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유산 지식백과(무형문화지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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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idream.or.kr/dongeuibogam/index.html - 한글 동의 보감 -음양오행 -사상의학 -장부학 -쑥뜸과 부항 -지압과 경락 -수지침요령 -민간요법과 질병기초 -한방약초의 종류와 효능 -한방식품의 종류와 효능 -한방약차 -한방약술 -암에 도움되는 약초 -건강 상식 -건강정보자료 -한방처방전 -민간약상식 -향약집성방과 향약본초 -1000가지 일반 요리법
보통 우리 아이들이 키가 작다고 생각하면 주로 유전적인 요인이 있지 않을까 많이 생각하십니다. 엄마 혹은 아빠를 닮았기 때문에 작다고 생각하신다면 이는 큰 오산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키작은 아이는 단 한가지 문제가 아닌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인데요. 오늘은 ‘키작은 아이 무엇이 문제일까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키가 작은 이유 1. 유전적인 요인 앞서 말한 유전적인 요인은 실제 원인의 30% 정도에만 해당합니다. 즉 나머지 70%의 역량은 부모의 관심과 아이의 습관, 후천적인 요인들로 인해서 충분히 변화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때문에 우리아이가 키가 작다면 유전적인 요인을 탓할 것이 아니라 키가 크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요인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습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키가 크기 위한 진리입니다. 밤 10시에서 2시 사이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가장 왕성한 시간대이기 때문이지요. 요즘 아이들은 과도한 학업량으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학교에서 조는 시간이 많은데요. 밤시간대만큼은 푹 잘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3. 균형잡힌 영양상태 아이의 영양상태에 따라서 평균 키가 5cm 가량 차이 난다고 합니다. 그만큼 타고나는 것 이상으로 균형잡힌 식사는 중요하다는 것인데요. 영양상태가 불균형하면 아이가 자랄 수 있는 역량보다 더 작게 자라게 됩니다. 환경호르몬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은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으니 되도록 소화가 잘 되는 영양풍부한 음식으로 준비해주세요 4. 운동부족 잠을 잘 자는 것 외에 운동이 부족해도 성장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키 작은 아이가 고민이시라면 꾸준한 운동을 통해 신진대사 능력이 좋아질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특히 농구처럼 몸을 뻗을 수 있는 운동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은 키가 작은 아이들로 고민이신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워낙 외모가 중시되는 풍토에서 키는 빼놓을 수 없는 조건 중 하나이기 때문인데요. 각종 한의원 프로그램에는 아이의 성장을 돕도록 오장육부의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질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특히 아이가 부족한 부분의 영양상태를 균형있게 맞춰주기 때문에 키가 자라는데 도움을 주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근본적으로 튼튼해 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도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키 작은 아이 무엇이 문제일까요?’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모두 충분한 부모님의 관심과 아이의 습관으로 형성될 수 있는 조건들이니만큼 가정에서도 아이의 키에 한결 더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아이의 키도 한뼘 더 무럭무럭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창평 엿(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엿은 도문대작(屠門大皭) (1611)에는 검은엿과 흰엿이 처음 기록되어 있고, 그 후의 문헌에도 계속 기록된다.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의 검은엿 만들기 재료는 쌀 소두 1말, 엿기름 1되 3홉, 더운물 1동이 반이다. 쌀을 잘 씻어서 물에 충분히 불려서 시루에 안쳐서 쪄놓고, 더운 아랫목에 항아리를 놓고 항아리 속에 엿기름가루 2줌을 놓고 뜨거운 지에밥을 그 위에 넣고, 손 담그기에 알맞은 정도의 더운물을 붓고 엿기름가루 남은 것은 축축하게 물을 뿌려놓았다가 밥 위에 방망이로 잘 저어서 덮어 두었다가, 7~8시간 후에 보면 맑은 물이 떠오를 것이니, 주머니에 퍼 담아 주물러 쪄서 식기 전에 솥에 붓고 끓이라”고 씌어 있다. 이렇게 만든 검은엿을 잡아 늘여서 공기가 들어가서 흰색으로 된 것이 흰엿이다. 엿의 원료는 찹쌀을 가장 많이 이용하고 그 밖에 멥쌀·옥수수·조·고구마녹말이 많이 쓰인다. 각 지방에 따라 유명한 엿은 전라도의 고구마엿, 충청도의 무엿, 강원도·경상도의 황골엿은 일명 옥수수엿, 강냉이엿 제주도에는 꿩엿, 닭엿, 돼지고기엿, 하늘애기엿, 호박엿 등이 있다. 엿은 우리의 생활 중에 "엿을 먹으면 시험에 붙는다."고 하여 시험을 치르러 가는 사람에게 꼭 합격하라고 선물하기도 하고 당일 아침에 엿을 입에 물고 가기도 하며, 혼례 때에는 엿을 보내면 시집살이가 덜 심하다고도 하며 시집식구들이 엿을 입에 물고 먹는 동안 새 며느리 흉을 잡지 못하도록 입막음을 한다는 등의 풍습이 아직도 통속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의 한과류 중 엿이 제일 먼저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엿의 단맛 때문에 음식의 맛을 내는 조미료로서의 이용가치뿐만 아니라,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 저장 특성 때문이었다. 