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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추픽추 경기도 안성시 죽주산성

한국의 마추픽추
남미 페루의 ‘마추픽추’는 잉카 문명이 남긴 지상 최고의 요새다. ‘하늘정원’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절벽 위 도시는 단 세 명의 병사로 10만 명의 군사를 방어할 수 있다 한다. 축조 후 단 한 번도 적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죽주산성은 ‘한국의 마추픽추’로 불릴만한 그야말로 철옹성이다. 조선 선조 때 이덕형은 죽주산성을 가리켜 ‘단 한 명의 군사로도 적을 막을 수 있는 곳’이라 국왕에게 보고하였다.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산성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외성, 중성, 내성의 3중 구조로 더욱 단단히 강화되었다. 안성과 이천, 장호원을 눈앞으로 바라보고 멀리 충청도와 전라도까지 시야를 확보하는 이곳의 군사적, 지리적 쓰임새는 철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중요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기록으로 나타나는 죽주산성의 첫 모습은 후삼국시대 견훤이 이곳을 본거지로 9년을 보내며 후백제국의 기초를 만든 것으로 찾을 수 있다. 궁예가 산성을 찾아 견훤과의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가졌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고려 때 몽고와의 전쟁에서도 적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군에게 큰 피해를 남기기도 하였다. 1.5㎞를 이어가는 외성과 중성, 내성의 성곽은 아직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며 각루와 포대 등 각종 방어시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성 안으로 건물의 터가 남아 있다. 비봉산 능선을 따라 산성이 이어지는데 성벽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보자. 현재도 영동, 경부, 중부고속도로의 분기점이 되는 교통의 중심지 안성의 모습을 옛 성곽과 새롭게 보수한 성문 등을 따라가며 굽어보자.
 
포인트:송문주 장군의 신명술(敵 공격전술 예상한 뛰어난 智略家)
송문주 장군은 안성과 이웃한 충북 진천이 관향이다. 제1차 몽고 침입 때 박서 장군의 휘하에서 귀주성 전투에 참여했다. 그 공로로 고종 23년(1236) 죽주의 방호별감으로 부임했다.

그해 9월 몽고군이 침입해 죽주성에 이르러 항복을 권유했다. 당시 몽고군은 적지에 침입해 먼저 항복을 권유한 뒤 항복한 군사를 향도로 전쟁을 치르는 전술을 폈다. 죽주성에서의 항복 권유도 이런 전술이었다.
장군은 군사를 보내 적을 쫓아버렸다. 이에 몽고군이 석포로 공격하자 여기에 맞서 역시 포로 대응했다. 감히 적이 성에 근접하지 못했다.

몽고군이 `사람의 기름'을 짚에 뿌려 불을 놓아 성을 공격하자 성안의 군사들이 일시에 성문을 열고 공격해 적을 사살했다. 몽고군이 공성기구를 총동원해 공격했지만 15일 동안 끝내 성을 함락하지 못했다.
당시 송장군은 “오늘은 적이 반드시 어떤 기계를 놓고 싸울 것이니 우리는 이렇게 대적하라”고 지시했다. 과연 장군의 예측은 그대로 적중했다.
장군의 비상한 예지를 보고 군사들이 모두 `신명'이라고 찬탄해 마지않았다. 전쟁 후 장군은 죽주성 방어 공로로 좌우위장군의 벼슬을 받았다.

가볼만한 유적지:칠장사 혜소국사비(두동강 난 비신·귀부 따로 놓여 있어)
죽산에서 진천으로 가는 국도 17호선 우측에 칠장사가 있다. 절 입구까지 포장도로가 나 있다. 칠현산 줄기 칠장산 아래 자리했지만 절 앞에까지 포장도로가 날 만큼 규모가 아담하다. 이 절은 조계종 용주사 말사다.
칠장사는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으로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곳이다. 이 절에 있던 갖바치가 임꺽정의 스승으로 그에게서 무예와 승마술을 익혔다.

이 절은 신라 진덕여왕 2년(648) 자장율사가 처음 세웠다고 전한다. 그 뒤 고려 혜소국사가 중창해 크게 이름을 떨쳤다. 조선조 들어 수 차례 중창했고 현재의 건물은 1800년대 중축한 것이다. 경내에는 대웅전·사천왕문·명부전·원통전 등 건물과 혜소국사비가 있다.
칠현산·칠장사라는 명칭은 모두 혜소국사와 인연을 맺고 있다. 혜소국사는 이곳에 주석(駐錫)한 뒤 7명의 도적을 현인으로 만들어 불제자가 되게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북상하다가 칠장사에 들러 분탕질을 했다. 이때 한 노승이 나타나 그의 만행을 힐책했다. 가토가 화가 나 그 노승을 칼로 벴다. 그자리에 노승은 없고 혜소국사비가 두 동강 나 있었다. 혜소국사의 신통력을 말해주는 전설이다. 혜소국사의 비는 두 동강 난 것을 봉합한 채 비신·귀부가 따로 놓여 있다.

먹거리:죽주산성 입구 `하얀집'(외양만큼 깔끔한 송이오리탕 別味)
죽산면은 교통의 요지이지만 머무르는 곳이 아닌 지나가는 곳이다. 면내에 특별히 이름난 음식점이나 먹거리가 없다. 대신 국도변에 쉽게 접할 수 있는 가든형 음식점이 많이 있다.

칠장사 입구에도 흔히 사찰 주변에서 맛볼 수 있는 묵·국수집들이 있다. 죽주산성 입구에는 국도 17호선을 낀 `죽주산성 휴게소'와 이웃한 전문음식점 `하얀집'이 눈길을 끈다.
집의 외양만큼 깔끔하게 나오는 송이오리탕이 별미다.
이 밖에 갈비탕·육개장·설렁탕도 있지만 하루 판매량이 정해져 있어 점심시간 이후에는 맛보기 힘들다. 어린이용으로 돈가스도 주문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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