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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전장포새우젓 1.jpg
 
 
양평 창대리 고가 박공 한 번 멋들어지네
15-09-12 15:14
토요일 오후라서 인가 양평으로 올라가는 도로에 차들이 많다. 양평읍 창대리에 있는 경기도 민속자료 제7호인 <창대리 고가>를 찾아보려고 길을 나섰다. 아무래도 한 번 길을 나서는 것이 쉽지 않다보니, 길을 나서면 몇 군데를 돌아오고는 한다. 그래서 길을 나설 때는 늘 걱정이 앞선다.
 
오늘은 또 어디를 갔다가 허탕을 치고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다. 고택을 돌아보다가 보면 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향교나 서원 등은 거의가 문을 걸어놓는다. 그래서 답사를 나갈 때마다 마음속으로 기도 아닌 기도를 한다. '오늘은 제발 문이 활짝 열려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창대리 고가 양평읍 창대리에 있는 경기도 민속자료 제7호인 창대리 고가. 지은 지가 200년이 되었다
 
굳게 닫혀버린 문, 주위만 겉돌아
 
오늘도 역시 그 불안이 적중했다. 여주 대신면을 지나 양평군 개군면을 거쳐 양평읍으로 들어가기 전에 좌측으로 들어가는 창대리. 창대3리에 들어서면 좌측으로 고가가 보인다. 앞에는 철탑에 '정각사'라는 간판이 하나 걸려있다. 창대리 고가는 지은 지가 200년 정도가 된 집이다. 경기도의 전형적인 농촌 중류가옥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고가이다.
 
대문 앞에 도착하니 자물통이 걸려있다.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다. 들어갈 만한 곳이 없다. 사랑채와 안채를 잇는 일각대문도 안으로 걸려있다. 밖에서 아무리 소리를 쳐도 인기척이 없다. 대문간 앞에 두 마리의 개가 짖는 소리만 요란한 채.
 
  
▲ 고가 대문 창대리 고가 대문. 자물통이 걸려있다. 대문롸 일각문을 통하지 않으면 안쪽으로 들어 갈 수가 없다.
 
ㅁ 자형의 전형적인 경기도 중류농촌가옥
 
현재 정각사라는 절로 변한 창대리 고가는 ㅁ 자형으로 된 전형적인 경기도 중류 농촌가옥이다. 대문을 중앙에 두고 좌측으로는 사랑채가 앉아있고, 우측으로는 행랑채와 광채가 ㄱ 자로 꺾여 배열이 되어있다. 안채는 사랑채와 일각문으로 연결이 되었으며 이 또한 ㄱ 자로 배열이 되어있다. 문이 잠겨 있어 안채의 정면을 볼 수 없는 것이 답답하다. 안채와 광채 사이에는 공간이 있어, 뒷마당으로 드나들 수가 있다. 창대리 고가는 최근에 보수를 한 듯 밑 마당 한편에는 낡은 목재가 쌓여있다.
 
단아한 모습으로 앉은 사랑채
 
사랑채는 안채의 남쪽에 밖을 향하고 자리를 잡았다. 앞에는 마루를 깔고 좌측에는 마루방으로 꾸몄다. 우측에는 두 칸의 방이 있으며 대문과 연결이 되어있다. 사랑채는 정면 3칸의 보편적인 형태로 지어졌으며, 잘 다듬은 기단 위에 사다리꼴 모양의 주춧돌을 놓았다. 대문에 붙은 행랑채보다 앞으로 돌출이 된 사랑채. 그저 평범한 듯한 이 사랑채는 앞마루에 앉으면 조금 떨어진 우측 능선 위에 있는, 수령 500년이 지난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 아마 흐드러지게 은행 알이 달린 그 나무의 가을은 상상만 하여도 장관일 듯 하다.
 
  
▲ 사랑채 앞에는 마루를 깔고 좌측에는 마루방으로 꾸몄다. 우측에는 두 칸의 방이 있으며 대문과 연결이 되어있다. 사다리꼴의 주추를 놓았다
  
▲ 대문과 사랑채 사랑채는 대문보다 앞으로 돌출이 되어있다.
 
고택을 답사하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추위를 막기 위해 문에 쳐놓은 비닐이다. 어디를 가나 겨울만 되면 이런 형태로 겨울을 날 채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고택의 모습을 흉하게 만든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니 무엇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일각문 안으로 본 행랑채
 
꽉 막힌 창대리 고가. 나름대로 여기저기 촬영을 한다. 이렇게 잠긴 고택을 답사하면서 생긴 버릇 하나가, 조그마한 틈만 보여도 그 안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버릇이다. 때로는 바닥에 엎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주변 산위로 올라가서 촬영을 하기도 한다. 답답하기는 하지만 내친 걸음이니 어떻게 하랴. 일각문 위로 까치발을 하고 올라서 행랑채를 들여다 볼 수밖에.
 
  
▲ 행랑 일각문 안으로 본 행랑채. 마루방과 방이 있고 이어지는 광채는 부엌과 헛간, 곳간 등이 있다
     
사랑채와 대문으로 이어지는 행랑채는 대문 곁에 마루방을 들였다. 그리고 ㄱ 자로 꺾이는 부분에는 방을 들이고, 부엌과 광, 곳간 등이 자리를 하고 있다. 대문을 안으로 들여다보니 안을 벽을 막아 바람이 안으로 직접 들어오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 바람벽을 쳤다. 사랑채의 뒤는 그저 평범한 한옥과 같이 처리가 되었다.
 
집 뒤쪽으로 추리를 해보는 안채
 
몇 번이고 집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안채를 볼 수가 없어 답답하다. 절이라고 해서 안을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들뜬 마음으로 찾아왔는데. 뒤편의 모습으로 안채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가끔은 이런 재미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ㄱ 자형으로 꺾인 안채는 안방이 정남향을 보고 있다. 사랑채와 가지런히 안방과 건넌방, 부엌 2칸이 있다. 안방과 대청마루는 직각으로 꺾여있다. 안방서부터 대청, 건넌방까지는 모두 툇마루로 연결이 되어있다고 하는데 볼 수가 없다. 이런 형태는 딴 가옥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 안채 뒤 방 뒤에는 마루를 놓고 부엌은 두 칸으로 꾸몄다
  
▲ 안마당 담 밖에서 들여다 본 안마당. 좌측이 행랑채와 연결이 된 광채. 우측이 안채다. 안채의 박공부분은 기와로 줄을 넣어 멋을 더하고 있다
 
 
안채가 자리한 뒤로는 뒷마당이 있다. 안채의 방 뒤편에도 마루를 놓아 여유를 부렸다. 뒤로 본 부엌은 한 칸은 부엌으로, 한 칸은 광으로 사용을 한 듯하다. 부엌으로 사용한 한 칸은 밑에 나무로 만든 창살을 붙여 환기가 되는 것을 도왔다. 담을 돌아보니 마당 안이 보인다. 절이기 때문에 마당 한 가운데 탑이 있다. 안채 건넌방의 박공부분은 기와로 줄을 멋을 부렸다. 농촌 중류가옥이긴 해도 나름대로의 멋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가옥이다.
 
 
 
창대리 고가. 결국 안채의 앞모습을 보지 못한 체, 길을 떠나고 말았다. 시간이 허락이 된다면 다시 한 번 찾아가 안채의 모습을 소개하려고 한다. 조금은 아쉬운 발길이지만 다음 답사지가 있으니, 마냥 머무를 수도 없는 일. 돌려지지 않는 발길을 옮긴다.      출처 : http://rja49.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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