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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예술 나전칠기의 전통 형성과 제작기술의 발달
15-03-29 08:15

나전칠기는 빛의 예술이다

나전칠기는 대낮의 밝은 빛이나 눈이 부신 전등불빛 속에서는 번들거리는 반사광이 나타나게 마련이고 어두운 바탕과 밝은 자개의 강한 명암대비는 고상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어둑어둑한 방안에 나전칠기가 자리 잡고 있을 때에 그 멋을 나타낸다. 창호지를 바른 문을 통해 들어오는 낮의 걸러진 빛이 드는 방안이나 촛불·등잔불로 밤을 밝힌 방안에서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자개의 오색영롱한 빛깔은 전복(또는 소라)껍데기의 안쪽 면에 세월을 따라 켜켜이 쌓인 투명한 층(진주층) 속에서 빛이 반사되며 간섭干涉현상이 생겨서 나타나는 것이다. 

고대 중국과 일본 나전기에서는 야광패(夜光貝, 중국 남해와 일본, 미얀마, 필리핀 등의 해안에 서식하는 소라종류)가 사용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시종일관 남해안과 제주도의 특산물인 복패(鰒貝, 전복껍데기)를 가공하여 사용했는데 야광패보다도 더 강한 빛깔의 변화를 나타내며 보는 각도에 따라 빛깔이 달라 보여 신비롭다. 복패는 야광패보다 푸른빛과 보랏빛을 더 많이 띠므로 청패靑貝라고도 부른다.


나전칠기의 전통 형성과 제작기술의 발달

우리 조상은 자개 빛깔을 매우 좋아했다. 그렇기에 과거 중국·한국·일본에서 모두 나전칠기가 발달했었으나 오늘날 중국과 일본의 나전칠기의 특징은 이미 쇠퇴한 지 오래 되었고, 중국은 척홍剔紅칠기라고 하는 조칠기彫漆器가, 일본은 옻칠 그림에서 비롯된 시회蒔繪칠기가 칠공예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고금을 통해서 줄곧 나전칠기가 발전해 왔던 것이다.

 이미 11세기에 고려 조정이 외국 왕실에 보내는 선물 품목에 나전칠기가 있었음을 기록한 문헌(『고려사』, 『동국문헌비고』)이 있기도 하거니와 12세기 전반기(1123년)에 고려에 다녀간 송나라 사신의 견문록인 『고려도경』에 고려 나전칠기의 세밀하고 정교함을 ‘귀하다’고 칭찬한 기록이 있는 점, 많지는 않으나 현재까지 남아 있는 고려나전합, 경함, 상자, 불자 등의 모습을 보면 세계적 수준의 고려 나전칠기의 진면목을 알 수가 있다. 

13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고려 나전칠기는 세계 제일의 수준에 도달했던 것이다. 『고려사(식화지3)』의 기록에 의하면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방에 자개일을 전문으로 하는 장인인 나전장螺鈿匠과 옻칠일을 전문으로 하는 칠장漆匠 및 나무로 된 기형을 짜는 소목장小木匠이 구분되어 있었는데 각 장인이 분업으로 전문성과 생산성을 높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13세기 후반기에는 불경 보관을 위한 나전칠기 함을 생산하는 국영 기관인 전함조성도감鈿函造成都監을 둔 때도 있었다. 조선 시대에도 국영 공방(경공장)에 나전장·칠장·목장木匠으로 구분된 전문적 장인이 소속되어 분업으로 작업하였다.(『경국대전』, 『대전회통』 등의 기록)


 

18세기 후반 경상남도 두룡포의 삼도수군 통제영(현: 통영시)에 12공방 체제가 갖추어진 가운데 칠장방(장인수 27명), 패부장방(5명), 소목장방(10명) 등 나전칠기 제작을 위한 분업적 공방이 설치되어 있었고 인근 지리산 지역(함안, 함양 등)에서 채취된 옻칠과 남해안과 제주도산 복패를 이용해 본격적인 관官수요의 나전칠기 생산이 이루어졌다. 통제영 12공방은 1895년 폐영될 때까지 번성했으며, 이러한 관영 공방에서 양성된 장인들이 사장私匠으로서 민간 수요의 나전칠기를 수없이 생산했던 것이다.

