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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은 신비의 묘약이다
15-07-08 13:52

삼계탕은 신비의 묘약이다


 현대인에게 복날은 그저 삼계탕 먹는 날일 뿐이다. 복날이면 어김없이 뙤약볕에 줄까지 길게 늘어서서 삼계탕을 먹는데 마치 복날 삼계탕 먹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다. 복날에는 왜 삼계탕을 먹어야만 하는 것일까?
각자 여러 이유를 말한다. 먼저, 복날인데 삼계탕을 안 먹으면 서운하다는 것이다.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우리 풍속이니 먹지 않고 거르면 아쉽고 허전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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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뜻밖의 사실이 있다. 전통풍속이라고 하지만 옛날 우리 조상님들은 복날 삼계탕을 먹지는 않았다. 닭백숙은 먹었을지언정 복날 시절음식으로 삼계탕을 먹었다는 기록은 없다. 전통적인 복날음식은 잘 알다시피 보신탕이었다. 보신탕이 싫은 사람은 육개장 아니면 동짓날 먹는 단팥죽을 복날에도 먹었고 혹은 삼계탕 대신에 영계백숙을 먹었다. 삼계탕과 영계백숙은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음식이다.
그렇다면 복날 삼계탕은 언제부터 먹게 됐을까?

복날 삼계탕을 먹는 또 다른 이유로 ‘이열치열(以熱治熱)’을 꼽기도 한다. 복날은 1년 중 가장 더울 때니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처럼 이럴 때는 찬 음식보다는 오히려 뜨거운 음식을 먹음으로써 더위를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왜 하필 삼계탕이어야 하냐는 반문에는 딱히 할 말이 없으니 답변이 궁해진다. 이열치열이 이유라면 뜨거운 음식은 모두 해당된다. 한여름 영양보충을 위해 먹는 것이라는 설명도 필요조건은 될지 몰라도 특별히 삼계탕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사실 복날 왜 삼계탕을 먹는지 이유를 몰라도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이왕지사 삼계탕을 먹을 때 내력을 제대로 알고 먹으면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복날 보양식이 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삼계탕을 포함해 보신탕과 육개장 그리고 팥죽과 닭백숙을 비롯해 예전 선조들이 삼복더위에 특별히 먹었던 전통음식에는 다 이유가 있다. 맛이 좋다고, 영양이 풍부하다고 혹은 이열치열의 효과로 더위를 물리칠 수 있다고 복날 아무 음식이나 먹었던 것은 아니다.
복날 시절음식이 되려면 무엇보다 기본 조건이 맞아야 했다.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복날음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더위를 쫓아 여름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영양이 풍부하고 특히 이열치열로 더위를 다스릴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시원한 냉면이 복날 시절음식이 못 되는 이유다. 둘째, 음양오행의 조건에 맞춰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 들어가니까 복잡해지는데, 복날 자체를 음양오행으로 설명하니 음식도 여기에 맞춰야 한다. 셋째, 나쁜 기운을 몰아낼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주술적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복날의 성격과 관련이 깊다.

영양 많고 더위를 물리쳐야 한다는 첫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음식은 많지만 음양오행과 주술적 의미를 만족시키는 음식은 많지 않다.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하다고 아무 음식이나 복날음식이 되지 못했던 이유다. 예컨대 보신탕과 팥죽은 영양이 풍부해 여름에 먹으면 보신이 될 뿐만 아니라 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인 역귀(疫鬼)가 팥이나 개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복날음식이 될 수 있다. 보신탕 대신 소고기로 끓인 육개장은 영양은 많지만 소고기에는 사악한 기운을 쫓는 능력이 없다. 때문에 고춧가루를 듬뿍 풀어 빨갛게 끓인다. 귀신이 붉은색을 무서워하니까 보고 도망가라는 뜻이다. 민속과 미신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만들어낸 음식문화다. 그렇다면 삼계탕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오래전에는 삼계탕이 드물었으니 복날음식은 주로 영계백숙이었는데 기본적으로 닭고기에는 복날음식에 필요한 기본 조건이 두루 갖춰져 있다. 한여름에는 뜨거운 음식으로 더위를 물리쳐야 한다는 전통적인 약식동원의 조건을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새벽에 닭이 울면 귀신이 물러간다고 하여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축귀의 기능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복날 닭고기가 좋은 이유는 닭이 동양철학과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양기(陽氣)가 넘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초복부터 말복까지, 1년 중에서도 가장 무더운 계절인 여름철 삼복 기간은 세상이 양기로 가득 찬 날이다.