또 특산물을 이용한 저장식이었다는 점에서,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엿이 만들어져 특색을 띠었다. 강원도에서는 옥수수로 만든 황골엿, 전라도의 백당엿, 무안지방에서는 고구마엿이 특히 유명하였다. 또한 제주도지방에서는 엿에 닭고기와 꿩고기를 넣어 만든 태식이 널리 알려졌었다. 엿이라는 말은 《잇다》 즉 잡아당겨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의미로 부터 유래된 고유한 우리말이다. 1771년에 편찬된 고사신서에서는 엿이 흰 찹쌀이나 흰쌀 또는 수수, 강냉이 등을 삭혀서 고은 것이라고 하면서 그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지방마다 특색 있는 엿도 있는데 평안도의 수수엿, 밤엿, 깨엿, 강원도의 감자엿, 고구마엿, 제주도의 꿩엿, 닭엿, 보리엿, 호박엿, 충청도의 무우엿이 유명하다. 엿은 구수한 맛이 나며 근기가 있어 우리 선조들이 기본당과로 많이 이용하였고, 더욱이 약재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고사신서》에는 찹쌀로 만든 엿이 약으로 쓰인다는 기록이 있으며 《동의보감》에도 갱엿이 허약한 몸을 추세우므로 늘 먹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엿은 몸 보신제는 물론 타박상을 당하여 어혈이 졌을 때와 물고기 가시가 목에 걸렸을 때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병에 약으로 쓰였다. 그리고 계피나무껍질, 마른 생강, 우무가사리, 매실 등을 넣어 만든 갱엿은 좋은 가래삭임약으로 이용되었다. 엿 관련이야기 중국 한나라 때 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子)에서는 태(台)를 기쁘다는 뜻의 이(怡)자와 열(悅)자로도 해석을 했기 때문에 보통 즐거운 것이 아니라 희열을 느낄 정도로 좋다는 뜻이 된다고 하니.. 먹으면 입을 방긋거리며 웃고 희열을 느낄 정도로 좋은 음식이 엿이라는 음식입니다. 때문에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 엿을 주는 의미는 엿을 먹고 철썩~ 붙으라는 의미도 있지만 합격의 희열을 만끽하라는 깊은 속뜻도 있는 것이래요. 우리 조상들은 정초 설날이나 정월 대보름 아침이면 소원을 빌면서 엿을 먹는 풍속이 있었는데 정월 초하루나 대보름에 먹는 엿을 복(福) 엿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복 엿을 먹으면 살림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부자가 된다고 믿어서 한 해 동안 돈을 많이 벌기를 빌며 엿을 먹었다는데 이 경우에는 주로 흰 엿을 먹었답니다. 그리고 대보름에 엿을 먹으면 일 년 내내 음식을 달게 먹을 수 있다고 믿었고 또 얼굴에 버짐이 피지 않는다고 해서 건강을 기원하며 엿을 먹기도 했답니다. 아무래도 음식이 귀했던 시절 곡물로 만든 엿을 보양식품으로 여긴 것에서 비롯된 풍습인 것 같습니다. 속뜻을 알고 보니 큰일을 앞둔 사람에겐 엿을 꼭 챙겨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상품정보 예로부터 전부 받은 제조기법 그대로 창평쌀엿! 창평쌀엿은 농한기에 예로부터 전수받은 제조기법 그대로 질 좋은 쌀과 엿기름만을 사용하여 당도가 높고 연하며 감칠맛 나는 전통쌀엿입니다, 창평쌀엿은 원료로 사용되는 쌀, 엿기름 등은 직접 재배한 수확물을 사용하며 물엿이나 화학감미료,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조선시대 양녕대군과 함께 창평에 온 궁녀들에 의해 전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입에 넣고 깨물면 바삭 소리가 나면서 깨진다.엿을 먹으면 이에 붙지 않고, 아이들은 손으로 부러트리며 엿치기 놀이도 한다고 전한다.창평현에 부임한 현감들이 궁중 대신들에게 선물로 많이 사용하기도 했다.창평에서 생산된 청정 쌀과 엿기름을 이용하며 식혜를 만들고 식혜물을 다려 조청을 만들고, 조청을 다려 강엿으로 만들고, 강엿을 가지고 엿을 늘리는데 늘리는 과정에 생강과 참깨를 첨가하여 섞으며 화로 불위에 삼베 물수건을 얹어 놓고 강엿을 잡아당기는데 이 과정에서 엿이 늘어나면서 바람이 들어가고 바삭거리는 엿이 된다.창평에서는 전통 쌀엿 영농조합 법인을 구성하여 체험 장도 운영하고 있다."창평 쌀엿은 정성이 반이다"며 사소한 부분까지도 온 정성을 들여야 한다.이익금이 적게 나더라도 재료는 제일 좋은 것을 써야한다. 창평사람으로 자존심을 잊지 말라는 어르신들의 조언에 따라 정성을 다해 쌀엿을 생산한다.지방에 따라 많이 생산되는 곡물이 다르기 때문에 사용하는 곡물에 따라 울릉도 호박엿, 고구마산지는 고구마엿, 강원도 옥수수산지는 옥수수 엿등 지방마다 특색 있는 엿이 생산된다. 창평에서는 넓은 들에서 생산되는 쌀을 이용하여 쌀엿을 만들었다.현재 마을에는 쌀엿 체험장도 있으며 겨울에는 체험도 가능다. 엿의 특성 엿은 원료는 찹쌀을 가장 많이 이용하고 멥쌀이나 옥수수, 고구마녹말, 좁쌀도 많이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엿을 먹으면 시험에 붙는다. 고 해서 수능시험 때 교문에 엿을 바르거나 당일 아침에 엿을 물고 가기도 하며, 혼례 때에도 엿을 보내는 등 선물용으로 이용했고, 어린애들이나 노인들의 간식용으로 사탕대신 이용한다. 엿을 한자로는 이(飴)나 당(餹), 성(餳) 등으로 표기하며 한약재로도 사용했다. 엿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오랫동안 졸여야 하고 솥에 눌어붙지 않도록 쉬지 않고 나무 주걱으로 계속 저어야 하기 때문에 인내심과 주의가 필요한 작업이다. 엿이 들어가는 처방 한방에서도 오래전에 엿을 약재로 사용했는데 장중경((張仲景 ; 150 ~ 219)의 상한론에도 처방약물 가운데 하나로 엿이 등장한다. 대건중탕(大建中湯)과 대건중탕, 황기건중탕 3가지 처방에 엿이 들어간다. 건중(建中)이란 말 자체가 소화기관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엿의 효능과 부합하는 처방이다. 엿과 소건중탕 소건중탕에는 엿이 40그램 들어가고 대건중탕에는 60그램 들어간다. 소건중탕은 피로나 허약체질, 식은 땀이 나거나 가슴이 두근거릴 때, 때로 복통이 있을 경우에 처방하는데 주로 어린 아이들에게 사용하는 처방이다. 처방구성을 보면 백작약(白芍藥) 12g, 계지(桂枝)·생강·대추 각 6g, 자감초 4g, 엿(膠飴) 40g을 넣고 달여서 하루 2~3번 마신다. 