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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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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의 탄생
14-10-07 17:01

전세계 삼겹살을 한국인이 다 먹고 있다는 이야기는 뉴스를 통해 가끔 들을 수 있다. 신문사의 기사를 재인용하면, 2005년에 한국인 1인이 소비한 육류는 31.4Kg 인데, 이 가운데 돼지고기는 17.4이고 쇠고기는 6.6, 닭고기는 7.4이었다고 한다. 전체의 50%가 넘는 돼지고기 소비에서, 절반 가량이 삼겹살로 추정된다. 이 삼겹살의 공급을 맞추지 못해 절반 가량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수입했다고 한다.
 
또 다른 통계에 의하면 2004 ~ 2006년 무렵 우리 국민의 삼겹살 소비량은 년간 15~20만톤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숫자는 한국인 한 사람이 년간 20인분 이상을 소비한다는 의미이다. 노인, 어린이, 채식주의자, 일부 고위층-_등을 제외하면 저 숫자는 30~40인분으로 올라간다. 한달에 두 번은 삼겹살 회식을 한다는 뜻이 된다.
 
어떤 통계에서는 한국이 세계 최대의 삼겹살 소비국이라고 하는데, 진실여부 확인은 못 해봤지만 총량 기준으로는 중국보다 적지 않겠어? 하지만 1인당 소비량이 최대라고 한다면 고개를 끄떡이지 않을 수 없다. 서양권에서 삼겹살은 베이컨 용도로 소량을 먹는 정도라고 알고 있다. 동양권에서도 중국 정도일텐데, 우리처럼 들입다 삼겹살만 구워먹는 문화는 없다.
 
오늘날의 우리는 삼겹살에 소주를 <국민의 음식> 을 넘어서 <국민성의 일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얼마나 오래된 이야기일까? 삼겹살이 국어사전에 등재된 것은 1994년의 일로, 겨우 10년이 넘었을 뿐이다.
 
전통사회의 고기료리법
 
요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옛날 이야기부터 하자. 우리 조상들의 고기 요리법 가운데 <생고기 구이>는 거의 발달하지 않았다.
 
고기구이의 기원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맥적(貊炙) 이라는 음식이다. 진나라의 사서인 수신기(BC 4세기경에 집필되었다.), 우리가 부끄럽게도 오랑캐의 음식을 먹고 있으니 조만간 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내용과, 장과 마늘로 양념되어있어 장을 따로 찍어먹을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씌어있다고 한다. 또한 이것을 근거로하여 고구려인이 맥적을 구워먹었으니 돼지고기 구이의 역사는 이천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고 한다. (단군할아버지나 치우천황께서는 맥적 맛을 못 보셨겠구만.)
 
조선중후반의 음식디미방등의 규중요리에 대한 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생고기를 구워먹는 문화는 없었거나 또는 아주 미미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삶거나 찌거나 국을 끓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동그랑땡이나 만두같이고기를 첨가한 요리도 있었다. 하지만 구워먹는 고기는 간장으로 양념한 너비아니와 섭산적 정도인 것 같다. 그런데 이 구워먹는 요리도 궁중요리 또는 부잣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요리였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몰라도, 옛날의 양반들은 고기를 구워먹지 않았다고 한다. 고기를 구우면 냄새가 심하게 퍼지므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구워먹는 문화에 대해 조금 부연하자면, 우리나라의 부침이나 지짐류의 음식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부침 및 지짐에 사용하는 번철은 일반 가정의 조리도구가 아니라 대갓집 및 궁중요리의 조리도구였으며, 일반서민은 주로 잔칫날 부침개를 할 때면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서 썼다고 한다. 이러한 번철이나 솥뚜껑은 모두 부침개류의 음식을 조리하는 도구였으며, 너비아니등은 직화에 구운 것으로 되어있다.
 
생고기를 직화가 아닌 불판에 직접 구워먹는 습관이 문헌에 등장한 것은 1943년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등장한 방자구이인 것 같다. 여 기에는 쇠고기를 얇게 저며 소금을 뿌려 먹는 것이 맛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을에서 원님 심부름하는 방자라는 넘이 고기 훔쳐다 후딱 구워먹기 때문에 방자구이라고 한다는데, 이 어원으로 방자가 있던 시대부터 방자구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43년이면 이미 서양을 통해 스테이크 문화가 부유층에게 유입되어있을 때이므로 생고기를 소금으로만 구워먹는 것이 서양 문화의 수입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식이 모자라서 조심스럽기는 하다. 현재까지는 심증은 굳어지는 정도이다. 책 몇 권을 주문했으니 사나흘 후에는 아마 찾아본 결과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이전 시대의 생고기 구이에 대한 정보가 있는 분은 알려주삼)
   