그런데 복날은 음의 기운이 일어나려다 양의 기운에 눌려 엎드려 숨는 날이다. 때문에 엎드릴 ‘복(伏)’자를 써서 복날이다. 이런 날에는 양의 기운이 넘치는 음식을 먹어 음기를 다스려야 하는데 보신탕과 마찬가지로 닭고기도 여기에 해당된다. 옛날에는 영계백숙, 현대에는 삼계탕으로 복날 보양식을 삼는 이유다.
옛날 사람들은 닭이 양기를 가득 품고 있는 동물로 보았다. 『주역』에서도 ‘닭은 양의 기운이 넘치는 새(陽鳥)’라고 표현된다. 그런데 닭백숙이나 삼계탕은 닭 중에서도 주로 어린 닭인 영계(英鷄)로 요리한다. 흔히 영계를 어린 닭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영계는 보통 닭이 아니다. 명나라 의학서인 『본초강목』에 영계는 특별히 석영을 먹여서 키우는 어린 닭인데 쇠약해진 양기를 되살리는 데 좋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허약해진 기운을 보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른 사람도 몸에 살이 오르고 피부에 탄력이 생기며 겨울에는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추운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삼계탕은 이런 닭에다 인삼을 비롯한 각종 한약재를 넣어 끓인 음식이다. 인삼은 약효가 널리 알려진데다 효과가 워낙 다양하니까 특별히 더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몸을 덥혀주는 양의 기운이 강한 약재다. 그러니 닭고기와 어울려 양기를 더욱 더 상승시키는 작용을 한다. 삼계탕이 훌륭한 복날 보양식이 되는 까닭이다.



18세기 그림 속 닭과 인삼의 조화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복날 삼계탕을 먹기 시작했을까? 삼계탕이 한국의 대표적인 국민 보양식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삼계탕과 관련된 기록은 조선시대 문헌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다시 말해 전통 보양식이라고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중화된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평범한 가정에서 경제적으로 별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먹고 싶을 때면 아무 때나 삼계탕을 먹게 된 것은 1970년대 전후다.

그 이전의 삼계탕은 복날 보양식이라기보다는 부자들이나 먹는 약에 가까웠다. 병을 앓고 난 후, 혹은 삼복 더위에 쇠약해진 기력을 보충하려고 먹었다. 아무나 먹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귀한 고려인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삼이 흔해졌지만 예전에는 비싸고 귀한 약재였던 만큼 음식에 함부로 넣어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아니었다. 때문에 일반인들은 인삼을 넣지 않은 영계백숙으로 몸보신을 했을 뿐이다. 삼계탕이 얼마나 귀했는지는 드물게 보이는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4년 중추원에서 한국인의 생활풍속을 조사한 자료집에 여름철이면 암탉의 배에 인삼을 넣어 우려낸 국물을 정력 약으로 마시는데 중산층 이상에서 마시는 사람이 많다는 기록이 보인다. 삼계탕이 양기를 보완해주는 약과 같은 음식이었으며 돈 많은 사람들이나 여름철 보신음식으로 먹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웅장추 / 변상벽(출처 : 한국미술정보센터 공유마당)하지만 더 이전인 조선후기에는 닭과 인삼을 함께 요리한 삼계탕은 아예 음식이 아닌 약으로 취급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의 전통 사상의학을 정립한 이제마가 쓴 의학서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 삼계탕에 관련된 기록이 보인다. ‘소음인의 치료에는 닭과 인삼이 효과가 있다’고 적어놓았으니 양기를 보충하는 치료약으로 지금의 삼계탕을 처방했던 것이다.
언제부터 닭과 인삼을 함께 처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약으로서 삼계탕의 뿌리는 사실 18세기 이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영조 때 궁중화가였던 변상벽이 그린 닭 그림이 있다. 어미와 아비 닭이 새끼 병아리를 거느리고 있는 ‘자웅장추(雌雄將雛)’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 한 편의 시가 적혀 있다. 닭 그림을 보면서 쓴 ‘의사에게 들은 신묘한 약을 달여야겠는데 닭고기에다 인삼과 한약재인 백출(白朮)을 함께 섞으면 기묘한 효과를 볼 것’이라는 내용이다. 후배 화가가 써넣은 시제로 알려져 있는데 당대의 궁중화가가 그린 닭 그림을 보고 잡아먹을 궁리를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만 어쨌든 닭과 인삼을 함께 요리한 음식, 삼계탕을 의사들이 신비한 효과를 내는 묘약으로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 닭과 인삼을 함께 요리했으니 지금 삼계탕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문화재재단  글.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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