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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짱 도루묵 진짜는 밥도둑
15-04-07 16:00

도루묵은 맛없는 생선의 대명사쯤 된다. 오죽했으면 도루묵이라는 이름까지 얻었을까? 맛이 없으니 “도로 묵이라고 하라”며 까탈을 부린 주인공은 임진왜란 때의 선조로 알려져 있는데 알고 보면 선조나 도루묵 모두 억울하기 짝이 없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가 북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배가 고팠던 선조가 수라상에 올라온 생선을 맛있게 먹은 후 그 이름을 물었다. ‘묵’이라는 생선이라고 하자 맛있는 생선에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라며 즉석에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전쟁이 끝난 후 환궁한 선조가 피난지에서 맛봤던 은어가 생각나 다시 먹어보니 옛날 그 맛이 아니었다. 형편없는 맛에 실망한 임금이 역정을 내면서 ‘도로 묵이라고 불러라’고 해서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도루묵에 얽힌 전설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도루묵이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생선이 아니다. 입맛이야 사람 따라 다르겠지만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맛없는 물고기가 아니다. 나름 특별한 맛과 멋이 있다.

 통통하게 살찐 도루묵 구이는 별미다. 얼큰한 도루묵 조림과 찌개는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게 하는 밥 도둑이고 막걸리에 소주를 부르는 술 도둑이다. 강원도 바닷가라면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도루묵회에 도루묵깍두기, 도루묵 식해가 별미다.

 도루묵이 맛없다는 생각은 이름 때문에 생긴 선입견이다. 누명 때문에 온 천하에 형편없는 생선이라는 오명을 쓴 채 몇백 년을 보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도루묵의 어원은 과연 진실일까?

 도루묵은 주로 강원도와 함경도, 그리고 지금의 경상북도 바닷가에서 잡히는 생선이다. 그런데 선조는 도루묵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피난을 간 적이 없다. 임진강을 건너 평양을 거쳐 의주로 갔으니 실제 피난길에서 도루묵을 먹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로 도루묵의 유래가 적힌 조선 시대 문헌에도 선조가 도루묵을 먹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도루묵의 유래는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광해군 시절에 귀양 갔을 때 쓴 전국팔도 음식 평론서인 ‘도문대작’에 실려 있다. 은어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동해에서 나는 생선으로 처음에는 이름이 목어(木魚)였는데 전 왕조에 이 생선을 좋아하는 임금이 있어 이름을 은어라고 고쳤다가 너무 많이 먹어 싫증이 나자 다시 목어라고 고쳐 환목어(還木魚)라고 했다”고 했다. 한자어 환목어를 우리 말로 풀이한 것이 바로 도루묵이다. 허균이 전 왕조라고 했으니 도루묵이라는 이름을 만든 주인공은 실제 선조가 아니라 바로 고려 때의 어느 임금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역시 광해군 때 벼슬을 산 택당 이식의 시에 나오는데 도루묵의 주인공이 선조 임금이라는 말은 없다. 그저 임금님이 왕년에 난리를 피해 황량한 (동해안) 해변에서 고난을 겪던 중에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적었다.

 선조가 아니라면 동해안 쪽으로 피난을 가서 도루묵을 먹었다는 임금은 과연 누구였을까? 고려와 조선대에 서울인 개성이나 한양을 버리고 피난을 떠난 임금은 모두 다섯 명이다.

 11세기 때는 고려 현종이 거란족의 침입을 피해 전라도 나주까지 피난을 간 적이 있다. 그리고 13세기에 고려 고종이 피난은 아니지만 몽골군의 침입에 대비해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겼다. 14세기에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경상도 안동으로 피신했다.

 조선 시대에는 16세기 말,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갔는데 함흥으로 갈까 의주로 갈까 망설이다 결국 의주로 떠났다. 그리고 17세기 인조가 세 차례에 걸쳐 한양을 비웠는데 정묘호란 때는 강화도로,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 그리고 이괄의 난 때는 충청도 공주로 몸을 숨겼다. 그러니 도루묵이 잡히는 고장인 동해안으로 피난을 떠났던 임금은 한 명도 없다.

 도루묵의 또 다른 이름인 은어도 그렇다. 배고픈 임금이 너무나 맛이 좋아 은빛이 도는 물고기라는 뜻에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하지만 조선 후기 정조 때의 실학자 서유구가 쓴 ‘난호어목지’에는 이름의 유래가 다르게 적혀 있다. “물고기의 배가 하얀 것이 마치 운모가루와 같아 현지 사람들이 은어라고 부른다”고 했으니 은어는 임금이 하사한 명칭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부르는 이름이었다. 도루묵의 유래 때문에 도루묵은 으레 맛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옛날 문헌을 보면 도루묵은 동해안의 특산물이었다. 지금은 경상북도인 울진 이북의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두루 잡히는 생선이었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정에 공물로 바치는 지역 특산물이었다고 나온다.

 그렇다면 왜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처럼 전쟁의 와중에서도 쓸데없이 음식 투정이나 부린 임금으로 선조를 지목했을까?

 선조나 도루묵이 왜 모두 누명을 썼는지 정확한 까닭은 알 수 없지만 굳이 짐작하자면 전란에 시달렸던 백성들이 못마땅했던 임금에 대한 원망을 도루묵 이야기와 연결 지었다. 지도자의 의무는 부하를 제대로 이끄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나자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갔으니 도루묵에 빗대어 역사의 조롱거리가 됐다.  <윤덕노 음식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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