근현대의 식육 소비량의 증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1960  0.5  2.3  0.7
  1970  1.2  2.6  1.4
  1980  2.6  8.3  2.5
  1990  4.1  11.8  4.0
  2000  8.5  16.5  8.9
 
(통계자료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하지만 일제시대 및 6.25 전쟁 후 가난한 가운데 고기는 귀한 음식이었다. 1960년의 1인당 년간 고기 소비량은 쇠고기 500g, 돼지고기 2.3 Kg, 닭고기 700g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강호동의 저녁식사 한 끼에 불과하다. 년간 소비량이 이 정도에 불과하니, 양을 불려먹으려면 별 수 없이 국을 끓여먹었겠지. , 그 북녘 동포들이 애절한 목소리로, 오늘이 생일인데 이밥에 고깃국 좀 먹었으면 참 좋겠다, 라고 말하던 것 있잖는가. 소가 헤엄치고 돼지가 물장구치고 나간 족발맛 국... 같은 것 아니었겠어.
 
이 수치는 1970년에는 소 1.2Kg 돼지 2.6Kg, 1.4Kg로 늘었고, 1980년에는 소 2.6Kg, 돼지 8.3Kg, 2.5 Kg로 늘었다. 1980년에 돼지고기 소비량이 많이 늘었다. 통계 숫자로 봐서는, 1970년 이전까지는 돼지가 헤엄치고 나간 국(...), 닭이 알 낳고 나간 국(...) 등을 먹다가, 1980년 경이 되어서야 일반 서민들까지도 걍 기분 좋은 날에 돼지고기 로스구이라도 흐뭇하게 구워먹을 수 있었을 듯 하다 
 
삼겹살의 기원에 관한 몇가지 설
 
다음은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썰 이다.
 
1. 삼겹살을 구워먹기 시작한 때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삼겹살을 먹게 된 유래로는 1960년대 소주 값이 떨어지자 마땅한 안주로 값싼 돼지고기를 먹게 되었다는 소주가격 하락설과 노동자들이 건축자재인 슬레이트에 삼겹살을 구워먹다 퍼졌다는 슬레이트설이 전해진다. --> 60년대 소주가격 인하설은 기각한다. 상기 통계를 보면 60년과 70년의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거의 동일하다. 슬레이트 + 번개탄 썰은 앞뒤가 바뀐게 아닐까 짐작한다. , 삼겹살의 기원이 아니고 삼겹살 유행 후에 간편하게 먹는 방법일 듯 하다.
 
2. 외식업소로는 70년대말 우래옥이 볶아먹고 삶아먹던 돼지고기를 삼겹살로 내놓았던 것이 처음으로 알려진다. --> 위의 썰을 확인하려면 우래옥에 문의하면 되겠군.
 
3. 돼지는 원래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나 쌀겨, 보릿겨, 비지 등을 먹여 길렀다. 그런데 개성사람들은 섬유질이 적은 사료를 먹인 후 비계가 살 사이 에 겹겹이 얇게 들어 있는 삼겹살을 만들어 이를 시중에 보다 비싼 값으로 내다팔 수 있게 됐다고 한다. --> 이 썰은 글쎄다. 개성상인이 갑자기 왜 튀어나왔는지. 두 번째 썰은 너무 내용이 빈약해 기각한다.
 
4. 삼겹살은 음식 취급을 받지 못했다. 주로 탄광에서 분진을 많이 마시는 광부들이 조금이나마 심적 위안을 얻기 위해 섭취했다는 게 유력한 삼겹살 탄생 유래다. --> 익숙한 썰이다. 이 썰이 사실이라면 삼겹살의 원산지는 강원도다. 감자나 옹심이가 아니라 삼겹살이야말로 강원도 최고의 향토음식 아닌가베  
 
2, 4번이 그럭저럭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어느 쪽이 더 옳을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두 의견 모두 삼겹살의 연원을 높아봐야 1970년 정도로 잡을 수 있겠다. 하지만 1980년대에도 삼겹살은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도 삼겹살을 먹었던 기억은 그다지 없다. 80년대에 코를 흘리던 나는, 가족끼리의 외식에서는 돼지고기등심 로스구이(소금구이), 교사였던 어머니 덕택에 학부형 접대라도 받으면 암소갈비 같은 것을 먹었다. (이 부분은 읽는 분들이 한 마디씩 해주세요.. 삼겹살이라는 간판을 처음 본 것이 언제였는지. 80년대 후반 같은 때는 회식하면 무슨 고기 먹었는지... 등등)
 
삼겹살의 대중화는 몇 번의 전기를 거친다. 90년대 초반에 솥뚜껑 삼겹살이 히트를 치고, 그보다 조금 후에는 1인분 가격이 짜장면보다 싼 대패삼겹살이 유행했다. (양이 적어서, 셋이서 20인분을 먹었다는둥 혼자서 14인분을 먹었다는 둥 하는 강호동같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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