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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따라 전설따라 지팡이 꽂아 자랐다는 삽목전설
15-03-29 11:47
지팡이 꽂아 자랐다는 삽목전설
나무의 무성번식의 한 방법으로 꺾꽂이가 있다. 삽목전설의 대부분은 지팡이를 땅에 꽂아 두어 자랐다는 꺾꽂이 이야기다. 천연기념물 제88호 천자암 쌍향수의 수종은 백두산 근처에 주로 자라는 곱향나무인데,[그곳에서 자라게 된 사연이 있다. 고려 중기의 고승 지눌知訥스님은 중국 금나라에 갔다가, 왕비의 불치병을 고쳐준 인연으로 왕자 담당湛堂을 제자로 삼아 같이 귀국하게 된다. 천자암에 오르면서 두 사람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나란히 꽂아 두었는데 그것에 뿌리가 내려 쌍향수로 자랐다고 한다. 이외에도 마의태자의 지팡이가 자랐다는 30호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어느 스님이 지팡이를 땅에 꽂아두고 주문을 외워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180호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 지눌스님의 지팡이가 자랐다는 402호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 등이 있다. 과연 그랬을까? 소나무는 꺾꽂이가 불가능한 나무이며, 지팡이에서 싹이 틀 확률은 거의 없다. 이렇게 알량한 학문의 잣대를 들이대면, 전설의 참의미를 되새길 수 없다. 이론을 따지기 보다 오히려 전설이 나온 배경을 음미해 보는 것이 더 보람된 일일 것이다. [b]만지면 동티나고, 나무 베다 죽고, 이무기가 산다는 공갈전설 [/b] 고목나무들이 기나긴 세월을 버텨오기 위해서는 우선 태풍을 비롯한 자연의 재해를 이겨내야 하며, 이어서 사람들에게 베이지 않아야 했다. 당산목으로 마을의 신앙대상으로서 살아남는 나무들도 있었지만, 많은 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을 수장들은 고목나무들을 지켜내기 위해 ‘동티난다’, ‘베다 죽었다’, ‘이무기가 산다’는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퍼트려 나무들을 지켜내고자 했다. 동티의 대표는 전남기념물 제175호 무안 석용리 곰솔이다. 직설적으로 동티가 어떻게 나는지를 입간판에다 적어 놓았다. ‘마을 주민 한 사람이 쟁기용으로 쓰기 위해 나뭇가지를 베었다가 국부에 종기가 나서 3년간 고생하다 죽었다.’는 것이다. 천연기념물 제293호 상주 상현리 반송은 ‘이무기’가 살고 있다고 해, 사람들이 감히 가까이 갈 엄두도 못 냈다. 벼락이라도 치는 날이면 이무기의 우렁찬 소리가 나무속에서 들려오는 듯하여 사람들이 더욱 두려워하였다. 심지어 농사일을 나갈 때는 나무를 피해 멀리 둘러 다녔다 한다. 이렇게 나무속에 영물이 산다는 고목이 여럿 있다. 천연기념물 제76호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165호 괴산 읍내리 은행나무, 167호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381호 이천 도립리 반룡송 등은 뱀이나 이무기의 전설이 들어있다. [b]이루지 못한 비련의 나무 전설[/b]

예나 지금이나 사랑은 비련悲戀으로 끝나야 이야깃거리로 남는다. 슬픈 사랑의 전설을 담은 나무로는 천연기념물 제89호 경주 오류리 등나무가 있다. 신라 때 이 마을에는 곱고 마음씨 착한 자매가 살고 있었다. 자매는 이웃마을에 사는 한 청년을 동시에 짝사랑했으나 서로의 마음을 비밀에 두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청년이 전쟁터로 떠나버리자 자매는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고 애절한 마음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애절한 사랑에는 자칫 마魔가 끼는 법, 청년의 전사 소식에 자매는 그대로 연못에 몸을 던져 버렸고, 그 후 연못에는 두 그루의 등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죽었다던 청년은 훌륭한 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자매의 애달픈 사연을 들은 그는 스스로 연못에 몸을 던져버린다. 그 연못에는 지금도 등나무가 팽나무를 얼싸안듯이 타고 올라가면서 자라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304호 볼음도 은행나무는 북한 천연기념물 제164호 암나무와는 부부사이라고 알려져 있다. 고려 중엽 쯤, 황해남도 연안군 호남리에는 암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연안평야를 휩쓴 홍수로 인해 뿌리까지 뽑힌 수나무는 순식간에 홀로 볼음도로 떠내려 와 버렸다. 지금도 볼음도 은행나무는 북한의 암나무를 그리워하여 우~웅 우~웅 하는 울음소리를 내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경남기념물 제239호 거제 윤돌섬 상록수림은 효자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옛날 윤돌섬에는 한 과부가 윤씨 성을 가진 삼형제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건너편 양지 마을에는 아내를 잃고 날마다 허공에 뜬 달만 쳐다본다고 하여 망월望月이라고 불리는 홀아비가 살고 있었는데, 물이 많이 빠지는 밤이 되면 윤돌섬 과부는 버선을 벗고 홀아비를 만나러 갔다고 한다. 이를 몰래 바라보고만 있던 아들 삼형제는 어머니를 위하여 큰 돌을 날라 징검다리를 놓았고, 그 후로는 어머니가 버선을 벗지 아니하고도 망월 노인을 수시로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윤씨 삼형제가 어머니를 위하여 돌다리를 놓았다 해서 윤돌섬 또는 효자섬이라고 부른다. [b]임금님과 맺은 인연 전설[/b] 절대 권력자인 임금님과 나무의 인연도 남다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정2품송을 비롯하여 임금님과 인연을 맺은 고목나무는 여러 그루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363호 삼척 궁촌리 음나무는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의 사형 집행 시 곁을 지키던 나무였다. 공양왕은 1392년 왕위에 오른 지 불과 2년 8개월 만에 이성계 일파에 의하여 밀려나게 되고, 추방 된지 2년이 채 안 돼 왕비와 두 아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왕의 마지막 순간에도 말없이 자리를 지켜주던 나무가 바로 이 음나무다. 이외에 실직국 왕이 쉬다 갔다는 천연기념물 제96호 울진 수산리 굴참나무, 이성계가 심었다는 284호 담양 대치리 느티나무 및 386호 진안 은수사 청실배나무, 조선 인조가 대군 시절 호남을 방문하였을 때 말을 매었다는 전남기념물 제45호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 등이 있다. [b]허虛한 것을 보완한 비보 전설[/b] 도선국사 이후 명당사상은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금도 조상의 산소는 물론 주거지까지 명당을 찾는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의 완벽한 지형을 가진 곳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 가지 정도의 흠결 쯤 가진 곳은 비보裨補란 이름으로 보완을 하여 아쉬운 대로 명당 대열에 넣었다. 천연기념물 제406호 함양 운곡리 은행나무는 돛대 나무로 심은 것이다. 이 일대는 마을 전체가 배舟모양이라 물난리를 자주 겪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이유를 돛대가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 돛대 자리에다 은행나무를 심어 완전한 배의 형상을 만들고 마을 이름도 은행정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비보는 이런 고목나무보다 숲이 훨씬 많다. 천연기념물 108호 함평 향교리 숲, 403호 성주 경산리 성 밖 숲, 405호 의성 사촌리 가로 숲, 469호 예천 금당실 송림 등은 모두 비보의 개념으로 만들어진 숲이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글·사진 제공|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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