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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전장포새우젓 1.jpg
 
 
도심 한가운데 초가 한 채, 비가오니 운치 있네.
15-09-12 15:20
사람이 사는 안식처, 바로 집이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집은 사실 우리들의 집은 아니다. 이웃과 소통이 막혀버린 꽁꽁 싸맨 그런 집들은 정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찾아 나선 것이 바로 우리 선조 때부터 살아온 ‘고택’이다. 그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200여 채가 넘는 고택을 둘러보았다.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는 날 문화재를 답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은 카메라에 신경이 자꾸 쓰인다. 연신 뿌리는 빗방울을 닦아내도 금방 뿌옇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볼 것은 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문화재 답사다.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383에 소재한, 중요민속문화재 제123호인 '수원광주이씨월곡댁'으로 향했다.
 
 
몇 년 전에는 이 집은 '파장동 이병원가옥'이었다. 이렇게 명칭이 바뀌면 가끔 애를 먹기도 한다. 옛 이름을 갖고 찾아다니다가 엉뚱한 곳으로 길 안내를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월곡댁은 지어진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데서 더 의미를 두는 집이다. 안채의 대청 상량문에 의하면, 조선조 고종 25년인 1888년(광서(光緖) 14년 견자(犬子) 3월 18일 유시(酉時))에 건축이 되었다.
 
도심 한가운데 남은 초가 한 채
 
이 집은 수원에 있을 때 몇 번인가 들려보았던 집이다. 초가를 올린 집이라 지붕을 보수하고 있을 때도 다녀간 적이 있다. 그런데 주변이 너무 많이 변해있다. 집은 안채를 둘러싼 담 밖으로 ― 자형의 헛간채가 있고,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와 바깥채가 ㅁ 자 형으로 꾸며져 있다.
 
 
 
파장동 월곡댁에 도착해 보니 도심 어디나 그러하듯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다. 이리저리 몇 바퀴를 돌아다니다가 할 수 없이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비는 계속 쏟아지는데 손바닥만 한 우산 하나 밖에 의지할 것이 없다. 이럴 때는 참으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을 망설이야. 사람은 비를 맞아도 카메라만 맞지 않으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비를 맞고 월곡댁으로 향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안채와 바깥마당을 조금 떨어진 헛간채의 사이에도 몇 대의 차가 서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앞에도 차를 대어 놓아 사진을 찍기가 불편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차를 비켜서면서 사진을 찍어댄다.
 
사방이 트여있는 ― 자형의 헛간채
 
안채와 바깥마당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는 헛간채는, 20세기 중엽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월곡댁은 살림채는 담장으로 막았지만, 바깥마당은 사방으로 트여 있다. 헛간채 남쪽으로 비켜서 마당 안으로 출입하는 입구를 내었다. 헛간채는 넓은 5칸 정도로 꾸며졌다. 그 맨 끝에는 방으로 놓아 안채와 별도로 이곳에서 헛간채를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헛간채 앞에 몇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어,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그래도 이렇게 비가 오는 날, 답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맙기만 하다. 헛간채는 방과 광 등으로 꾸며졌는데, 광문의 크기와 모양이 다 다르다. 아마 사용하는 용도에 따라, 그 크기를 달리한 듯하다.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수가 운치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담 안에 꾸며진 안채와 바깥채
 
원래 이 월곡댁의 집 뒤로는 낮은 산이 둘러져 있고, 앞으로는 조그마한 개울이 흘렀다고 한다. 주변에는 오랜 한옥이 많고 감나무가 있어 예스러운 멋을 풍겼다고 하는데, 지금은 주변에 집들이 답답할 정도로 들어차 있다.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초가 한 채가 자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바깥채에 달아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누군가 문을 열고 나온다. 사진을 좀 찍겠다고 이야기를 한 후 안채를 둘러본다. 안채는 평범한 ㄱ 자형으로 부엌과 대청, 안방과 건넌방으로 꾸며져 있다. 이 집의 초가지붕은 두께가 대단히 두껍다. 안채의 구성은 동편의 끝이 부엌이고 이어 안방이 있다.
 
 
 
대청을 두고 있는 건넌방은 문밖으로 툇마루를 둘러놓았다. 집은 그저 평범한 듯하면서도 재미가 있다. 안채의 부엌은 안마당으로 쪽으로 반 칸을 더 내밀어 놓았다. 그리고 그 앞에 툇마루를 놓아 안방과의 연결을 용이하도록 하였다. 건넌방도 위아래 칸으로 나누어졌으며, 앞쪽이 약간 돌출되어 있다. 아마 이렇게 부엌과 건넌방을 돌출시켜, 서해안에서 안채로 불어오는 바람을 최대한 막아낸 듯하다.
 
사랑채로 사용한 바깥채
 
월곡댁은 지정 당시 명칭이 '파장동이병원가옥'이었던 것이 바뀐 이유는, 소유자 이병원의 모친인 성주 도씨가 과거 안산군 월곡면에서 이곳으로 시집와 지은 가옥으로, '월곡댁'으로 불린 것을 반영하였다고 한다. 2007년 1월 29일자로 '수원 광주이씨 월곡댁'으로 지정명칭을 변경하였다.
 
 
안채와 마주하고 있는 바깥채는 사랑채의 용도로 쓰였다. ㄴ 자형의 바깥채는 꺾인 부분에 중문을 두고, 들어서면서 좌측으로는 방이 있고, 우측으로는 광과 방이 있다. 이 바깥채는 조금은 옛 모습에서 달라진 듯하다. 사랑채는 위아래 방을 안채와 직각이 되게 배치를 하고, 중문이 부엌을 향하게 하였으며, 마당 앞에는 헛간과 외양간이 있었다고 한다.
 
 
 
집을 지은 년대가 남아 있는 수원광주이씨월곡댁. 비가 내리는 날 찾아간 월곡댁은, 도심 한가운데 자리를 하고 있다. 정작 집안에 사는 사람들이야 불편하겠지만, 이렇게 비가와도 찾아다니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고맙기 한이 없는 소중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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