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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사람이 그리는 한 폭의 수채(水彩)와 선유도

바다와 사람이 그리는 한 폭의 수채(水彩)와 선유도 
군산 앞바다 60여 개 섬들이 무리를 이룬 고군산군도. 이렇게 무리 진 섬과 바다 한가운데 병풍처럼 둘러선 섬들에 싸여, 바람 불어도 성내는 법 없는 바다를 품은 선유도가 있다. 신선도 머물러 노닐었다는 이 섬의 아름다움을 엿보러 나섰다.
 
촘촘한 섬의 무리로 들어서다
새벽에 서울을 출발해 부랴부랴 군산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늦은 줄 알고 서둘렀지만 선유도행 배편을 끊고 보니 오히려 시간에 여유가 있다. 늦은 아침을 위해 군산의 짬뽕명가를 찾았다. 매콤한 국물이 바닷길 나설 이의 허한 위장과 가슴을 풍부한 맛으로 채워준다. 어느덧 쾌속선은 군산항을 저 멀리 던져두고 바다 한 가운데로 나왔다. 얼마나 바닷길을 달렸을까.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바다 사이로 촘촘한 섬의 무리들이 소리 없이 몸체를 드러낸다. 선유도(仙遊島). 이름을 그대로 풀어내면 ‘신선이 노니는 섬’이다. 이름에서조차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선유도 남쪽에 선유봉(112m)이라고 있어요. 여기 보이죠? 선유도 위쪽에 자리한 망주봉(104.5m)과 남악산(155.6m)도 선유도의 대표 봉우리죠. 그런데 선유봉 모양이 꼭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것 같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섬 이름이 선유도가 되었어요.”
섬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네 이장님께서는 이른 봄 찾아온 여행객이 반가운지 연신 커피를 권하며 섬 안내를 자청한다. 이장님의 말처럼 선유도의 풍경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곳곳이 아름답다.
선유도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잡은 것은 망주봉(望主蜂)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사연이 있음직한 우뚝한 두 개의 바위산, 간신들의 모함으로 귀양 온 한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하며 매일 바위산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았다 해서 그 이름을 망주봉이라 했다. 해발 104.5m의 이 봉우리에 큰비가 내리면 높은 봉우리에서 7, 8개의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장관을 이룬다고 하는데, 여름철 운 좋게 방문해야 볼 수 있는 절경이라고 한다.
망주봉 아래로는 초승달 모양의 완만한 고운 모래 백사장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유명한 명사십리(明沙十里)이다. 천연 해안사구 해수욕장으로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맑은 모래가 깔려 있다. 해당화가 만발하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지천이었던 예전엔 달 밝은 밤에 명사십리를 보면 평생 그 모습을 잊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 옛 모습을 다 볼 수는 없지만 지금도 명사십리의 모래 위를 걸으니 정말 신선놀음을 하는 것처럼 즐겁다.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섬 경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선유봉(해발 112m)에 오른다. 10여 분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정상에 서니 북쪽으로 말도, 보농도, 명도, 방축도가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서있는 모습이 마치 어깨동무라도 한 것 같다. 동으로는 신시도가, 서쪽으로는 관리도와 장자도가 마주 서있어 말 그대로 선유도는 섬들에 에워싸여 있다.
01. 바다의 아침을 여는 고기잡이배 
02. 해풍을 맞으며 건조중인 대구
 
