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환경이 우수하고 전통문화자원이 많음에도 쇠퇴해 가는 농어촌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지역 특화를 통한 경제적·문화적 활성화를 꾀하려는 다양한
정부지원 사업이 농어촌 지역에 시행되면서 지역재생이 추진되어왔다. 마을 풍경에는 그 마을의 역사와 특색이 담겨 있다.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전통문화유산을 특화된 경관자원으로 변모시키고 그 가치를 극대화하여 산업화하기에는 적지않은 시간과 공동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전통자원의 요소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마을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살려 지역 활성화를 끌어낸 마을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지역재생을 이룬 함평군 모평마을
전남 함평의 모평마을은 상모평과 하모평으로 이루어진 유서가 깊은 마을로 오랜 역사와 세월을 담은 유산이 많다. 모평마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많은 고인돌은 이곳이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갖춘 지역임을 말해준다. 고려시대부터 천 년 동안 한 번도 마르지 않은
채 지금까지 흐르고 있는 안샘, 조선시대 상모마을의 천석꾼이 지었다는 영양재를 비롯해 지석묘군과 모평현 관아터, 동호정, 청계정, 영양재,
임천사지, 귀영재, 수벽사, 추당재, 모평선돌, 강정터 등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하다. 소나무를 바닷물에 7년 동안 담갔다가 건져 15년을 건조시킨
후에 지었다는 윤여윤 고택, 마을의 화를 물리치려고 조성했다는 500년 된 마을숲도 있다. 모평마을은 2005년부터 연속적인 정부 지원을 통해
숙박시설과 체험휴양 관련시설, 편의시설 등의 마을 환경 개선과 안샘, 전통 담장, 마을 숲 등을 정비하여 옛 모습 복원을 통해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마을로 재탄생시킴으로써 마을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었다.
이름 있는 문화유산뿐 아니라 마을을 거닐며 볼 수 있는 마을 안길과 돌담을 함께 정비함으로써 전통마을의 정취를 살릴 수 있었다. 초기에는
시공 전문회사가 마을 앞길의 돌담을 조성했지만 마을 안길의 돌담은 전통적인 기술을 전수받아온 주민들이 직접 작업에 나섰다. 주민들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손으로 마을 돌담을 복원하고 보수하면서 마을에 대한 애착심 고취과 함께 자연스럽게 유지관리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나 안샘 주변을
정비하는 과정에서는 주변에 성곽을 높이 쌓아 올리고 주변의 돌을 헐어낸 자리에 수입 대리석을 쌓아 국적 불명의 모습을 한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주민들의 노력으로 다시 옛날 모습을 복원하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현재 한옥마을은 공동관리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인근의 오두마을과 협약을
체결하여 한옥 민박 및 시골밥상 등의 프로그램을 공유하면서 관광객 유치 및 민박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천년 동안 마르지 않고 흐르는 샘물에 얽힌 이야기를 한옥체험과 연결하여 이른 아침 정안수로 밥짓기와 임천산의 야생녹차를 이용한 녹차시루떡
만들기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장류 단지 조성, 숲과 등산로 정비, 물레방아 복원, 산책로와 쉼터 조성, 역사자원 정비
등의 사업을 통해 기반시설이 완료된 상태이다. 마을 앞 농지에는 녹비식물인 유채꽃과 자운영 등의 경관작물을, 마을 진입로에는 해바라기를 주민들이
직접 파종,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시설조성과 정비를 토대로 체험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친환경 농업을 확대하며, 도농교류를 활성화함으로써
농가소득이 증대되는 성과를 거두는 한편, 마을로 도시민이 6세대 18명이 이주해 오는 등 인구유입도 이루어지고 있다. 시설물의 운영관리에도 주민
자발적인 활동으로 추진되고 있다. 주민들은 매주 마을 청소를 하는 등의 관리활동에 힘쓰고 주민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나아가 주민규약을 만들어 지켜나갈 항목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체계를 정립하고 있다.
인식의 전환을 통해 지역재생을 이룬 아산시 외암 마을
외암마을은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외암마을에는 영암댁, 참판댁, 송화댁 등 양반주택과 50여 가구의 초가 등 크고 작은 옛집들이 원래 모습을 유지한 채 남아
있으며 한 마을에 전통적인 수법의 상류, 중류, 서민가옥이 잘 보존돼 마을의 형성이나 전통가옥의 연구에 중요한 곳으로 평가받고 있는 곳이다.
