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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시대의 평원왕의 딸인 평강공주(平岡公主) 의 남편은 장군 온달(溫達)
15-10-24 15:04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생몰년 미상. 고구려시대의 공주. 평원왕의 딸이며, 남편은 장군 온달(溫達)이다. 삼국사기 온달전에 의하면, 공주는 어릴 때에 잘 울어서, 왕이 희롱하여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말하였다.
그 뒤, 커서 시집갈 나이가 되어 왕이 명문귀족 집안에 시집보내려했지만 공주가 이를 거부하였다. 왕이 노해 궁궐에서 쫓아내니, 공주는 온달을 찾아가 혼인하였다. 그녀는 눈먼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고, 바보스러운 남편 온달에게 무예와 학식을 가르쳤다.
공주의 도움과 가르침을 받아 온달은 뛰어난 무예를 지니게 되었다. 얼마 뒤, 온달은 매년 3월 낙랑(樂浪)벌에서 열리던 사냥대회에서 남다른 활약을 보여 왕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온달은 고구려의 장수로 발탁되었다.
그 뒤, 북주(北周)의 군대가 침공해왔을 때, 온달이 고구려군의 선봉이 되어 적을 격파하고 대공을 세웠다. 평원왕을 이은 영양왕 때, 온달은 한강유역을 회복하기 위해 신라를 공격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 시체를 넣은 관을 운반하려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달려와 관을 어루만지며 돌아가자고 말하니, 비로소 관이 움직여 이를 매장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 온달전의 내용에서 전하는 평강공주의 행적은 당시 사회에서는 퍽이나 파격적인 것이다. 그녀는 집안의 문벌이나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애정에 의해 결혼을 한 훌륭한 여인으로 칭송되기도 하였다. 또한 불우한 처지의 남편을 도와 입신출세하게 한 현명한 아내의 본보기로 내세워지기도 하였다.
온달전의 내용은 설화적인 면이 짙다. 그러나 그것을 전혀 허구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 속에서 일정한 역사적 사실을 추출해보려는 시각이 필요하다. 다음과 같이 풀이해볼 수 있다.
먼저 당시의 시대상으로 보아, 그리고 위의 내용으로 볼 때도, 온달은 출신이 미천한 바보였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는 당시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고급 귀족집안 출신은 아니었고, 아마도 하급귀족 정도 신분의 인사로서 무사로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발탁되었던 인물로 여겨진다.
그러한 그를 왕이 사위로 맞이하려고 언약하였다. 그런데 이는 당시 신분제도와 관행에 비추어 어려움이 있고, 반발도 있어 왕이 취소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공주가 언약을 지킬 것을 고집하며 온달에게 시집갔다.
이 파격적인 공주와 온달간의 결혼을 두고 당시 귀족집안의 사람들이 야유와 시기를 하게 되어, 온달을 미천한 바보로 묘사하는 설화를 낳게 되었다. 자기들과는 다른 족속이나 신분에 속한 이를 이상하게 생긴 못난 인물로 묘사하는 예는 고대사회에서 널리 보인다. 이렇게 풀이해볼 때, 평강공주는 고구려의 귀족사회를 살아갔던 현명하고 정열적인 한 여인의 모습을 나타내준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溫達傳의 檢討(李基白, 白山學報 3, 1967).
자료출처: http://www.seelot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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