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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와 휴식의 현장 생명력 있는 누정과 죽은 누정
15-04-07 09:55

대자연과의 교섭, 풍류와 휴식의 현장
고려 말의 문인 안축安軸은 그의 기문記文에 누정을 짓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썼다. “천하 물건이 형체가 있는 것은 모두 이치가 있으니, 크게는 산수, 작게는 주먹만 한 돌, 한 치의 나무라도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이치를 보고 흥취를 느끼고 즐거워하는 것이니, 누대와 정자를 짓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형체가 기이한 것은 겉으로 나타난 것이니 눈으로 구경하게 되는 바이고, 이치는 미묘한 데에 숨어 있으므로 마음으로 찾게 되는 바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 「강릉도호부」 누정 조)”

옛 선비들은 정신적 즐거움을 얻고 심오한 대자연의 이치를 터득키 위해 산수 강호에 누각과 정자를 지었다. 누정은 선비들에게 있어 정신적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이자 고상한 모임의 장소였다. 그들은 정신이 혼란하고 시각이 옹색해질 때면 누정에 올라 풍월주인을 자처하였다. 때로 벗과 함께 정담을 나누다 시흥詩興이 일면 읊조리는 시 한 수에 사계 풍광을 모두 담기도 했다.

누정은 속세를 떠나 외딴곳에서 살려는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은거지로도 이용되었다. 조선의 유학자 송시열宋時烈 같은 사람은 비어 있는 남의 정자를 빌려 몇 달 동안 혼자 조용히 앉아 글을 읽었더니, 지난 1년간 읽은 책 수에 맞먹었다고 했다. 이렇듯 누정은 독서와 수신의 공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누정에 은거하는 것이 비록 세상과 단절된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 오래 머물고 있다 보면 새 소리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대나무와 달은 옛 벗처럼 다가오며, 빗소리 솔바람 소리는 흥을 일으키는 도도한 음악처럼 들린다. 누정은 이처럼 건물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자연 환경에 묘처妙處가 있다. 그 현묘한 경계를 관조하며 즐기는 사람들이 있을 때 누정은 참다운 풍류 현장으로 탈바꿈한다.



자연회귀심성의 징표
옛 선비들에게 있어 산수는 단순한 산과 물이 아니라 총체적인 자연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자연은 도道의 본질이 내재된 것으로써, 지형적, 물질적 세계가 아니라 정신적 세계였다. 그렇기 때문에 산수의 도리가 인간 스스로를 조종하는 수양의 방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연에 회귀하여 물아일체의 경지를 체득키 위해 아름답고 그윽한 산수 속에 오래 머물고자 했다. 그래서 물 가까이 있으면서 먼 산을 바라볼 수 있는 대산임수對山臨水의 자리나, 그윽한 계곡과 계류 주변, 호젓한 강호江湖에 터를 골라 누정을 짓고 그곳에서 은거하기를 즐겼던 것이다.

그런데, 깊은 산 그윽한 계곡에 숨어 있는 옛 누정을 보면 주변 지세와 함께 하나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어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인공물인 누정이 이렇게 주변 자연과 극적인 조화를 이루게 된 것은 아마도 시선을 고려한 위치 선택과 알맞은 크기, 그리고 소박한 건축미 때문일 것이다.

생명력 있는 누정과 죽은 누정
누정은 그 주변에 감상할 만한 풍광이 있기에 그곳에 지어진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옛 풍류객들이 정자나 누각 건물이 퇴락한 것을 보고 탄식하면서도 그 위에 올라 산수 풍광을 감상하며 즐거워했으니 말이다. 누정은 자연과 어울릴 때 진정 존재 의미가 살아나고, 그럴 때라야 누정 생활도 의미와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다.

만약 주변에 흐르던 맑은 물이 썩고 푸르던 산이 황폐화되었다면 그 누정은 산수정원의 구심점으로서, 정서적 휴식과 풍류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잃고 만다. 누정 건물이 비록 흠집하나 없이 완벽히 보존되었다 해도 주변 환경이 모두 망가졌다면 그것은 이미 아무 의미 없는 죽은 건축물에 불과한 것이다.

누정은 박물관 진열장 속의 금관이나 도자기 같은 문화재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누정은 주변 환경이 아름답고 그곳에 즐겨 오르는 사람이 있을 때라야 생명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정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일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전통 누정문화의 계승 차원뿐만 아니라 자연 환경의 보존, 더 나아가서는 현대인의 정신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의 문제와도 긴밀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문화재청홈페이지   글·사진·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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