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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적상산성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있는 고려 말기의 산성.
사적 제146호. 지정면적 214,975㎡, 둘레 약 3,000m. 현재 북문지·서문지 및 사고지()가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산성은 석축으로 둘레 1만6920척, 높이 7척이었으나 이제는 폐성되었다고 한다. 당시 성내에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고 못이 4개소, 우물이 23개소 있었다.
1612년(광해군 4)에 실록전(殿)이, 1614년에 사각()이, 1641년(인조 19)에 선원각()·군기고()·대별관()이 1643년 호국사() 등이 세워졌는데, 이들은 별장·참봉·승장 들이 거느리는 무리에 의하여 수호, 보존되었다.
성벽은 무너져서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불과 90여년 전만 하더라도 사각 등의 수리를 위하여 고종이 수리비를 지급하였다는 사실이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성이 있는 상산()은 상성산()이라고도 하는데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요로이기도 하였으며, 산 가운데에는 넓은 분지가 있다.
고려 말에 거란병이 침입하였을 때 인근 수십여 곳의 군현이 도륙되었는데도 여기에 사는 주민들만은 그 참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최영()은 이 곳에 산성을 축조하고 창고 짓기를 건의하였으며,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도 이곳을 살펴본 뒤 반드시 축성하여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말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포인트- 안국사
우리나라의 산성 안에는 관군 외에 성을 지키는 승군(僧軍)이 있었다. 관군을 유지하기 어려운 국가 재정으로 인해 성안에 사찰을 짓고 여기에 수도하는 승려들이 성을 지키는 역할까지 맡았다.

적상산성에도 안국사를 비롯해 호국사 등이 있었다. 사찰의 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산성의 비중이 높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현재 적상산성 안에는 안국사만이 남아 있다.

안국사(安國寺)는 고려 충렬왕 3년(1277) 월인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조선 초기 무학대사가 국가의 앞날을 위해 성을 쌓고 이 절을 지었다고도 전한다. 어느 설이든 적상산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말해준다.

안국사는 광해군 5년(1613) 사찰을 중수하고 다음해 창건된 적상산 사고를 지키는 승병의 숙소로 이용됐다. 이때까지 이 절은 보경사·상원사 등으로 불리다가 영조 47년(1771) 법당을 중창하고 안국사라고 명명했다. 안국사에는 1730년께 제작된 보물 제1267호인 불화 `영상회괘불탱'과 이 탱화를 간직한 문화재 극락전이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환상적으로 묘사한 탱화는 의겸을 비롯한 5명의 비구니가 공동 제작한 것이다. 극락전은 천불전·부도전·산신각과 함께 안국사에 현존하는 당우 가운데 하나다. 광해군 때 중건한 것으로 미뤄 창건 당시의 고려 건축 양식을 유지한 건물로 평가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가볼 만한 유적지-경찰충렬비
산정 위에 자리한 적상호 주변에는 볼거리가 많다. 복원한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했던 사고와 선원각을 비롯해 전망대·충렬탑이 그것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덕유산과 그 주변의 무주·진안 쪽 산들이 마치 열병식을 하듯 줄서 있고 겹겹의 산세가 보여주는 능선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덕유산이 6·25전쟁 전후 분단이 낳은 비극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듯 적상산도 이에서 비켜가지 않았다. 공비토벌작전이 끝난 후에도 경찰들의 잔비소탕작전은 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

`무주군 덕유산과 적상산 등지에 수시로 출몰하여 살상과 만행을 일삼던 공비토벌작전'에 참가, 장렬히 순국한 205위의 경찰 영령을 모시고 혼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한 비가 `경찰충렬비'다. 1997년 4월 건립했다

먹거리-무주 어죽
무주군청이 자랑하는 `무주의 맛'으로 어죽·산채 비빔밥·민물 매운탕 등을 꼽는다.
어죽은 금강식당(무주읍 읍내리)이 전문. 자가미·쌀·수제비가 주재료다. 여기에다 고추장을 풀어 죽을 쑨 것으로 맛이 담백하고 소화가 잘돼 여름철 보신 음식으로 통한다.

민물 매운탕은 무주읍 용포리의 강변식당이 소문난 맛집. 주로 쏘가리·메기·자가미를 재료로 끓인 후 간은 된장·고추장으로 맞춘다. 매운탕 고유의 얼큰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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