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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의 결합 그 속에 피어난 정원
15-03-29 15:45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 자연과 하나 되다
정원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만들었을까? 과거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도록 불로불사(不老不死)를 꿈꾸는 신선정원을 만들고,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을 택해서 세속을 멀리하고, 자연 속에 묻혀서 은둔하거나 자연 속에서 마음을 맑게 가지고 높은 뜻을 기르면서 유유자적(悠悠自適) 하는 생활을 즐겼다. 또 풍수에서 말하는 좋은 땅을 골라서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우리나라 전통 정원으로 경주에 있는 안압지는 ‘월지’라고도 하는데,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왕궁의 연못이다. 안압지는 1975~1976년에 발굴되어 연못 전체모양을 그대로 드러냈고, 발굴 때 나온 유물이 거의 신라시대 것이어서 이 시대에만 사용된 것 같다. 안압지 정원은 특징 있게 만들어졌는데, 남북이 약간 긴 사각형에 서쪽과 남쪽은 직선으로 처리했고 동쪽과 북쪽은 곡선으로 해서 특히 동쪽의 굴곡진 곡선 호안은 연못 서쪽에 있는 건물인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는 임해전(臨海殿)의 이름을 실감할 수 있도록 넓고 깊은 바다를 실제로 느끼게 한다.
연못 서쪽 호 안에는 5개의 건물이 연못 쪽을 향하고 있는데 지금은 3곳의 건물이 복원되어 있다. 동쪽의 굴곡진 호 안에는 중국 초나라 양왕이 선녀들과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무산12봉을 만들었다. 이 무산12봉은 현재 중국의 양쯔강을 거슬러 가면 가깝게 볼 수 있다. 안압지 정원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 중의 하나는 연못 안에 만든 3개의 섬이다. 고대 중국 진나라 때 진시황(秦始皇)이 한번 먹으면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불로초를 구하려 했던 곳이 불로초를 먹고 사는 신선이 사는 봉래, 방장, 영주의 삼신산(三神山)이다. 이 삼신산을 안압지에 만들었다.
정원의 연못에 삼신산을 만든 전통은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부여의 궁남지에서 처음 기록으로 나오고 안압지 이후 조선시대 남원의 광한루 등에서 볼 수 있다. 연못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정원에 돌로 사람이 만든 가짜 산인 석가산(石假山)을 만들어서 삼신산을 상징했다. 삼신산을 만들어 불로불사 하기를 꿈꾸는 정원들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01. 명승 제51호 예천 초간정 원림 ⓒ예천군청 02. 사적 제18호 경주 동궁과 월지 ⓒ경주시청
 
세상을 초월, 자연에 은둔하다
정원은 번잡한 세상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자연을 벗 삼아 은둔하는 생활 장소이기도 한다. 조선 17세기 중종 때 양산보(梁山甫)는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 후 죽임을 당하자 실의에 빠져서 담양으로 낙향했다. 양산보는 담양에서 당시 시가문학을 하는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별장, 별서정원인 소쇄원(瀟灑園)을 만들고 은둔생활을 했다. 양산보의 낙향은 세상을 버리거나 도피했던 은둔이 아니다. 일본 가마쿠라 시기의 선승(禪僧) 무소국사가 읊은 ‘세상살이는 유유히 흘러가고, 작은 암자 한 조각 산에 머문다’는 선(禪)의 경지이면서 세상을 초월하고자 하는 은일을 택한 것 같다.
고경명이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유서석록』에는 당시 소쇄원의 모습을 그림 그리듯이 묘사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문화가 융합되고 가장 한국적인 정원을 만들어서 꾸미되, 꾸미지 않은 듯한 자연미 넘치는 한국적인 서정을 여기에서 느끼고 읽을 수 있다.
03. 명승 제40호 담양 소쇄원 ⓒ문화재청 04. (좌)「어부사시사」. 보길도를 배경으로 윤선도가 지은 40수의 단가로, 『고산유고』에 실려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우)초간정의 경치를 노래한 권문해의 시문집 『초간집』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맑은 마음과 눈, 학문을 수양하다
선조들은 자연에서 은둔하면서 자연 속에서 마음을 맑게 가지고 높은 뜻을 기르면서 유유자적 하는 생활을 즐기려고도 했다. 전남 보길도의 세연정(洗然亭)은 고산 윤선도(尹善道)가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이끌고 강화도로 갔으나 청나라와 화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항해하다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서 은거하면서 만든 정원이다.
세연정은 자연에 은거하여 자연과 시와 술의 풍류를 즐겼던 정원이다. ‘세연(洗然)’이란 이름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란 뜻에서 붙여졌다. 고산은 세연정을 소재로 「동하각」이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我豈能違世 내 어찌 세상을 저버릴 수 있으리오.
世方與我違 세상이 나를 저버린 거라네.
… (중략)
居似綠野規 삶은 항시 녹야(綠野)의 규범과 같았다네."
