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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향 이야기
15-06-13 14:30

침향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은 아래와 같다.
 
◆ 왕이 지시하기를 "관료들이 귀중한 수입품인 침향을 앞다투어 사치품으로 쓰고 있으니 지금 이 시간부터는 진골계급을 포함하여 침향사용을 엄히 금지한다."(삼국사기 - 신라 헌덕왕 11년)
 
◆ 문종(文宗)의 나이가 연로하고 건강이 쇠퇴해지면서 마비 증상이 생겨 국내 많은 명의가 진료처방을 하였으나 증상이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중국 송(宋)나라 왕에게 신농백초(神農百草, 100종의 약초)를 부탁하였으며, 이에 송나라 왕은 고려에 파견되는 88명 사신중 한림(翰林)의관(名형조)과 100종류의 약재도 보냈다. 약재목록을 보면 침향이 맨앞에 열거되어 있었는데 이는 침향이 당시 얼마나 진귀한가를 잘 나타내 주는 부분이다. (고려사 9권 - 세가 9)
 
◆ 송나라와 금(金)나라 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송나라는 고려를 우방국으로 만들기 위해 귀중한 선물을 자주 보내왔다. 한 번은 송왕이 사신 서덕영(徐德榮)을 통해 금각과 은각에 침향을 가득히 채워서 고려국왕에게 보내도록 했다. (고려사 9권 - 세가18)
 
◆ 기유(己酉)왕은 침향으로 불상을 조각하여 궁전에 모셔 둘 것을 지시했다. (고려사 17권 - 세가17)
 
◆ 세종(世宗)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진귀한 약재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주사(朱砂)와 용뇌(龍腦)는 비록 귀한 약재라도 중국에 가면 구할 수 있지만 침향은 중국에서도 쉽게 구하지 못한다. 그리고 왜인들 역시 널리 다른 나라에서 구하여 오는 것이니 비록 갑절을 주더라도 가하니 예조에게 이를 의논하라." (세종 14년 서기1431년, 3집 421면)
 
◆ "듣건데, 귀국의 그림 병풍과 그림 부채는 제조가 매우 정교하며 침향으로 새긴 부처는 더욱 진묘하다고 하니 만약 보내 준다면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세조 3년 서기1457년, 7집 200면)
 
◆ 영상 김전이 병이 위독하여 침향강기탕을 조제해 쓰려고 하나 침향을 구하지 못하는 사실을 정원이 왕에게 아뢰자 왕이 내의(內醫) 한 사람을 보내어 합당한 약을 조제하도록 지시했다. (중종 18년 서기1523년, 16집 193면)
 
◆ 세자가 어려서부터 몸에 지니던 침향염주가 분실되자 궁인이 상전(上殿)에 아뢰어 의심스런 사람을 엄히 신문할 것을 청하였다. 세자는 "만일 그렇게 한다면 옥석이 함께 타는 화가 생길 것이니 그럴 필요가 없다. 이러한 보물은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니다가 결국 가야
할 데로 돌아갈 것이니 다시 볼 수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하였다. 과연 그 뒤에 염주는 전매되어 궁중에 들어 왔고 대내를 수리하던 공인이 창을 뚫고 훔쳐갔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때 비로소 공인을 치죄하니 나머지 무고한 사람들은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듣는 자들이 모두 세자의 어짐과 총명에 탄복하였다 한다. (중종 36년 서기 1541년, 18집 442면)
 
◆ 성종(聖鐘)25년 호조참판 이집과 참의 신수근이 와서 아뢰기를 왜인들이 가격을 과도하게 올려 이로 인한 폐단이 심해짐을 우려하므로 왜인과의 사거래를 금지함이 옳다고 하니, 왕이 이르기를 "나머지 물건은 무역할 필요가 없으니 용뇌(龍腦), 대랑피(大浪皮), 침향(沈
香)을 모두 국용으로 긴용하니 그 값을 물어서 무역하도록 한다" (성종 25년 서기1593년, 12집 546면)
 
◆ "제전(祭奠)도 짐이 제사를 지내지 않을 경우에는 침향을 쓰지 말고 자단향(紫檀香)으로 대용하도록 하라" (정조 10년 서기1785년, 45집 568면)
 
◆ 인산전(因山殿)에 날마다 다섯 번 전(奠)을 올리는데 친
전할 때에는 경신년의 전례에 의거하여 대내(大內)에서 내린 침향을 진용하고 대전(代奠)할 때에는 자단향(紫檀香)을 봉입(封入)하라고 명했는데 이는 승지의 계품(啓稟)을 따른 것이다. (순조 5년 서기1804년, 47집 505면)
 
◆ 매번 조선국왕이 즉위하면 송, 청나라에서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 물품을 보내온다. 이때 반드시 침향과 관련된 선물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예로 침향색 소례 복갑, 침향병풍, 침향부채, 침향색 예복 등이 있다.
 
◆ 일본 정부와 상인은 조선시대 침향 공급의 주요 제공처였다. 예로 일본 장군들이 세종에게 침향을 주요 예물로 받쳤으며, 일본 국왕이 불경을 얻기 위해 조선 국왕에게 침향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 왕들은 공로가 있는 관료들에게 침향, 금, 은으로 만든 물품을 하사했다. 이로 인해 관료들은 침향과 침향으로 만든 장식품 소유가 자신의 신분 직위의 상징이 되었다. 침향이 희소진귀하며 간신들은 왕에게 침향을 절제하여 쓸것과 관료들이 침향으로 만든 장식품 사용을 금지하도록 건의 하였다. 장식품으로는 도금변 침향대, 침향이 장식된 악기 등이 있다.
 
◆ 불교에서 예부터 가장 고급의 염주는 침향으로 만든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고승은 평소에 침향염주를 쓰면서 심령의 평온을 구하고 병으로 위급한 사람을 만나면 침향을 써서 구했다고 한다.
 
◆ 옛적에 고승 한 분이 사방을 떠돌면서 불법을 전파하셨는데 침향으로 만든 108 염주를 갖고서 난치병 환자나 위급한 환자를 만날 때마다 염주 한 알씩을 떼내어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 환자에게 먹게 하여 병을 고쳐주면서 자신이 죽기 전에 병자들을 위해 자신의 염주를 모두 다 쓸 수 있기를 희망했다는 전설이 있다.                                       출처 : 약용작물종자종합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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