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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서 발견한 선조들의지혜 창과 풍경이 하나 되다
15-07-07 23:03

 
개별의 변증법을 이루다
족자 작용에 나타난 ‘창 스스로 풍경이 되다’가 더 발전하면 ‘창과 풍경이 하나 되다’가 된다. 수애당 중문을 보자. 중문 너머 보이는 솟을대문과 쌍둥이로 닮으면서 액자와 풍경요소 사이의 구별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액자와 유사한, 혹은 거의 똑같은 모습이 액자 속에 하나 더 있는 것이다. 창과 풍경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한옥에서는 이런 장면이 종종 나타난다. 주로 대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볼 때 나타난다. 이런 해석의 출발점은 변증법적 통합이다. 창과 풍경요소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정-반’의 관계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형식과 내용, 주체와 객체, 주체와 대상 등 여러 층위에서 그러하다. 우리의 전통적 세계관에서는 ‘정-반’의 관계를 불이사상에 기초한 화합적 어울림으로 정의한다. 이를 ‘개별의 변증법’이라 부를 수 있다. ‘거울 작용’은 이것의 좋은 예다. ‘정-반’의 관계는 풍경요소가 자연물일 때 확실하게 형성된다. 풍경은 족자의 인공성과 ‘정-반-합’의 변증법적 통합을 이룬다.
 
그러나 헤겔의 변증법과는 다르다. 헤겔의 변증법에서는 ‘합’의 상태가 절대적 질서로 귀결되는 것으로 전제되며 ‘정’과 ‘반’의 요소는 여기에 도달하기 위한 하부 요소로 정의된다. 절대성을 전제로 위계가 개입하는 것이다. ‘정’과 ‘반’의 요소는 단순히 위계만 낮은 것이 아니라 ‘합’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소멸될 수도 있다. ‘합’을 만들어내기 위한 재료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으로 절대주의의 억압구도의 전형적 예다. 한옥의 ‘창과 풍경이 하나 되다’에는 이런 것이 없다. 최종 상태에 대한 전제조건이 없다. 자연물과 인공요소는 각자의 본성을 유지하면서 어울리면 된다. 어울림의 최종 상태는 둘의 단순 병렬일 수도 있고 제3의 상태로의 통합일 수도 있다. 나타나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각자의 감성과 취향에 따라 즐기고 감상하면 된다. 목적과 가치를 선험적으로 개입시키지 않으며 조작도 가하지 않는다. 위계도 없다. 개인 요소의 존재를 충분히 보장한다. 개인 요소와 전체가 모두 동격이다. 그렇기에 정과 반으로 대별시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 이런 질서구조는 개별의 변증법이라 부를 수 있다.
 
