에너지의 수원(水源)으로서의 부엌, 또 아궁이와 구들의 구조와 기능이나 그 고전적 형식미, 또 속부터 데우는 온돌의 깊은 온기를 느끼고 인식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전통 부엌에 제 몫보다 더 후한 점수를 매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불편하고 성가시고 까칠해서 지긋지긋하던 재래식 부엌의 기억 위에 기능적 합리의 잣대와는 다른 잣대, 이를테면 염색체로 유전해 온 긴 세대의 감각과 기억들을 덧입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류는 일상의 불편을 눅이며 쉼 없이 진보해왔고, 더불어 공간의 풍경도 끊임없이 변천했다. 그 변화의 진폭이 가장 크게, 또 다채롭고 섬세하게 구현된 공간이 아마도 부엌일 것이다. 이제 춤추듯 일렁이는 부엌의 불꽃은 비일상, 즉 사고(事故)나 위험의 신호여서 가스레인지 후드의 자동 스프링쿨러가 잽싸게 꺼뜨려야 할 대상이 됐고, 단조로워진 빛깔의 고효율 불꽃으로 길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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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레이트처럼 아예 불꽃 없는 전열기로 반찬을 데우고 국을 끓이는 부엌도 드물지 않다. 24시간 전기와 도시가스와 석유로 가동되는 환기와 급배수시스템은 부엌 특유의 표정과 향기도 바꾸어 놓았다. 이제 부엌과 거실의 경계는 사실상 사라졌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재래식 부엌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편리와 쾌적함과 풍요를 얻었다 동시에 부엌 문이나 창 너머로 넘실넘실 넘어오는 향기로 부풀어 오르던 어떤 설렘의 시간도 함께 사라졌거나 흐릿해졌다. 내 유년의 부엌에는 곳간처럼 쓰이던 작은 방이 딸려 있었다. 그 방은 벽면 따라 뒤주가 있고 콩 자루나 건어물 따위가 가지런히 배열돼 있었다. 그 곳은 부엌에서 만들어진 음식이 마루나 안방으로 건너가기 전 최종 점검을 받는 대기공간이면서, 코나 눈으로 오늘의 메뉴를 짐작하고 조리의 진도를 염탐하던 초소였다.
 
특별한 날 부침개라도 부치게 되면 나와 형제들은 난방도 안 되는 그 방 문지방 앞에 앉아 어머니나 할머니와 눈이라도 맞춰 보려고 안달했고, 드물게 한 장씩 건네지는 모양 처지는 부침개에 아귀들처럼 달려들곤 했다. 그럴 때 안방에서 들려오던 어른들의 헛기침 소리가 차마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야속함의 탄식이었다는 걸 나는 아주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신들은 ‘안주인’들의 무신경함과 제 입만 아는 ‘어린 것들’의 이기심을 그렇게 꾸짖었을 것이다. 하지만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허기를 그렇게 미리 다독임으로써, 다시 말해 어른들 앞에서 게걸스러운 젓가락질을 안 할 수 있게끔 배려함으로써 식탁의 기품을 유지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엌의 풍경이 달라지고 중심공간으로서의 의미 역시 많이 퇴색됐지만 부엌의 영혼성, 이를테면 조왕( 王, 가족의 질병과 액운을 막아주는 부엌의 신으로 집집마다 부뚜막이나 시렁 위에 모셨다)의 거처라는 상징성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게 나의 기대 섞인 전망이다.
 
식당의 품격이 주방의 질서에서 비롯되듯, 한 집안의 기품은 부엌의 정돈된 조화를 통해서 구석구석 스미는 것은 아닐지. 그것은 살림의 테크닉이나 미적 안목보다 식구들의 섭생을 전위 (前衛)에서 챙기는 이의 내면의 온기와 더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부뚜막이 사라지면서 조왕 단지도 치워졌지만, 조왕의 영혼은 부엌을 관장하는 이의 마음 안에 그런 온기로 깃들였을 것이다. 그 마음은, 그 온기는 버튼 하나로 화르르 타고 꺼지는 레인지의 불꽃처럼 찰기 없이 데워지고 여운 없이 식지 않는다. 그것은 집이 거처로서 존재하는 한 24시간 잠들지 않는 냉장고의 허밍처럼 그 공간을 지키고 있다.
푼크툼의 기적은‘나’의 능동적인 개입을 전제한다. 그 때의 능동성은 의도나 목적성이 배제된 능동성이다. 나도 몰래 끌려들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길 없는 길을 만들며 적극적으로 그 의미들을 끌고 나아가는 능동성. 그렇게 새로 열린 시공간 안에서 온우주는 나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새로운 맥락과 의미를 부여 받는다. 그 때의 기적이 달리 말하면 가능성이다. 유년의 부엌이 허기와 한기를 동시에 달래주는 가능성의 공간이었듯이, 부엌은 내게, 아마도 우리에게, 다른 듯 한결같은 어떤 의미의 가능성으로 저렇듯 잠 없는 밤을 지키는 듯 보인다. 누군가의 새로운 푼크툼의 순간을 예비하듯이.
            출처: 문화재청홈페이지  글 최윤필(한국일보 선임기자) 일러스트 박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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