엿의 효능 엿은 원기를 회복시키고 소화기능을 보강하며 피로나 식욕부진, 인후통, 구강건조, 변비에도 효과가 있으며 가슴 두근거림이나 어지러움에도 사용했다. 또한 부자나 초오 같은 한약재의 독성을 완화하기도 한다. 엿기름의 효능 엿기름은 보리를 물에 불려서 2~3일 정도 지나면 길이 1Cm 정도의 싹이 날 때 말렸다가 거칠게 간 것인데 맥아(麥芽)라고 부르며, 예전부터 한약재나 엿이나 식혜를 만드는 재료로 많이 이용했다. 엿기름은 프로티아제와 디아스타제, 전화당 효소가 들어 있어서 소화작용을 돕고 전분을 맥아당과 포도당으로 분해시키고, 산모의 젖을 말리는 효능이 있다. 엿강정 엿강정은 설날 음식으로 많이 먹었는데 엿에 콩이나 건과를 버무린 다음 먹기 좋게 잘른 것으로 흑임자나 들깨, 참깨, 콩, 땅콩, 잣, 튀긴 쌀 등을 주로 사용했다. 깨강정은 볶은 깨를 엿으로 버무려서 엉기게 하여 밀어서 썬 것이다. 엿강정으로 사용한 재료는 대부분이 견과류나 깨 종류 였기 때문에 단백질과 비타민, 식물성 지방은 물론이고 인 등의 무기질이 풍부한 영양 식품이다. 엿 복용시의 주의사항 엿을 약용으로 사용할 때는 한번에 20그램에서 40그램을 달여서 먹거나 알약 형태로 먹는다. 엿을 먹고 나서는 반드시 양치질을 해야 충지를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임신부가 엿을 너무 많이 먹으면 태아가 너무 커질 수 있다. 엿만드는법 1. 쌀은 5∼6시간 불려서 찜통에 넣고 1시간 동안 푹 찐다.2. 엿기름을 체에 3∼4회 걸러 놓는다.3. 항아리에 끓여 60℃로 식힌 물, 엿기름 물, 쪄낸 밥을 함께 넣어 섞은 다음 뜨거운 방에 담요로 덮어 두고 10시간 정도 삭힌다.4. 발효되면 면포에 거른 다음 짠다.5. 걸러진 국물은 센 불에서 1시간 30분 동안 넘치지 않도록 끓인 후 중간 불에서 4시간 정도 저으면서 끓인다(찬물에 떨어뜨려 굳어진 엿을 먹어 보아 이에 붙지 않고 바삭거리면 달이기를 끝마친다).6. 5를 800g씩 나누어서 두 사람이 양쪽 끝을 잡고 10분 정도 잡아 당겨 늘인다(초벌 늘림: 늘이면서 통깨와 곱게 다진 생강을 섞는다).7. 솥에 젖은 삼베보자기를 덮은 석쇠를 올려 김이 나면 초벌 늘린 엿을 두 명이 석쇠 위에서 10∼15분 정도 늘리면서 엿의 넓이를 조정한다(두번 늘림: 삼베보자기에서 나온 김이 엿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런 결이 형성되고 엿이 하얗게 되면서 바삭거린다).8.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 엿의 종류 쌀 엿:엿기름가루를 삭혀서 만든 엿으로 엿 가운데 가장 달고 맛이 좋다. 무 엿:무를 채 썰어 넣고 조려서 만든 물엿이다. 고구마엿:고구마를 삶아서 메주처럼 찧어서 만든 엿이다. 옥수수엿:옥수수가루에 엿기름을 섞어 만든 엿이다. 통옥수수엿:통옥수수를 싹틔워 만든 엿이다. 호박엿:수수쌀을 놓아 만든 엿으로 애호박을 넣는다. 보리엿:보릿가루로 만든다. 하늘애기엿:차조로 고다가 하늘타리를 넣으면 약용이 된다. 약 엿:엿에 참깨·호두·생강을 넣고 나무판에 편 다음 대추를 드문드문 박아 만든 엿으로 몸이 아픈 사람들의 보혈강장제로 쓴다. 꿩 엿:봄철에 꿩고기를 넣고 조려서 만들며 약용으로 쓴다. 엿의 효능 엿은 임신 중에도 좋은 음식이라고 해요. 또한 정신치로 회복 작용이 있어서 공부할 때 도움을 주는 음식이었는데요. 수험생들에게 엿을 선물하는 것은 합격의 의미도 있지만 정신피로를 회복하여 공부 효율을 높이라는 의미이기도 해요. 또한 엿은 기관지염이나 기침에도 좋은 효과를 내는데요. 저도 만성 기관지염으로 오랜 기간 고생하다가 한 달 정도 생강 엿을 먹고 좋아졌답니다. 엿은 동의보감에 실릴 정도로 좋은 발효식품이라고 하는데요. 고려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좋은 전통 음식이라고 해요. 또한 잘 만들어진 엿은 어떠한 당분보다 몸에 더 좋다고 알려져 있답니다. 같은 당분이라도 사탕이나 초콜릿보다 훨씬 더 좋은 효능을 가진 음식이 이랍니다. 엿의 부작용 엿은 많은 장점이 있지만 충치를 유발하고 식욕을 항진시켜 비만을 일으키기도 하고,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나 눈이 잘 충혈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 사상의학에서는 엿을 소음인 체질의 음식으로 분류하고, 소양인은 많이 먹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엿은 찹쌀이나 멥쌀, 옥수수 등을 물에 불려 찌고 엿기름을 넣고 가열하면 전분이 포도당으로 변한다. 이것을 천천히 조리면 조청이 되고, 더 졸이면 물엿이 되며, 더 졸이면 강엿(갱엿)이 된다. 강엿을 여러번 잡아늘이면 내부에 공기가 들어가 빛깔이 희어지고 다공성으로 쉽게 부서져 먹기 좋게 되는데 가락형이나 넓적하게 굳힌 것이 바로 우리가 먹는 엿인데 김홍도의 풍속화에도 엿장수가 등장한다 . 관련근거 및 출처 도문대작(屠門大皭 , 동국여지승람, 고사신서, 설문해자(說文解子)
익산 용산 찹쌀엿(全北 益山 咸悅龍山 찹쌀엿, Korean taffy) 용산찹쌀엿은 익산시 황등면 대동마을에 전해오는 전통재래특산품으로서 입 속에 넣고 씹어도 전혀 달라붙지 않아 조선시대에 임금님에게 진상하였다는 말이 전해올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용산마을은 당초 함열읍(咸悅邑)에 속했었다. 이곳은 오랫동안 찹쌀엿을 만들어 먹었고 유명세를 치르다보니 진상품으로까지 올라가게 됐다. 100% 국내산 원료만을 사용하여 만든 전통 특산품으로 우리 구전 민요 "엿장수 타령"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찹쌀엿이다. 공장안에는 엿기름을 넣어 9시간 동안 삭혀둔 고두밥을 압축기에 넣고 찌꺼기를 걸러내는 작업 후 이렇게 걸러낸 엿기름물을 다시 솥에서 5시간 동안 졸이면 갈색 개엿이 만들어 지는데 식힌 개엿을 손으로 잡아 늘리면 찹쌀엿이 만들어진다. 100% 찹쌀과 참깨, 검정깨, 생강가루를 넣어 만든 엿으로 뒷맛이 개운하고 부드러우며 이에 달라붙지 않는다. "엿장수 타령" "울긋불긋 대추엿, 해멸용산에 찹쌀엿, 만주벌판에 수수엿, 강원도 금강산 도토리엿, 울릉도 호박엿, 헐찍이, 헐찍이 잘나간다. 이간장방 목침대만씩하고, 호남선 전봇대만씩한 놈 한가락에 1원이요" ‘해멸용산에 찹쌀엿’에서 해멸용산은 지금의 황등 용산을 의미한다. 해멸용산 찹쌀엿의 '해멸'이란 말도 '함열(咸悅)'이라는 지명의 발음이 어렵다보니 어르신들이 '해멸'로 불러왔으며 그 일환일 것으로 분석했다. 해멸용산(황등 용산) 찹쌀엿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에도 알려진 엿이며, 주요 엿으로는 찹쌀엿, 소나무숯엿, 조청, 갱엿 등이 있다. 