 
불이(不二)사상과 ‘타자’ 개념을 구현하다
개별의 변증법에서는 쌍방향 교류가 요점이다. 생활 속 상식으로 환원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쯤에 해당된다. 그 바탕에는 불이사상이 있다. 불이사상에서는 이항대립 요소 사이에 다툼과 갈등이 일어나는 출발점을 ‘분별’로 본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생각이 모든 다툼의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이때 ‘나는 너와 다르다’는 말 속에는 ‘자존감’ 같은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라는 차별의식이 더 크게 깔려 있다. 나의 우월을 보여주기 위해 위계를 만들게 되고 이를 위해 너를 제압하려 한다. ‘거울작용’에서는 나와 너, 주체와 객체, 액자와 풍경 사이에 분별이 없다. 분별이 없으니 우열도 없다. 본디 우열이란 분별하려는 부질없는 욕심에서 발생한다. 내가 남과 다르고 싶은 마음은 백이면 백 남보다 우월하고 싶은 욕심으로 결론난다. ‘창과 풍경이 하나 되다’에는 이런 것이 없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무심하게 어울리려는 평등한 통합을 지향한다. 이런 관계에는 사실 친소를 따지는 것이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둘이 친해야 가능한 일이다. 풍경작용을 하도 많이 하다 보니 무척 친해져 창이 스스로 풍경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형식과 내용 사이의 불이적 관계를 통해 한국적 어울림과 조화의 개념을 잘 보여준다. 주체와 객체,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균등한 상호교차를 바탕으로 한 쌍방향 어울림의 전형이다. 어울림의 참뜻은 두 가지 내용을 갖는다. 하나는 개체가 존중되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런 개체들이 동등하게 함께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체는 자유롭게 살아 움직이며 각자 편한 대로 변할 수 있다. 최종 어울림은 이런 개체들이 알아서 상호 존중과 조율에 의해 만들어내는 양보와 협력의 상태다. 독락당 솟을대문을 보자. 여러 장의 지붕이 혼재하나 제어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지붕들은 각자 처지를 지키며 잘 어울린다.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없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최적의 상태로 귀결되기 때문에 경험적이고 귀납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타자’ 개념과 유사하다. 서양철학에서 ‘타자(Other)’, 즉 객체의 존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주제였다. 데카르트 이전까지는 아직 타자의 개념이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았다.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기독교 문명은 공통적으로 총체적 절대 질서에 묶이면서 개체의 존재에 큰 의미를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에 들어와서 타자는 주체로서의 나와 기본적으로 갈등의 관계에 있으며 나의 의지로 나에게 종속시켜 대상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정리되었다. 데카르트 이후 이 개념은 도전을 받으며 새로운 대안이 또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객체의 절대성을 존중하자는 절대적 타자 개념이 주류를 이루며 포스트모더니즘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여전히 큰 문제 하나가 해결되지 않았다. 객체의 절대성을 존중은 했지만 이것이 주체의 절대성과 충돌이 일어나는 문제였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다시 여기에 수정을 가하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는데 앞에 얘기한 한국적 어울림의 두 가지 조건이 핵심적 내용을 이룬다.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면 또 다른 남이 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서로 어울리는 것이 타자의 진정한 의미가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개념이 탄생했다. 한옥의 ‘거울작용’에서는 이미 이 개념을 잘 구현해 보이고 있다.
 
거울작용 - 거울에 비추이듯 반복하다
‘창과 풍경이 하나 되다’가 해석적 관점이 아닌 실제 눈에 보이는 장면의 관점에서 잘 나타난 대표적 예가 거울작용이다. 말 그대로 거울에 비춰보듯 유사한 장면이 대칭적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거울작용이 제일 많이 일어나는 장소는 문이다. 문이 액자를 이루고 문 속 풍경요소가 이 문을 닮은 경우다. 지붕을 공통요소로 공유하는 경우가 제일 많다. 액자가 문일 경우 그 위에 지붕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문 속 풍경요소에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경우다. 연경당 솟을대문을 보자. 문 속에 문을 닮은 문이 하나 더 있다. 양쪽에서 반복되는 지붕이 핵심 매개다. 거울을 비추듯 닮았다. 거울작용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자경작용이 되어야 한다. 액자는 인공요소이기 때문에 거울작용이 일어나려면 집의 일부가 풍경요소일 때가 가장 좋다.
둘째,관찰자가 문밖에서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래야만 풍경요소가 집의 일부가 되어 문과 유사성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안에서 밖을 보면 풍경요소가 마을 풍경이나 먼 산 등이 되어서 거울작용이 일어날 수 없다.
셋째, 가능한 한 문에 근접해서 봄으로써 액자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이 좋다. 문밖 담이 문에 지척에 있기 때문에 문과의 유사성을 확실히 해준다. 문에서 멀리 떨어져 보게 되면 문 옆 행랑채 등이 화면에 함께 들어와서 공통 요소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진다. 액자도 작아지기 때문에 액자 속 풍경요소와의 유사성을 시각적으로 감지하는 정도가 약해져 거울작용을 방해한다.

문 속 풍경요소에서 지붕이 중심 역할을 담당하면서 액자를 만드는 문의 지붕과 닮는 경우가 거울작용의 가장 흔한 현상에 해당된다. 액자를 이루는 문의 지붕이 마치 액자 속에서 증식해서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때 증식과 반복을 유발하는 매체를 거울의 반사작용으로 설정한 개념이 거울작용이다. 실제 모습을 보더라도 거울작용이 일어나는 장면에서는 마치 문을 거울로 비춰서 문 속에 하나 더 넣어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거울작용은 한옥에서만 일어나는 매우 독특한 풍경작용으로 만만치 않은 사상적 배경을 가질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시킨다. 
                                출처: 한국문화재재단   글˚임석재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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