외암민속마을은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되어 있고, 일반 민속마을과 달리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므로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외암민속마을에는 충청지방 고유의 격식을 갖춘 반가의 고택과 초가, 돌담, 정원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었으며 다량의 민구(民具)와
민속품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외암민속마을이 국가지정 전통건조물 보존지구, 즉 전통민속마을로 지정된 것은 1988년이었다. 처음 민속마을로
지정될 때 대부분의 마을주민들은 적극적으로 동의하였으나, 막상 민속마을로 지정된 이후에는 건축규제 등으로 불편이 발생하자 민속마을 지정을 해지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2000년에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받아 건축물은 물론 생활규제까지 받게
되었다. 그래서 외암민속마을 주민들은 오히려 마을발전이 제약을 받는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04년부터 녹색농촌체험마을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추진된 녹색농촌체험마을은 외암민속마을을 테마로 도시민들에게 전통문화체험을 제공하고 친환경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2005년에는 팜스테이로 지정되어 전통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기반시설, 즉 숙박시설 리모델링, 샤위실 및 음식체험관 등의 인프라를
갖추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2009년부터는 인근 강당리를 포함한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대상지로 권역단위 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기초적 생활환경
정비 및 경관개선, 소득사업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외암민속마을 주민들은 민속마을 지정이 마을발전의 저해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 요소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 사업을 통해 지역주민의 안정적인 소득기반을 확충하게 되어 총수익의 80%는 주민소득으로
배분하고, 20%는 마을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근 강당리를 포함하여 2008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대상권역으로 선정되어 2010년~2014년까지 권역단위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소득증대를 위한 지역특산품 가공 공장을 마을 안에 설립하려는 계획을 마련하였으나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규제로 외암마을 밖인 강당리에
설립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도농교류 또는 주민활동을 위한 커뮤니티센터는 외암마을 내부에 원지형을 보존하는 형태의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으로
하였다. 외암민속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소규모이면서 예안 이씨 집성촌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다른 지역에 비해 공동체 의식이 덜
훼손되는 한편 대규모 토지가 필요한 개발사업의 영향도 비교적 덜 받은 셈이다. 외암마을이 민속마을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주민 간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고, 생활의 불편함 등으로 마을을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2004년 녹색농촌체험마을 사업을 마을발전의 계기로 삼기 위해 당시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마을지도자와 지역주민 간의 적극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주민 의견수렴 활동이 지금까지 거의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금도 경우에 따라 주민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마을 리더와 주민 간 밀접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자원활용과 주민이 주체가 되어 가꾸는 문화재 행복마을
모평마을은 가장 한국적인 전통과 문화가
풍부하게 남아 있는 마을로서 대표적 마을경관자원의 가치를 인식하고 복원한 사례이다. 유형의 문화유산뿐 아니라 전통문화자원의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역사 속 이야기를 활용하여 특색 있는 체험 프로그램으로 개발함으로써 지역재생의 원동력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샘을 일차 정비했다가
재복원한 것처럼 문화재 본래 자원을 훼손하거나 문화재를 왜곡시켜선 안된다. 또 하나, 전통자원을 특화시켜 다양한 소득 활로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전통자원 외에도 기반시설의 운영관리에도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주민 역량 강화 등 교육에도 스스로 힘쓰는 분위기가 바로 지속적인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외암마을은 민속마을자원을 테마로 마을가꾸기를 추진한 지역으로서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는 차별화된 사업을 추진한 사례이다. 외암마을의 성공적인
마을가꾸기는 차별화된 지역자원 활용에 더하여 적극적인 주민참여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한 외암민속마을의 성공요인으로서, 무조건
보존해야 하는 문화재를 지역발전의 핵심요소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문화재를 멀리서 바라만 보고 보존해야 하는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재 살고 있는 주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그 가치를 외부인과도 공유할 수 있을 때 마을발전을 보장하는
보전의 방향이 될 것이다. 출처: 한국문화재재단 글˚윤진옥 (한국문화경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