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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전통음식과 수라간의 전통음식을 현실로 옮겨오다
15-03-29 08:41

문헌 속의 궁중잔치를 현실로 옮겨오다 
“궁중연회는 음식과 음악, 무용이 하나가 되는 자리였어요. 이번 전시는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서 궁궐에 초대받은 듯 느낄 수 있도록 꾸며 보았습니다.” 경복궁 만경전萬慶殿에서 열린 조대비(익종비 신정왕후)의 팔순잔치(1887년)를 재현한 전시장은 실제 잔칫집 마냥 수많은 관람객들로 들썩였다. 궁중연회 기록을 끊임없이 연구하여 문헌 속에 존재하는 조선시대 궁중의 잔칫상을 현실세계로 옮겨 온 한복려 보유자. 단순한 궁중의 먹을거리를 뛰어넘어 예와 악, 음식의 법도를 아우르고자 한 그녀의 정성이 이번 전시를 통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대화조차 힘들만큼 쉬어버린 보유자의 목소리는 잔치를 준비하느라 에너지를 쏟아 낸 그간의 노고를 짐작케 했다.
조선왕조, 음식문화의 절정을 이루다
왕족의 일상식과 연회행사 때 차려지는 최고 수준의 조선왕조궁중음식. 전국에서 올라 온 최상의 재료로 최고의 기술을 발휘하여 만들었기에 한국 음식문화의 진수라 일컬어진다.

“궁중음식은 전국에서 모이는 명산물로 최고의 조리기술을 지닌 주방상궁(여성 조리사)과 대령숙수(남성 조리사)들이 만들었어요. 좋은 식기와 상차림, 세련된 예법과 절차에 따랐던 것이 궁중의 식생활이었죠.”
궁중에서 대전大殿에 소속되어 음식을 만드는 곳은 드라마 대장금으로 널리 알려진 소주방燒廚房이었다. 소주방은 수라간水剌間이라고도 불리는 안소주방과 받소주방(=생과방)이 있어, 수라간에서는 평상시에 왕에게 올리는 수라상(진지상)만을 받들고, 생과방에서는 왕의 탄일誕日이나 빈객賓客의 접대음식 등 특별한 음식을 담당했다. “나라 안에 크고 작은 잔치 때에는 계절에 따라 음식의 규모와 구성법도 달리했어요. 심지어  숙설소熟設所라는 임시주방을 따로 지어서 장만을 했을 정도였어요.”

사대부에 전해진 음식은 다시 서민에게 전달되어 한국 고유의 음식문화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궁중연회의 고배상차림이 민간에 전파되어 혼례나 회갑 때 고배상차림으로 전해지는 것이 좋은 예이다. “궁중연회 후에는 임금께서 음식을 나눠주기도 했어요. 음식을 통해 효를 표현한 ‘올림’과 왕의 철학이 내포된 ‘내림’의 정신이 담겨 있는 부분이지요.” 궁중음식에 깃든 상하간 소통의 문화를 이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보유자의 해석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조선왕조 마지막 주방상궁과 함께 지켜낸 궁중음식
숙련된 조리기능으로 궁중음식을 책임졌던 궁인은 주방상궁과 대령숙수들이었다. “고종 재임 시만 하더라도 60명이 넘는 궁인들이 덕수궁에서 일을 했고, 대전大殿에 20명의 주방상궁을 두었다고 해요. 그런데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이 승하한 후 궁인들은 사가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죠.” 단지 십여 명의 궁인들만이 순종효황후(순종의 태후, 윤비)를 모시기 위해 창덕궁 낙선재로 따라 들었다. 황후마저 승하(1966년)하자 남아 있던 네 명의 상궁들도 수라간을 떠나게 된다. 순종효황후가 1965년에 승하할 때까지 곁에서 모셨던 조선왕조 마지막 주방상궁 한희순(1899~1972/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과 1972년 한상궁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그녀로부터 30여 년간 궁중음식을 전수받은 황혜성 교수(1920~2006/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이들이 없었다면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면서 궁중의 음식문화도 함께 사그러 들었을 것이다.
주방상궁으로부터 구전과 전수를 통해 익힌 궁중음식의 전승노력으로 조선왕조의 궁중음식은 1971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될 수 있었다. 이로써 궁중음식은 왕족이 평상시에 잡숫는 반상(수라상)·죽상·면상·다과상과 연회 때 진어상 등에 차려지는 음식을 포함하여 모두 348종류가 오롯이 전해지게 되었다.
 
 
한국 음식문화의 핵심을 세계와 공유하다
황혜성 보유자의 장녀로 어린 시절부터 궁중음식을 자연스럽게 배워 뒤를 이은 한복려 보유자. 어머니가 궁중음식문화의 학문적 토대와 실제적인 조리법을 전파하였다면, 그녀는 조선시대 의궤에 담긴 문화적 보물을 찾아내고 궁중연회 기록이 주는 가치와 의미를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알리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궁중의례 재현행사와 전시회, 음식개발 등 다양한 활동을 펴내는 일이 우리의 궁중음식이 세계화하는 길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궁중음식의 실물을 볼 수 있는 자료는 남아 있지 않아요. 다행히 잔치기록에 상차림의 종류와 음식이름, 재료와 분량이 실려 있습니다. 음식을 담은 그릇과 상이나 조리기구도 자세히 적혀 있는 편이어서 조선시대 궁중음식의 복원이 가능한 거죠.”
40여 년간 《진연의궤進宴儀軌》, 《진찬의궤進饌儀軌》를 비롯한 궁중 식생활이 담긴 문헌자료와 이를 토대로 음식을 만드는 데에 아낌없이 사용되었을 그녀의 귀한 손. 그녀는 오늘을 살아가는 ‘대장금’이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글ㆍ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ㆍ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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