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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 새재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에 자리한 새재는 그 앞에 관형사가 붙는다. 국내의 큰 고개들이 대부분 도·군 등 지방 경계선에 위치해 특정 행정단위의 명칭이 붙지 않지만 새재만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그 관형사가 `문경'이다.

문경하면 먼저 새재가 떠오르고 새재는 곧 `문경 새재'로 통한다.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이 동에서 서로 방향을 바꾸면서 남북을 갈라놓은 중심점이 새재다. 새재 남쪽으로 떨어지는 물은 낙동강으로 들어가고 북쪽으로 내리는 물은 한강으로 들어간다. 충주가 한반도의 중앙에 자리하듯이 인접한 새재 역시 같은 위치에 있다.

새재에 길이 열린 것은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이에 앞서 지금의 영남지방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길은 새재 동쪽에 있는 계립령이었다. 주흘산·포암산 사이에 있는 지금의 하늘재를 계립령으로 추정하고 있다.

계립령에 길이 난 것은 신라 아달라왕 3년(156), 죽령이 개통되기 2년 전이었다. 신라 말기 마의태자가 이 고개를 넘어 미륵사에 머물렀다는 전설이 전한다.
후삼국시대 들어 견훤이 인근의 상주 일대에서 활약하며 새재 쪽으로도 새로운 길이 나지 않았나 싶다. 또 고려 태조가 경주로 갈 때 문경을 거쳐 진남관 일대에 잔도(棧道)를 개설한 점으로 미뤄 새재 쪽의 지름길을 이용했으리라 추정된다.

아무튼 고려 초기 이곳에 초참(草站)역을 두면서 새로운 재, 곧 `새재'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뒤에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같은 음의 새가 한자 조(鳥)로 표기, 조령(鳥嶺)이 된 셈이다. 혹자는 주흘산·조령산의 모습에서 따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새재가 본격적으로 국도의 기능을 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들어서다. 한양을 중심에 두고 남북으로 X자형의 국도가 정비되면서 새재는 영남대로의 중심에 자리했다.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보러 갈 때에도 이 길을 이용했다. 속설에 추풍령·죽령이 `낙방'의 길이라는 점에서 새재는 이름 그대로 관계에 진출하는 `새로운 길'이자 금의환향(錦衣還鄕)의 길이었다.

또 새재 안에 있는 교귀정(交龜亭)이 증언하듯이 경상도의 신구 관찰사가 관인을 인수·인계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큰 고개를 끼고 있는 길은 평화시에는 문물의 교환처지만 전란이 닥치면 교전장으로 바뀌게 마련이다. 새재가 주목을 끌고 지금처럼 관문과 성이 수축된 것은 임진왜란의 결과다.

왜군은 부산을 점령하자 제1군이 한반도의 중로인 영남대로를 타고 북상했다. 양산~청도~대구~인동~선산~상주를 거쳐 조령으로 치고 올라왔다.
이들은 조령을 넘어 충주~여주~양평~한양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제2군 역시 영남대로의 왼쪽 길을 따라 조령에서 합류하는 작전을 세웠다.

조정에서는 신립(申砬)을 도순변사, 이일을 순변사, 김여물을 종사관으로 임명해 왜군의 침공에 대비했다. 이일이 상주에서 패하자 신립 장군이 조령으로 급파됐다. 종사관 김여물이 조령에서 왜적을 막자고 했지만 신립은 이미 늦었다며 충주 탄금대를 택했다.

왜군은 조선군이 조령을 막고 일전을 벌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속설이지만 이에 저들은 `왜군이 조총(鳥銃)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조령은 금방 떨어진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심리전에서 이미 조령은 왜군의 발 아래 놓인 셈이었다. 새가 신무기인 새총을 당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마 신립 장군은 함경도·평안도에서 기마전으로 오랑캐를 물리친 생각으로 들판인 탄금대를 택하지 않았는가 싶다. 1592년 4월26일 벌어진 탄금대 전투의 결과는 참패였고 신립 장군과 김여물은 28일 강물에 투신, 자결했다.
왜군이 북상하자 충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 신충원이 지금의 제2관문인 조곡관에 성을 쌓고 기습전을 벌였다. 조령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정, 선조 27년(1594) 제2관문에 본격적인 축성을 했다.