익산 용산 찹쌀엿 해멸용산 찹쌀엿은 이 마을 부녀회가 주축이 되어 2004년 11월부터 만들고 있는데 이 엿은 원래 황등면 대동마을에서 집집마다 조상 대대로 만들어 왔으나 시대가 발전하면서 마을 원로 몇 분이 겨우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점차 사라지게 되어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만든 익산의 전통적인 엿이다. 김정순대표도 용산찹쌀엿’ 만들기에 뛰어든 것이 2004년부터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힘든 수작업 때문에 그만두고 유일하게 한집만 엿을 제조하던 때다. 사라져가는 전통문화가 아쉬워 익산시농업기술센터에 문의, 명맥을 이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우여곡절 끝에 마을 주부 5명과 함께 나선 것. 도비와 시비 4,000만원을 지원받아 텃밭에 60여㎡(20여평) 규모로 사업장을 마련했다. 시집온 뒤 알음알음 배운 것을 토대로 엿 만들기에 나섰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같이 시작했던 주부들도 손을 놓았다. 하지만 1년여 도전 끝에 김씨는 기계장치를 버리고, 고무나 플라스틱 그릇도 모두 치워버리고 모든 재료와 방식을 재래식으로 고집하기에 이른다. 항아리에 꼬두밥(찹쌀을 물에 불려 시루에 찐 밥)과 엿기름·물을 넣고 삭히는 전통적인 제조법을 선택해 본격적인 생산에 나선 것이다. 더구나 찹쌀부터 대부분을 직접 농사지은 재료로 조달하고 있으나 유일하게 자체 생산이 안되는 엿기름용 겉보리를 종자보급소에서 구입해 사용하고 있어서 중국산이니 뭐니 수입산 논쟁에서도 자유롭다. 이렇게 원료 수급에서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손으로 제작하는 탓에 어려움이 적잖으나 그야말로 슬로푸드의 대명사인 셈이다. 엿기름 거르는 망도 이물질이 나오지 않는 부직포로 바꾸어 원가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들어간다. 그런 연유로 이곳 엿은 한약재로도 각광받고 있는 상황. 푹 고은 것을 그대로 굳혀 만든 '갱엿'은 서울 대구 등 전국 한약방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갱엿에 콩가루를 묻혀가면서 늘이기를 반복해 만든 '찹쌀엿' 역시 기관지 질환에 좋아 알음알음 찾아오는 이가 많다. 찹쌀엿은 가을 추수기부터 이듬해 봄철까지 주로 생산한다. 갱엿(푹 고은 것을 그대로 굳혀 만든 검붉은 빛깔의 엿)으로 만들어 저온저장고에 보관한 뒤 활용한다. 두 사람이 갱엿을 잡고 늘리기를 반복하면 색깔이 뽀얀 흰색으로 변하는데 이것을 밤톨만하게 자르면 밤엿, 어른 검지손가락 굵기에 20㎝ 정도 길이로 만들면 가락엿이 된다. 갱엿은 한약재로 한방회사와 한의원 등에 납품하고 밤엿·가락엿·조청은 인터넷과 전화 주문, 지역 내 각종 행사장에서 판매한다. 전국에서 엿을 사러 마을로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인기가 높은 덕에 엿 판매로 연 2,500만~3,00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찹쌀엿 재료는 대부분 직접 생산한다. 찹쌀만 1년 평균 40㎏들이 150~170여가마를 사용한다. 깨·생강·콩도 3,300㎡(1,000평)의 밭에서 농사지은 것이다. 엿기름은 인근 종자보급소에서 겉보리를 사다 만든다. 대동마을 부녀회가 가공공장으로 문 열어 부업. 전통계승. 쌀소비로 1석3조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습니다. 해멸용산 찹쌀엿 만드는 법 1. 찹쌀 이외의 다른 물질이 없도록 깨끗이 씻은 후 찹쌀을 시루에 넣어 밥을 지으면 고두밥이 된다. 2. 고두밥과 엿기름과 물을 항아리에 비율을 맞춰 넣고 골고루 섞어 준 뒤 9시간을 기다린다. 3. 어렵게 9시간을 삭힌 고두밥과 엿기름과 물은 감주가 되는데 이 감주를 찌꺼기가 없도록 압축기에 넣고 걸러낸다. 4. 걸러낸 감주는 다시 가마솥에 넣고 불필요한 수분이 증발될 때가지 장작불로 끓인다. 이렇게 5시간을 졸이면 갈색 개엿이 만들어 진다. 5. 뜨거운 개엿을 식힌 후 5분 정도 잡아 늘이면 갈색 개엿이 흰색으로 변하게 된다. 이때 참깨와 생강가루를 넣고 다시 5분 정도 잡아 늘이면 찹쌀엿이 된다. 엿의 특성 엿은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식품이다. 각 나라별로 만드는 엿이 있지만 우리의 엿과는 완전 다른 엿이다. 외국의 엿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우를 이용한 엿인 반면 한국의 엿은 엿기름을 이용하여 곡물의 당분을 끌어내는 과학이 담긴 발효식품이다. 성분 또한 차이가 있다. 사탕수수를 원료로 한 외국의 엿은 과당을 함유한 이당류 내지는 다당류이지만 한국의 엿은 맥아당(말토스)이라는 두개의 포도당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당류이다. 우리의 몸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원 소비 순서는 탄수화물을 우선 사용하고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탄수화물 중에서도 당분을 우선적으로 에너지원으로 하여 신진대사를 하게 된다. 특히 뇌의 유일한 에너지원은 포도당이다. 그럼 우리 몸이 꼭 필요로 하는 포도당으로 구성된 엿은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을까? 기원은 정확하게 문헌에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고려시대에 집필된 향약집성방에 엿의 기원이 남아있다. 그리고 가야건국시조의 제사상에 처음으로 한과를 만들어 제사상에 올렸다는 기록도 있다. 한과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 조청이 엿을 만드는 원료이며 조청 또한 무른 엿의 일종이다. 그러니 엿의 기원은 어찌 보면 가야시대를 아우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엿이란 단어는 문헌상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여지승람이다. 그리고 광해군3년 허균이 집필한 조선팔도음식총람서인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책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어 지금까지 엿으로 사용되고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엿을 "이당" 혹은 '연당"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엿의 종류에는 ‘검은 엿과 흰엿이 있다.’ 