19세기 초반기에 간행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기록에 “통제영을 이곳에 둔 것은 군사를 길러 유사시를 대비하자는 것인데, 오로지 수많은 장인을 길러 한양의 권문세가가 구하는 것만을 만들고 있어 통제영 설치의 처음 뜻과 크게 위배되니 마땅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면 통제영 공방제품은 관수용품만 생산한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이와 같이 나전칠기를 생산하는 관영공방이 고려시대 이래 조선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있었다는 것은 한국 나전칠기의 전통 형성과 제작 기술 발달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우리민족의 독창적인 전통공예 나전칠기

발생처는 중국이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국풍화國風化되며 성행했던 고려시대의 나전칠기는 오히려 중국(원대)에 영향을 끼친다. 즉 중국나전은 야광패로 만든 후패(두꺼운 자개)만을 사용했었으나 복패로 만든 박패(얇은 자개)를 쓰는 고려의 영향을 받아 원대에 복패로 된 박패도 사용하면서 고려가 개발한 자개무늬 표현기법의 한가지인 끊음질기법까지도 원대 나전칠기에 도입되었다. 

 끊음질은 자개선으로 구성되는 기하학적 연속무늬와 유연한 곡선을 표현하기에 매우 유리하며 경제성 높은 기법이다. 기하학적 직선 끊음질 연속무늬가 13~14세기 고려후기의 유물(일본 기타무라미술관 소장 나전모란당초문경함 및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동양미술관 소장 나전국당초문경함)에 최초로 나타났다. 곡선 끊음질은 조선 전기의 나전칠기에서 유연한 곡선을 지닌 당초무늬의 줄기표현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무늬의 구획을 두른 곡선의 구획 윤곽선에도 사용되었는데 고려시대에 이러한 곡선들은 모두 금속선(외줄선 또는 두 줄을 꼬은선)을 사용했던 것이다.

조선전기 말 경(16세기 말~17세기 초)에는 조선 특유의 새로운 자개무늬 표현기법인 할패법(타찰법)이 등장한다. 이 기법은 주름질로 만든 면형무늬에 불규칙적인 균열을 넣는 것인데 굽은 곡면의 기형 표면에 면형자개무늬를 붙이기에 유리한 수법이기도 하지만 자개크기의 한계 때문에 생기는 큰 무늬면의 이음선이 잘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효과와 함께 균열선들에서 보이는 조형적 감각 효과를 지니는 표현 기술인 것이다. 

이는 의도적으로 도자기의 유약면에 빙렬선氷裂線이 생기게 하거나 납방염蠟防染에서 의도적으로 넣는 파라핀 크랙선염의 효과를 조형적 관점에서 사용하는 바와도 같은 것이다. 자개무늬 표현에 끊음질과 할패법이 창안된 것은 한국인의 기질에 대범성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세계 도자사에서 유일하게 자유분방한 무늬표현의 분청사기가 조선 초기에 창안되었던 경우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나전칠기 무늬의 표현 재료 사용에서도 우리 선조들은 자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복채伏彩한 대모전玳瑁鈿과 금속선을 고려시대 나전칠기와 조선시대 후기 나전칠기에 즐겨 사용했을 뿐 아니라, 사어피沙魚皮를 무늬표현 재료로 자개와 함께 사용한 것도 독창적인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은 나전칠기가 우리의 민족공예民族工藝로서의 특성을 충분히 지녔음을 알게 하는 점이며, 무엇보다도 다른 나라에서 성행한 옻칠공예기법인 조칠彫漆·창금金·시회蒔繪칠기 등의 기법이 우리나라에는 발붙이지 못하고 오직 나전칠기로 일관하여 오늘날까지 성행하여 온 점은 ‘나전칠기는 우리의 민족공예’라는 말이 타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글·사진·곽대웅 홍익대 명예교수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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