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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는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임시관직으로 임금이 직접 지방에 파견하는 관리였다
15-09-19 14:40
암행어사는 어떤 사람일까요?
암행어사는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임시관직으로 임금이 직접 지방에 파견하는 관리였어요.
암행(暗行)은 몰래 다닌다는 뜻이고, (御史)는 왕의 명을 받아 특별한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된 관리예요.
그러니까 암행어사는 "왕이 특별한 임무를 주어 지방에 몰래 파견한 관리"라고 할 수 있지요.
여러분은 암행어사를 어떻게 알고 있지요? 죽기 일보직전의 춘향이 앞에 나타나 변사또를 엄하게 꾸짖는 이도령이 먼저 생각나나요? 전국 방방곡곡으로 다니면서 백성들을 어려움에서 구해주는 어사 박문수가 생각나나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그러나 춘향전에 나오는 이도령이나 여러분이 알고 있는 어사 박문수의 일화들의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소설이랍니다. 이제 암행어사에 대해 좀 더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아볼까요.
 
암행어사는 언제부터 왜 파견했을까요?
암행어사는 조선시대 11대 왕인 중종 때부터 지방에 파견한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어요. 조선시대에는 왕이 신하와 백성들 위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때지요. 그런데 그때는 교통과 통신시설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서 왕이 지방 구석구석에서 일하는 지방관리들까지 일일이 감시하고 백성들의 형편을 살펴 통치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왕이 몰래 관리를 파견하여 지방관리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행여 잘못하고 있는 일은 없는지 살펴서 보고하도록 했던 거지요.
 
물론 중종 이전에도 지방관리에 대한 관리와 감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사헌부에서는 "행대감찰"이라는 사헌부의 관리를 각 지방에 파견하거나 지방에 "분대어사"라는 사헌부의 분소를 두어 지방관리들을 살피고 조사하게 했어요. 경찰서에 여러 개의 파출소가 딸려 있는 것과 같지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도 지방에 대한 감시와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왕이 직접 암행어사를 파견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중종 이후에는 지방의 탐관오리의 횡포가 극심하여 기존에 있던 행대감찰과 분대어사에 더하여 암행어사까지 파견하게 된 것이지요.
 
암행어사는 어떻게 임명되었을까요?
암행어사는 과거에 급제한 젊고 능력있는 사람 중에서 임명했어요. 암행어사는 처음에 왕 혼자서 임명하여 파견하다가, 나중에는 중요한 관직에 있는 신하들이 몇 사람을 추천하면 왕이 그 중에서 선정하여 파견했어요. 전국의 모든 지역에 항상 암행어사를 보낼 수는 없고, 보통 2년에 한번씩 여러 지방 중에서 암행어사를 보낼 곳을 추첨으로 결정하여 파견했어요.
한번 보낼 때마다 절반 정도의 지방에 보냈기 때문에 지방마다 보통 4년에 한번씩 암행어사가 파견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특별히 그 지방과 관련이 있는 사람은 파견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되면 공정하게 지방관리의 잘잘못을 따지고 백성들이 사는 형편을 살펴보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암행어사는 왜 마패를 가지고 다녔을까요?
왕이 암행어사를 임명할 때는 봉서(封書)와 사목(事目), 마패(馬牌) 등을 함께 주었어요. 먼저 봉서는 "누구를 어느 지방의 암행어사로 삼는다"는 임명장과 같은 것인데, 겉에는 "남대문을 벗어나서 뜯어볼 것" "파견된 지방에 도착하여 뜯어볼 것" 이라고 씌어 있었어요. 암행어사가 파견되는 곳과 그 임무가 미리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요. 사목은 암행어사가 해야 할 일 또는 지켜야 할 것을 정해놓은 책이에요.
암행어사에게 수여한 봉서(封書)와 마패(馬牌)
그럼 , 마패는? 마패(馬牌)에 말이 그려진 것 보셨지요? 말이 한 마리 그려져 있으면 1마패, 두 마리 그려져 있으면 2마패, 세 마리 그려져 있으면 3마패라고 해요. 당시의 교통기관은 전국으로 통하는 큰길의 길목마다 역(驛)이라는 관청이 있었어요. 오늘날의 기차역이나 버스정류장처럼 말의 역 또는 말의 정류장인 거지요. 역에서 마패를 보이면, 마패에 그려진 말의 수만큼 말을 이용할 수 있었어요. 여러분이 3마패를 갖고 있다면? 역에 가서 말을 세 마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마패는 암행어사만 가진 것이 아니고, 지방으로 파견되는 관리들도 갖고 다니는 것이었어요. 또 마패를 보이면 말뿐만 아니라 역에서 일하는 군사들인 역졸들도 동원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왜 어사를 모시는 역졸은 그 마패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암행어사 출두"를 외쳤을까요? 나중에는 이 마패가 말을 빌릴 수 있는 표시일 뿐만 아니라 암행어사의 신분을 증명하는 표시가 되기도 했거든요. 이 마패는 암행어사가 도장으로도 사용했어요. 참 큰 도장이지요.
 