라고 기록에 남아있다. 검은 엿은 곡물을 당화시킨 당화액을 불에 올려 고아 수분을 증발시킨 상태의 엿이며 흰엿은 검은 엿을 연신중첩 과정을 거쳐 공기를 넣어 놓은 엿이다. 그럼 엿은 왜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활용되었을까? 엿은 저온 보관시설이 없던 시대에 훌륭한 곡식저장 역할을 했다. 각 지방에서 재배, 생산되는 곡물을 엿기름을 이용하여 엿을 만들어 오래동안 보관을 하며 중요한 행사시에나 손님 접대용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특히 결혼 풍습 중에 이바지엿이 있는데 이바지엿은 맛있는 엿을 먹는 동안 시누이들의 험담을 막는다 라는 말은 엿이 그만큼 맛있다 라는 단편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이바지엿의 가장 큰 이유는 지방마다 생산되는 곡물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집안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이용하여 만든 엿을 사돈댁으로 보내 인사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다. 우리의 사회는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이기에 자신이 농사지은 곡물을 이용하여 만든 엿을 보내는 것은 가장 큰 인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재 설날이 되면 차례상에 올리는 가래떡의 유래가 가락엿에서 유래되었기도 하다.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는 가락엿을 차례음식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설날에 가락엿을 사용한 이유는 조상의 음덕을 기리기 위해 햇곡식으로 차례상을 차리게 되는데 추석에는 막 추수한 곡식으로 밥을 짓고 떡을 하여 차례상에 올리지만 겨울인 설날에는 햇곡식을 이용하여 음식을 올릴 수가 없는데 추수한 햇곡식을 엿으로 만들어 설날에 올리던 것이 지금의 가래떡이 되었으며 설날에 떡국을 만들어 올리게 된 기원이기도 하다. 이 사건과 달리 엿에는 우리의 신앙이 담겨있다. 무언가를 이어준다는 매개체적인 믿음이 담겨 있다. 합격에 이어주고 부부의 연을 오래토록 이어주고, 수명을 이어준다는 강력한 믿음이 담겨있는 식품이 엿이다. 엿이란 단어의 어원을 보면 이해할 만한 대목이다. 엿을 한자로는 이(飴)라고 쓰는데 이가 잇이 되고 잇이 엿이 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두 번째로는 이어지다의 자동사인 잇다에서 파생된 말이라는 설이 있기도 하다. “이어지다-있다-잇-엿!” 신앙적인 이유를 본다면 두 번째 설에 무게감이 있기도 하다. 기타 엿이라는 말은 당초 여시(여우의 옛말)에서 출발한다고도 한다. 갈색의 갱엿이 늘이기를 통해 흰색으로 변모하는 것도 그렇고, 또 따뜻한 곳에 두면 말랑말랑해지고 차가운 곳에 두면 굳는 현상도 여우의 변신성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일본어 표기는 飴(あめ, 아메), 사탕도 あめ라 표기하며 일본에서 엿은 사탕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사탕이라고 해서 절대 사당(砂糖) 따위로 쓰는 게 아니다. 중국에도 엿이 존재한다. 중국 호남성의 전통 과자 가게에서 주로 판매하는데,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파는 것이 아니라 일일히 수작업으로 만든다. 엿에 대한 오해 그럼 이토록 유익한 엿이 왜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게 된 것일까? 이유는 엿이란 단어에서 오는 불쾌감이다. 엿이란 단어의 불쾌감은 1960년대 경기중학교 입학시험에 나온 문제 때문이다. 경기중학교 시험 문제 중 엿을 만들 때 엿기름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이란 문제의 답은 "디스타아제" 였지만 일부학생들은 "무우" 를 정답으로 제출하여 오답처리 된 학생 중 32명이 불합격된 사건이 있었다. 무우를 답으로 제출한 학부모들이 무우엿을 만들어 무우엿을 당시 관계자들에게 던지면서 "엿 먹어라" 이것이 무우로 만든 엿이다. "엿먹어라 무우엿 먹어라"라고 한 사건이다. 결국은 항의성 농성에 의해 무우를 정답으로 제출한 학생들에게 정답으로 처리해준 이 사건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엿 먹어라"가 욕이 되어버린 사연이다. 엿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엿은 싸다’이다. ‘엿은 각설이가 파는 식품이다.’는 이야기는 천만의 말씀이다. 엿이 싸다는 생각은 근대사회에서 현대사회에 넘어오는 시기에 고물과 바꿔 먹을 수 있는 식품이였기에 싸다는 인식이 남아있다. 그러나 사실은 "아니올시다"다. 당시 고물이라고 하면 집안에서 사용하지 않는 놋쇠, 고철, 도자기 등인데 금 액으로 환산하면 단순 군것질거리와 바꾸어질 물건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엿을 먹기 위해 고물로 취급되어 넘어가기도 했다. 심지어 집안의 가보도 엿과 바꾸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러다 보니 엿은 내게 필요없는 물건을 주면 먹을 수 잇는 음식이었기에 싸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엿 만드는 체험을 한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엿이 싼 것은 잘못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품바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엿을 공연 후 판매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저장성이다. 엿은 다른 음식과 달리 부패하지 않는 음식이다. 이러다 보니 엿을 가지고 다니면서 전국순회공연을 하면서 엿을 팔게 된 이유가 이제는 엿을 파는 대부분의 상인들이 각설이 분장을 하고 판매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엿과 각설이는 동시에 이해하게 되는 동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분명한 엿의 실체는 근대사회 이전만 하더라도 사대부나 왕실에서 먹던 음식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엿을 수작업으로 고으는 곳에서는 엿 당번을 1일 4교대로 이틀을 꼬박 고아 타지않게 만드는 정성어린 식품이란 것이다. 