제1관문인 주흘관과 제3관문인 조령관은 뒷날 숙종 34년(1708)에 축성했다. 영조 때 조령진을 설치, 문경 현감이 수성장을 겸하도록 했다.
조령은 뒷날 한말 항일 의병전쟁 때 중요한 전장이 됐고 6·25전쟁 때도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역사의 무대가 됐다.

한편 조령은 일제 하인 1925년 이화령으로 새 길이 뚫리면서 옛 영남대로의 영광을 이화령에 넘겨주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신작로'가 바뀌므로 새재는 옛 모습을 간직해 오늘날 문경을 전원관광도시로 되살리는 길을 열어 놓았다.

새재의 관문과 주변 성벽은 사적지로 지정됐고 새재 일대는 도립공원으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한때 `문경 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홍두깨 방방이 팔자 좋아 큰애기 손길에 놀아난다/ 문경 새재 넘어갈 제 굽이야 굽이야 눈물이 난다'는 `문경 새재 아리랑'도 이제는 유성기에서나 듣게 됐다.


포인트-적성리 전투전적碑

대도시나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면 평생에 한번 지나치기 어려운 지역이 많이 있다.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경북 문경시 동로면을 들 수 있다.
단양에서 문경으로 이어지는 국도 59호선이 면을 통과하고 문경으로 나가는 지방도로가 있지만 모두 재를 넘어야 한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곳이지만 면 소재지인 적성리는 `산속에 이런 들판이 있을까' 싶을 만큼 평야지대다.

하늘을 바치는 기둥처럼 우뚝 솟은 천주봉 맞은편 적성리 강가에 `적성리 전투전적비'가 있다. 1951년 1월 중공군의 대공세로 전선이 남부로 처지면서 이 지역에도 13일 북한군 제10사단 소속 1개 연대 병력 3000명이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왔다.
미10군단 예하 한국군 특수임무대대(대대장 배동걸 소령) 병력 300명과 대한청년단 동로면 특공대원 42명, 경찰관 16명 등이 혼연일체가 돼 15일까지 3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예천·안동 방면으로 진출하려던 북한군은 이곳에서 패배, 제천 방향으로 후퇴했다.

당시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고 장렬히 순국한 군경과 민간인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1971년 6월 육군36사단의 도움으로 전승비를 세웠고 이어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2001년 6월 위령비를 건립했다


가볼 만한 유적지-KBS 새재 촬영장

문경 새재 도립공원의 성가를 단숨에 높여 놓은 것이 한국방송공사 새재 촬영장이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 2만여 평의 대지에 고려·백제의 왕궁 건물, 기와집 48동, 초가집 47동 등 거대한 도성이 형성돼 있다. 문경시는 이곳을 `세계 최대 사극 촬영장'이라고 홍보,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다.

조령산·주흘산에 둘러싸인 이곳은 고려 수도인 개성의 축소판으로 한국방송공사가 인기리에 방영한 사극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에 이어 현재 방영 중인 `무인시대'의 중심무대가 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완벽한 배경을 보고 세트를 찾는 경우 대개 실망을 금치 못하지만 새재의 세트장은 확실히 다르다. 대부분 반영구적인 작품(?)들이어서 한번쯤 둘러볼 만한 곳이다. 주말이면 가족단위 휴식처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 받고 있다.


먹거리-문경 韓牛

새재 일대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문경시는 주변에 관광객을 위한 유흥·위락시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경한우는 목초 활성탄 첨가사료로 사육한 문경의 특산품이다. 이 한우는 체내에 불필요한 지방의 축적을 막아 도축시 정육률을 높이고 육질도 연한 맛을 낸다.

도립공원 안에 조성된 음식점이나 온천단지의 음식점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 문경한우는 대구·서울 등지에도 보급되고 있다.
조령산·주흘산에서 나오는 산나물을 주재료로 한 산채 비빔밥, 가까운 경천호에서 잡은 빙어로 만든 튀김·조림 요리도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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