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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화가 조희룡 매화에 미치고 그림에 미치다
15-03-29 11:36

이성이 멀쩡한데, 이성으로 통제가 안 되는 것이 있다. 아니, 통제하고 싶지 않다. 왜? 좋으니까. 좋아서 눈만 뜨면 보고, 만지고, 주위를 온통 그것으로 치장한다. 이런 현상을 벽癖, 미쳤다고 한다. 하지만 매화에 미치고, 그림에 미친 벽癖은 정신을 살찌우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당신의 벽癖은 무엇인가? 여기 매화에 미치고, 그림에 미친 조선 화가가 있다.

‘매화시경연’이라는 벼루에 ‘매화서옥장연’이라는 먹을 갈아서 매화 병풍을 그린다. 목이 마르면 ‘매화편다’라는 차를 마신다. 자신이 그린 큰 매화 병풍을 둘러치고 누워 잠을 잔다. 날이 밝으면 일어나 ‘매화편다’ 차를 마시고, 매화시를 읊조린다. 매화시 백 수를 지을 것을 목표로 세우고, 자신의 방을 ‘매화백영루’라 이름붙인다. 자신의 호를 ‘매화두타’라고 한다. 이렇게 매화에 미쳐 먹을 금인 양 여기고 평생 동안 매화를 그리다가 흰머리가 된 사람, 그는 조선의 화가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이다.

[b]몸이 허약해 파혼당한 선비, 매화 그리다가 죽음을 넘겼네 [/b] 둥근 머리와 모난 얼굴, 가로 찢어진 눈과 성긴 수염, 큰 키에 몸은 여위어서 그가 지나갈 때는 마치 학이 가을 구름을 타고 펄펄 나는 듯하다고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은 『근역서화징』에 묘사했다. 키만 훌쩍 크고 야위었으며, 허약하여 입은 옷이 힘에 버거울 정도였으니, 스스로도 오래 살지 못할 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열 세 살 되던 해(1802) 어떤 집안과 혼담이 있었는데, 일찍 죽을 것이라 하여 퇴짜를 맞았다. 그런데 그는 일흔 아홉 살까지 살았다. 요즘으로 보아도 장수다. 자신이 장수하게 된 이유를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장수할 상이 아닌데 늙은 나이 되었고, 매화를 사랑하여 백발이 되었네.” “매화는 …… 내가 한 글자를 뽑아내어 그것에 해당시키기를 ‘수壽’라고 한다.” 조희룡은 조선 개국공신 조준의 15대 손으로 양반가문에 속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의 증조부가 통덕랑을 지냈고, 조부가 인산첨사를 지냈다고 하지만 실직은 아닌 듯하고, 그의 부친은 어떤 벼슬도 하지 못했다. 아마 조부 때부터 집안이 벼슬과는 멀어졌던 것 같다. 그가 교유한 인물들에 양반이 없는 것은 아니나, 친한 벗으로 교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중인 신분이어서 그도 중인으로 분류되곤 한다.