엿은 정성이 반인 음식이다. 이제 한국전통음식의 대표주자인 엿이 서양의 사탕이나 초콜릿을 넘어서는 날을 기대해본다. 엿의 종류 엿은 지방의 특색에 따라 특산물을 주 원료에 첨가하여 제조한다. 이때 엿의 이름은 **엿이다. **는 특산원료명이며, 두음법칙이나 부사에 의해 변경될 수 있다. 전라도 창평 쌀엿:엿기름 가루를 삭혀서 만든 엿 무엿:무를 채 썰어넣고 조려서 만든 물엿 무안지방 고구마엿:고구마를 삶아서 메주처럼 찧어서 만든 엿 강원도 옥수수엿:옥수수가루에 엿기름을 섞어 만든 엿 통옥수수엿:통옥수수를 싹틔워 만든 엿 울릉도 호박엿:수수쌀을 놓아 만든 엿으로 애호박을 넣는다. 보리엿:보릿가루로 만든다. 하늘애기엿:차조로 고다가 하늘타리를 넣으면 약용이 된다. 약엿:엿에 참깨·호두·생강을 넣고 나무판에 편 다음 대추를 드문드문 박아 만든 엿으로 몸이 아픈 사람들의 보혈강장제로 쓴다. 제주도 닭엿, 꿩엿:봄철에 닭고기나 꿩고기를 넣고 조려서 만들며 약용으로 쓴다. 임실 삼계전통쌀엿 : 쌀과 엿기름을 고와서 만든 입에 달라 붙지 않는 엿이다. 엿의 성분과 영양 실제로 엿은 동의보감에 나와 있을 만큼 기관지 질환에 효능이 좋고 머리를 맑게 해줘 박사골마다 엿 문화가 발전해 있는 것도 그 반증의 하나라고 소개한다. 엿을 한방에서는 이당(飴糖)이라 하는바, 동의보감과 향약집성방의 이당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동의보감을 보면, ‘엿이라는 것은 즉 연당인데 건중탕에 쓰고, 비에도 들어갑니다. 엿이 토에 속하고 화에는 성하니, 습속의 열을 크게 일으키므로 많이 먹으면 비풍(脾風)이 움직인다. 쌀이 아무리 좋지마는 그 중 찹쌀이 가장 좋아서 약에 많이 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 또한 향약집성방을 보면, ‘엿은 맛은 달고 성질은 약간 따뜻하되, 몹시 허약한 것을 보하고, 갈증을 멈추며 궂은 피를 없앤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약 처방에 쓰는 엿을 교라고 하는데 꿀 같은 물엿이다. 건중탕에 많이 쓰는데 엿이 굳어진 것을 켜서 희게 한 것은 약으로 쓰지 않는다. 술이나 누룩, 엿을 만드는 데는 다 길금을 쓰는데 쌀이나 보리 등 원료에 따라 상·중품의 차이가 있다. 당루는 윤택하게 하는 데는 좋지만 술에 취하게 하는 데는 좋지 않다. 북쪽 사람들은 당이라 한다. 흔히 당료병, 당료병 하는데 당을 과다 섭취한 병이 바로 당료병이다. 엿은 멥쌀, 좁쌀, 역삼, 흰삽주, 죽대둥굴레, 지규자 등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약에는 찹쌀로 만든 것을 쓴다. 엿은 허한 것을 보하고 갈증을 멈추며, 비위를 든든하게 하고 몰린 피를 헤치며, 중초를 보한다고 하고 흰 것은 순무즙에 삶아 먹는다고 한다. 엿은 기력을 돕고 담을 삭이며, 기침을 멈추고, 오장을 녹혀 주고, 엿은 피를 게우는 것을 치료하고, 비장을 든든하게 한다. 그중에서 엉켜 굳어진 것이 좋다. 다쳐서 어혈이 진 데는 좀 타지게 졸여 술에 타먹으면 궂은 피가 내린다고 한다. 또한 상한에 독이 심하여 기침이 날 때에는 순무나 염교 즙에 타서 한번 끓어오르게 달여 단번에 먹이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브레인푸드 한 나라를 책임지고 다스려야 하는 왕을 위해 왕실에서는 몸에도 좋고 뇌에도 좋은 음식을 엄선해 상에 올렸다. 특히 조선의 왕들은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이부자리 안에서 조청(물엿) 두 숟가락을 먹고 난 뒤 학습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엿의 당분으로 잠든 뇌를 활성화시키는 과학적인 방법이다. 인간의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 뇌의 무게는 전체의 2%에 불과하지만 에너지 소비량은 20%에 육박한다. 이는 근육 전체가 사용하는 것과 맞먹는 양으로 뇌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근원은 포도당이다. 엿의 단 맛을 내는 맥아당은 포도당 두 개가 결합된 것으로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된 설탕보다 포도당을 두 배나 공급한다. 따라서 체내 흡수 속도가 빨라 먹는 즉시 두뇌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에너지원이 된다. 영조실록을 보면 과거 시험을 치르는 유생들이 저마다 엿을 하나씩 입에 물고 시험장에 들어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긴장으로 인한 복통에 좋다 수험생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긴장으로 인한 스트레스다. 스트레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장기는 위장으로 지나친 긴장이 위장을 압박하면 밥맛을 잃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속이 답답하고 꽉 막히는 증상이 나타난다. 흔히 말하는 '고3병' 증세. 수능 당일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은 갑자기 배가 아픈 것으로 한의학에서는 이를 '이급(裏急)'이라 하는데 '속이 급하게 고통을 호소한다'는 뜻이다. 엿의 가장 구체적인 효능은 바로 이런 배앓이 증상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중국의 약물총서인 중약대사전을 보면 '엿이 비위의 기를 완화하고 원기를 회복하며, 진액을 생성하고 속을 촉촉하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엿에 포함된 맥아당과 덱스트린 등의 성분은 정신적인 피로와 복통에 회복에 좋아 한의학에서는 엿을 '소건중탕'이라는 처방에도 썼다. 이는 만성피로와 복통에 주로 처방하는 것으로 엿이 소화장애와 배탈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기력을 보충하고 기침을 멈추는 엿 엿은 보리의 싹을 틔운 다음 이를 말린 엿기름(맥아)을 거른 물을 밥에 부어 당화시켜 장시간 고아 굳혀 만든다. 엿기름에는 빈혈과 당뇨 등 성인병에 좋은 생리활성물질이 풍부하며, 비타민B, 철분, 엽산 등 30여 가지의 효소와 시금치나 우유보다 몇 배나 많은 칼륨과 칼슘이 들어 있다. 엿의 단 맛을 내는 맥아당에는 이 같은 곡류의 다양한 영양 성분이 녹아 있으며, 특히 기력이 없고 허약해 나오는 기침과 가래에 효과를 발휘한다. 선조들은 폐 기능이 약해져 기침을 많이 할 때면 배를 갈라 엿을 넣고 고아 먹는 민간요법을 쓰기도 했다. 병을 앓는 환자에게 단 음식을 권하는 것도 당분에 기력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및 출처: 가야연당. 위키백과