“암행어사 출두”는 어떻게 할까요?
암행어사는 신분을 감추고 몰래 다니기 때문에 어사를 직접 파견한 왕만 알고 아무도 모르게 되어 있었어요.
꼭 필요한 경우에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본격적인 직무를 시작했지요. 암행어사가 출두할 때는 부하나 역졸을 이끌고 관아 앞에서 "암행어사 출두"를 외쳤어요. 그러면 부사나 목사, 군수, 현감 같은 그 지방의 수령만 빼고 모든 직원들이 나와 어사를 맞이했어요. 암행어사가 들어오면 수령은 관복을 입고 예를 갖춘 다음 동헌을 내놓고 보통 직원실로 옮겨서 처분을 기다려야 했어요. 춘향전에서 봤지요?

암행어사는 그 관아의 문서들을 쭉 늘어놓고 살펴보고, 창고를 조사하고, 죄인의 죄를 다시 물어 억울한 사람이 없는가를 확인했어요. 만약 잘못이 밝혀지면, 잘못된 문서나 물품을 압수하여 창고를 봉하고[封庫] 관찰사나 왕에게 보고했어요. 수령의 잘못이 매우 크거나 시급한 일일 경우에는 직접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고[罷職] 나중에 보고하기도 했어요.
이야기한 토막
“탐관오리를 즉시 처벌하지 않았다고 처벌받은 암행어사”
정조 때 이희갑 이라는 호남 지방에 파견된 암행어사가 있었어요. 이희갑은 나주에서 진휼(나라의 곡식을 풀어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것)을 잘못하여 백성들이 많이 굶어죽은 것을 알면서도 출두하지 않고 돌아왔어요. 정조는 크게 노하여 즉시 돌아가 다시 조사하도록 했어요.

이희갑은 다시 조사하고 돌아와서 64명이나 굶어죽는 등 나주 목사 조시순의 죄가 크므로 봉고파직(封庫罷職 )해야 한다고 왕에게 보고했어요. 보고를 받은 정조는 "봉고파직할 만한 일이 있으면 암행어사가 알아서 봉고파직할 것이지 왜 보고하고 나서 뒤늦게 하려 하느냐"고 엄하게 꾸짖은 뒤에 암행어사 이희갑을 파직시켜 버렸어요.
 
암행어사는 임무를 마친 뒤에 왕에게 보고를 했어요.
암행어사는 자신의 임무를 모두 마친 뒤에 서계 (書啓)와 별단(別單)이라는 두 가지의 보고서를 왕에게 바쳤어요.
서계:관찰사나 수령의 잘잘못을 구체적으로기록한 보고서, 별단:백성들의 사정과 생활형편, 효자와 열녀등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적은 보고서
서계는 관찰사나 수령의 잘잘못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보고서예요. 별단은 자기가 보고들은 백성들의 사정과 생활 형편, 효자와 열녀 등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적은 보고서예요. 왕은 암행어사에게서 이 서계와 별단을 받아보고 잘못한 것은 바로잡고 잘한 것은 상을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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