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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점심의 유래
14-09-25 16:34

옛날 사람들은 하루 몇끼를 먹었을까?기본적으로 2끼를 먹었다. 
아침밥과 저녁밥을 먹었다. 그래서 하루 식사를 조석(朝夕)이라고 했다.
만약 중간에 식사를 하게 되면 대낮에 먹는 밥이라고 해서 '낮밥'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특별한 경우에 먹는 식사였다. 
'점심'이라는 말은 따로 있었다. 다만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의미의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문헌에 보면, 15세기 초 태종실록에서 '점심'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다. 
하지만 이 당시 점심은 배고플 때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먹는 '간식' 수준의 의미였다.

태종실록에서의 점심은 관청에 일하는 사람들이 중간에 배가 고플까봐 조금씩 주는 밥을 지칭했다. 

따라서 식사량은 허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적었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따로 나오지 않았다.
17세기까지 이러한 야외특식은 '점심'이라고 불렀다.
원래 점심(點心)이라는 말은 중국 당나라 때 쓰던 말이었다. 본래 뜻은 '마음에 불을 부친다'는 뜻으로 배고플 때 컨디션을 회복시키려는 목적으로 조금 먹는 수준의 식사를 말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점심'이라고 하면 간식을 의미한다.
 
예컨데 스님들이 허기가 질 때 대추 몇알을 오물오물 거리는 것을 중국에서는 '점심을 먹는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옛날 사람들은 점심을 시간적인 의미와 상관 없이 여러 번 먹기도 했다.
조점심, 석점심, 주점심 등 그 지칭하는 말도 여러 가지다.
 
다만 옛날 사람들이 점심을 먹었던 때는 결국 조석 사이의 공복시간이 주가 되었을 테니 조선후기로 가면 점심이라는 말은 점차 낮밥과 동의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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