 ...가능한 마가목 껍질은 물을 넣고 이틀 동안 다려야 만들어 지는 마가목 약엿을 볼 수 있다. 마가목 약엿은 관절명이나 신경통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이 하루에 한 번 먹으면 효과가 있다. “허리가 굽은 노인들도 마가목 지팡이를 집고 다니면 허리가 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경통에 아주 효능이 좋다. http://wisdoma.tistory.com/1564
보통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므로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는 이 탈모증에 호도깨엿은 굉장한 희소식이 되리라고 본다. 재료 호도 250g, 검은깨 250g, 누런 설탕 200g, 굴 50g, 유채기름, 물 200ml 요리법 1. 후라이팬에 유채기름을 두르고 검은 깨를 볶아 낸다. 2. 약한 불에 누런 설탕, 꿀, 물을 넣고 졸여서 시럽을 만든다. 3. 시럽에 호도와 검은깨를 넣고 섞는다. 4. 접시에 기름을 바른후에 3을 옮겨 평평하게 펴서 식힌다. 5. 굳은 후 적당한 크기로 썬다. 해설 흑호마라고도 하는 검정깨는 지방유와 호마유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 또 자양강장 및 해독효과가 있어 뽕나무 잎고 더불어 상마환이라고 하여 대머리 치료에 널리 이용된다. 호도는 백발은 검게하는 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자양, 혈맥윤활과 피부윤택에도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따라서 이 호도깨엿은 머리털이 자주 빠지거나 새치의 경우, 백발을 검게하고 빠진 모발에서 머리카락이 자라게 하는 효과를 얻을수 있다.
&nb...sp; 형에 의하여 쫓겨난 아우가 호랑이의 말을 엿들어 성공하고, 그 형은 아우를 본뜨다 망했다는 내용의 설화. 신이담(神異譚) 중 응보담(應報譚)에 속한다. ‘거지형제’, ‘착한 아우’, ‘호랑이 이야기 엿듣고 횡재한 동생’ 등으로도 불린다. 1,500년 전의 중국의 불교문학서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종교설화집에 보이며, 중세에 기록된 ≪아라비안나이트≫와 ≪펜타메로네≫ 등에도 실려 있다. 우리 나라 전 지역에 걸쳐서 구전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악한 형과 착한 아우가 살았는데, 하루는 형이 아우의 눈을 멀게 하고는 내쫓았다. 아우는 나무 위에서 자다가 우연히 호랑이들끼리 하는 말을 엿듣고, 그 말대로 어떤 샘을 찾아가 눈을 씻고 멀었던 눈을 떴다. 또한, 물이 없어 고생하는 마을에 가서 물 나올 곳을 일러 주고 그 보답으로 부자가 되고, 어느 부잣집 외동딸의 병을 고쳐 주어 혼인하게 되었다. 이 말을 들은 형은 아우의 흉내를 내다가 실패하고 벌을 받았다. 이 설화는 매우 오래된 것이면서,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다. 톰슨(Thompson,S.)의 유형 분류 613번 ‘두 여행자들(The Two Travelers)’은 두 명의 여행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외에는 마른 샘에 물이 솟게 하거나, 불모의 과일나무에 열매를 맺게 하고, 땅속에서 보물을 파내는 등 여러 가지 과업을 수행하여 부자가 된다고 하는 내용이 우리 나라의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국내 자료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형제 사이라는 점, 비밀 지식을 호랑이나 도깨비 혹은 산신령에게 지시받는 경우도 있다는 점, 최후에 착한 아우가 악한 형을 용서하고 맞아들이는 경우도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우애 및 권선징악이라는 주제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설화에 내포되어 있는 주요 모티프로는 〈흥부놀부설화〉의 선악 형제, 〈새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설화의 도청, 〈도깨비방망이〉설화의 모방 실패 등을 들 수 있다.≪참고문헌≫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 The Types of Folktales(Thompson,S., Helsinki, 1961), The Folktale(Thompson,S., New York,Holt, Rinehart and Winston, 1946).신이담 중 응보담에 속하는 민간설화의 하나. '잘되고 못되기' 가운데 '잘될만 한데 못되기'로 분류할 수도 있다. '거지형제', '착한 아우', '호랑이 이야기 엿듣고 횡재한 동생' 등으로 불린다. 1,500년 전의 중국의 불교문학서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종교설화집에 보이며, 중세에 기록된 '아라비안나이트'와 '펜타메로네' 등에도 실려 있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출처: http://www.seelotus.com
젊었을 적부터 유 ...도 잊지 않았다. 장날이 되면 유 초시는 회천댁이 좋아하는 검은 깨엿을 가장 먼저 사서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이러니 회천댁은 동네 여인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단 하루라도 회천댁처럼 살아봤으면 한이 없겠네.” “회천댁은 무슨 복을 타고나 저런 신랑을 만났을꼬.” 회천댁도 유 초시를 끔찍이 사랑해 봄이면 병아리를 서른마리나 사와 정성껏 키워 유 초시 상에 백숙을 올리고, 바깥출입도 없이 유 초시를 하늘처럼 받들었다. 부부는 슬하의 삼남일녀를 모두 혼례를 치러 세간을 내고 맏아들 내외와 살며 열손가락으로 꼽기에 넘치는 친손과 외손을 두었다. 살림살이는 넉넉하고 속 썩이는 식솔도 없어 유 초시는 오십 초반에도 얼굴에 주름 하나 잡히지 않았다. 친구들은 거의 모두가 젊은 첩을 얻었건만 유 초시는 오로지 회천댁뿐이다. 유 초시는 요즘도 장날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품속에서 검은 깨엿을 꺼내 회천댁 손에 쥐여주고 회천댁 치마끈을 푼다. 