그는 호방한 기상과 그림에 대한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신선으로 자부했다. 나이 스무 살 청년 시절에 화가인 이재관·이학전과 함께 짚신을 신고 일산日傘을 둘러메고 도봉산 천축사로 놀러 갔다. 이들 세 명의 젊은 화가가 한 서원에 이르자 마침 날이 저물었다. 그들은 서원의 강당을 빌려 묵고자 하였는데, 서원의 원생들이 냉담한 눈으로 보고도 못 본 체하였다. 그러자 세 사람은 꾀를 냈다. 조희룡이 먼저 “우리가 가을 바람소리를 들으며 산 속에서 자게 되어 연하煙霞의 기운으로 허기를 달랠 만하니 시와 그림으로 기록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라고 제의하자, 이재관이 즐겁게 응수하여 「추산심시도秋山尋詩圖」를 그렸다. 조희룡은 그림 옆에 ‘우연히 절을 향하다가, 서원에 투숙하였네. 이 걸음 걸식하려는 것 아니니 벌써 연하로 배불러 있노라’ 라는 제화題畵를 썼다. 그러자 서원의 원생 하나가 한참 보더니 절을 하며 말했다. “제가 서원에 있은 지 수십 년입니다. 나그네 잠재우기가 쉴 날이 없어 마치 여관과 같아져서 하나하나 환대할 수가 없어 냉대했습니다. 어찌 오늘 신선이 오실 줄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하고는 하인들을 불러 식사 대접을 재촉하고, 오히려 대접이 소홀할까 조심했다. 나머지 원생들도 모두 인도에서 온 부처를 대하듯 빙 둘러앉았다. 그러자 조희룡이 “우리가 인간 세상에 유람 온 것이 이미 오백 년인데 마침 그대들에게 들켰으니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라고 호기를 부리며 그림을 그려서 유생들에게 나눠주었다. [b]헌종의 명을 받고 금강산을 답사하다[/b] 그는 그림만 잘 그렸던 것이 아니라, 시도 잘 지었다. 그의 나이 57살인 1846년(헌종12)에 금강산의 좋은 경치를 시로 지어 올리라는 헌종의 명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헌종 말엽에는 금강산을 대신 보고 실경을 그려오라는 명을 받고 반 년간 금강산을 샅샅이 답사하였다. 서울로 돌아와 금강산 그림을 그려 바치자, 헌종은 그 내용의 풍부함과 필적의 크고 교묘함에 매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헌종은 조희룡의 시와 그림을 좋아하여 특별히 아꼈던 것 같다. 조희룡의 글에는 헌종에 대한 그리움이 자주 보인다. 어제 낮에는 너무 더워 참외 몇 개를 먹었더니 목이 시원하였다. 헌종임금 때의 일을 추억해 본다. 무신년(1848, 헌종14) 여름에 중희당의 동쪽에 작은 누각을 세우고, 나에게 ‘문향실聞香室’이라는 편액 글씨를 쓰라고 명하셨다. 마침 그때가 한여름이었다. 제호탕 한 잔을 내려 주시기에 엎드려 받아 마셨더니 일시에 더위가 가시고, 양 겨드랑이가 시원하였다. (『석우망년록』) [b]인생사 모두가 그림이네[/b] 붉은 꽃잎이 화면 가득 떨어지고, 거친 각을 이루며 꿈틀꿈틀 마주보고 올라가는 듯한 용의 형상. 그 사이로 검게 흘러내리는 행서필의 제화가 들어찬 「홍매도 대련」을 보셨는가? 매화 꽃잎이 하얀 눈처럼 천지에 흩날리는 속에 작은 초가 창가에 한 선비가 단정히 앉아 책을 보는 「매화서옥도」를 보셨는가? 그 모두가 조희룡이 그린 것이다. 그는 조선후기 문인화가로 일컬어지지만, 「세한도」나 「불이선란」으로 대표되는 여백미를 강조하는 김정희(金正喜, 1786~1856)와는 다른 그림을 그렸다. 야산에 무리지어 핀 난. 화면을 가득 메운 흩날리는 매화 꽃잎. 강렬한 붉은 매화. 자유분방하게 뻗은 가지. 거친 비늘을 털며 굼실굼실 오르는 용 같은 매화 줄기. 깡마른 노인의 뼈마디 같은 대나무. 기괴하고도 괴이한 구멍이 숭숭 뚫린 괴석. 이것이 그가 그린 그림이다. 그는 오직 그림만 그렸다. 사대부가 여기餘技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고, 관官에 매인 화원이 그리는 관용 그림이 아닌, 세상을 그리고, 인생을 그리는 전문 화가이고자 했다. 그에 의하면 그림이 되지 못할 물건은 없다. 떡갈나무 잎이 창가의 푸른 오동을 덮은 것도 그림이요, 붉은 메밀 줄기가 울타리 안에 펼쳐진 것도 그림이다. 그에게는 자연의 모든 것이 그림이요, 인생사 하나하나가 모두 그림이었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글_ 이성혜 부산대 외래교수 사진_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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