섬에서 섬을 건너다
선유도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이웃 섬들을 둘러보는 재미를 놓칠 수 없다. 선유도와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는 섬끼리 다리로 이어져 있어 걷거나 자전거로 다녀올 수 있다. 본섬인 선유도에서는 북쪽 남악마을과 남쪽 옥돌해수욕장까지 볼거리들이 넘친다. 남악마을 뒤편으로는 자그마한 몽돌해변이 들어서 있고, 망주봉을 에돌아 달리면 기도하는 손 모양의 등대도 만난다. 선유도의 숨은 비경은 선유봉 아래 옥돌해변이다. 바다가 구비구비 휘돌며 파도의 흔적을 새겨놓은 암벽들이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전하는 곳으로 명사십리와는 사뭇 다른 바다의 풍경을 품고 있다. 선유도에서 장자대교를 넘으면 장자도 와 대장도다. 예전 조기와 멸치잡이가 성했던 장자도는 고군산군도의 천연 대피항으로, 태풍이 오면 어선이 피하는 주된 피항지이자 어획량에 따라 울고 웃는 곳이었다. 환경과 기후 변화로 인해 고군산 앞바다에 형성되었던 어장이 사라진 지 오래라 선유 8경중 하나인 장자어화(壯子漁火) 만이 한때 이곳이 황금어장이었다는 것을 증언할 뿐이다. 장자어화의 영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전거를 타고 장자대교를 넘어가던 관광객들이 푸른 바다의 풍취에 취해 잠시 멈춰 선다.
선유대교를 건너 무녀도로 들어서면 마을 분위기는 완연히 바뀐다. 선유도, 장자도가 관광어촌의 성격이 짙어졌다면 무녀도는 오롯이 섬사람들만의 삶터다. 섬 안에는 민박집도 드물고 해변에는 고깃배들만 을씨년스럽게 흩어져 있다. 무녀도에는 예전 염전이 성했지만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03. 어촌 풍경을 간직한 선유도마을 
04. 기도하는 손 모양을 닮은 등대
 
선유도의 붉은 해가 진다
태양이 바다를 건너는 시간. 태양이 하루의 마지막 숨결을 선유도의 바다와 갯벌에 토해내기 시작한다. 갯벌 위로 황금 그림자가 뚝 떨어지더니 하루를 마친 태양이 바다위에 붉은 안녕을 남기고 열도의 섬들 사이로 고요해진다. 서해 어디인들 낙조가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을까 싶지만, 선유도에서 보는 낙조는 아름다움을 넘어 장엄함을 지녔다. 각기 저마다의 전설과 신화를 안고 점점이 떠있는 섬과 섬 사이로 해가 질 때, 선유도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서해는 온통 새빨간 노을로 적막강산이다. 이 붉은 풍경은 이루어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황홀한 느낌을 주어 보는 이의 말문을 막히게 한다.
해가 지고 나니 햇볕 물러난 자리에 바람이 불어온다. 바다를 건너고 갯벌을 넘어온 바람에게 선유도의 갯벌과 숲은 길을 내주고 제 몸을 숙인다. 숙소로 향하는 길, 바람이 머물고 인적이 숨어버린 선유도의 신선이 놀던 자리에 잠시 백로가 신선 노릇을 하고 있다.
05. 장엄함마저 느껴지는 선유도 낙조
 
섬의 아침은 바람으로 시작된다
이튿날 섬의 새벽은 바다 소리와 함께 찾아온다. 지난 밤, 달빛에 끌려 멀리 나섰던 바다가 새벽과 함께 섬으로, 갯벌로 돌아오는 소리가 잠을 깨운다. 그 바람은 사람도 깨우고 바위와 풀숲을 휘돌며 섬에 깃든 모든 생명을 흔들어 깨우기라도 할 듯 거세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들고 나는 바다가 일상의 시간표라고 했다. 바닷물이 들기 전 할머니는 부지런히 갯벌로 나선다. 갯벌은 끊임없이 들며나며 서해바다가 제 몸 움직여 키워낸 논밭이다. 그 논밭을 제 밭 만들려고 할머니는 바다보다 부지런히 살아왔으리라. 그렇게 바다와 함께 살아오느라 섬 할머니의 손과 얼굴엔 바다보다 깊은 주름이 새겨진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또 흐리면 흐린 대로 선유도에서의 시간은 빠르기만 하다. 꿈같은 이틀의 시간을 뒤로 하고 뭍으로 돌아갈 배를 기다리는 시간. 아쉬움 때문일까, 선유도가 섬도 육지도 아닌 것이 되는 순간 모든 풍경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선유도는 곧 뭍과 연결될 운명이다. 앞섬 신시도까지 새만금방조제가 이어지더니 신시도와 무녀도 사이에도 다리가 놓일 예정이다. 섬으로 만나는 선유도와의 조우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뭍과 연결되더라도 섬사람들은 자동차가 난무하지 않는 섬으로 남기를 희망하고 있다. 멀어지는 선유도의 풍경을 바라보며 어제 기도등대에서 빌지 못한 소원을 빈다. 선유도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섬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길.
                     출처 : 문화재청홈페이지   글 이현주 사진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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