기나긴 운우의 정을 나눈 후 땀에 흠뻑 젖은 회천댁이 베갯머리송사로 “한평생 나리의 사랑을 듬뿍 받아 소첩은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첩을 얻으셔도…” 하면 유 초시는 그때마다 입맞춤으로 회천댁의 입을 막았다. 어느 날, 밥맛이 없다며 상을 물린 유 초시는 외출하고 돌아와 저녁상도 두어숟갈 뜨다 말더니 그날 밤 잠을 못 자고 한숨만 쉬었다. 이튿날부터는 사람이 달라졌다. 회천댁이 찬모를 제쳐 놓고 정성껏 차려 온 상을 간이 맞지 않는다고 던져 뜨거운 국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회천댁은 팔에 화상을 입었다. 한평생 말다툼 한번 없었던 사이에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 점잖던 유 초시 입에서 천박한 욕지거리가 예사로 튀어나왔다. “저년을 데리고 한평생 살아온 내가 바보천치지!” 한집에 사는 맏며느리 보기가 부끄러워 회천댁은 홍당무가 되었다. 유 초시는 이제 잠도 사랑방에서 혼자 자더니 어느 날 “첩살림을 차렸으니 찾지 마” 한마디를 남기고는 집을 나갔다. 회천댁은 눈물로 나날을 보내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를 악다물고 “그놈의 영감탱이 눈앞에 안 보이니 속 편하네” 하며 생기를 찾았다. 집을 나간 유 초시가 한달 만에 돌아왔다. 손자 손녀들과 아들 내외가 맨발로 마당을 가로질러 반겼지만 회천댁은 나오지 않았다. 유 초시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눈은 빨갛고 얼굴은 검고 팔다리는 살이 쪽 빠졌는데 배는 불룩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삼일 만에 이승을 하직했다. 정나미가 떨어진 회천댁은 49재 내내 눈물도 나지 않았다. 가장이 된 맏아들이 삼베 두건을 쓴 채 장 보러 갔다 와서 제 어미 방에 검은 깨엿을 놓고 갔다. 한입 깨물다가 눈물이 쏟아져 회천댁은 보료 위에 엎어졌다. 봄이 되자 맏아들이 곰취를 한가득 따왔다. 어디서 구했는지 봉선화 모종을 가져와 담 밑에 심었다. 그날 밤 회천댁이 맏아들을 불러 앉혀 놓고 다그쳤다. 딱 잡아떼던 맏아들이 마침내 털어놓았다. “아버님께선 의원한테 죽을병이라는 걸 듣고 정을 떼려고 어머니께 그렇게 모질게 대했던 겁니다. 제게 당부를 하시더군요. 장에 가면 깨엿을 사다 드리고 봄이 되면 곰취를 따다 드리고 담 밑엔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꽃, 봉선화를 심으라고….” 회천댁의 대성통곡에 맏아들도 목이 잠겼다. [출처]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깨엿, 곰취 그리고 봉선화|작성자 화풍
도라지엿장조림 ●재료통도라지 200g, 통깨 약간, 마른 홍고추 1개, 다시마물 1컵, 조림양념(고운 고춧가루 1작은술, 간장 2큰술, 생강즙 ½큰술, 설탕 2큰술, 다시마물 1컵), 물엿 1큰술 ●만드는 법1. 통도라지는 껍질을 긁어내고 싹이 나는 부위를 잘라낸 다음 씻는다.2. 씻은 도라지는 5cm 길이로 잘라 굵은 것은 반으로 나누어 끓는 물에 데친다.3. 마른 홍고추는 송송 썰어 속씨를 털어 낸다.4. 분량대로 조림양념을 만들어 골고루 저어 준다.5. 조림양념에 도라지와 마른 홍고추를 넣고 속까지 맛이 들도록 조려 담고 마지막에 물엿을 넣어 윤기가 나도록 한다음 그릇에 담고 통깨를 뿌려 준다.
...!! 좋은 성적을 기원합니다 합격을 부르는 엿의 효능 엿은 정신피로, 회복작용이 있어 과거 공부할 때 상복하였다. 사람은 에너지를 필요로 할 때 단 것에 강한 욕구를 느낀다. 이 감미에의 욕구는 피의 포도당 즉 혈당의 분량이 공복감을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부같은 심한 정신노동에 이 감미가 좋다는 오랜 체험에서 형성된 지혜가 아닌가 싶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전통 엿 스트레스를 받거나 정신노동을 많이 하면 단 것이 많이 먹고 싶은데요 이것은 머리를 많이 쓰거나 긴장할 경우에 혈당을 에너지로 많이 쓰기 때문입니다
창평 엿(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엿은 도문대작(屠門大皭) (1611)에는 검은엿과 흰엿이 처음 기록되어 있고, 그 후의 문헌에도 계속 기록된다.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의 검은엿 만들기 재료는 쌀 소두 1말, 엿기름 1되 3홉, 더운물 1동이 반이다. 쌀을 잘 …
익산 용산 찹쌀엿(全北 益山 咸悅龍山 찹쌀엿, Korean taffy) 용산찹쌀엿은 익산시 황등면 대동마을에 전해오는 전통재래특산품으로서 입 속에 넣고 씹어도 전혀 달라붙지 않아 조선시대에 임금님에게 진상하였다는 말이 전해올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용산마을…
원주 치악산 장바우 황골엿 대표 식품명인 70호 김명자원주 치악산 장바우 황골엿 대표인 김명자씨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 태어났고 소초면 흥양3리 황골이 고향인 남편 김찬열 씨와 결혼하며 원주에 정착하였다. 봄에는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며 가을에는 수확…
전통한과 전문쇼핑몰, 담양창평한과, 창평쌀엿, 한과선물세트, 유과, 강정, 약과, 조청, 부각 등 판매.한국전통식품 제21호 쌀엿제조명인
삼계엿
창평엿은 먹을 때 바삭바삭하여 입 안에 붙지 않고 먹고 나서도 찌꺼기가 남지 않으며 맛이 독특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름철에는 녹아서 붙지 않도록 콩가루나 쌀가루를 묻힌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서의 쌀엿 생산은 조선조 양녕대군이 낙향했을 때 궁녀들에 의…
창평쌀엿은 조선시대에 양녕대군이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 지역에 낙향하여 지낼 때, 함께 동행했던 궁녀들이 전수해준 것으로 이 지역에 부임한 현감들이 궁중 대감들에게 선물할 때 사용한 엿으로 유명하다. 창평쌀엿은 먹을 때 바삭바삭하여 입안에 붙지 않고 먹…
식품명인 65호 즙...고 거기에 고춧가루, 고춧잎, 가지, 노각, 무, 메줏가루, 누룩가루, 엿기름가루 등을 넣고 혼합하여 3일 정도 발효 숙성시키면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반찬으로 태어난다. 야채가 들어가는 데다 소금 대신 집간장을 넣어 저염식이다.“야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