세연정 주변에는 정자의 좌우에 축대를 만들어 이를 동대와 서대라 하고, 정자의 남쪽에 만든 계담에는 일곱 개의 바위가 있어 이를 칠암(七岩)이라 했으며, 북쪽에 있는 인공 연못에는 네모에 가까운 섬을 만들어 세연정과 조화되게 했다. 윤선도는 이곳에서 시를 짓고 부르며 풍류를 즐겼다.
고산이 세연정을 소재로 지은 「어부사시사」 40수의 발문에는 “맑은 못이나 넓은 호수에서 조각배를 띄우고 즐길 때 사람들로 하여금 목청을 같이하여 노래를 부르게 하고 서로 노를 젓게 한다면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라 했다. 「어부사시사」는 사계절을 읊고 노래를 부르기 위한 시조다.
조선 선조 때 처음 지어진 경북 예천의 초간정(草澗亭)은 일종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편찬한 초간 권문해(權文海)가 세운 별서, 정사(精舍) 건축으로 그가 학문을 닦고 마음과 몸을 수양하던 정자다. 초간정은 용문면 원류마을 앞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경승지에 우뚝 서 있다. 개울이 둘러진 자연 암반 위에 세워졌으며 주위에 항상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풍류를 더하고 있다. 정자의 뒤쪽과 오른쪽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권문해의 『초간집』 중 「초간정사사적」에는 초간정의 경치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곳은 북룡문(北龍門)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골짜기는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학가산(鶴駕山)의 신선이 놀던 곳이라 알려져 있다. 이 말에 따라 공이 지팡이를 짚으며 가본 즉, 물고기가 뛰어 놀고 경치가 기묘하며 또한 수려하여 조석으로 찬탄해 마지 않았다. 이곳의 경관은 곧 당시 ‘獨憐幽草澗邊生(시냇가에 자란 그윽한 풀포기가 홀로 애처롭다)’라는 구절의 진의를 말하는 것이며, 주렴계(周濂溪)가 말한 바 ‘수면에 이는 잔잔한 물결의 흔들림’이 곧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 권문해의 『초간선생문집』 중 「초간정 술회」에서는 초간정에서 느낀 감상을 적고 있다.
말을 타고서 비탈진 길을 가는데, 숲과 골짜기가 어찌나 아득한지. 새로 지은 정자는 선대의 자취를 계승하고, 계곡의 시내에 있는 풀은 창창하기만 하네. 들창은 고요히 먼지 때 없고, 환하여 속세와는 아득하네. 내가 가을 문턱에 오니, 밝은 달이 어찌나 환한지. 서늘한 기운 옷깃과 갓 속으로 스며드는데, 늙은이와 젊은이와 담소를 나눈다네. 깊은 밤에 개울을 베개 삼아 누워 있으니 정신이 맑아져 잠깐 잠이 들었다네. 들판 밖으로는 광대하고, 골짜기 안으로는 그윽하기만 하네. 바위가 푸른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물은 담뿍 고여 있어 푸른 늪을 만들었네. 하늘 기운으로 물고기 노는 것을 감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새 울음소리 듣는다… 계곡의 시내 풀은 푸르러 세상 때에 물들지 않고, 옛 현인이 끼친 향기가 사람을 더욱 감동시키네…
경북 봉화의 청암정(靑巖亭)은 조선 중기 16세기 초에 지은 충재(?齋) 권벌(權?)의 종택에 딸린 정자로, 바위 위에 정자를 만들고 그 주위에 연못을 판 희귀한 형태다.
종택 주변에는 청암정 외에 석천정사, 삼계서원, 차실과 같은 문중 관련 유적들이 있어 조선시대 지방 사대부들의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는 흔적들이 남아있다.
충재 선생의 5대손인 하당공 권두인(權斗寅)이 지은 『청암정기』에는 정원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집의 서쪽 10여 발걸음 거리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는 우뚝한 정자가 있으니 이것이 청암정이다. 못의 물이 그것을 둘러싸고 있어 담박하여 푸른 옥과 같았다. 놓여 있는 징검다리가 물속에 잠겨 있어 섬이 되었는데, 사면이 모두 커다란 반석盤石이고… 정자의 북쪽 가에는 우뚝 솟은 바위가 있는데, 높이가 한 장을 넘고 바위 색깔은 매우 푸르렀기 때문에 이름을 청암(靑巖)이라고 하였다… 동쪽 산골에서 물길을 끌어들여 남쪽 담장을 뚫어 못으로 흐르도록 해 놓았다. 졸졸거리며 흐르는 이 물이 섬돌을 따라 소리를 울려 밤에 홀로 청암정에 누워 있노라면 잔잔하게 흐르는 물소리가… 연못에는 수천 마리 물고기가 노닐고, 푸른 연잎이 아름답고 연꽃 천 송이가 물 위로 솟아있어… 맑은 바람이 천천히 불어오면 향기가 가득히 사람의 콧가에 스며들고… 가장 좋기로는 달이 훤한 밤에 온갖 소리가 고요한데 맑은 연못이 빈 거울과 같아 물빛이 일렁이며 돌다리의 기둥에 거꾸로 비추면 그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금물결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것과 같다… 아! 사람이 명승을 만났고, 그 명승은 사람으로 인해 더욱 아름답도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글 박경자(전통경관보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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